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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방(РФ) : 충격요법

김태항(정치학 박사) 바리쓰 니꼴라이비치 옐찐(Борис Николаевич Ельцин) 2 옐찐의 해괴한 행태 1991년 8월 쿠데타 이전까지 옐찐은 워싱턴에서 평판이 좋은 인물은 아니었다. 미 정보당국은 옐찐에 대해 술고래에다 인기영합적이며, 부시의 고르바초프 지지를 이유 없이 비난하고, 방해하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인지는 몰라도 1991년 12월 8일 민스크 근교의 벨라베쉬스까야 숲에서 러시아, 우끄라이나, 벨라루시 등 슬라브 3국의 지도자들이 소련 해체에 대한 비밀 회동을 한 후, 옐찐은 고르바초프보다 부시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 까게베의 도청을 의식해 일반 전화를 이용했는데, 전화 교환원이 백악관 교환원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자, 친서구주의자이자 영어가 유창한 안드레..

아프간 여성의 수난과 저항 : 부르카의 눈물

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에는 부르카(Burqa)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 어린 여주인공 마리암이 부인과 사별한 라시드와 결혼하게 되자 외출할 때는 율법에 따라 부르카를 입어야 했다. 그녀는 긴 옷에 자신의 몸을 맞추기 위해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실내에서 비틀거리며 보행연습을 했다. 마리암이 부르카를 입고 밖에 나가보니 시야가 좁아서 길을 찾기 어려웠다. 그녀는 정해진 길들을 반복해서 오가며 조금씩 보행에 익숙하게 되었지만 새로운 길을 가기란 어려웠다. 부르카의 쓰임새는 중국에서 천년 동안 유행했다는 전족(纏足)을 연상하게 한다. 부르카를 입으라는 것은 정해진 길만 오고 가라는 의미..

아프간사태와 한국의 ‘의문의 1패’

미군의 전격 철수로 탈레반이 카불에 무혈입성하면서 미군의 억지력에 의존하는 지역들이 갑자기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런데 일부에서 아프간사태와 한국을 꼭 찍어서 연관시키는 바람에 한국은 졸지에 ‘안보불안 국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8월 18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과 대만, 한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이에는 내전상태와 통합정부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누가 NATO, 일본, 한국, 대만을 침략하거나 불리한 조처를 하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설리번(Jake Sulliva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한국이나 유럽에서 미군을 감축할 의향이 없다고 확인했다. 한국의 안보문제를 꼭 집어서 도마 위에 올린..

아프간 와칸회랑에 투영된 중국의 근심

캐나다의 군사전문지 ‘Kanwa Asian Defence Review’의 편집자 안드레이 장(Andrei Chang)에 따르면 미국은 2001년 이후 20년 동안 아프간 정부군을 육성하고 무장시키기 위해 830억 달러(97조 685억원)를 썼고, 아프간 정부군에게 공급된 무기들은 암시장을 통해서 군벌이나 극단주의 단체들에게 팔렸다(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2021.8.17). 그런데 최근에 각주의 중심도시와 카불을 점령한 탈레반은 아프칸 정부군이 방치한 총기류를 비롯해서 실탄과 폭탄, 헬리콥터, 전투기 등을 대거 획득함으로써 역내의 무기 암시장에 커다란 공급선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2001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아프간 주둔 미군에 7600억 달러가 투입되었다. 미국은 아..

러시아 연방(РФ) : 거대한 모순덩어리

김태항(정치학 박사) 바리쓰 니꼴라이비치 옐찐(Борис Николаевич Ельцин) 1 개요 1991년 12월 25일 저녁, 고르바초프의 사임 연설이 끝나자마자 끄레믈 궁전에서 휘날리던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련의 붉은 깃발이 내려지고, 얼마 뒤 흰색, 적색, 청색으로 구성된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의 국기가 게양되었다. 역사의 보복인가? 아니면 역사의 진보인가? 제정 러시아를 타도하고 등장한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지면서 국기조차 제정 러시아 시대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소비에트 연방 붕괴의 원흉이 고르바초프라고 지적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실질적 주범은 옐찐이었다. 대중영합적인 급진 개혁세력의 선봉이자, 독불장군 성향과 함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탐독한 듯, 집요한 권력의지..

