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출신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에는 부르카(Burqa)에 얽힌 이야기가 나온다.
나이 어린 여주인공 마리암이 부인과 사별한 라시드와 결혼하게 되자 외출할 때는 율법에 따라 부르카를 입어야 했다. 그녀는 긴 옷에 자신의 몸을 맞추기 위해 굽이 높은 신발을 신고 실내에서 비틀거리며 보행연습을 했다. 마리암이 부르카를 입고 밖에 나가보니 시야가 좁아서 길을 찾기 어려웠다. 그녀는 정해진 길들을 반복해서 오가며 조금씩 보행에 익숙하게 되었지만 새로운 길을 가기란 어려웠다. 부르카의 쓰임새는 중국에서 천년 동안 유행했다는 전족(纏足)을 연상하게 한다.
부르카를 입으라는 것은 정해진 길만 오고 가라는 의미일지도 몰랐다. 남편의 살인적인 폭행에 시달리던 마리암이 부르카를 입고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부르카를 벗고 도망치다가 걸리면 죽음을 당할 수 있었다. 과거 탈레반 정권에서는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들을 폭행했고, 최근에도 한 여성의 원피스 차림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집단폭행을 가하여 살해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1960년대~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에 등장하는 마리암의 비애와 21세기 아프간 여성들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최근 탈레반의 귀환으로 세계인들은 아프간에서 그런 시대가 지나갔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되었다.
히잡에 대한 상이한 해석
코란 혹은 꾸란(Quran)의 정본에 대한 논란, 코란의 여러 대목에 대한 해석, 코