탈레반의 귀환과 허약한 완충국가의 운명

“전쟁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20년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발을 뺐다. 앞서 영연방과 소연방(Soviet Union)이 물러선 것처럼 이 나라는 ‘강대국의 무덤’임을 다시 입증했다. 탈레반이 카불에 재입성하면서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이 나라의 오래된 속담이 이번에도 맞아 떨어진 셈이다.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은 제2차세계대전의 부전(不戰)국가이자 역사적으로 중립노선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전과 외부의 침공이 반복되는 ‘허약한 완충국가’의 운명을 되풀이하고 있다. 탈레반의 귀환은 문제의 종료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 120년 전에 한반도 국가(대한제국)는 대외적으로 중립을 주장했지만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외부의 침공을 초래하였다. ..

체제선택의 문제(2) 아일랜드, 뉴질랜드, 캐나다의 시사점

인간에게 체제선택의 자유, 체제선택의 권리가 존재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자마자 특정한 체제에 속하여 일생을 마친다. 어떤 사람들은 이주, 망명 등의 방식으로 다른 체제를 선택하기도 한다. 한반도 국가에서는 남과 북의 체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없다. 북은 말할 것도 없고 남에서도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남과 북의 태어나는 모든 아이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특정한 번호에 의해서 주민등록이 되고,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존재하는 헌법을 준수해야 한다. 한국과 조선은 지정학적 실체이자 국제법적 주체라는 점에서 양측이 정상국가의 관계라면 한국에서 살다가 조선으로 이주하거나, 조선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이주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겠지만, 쌍방의 실질적 관계는 단순한 방문이나 ..

충북동지회와 CCPT에 투영된 반쪽 국가주의

UN 동시가입 30주년을 맞이한 올해에도 남북관계의 해괴한 풍경들은 여전하다. 한국은 남북교류협력을 민족내부의 거래로 규정하면서도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는 ‘남의 나라’의 일이라고 말한다. 최근 충북동지회사건은 조선이 겉으로는 민족내부의 관계와 자주적인 해결을 강조하면서 속으로는 1960년대~70년대에 횡행했던, 이른바 '고정간첩'을 심으려고 한다는 비난을 자초한 퇴행적 사건이다. 지난 2019년 11월 5일 동아시아연구원(EAI)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중의 갈등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중립을 추구해야 한다’(69.9%)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미 행정부가 희망하는 ‘미국에 대한 선택’은 24.4%였고, 국내 일각에서 심정적으로 제기하는 ‘중국에 대한 선택’은 5.1%..

끄레믈의 서기장들(Ⅴ) 소련의 붕괴

김태항(정치학 박사) 미하일 쎄르게이비치 고르바초프(Михаил Сергеевич Горбачев) 5 뻬레스뜨로이카의 위기 고르바초프는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경제 관념에 아담 스미스(Adam Smith)적 요소를 첨가하기로 했다. 즉 그는 뻬레스뜨로이카의 본격 가동을 위해 국유 기업의 자치 확대(расширение самостоятельности) 및 사기업 활동, 부분적 사유화 허용 등 사적 영역의 활동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이렇듯 고르바초프는 고(故) 아담 스미스를 초빙하여 꺼져가는 경제에 불꽃을 피워보고자 했지만, 오히려 물자 부족은 만성적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물론 고르바초프 시대에서도 노멘끌라뚜라들은 질산이 첨가되지 않은 질 좋은 사씨스끼(сосиски; 소..

중견국가(5) : 역동성, 미래성 세계 1위

코로나사태로 1년을 연기해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대표선수단은 88 서울올림픽 이후 최하위권인 종합순위 16위에 그쳤다. 최고 4위까지 오른 적이 있고 대개는 10위권 안에 들었기 때문에 막판에 스포츠강국 쿠바의 추월로 15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그러나 국가 전체의 평균적 수준이 15위권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딱히 놀랄 일도 아니고 오히려 정반대로 생각해 봐야 할 점들이 있다. 한국의 엘리트 스포츠가 다른 분야보다 비대칭적으로 과대발전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종합순위 16위는 우수한 성적에 속한다. 지상의 UN 회원국이 190개국이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15위권은 상위 10% 이내에 포함된다. 국력 평가의 일반적 기준들과 문화예술 및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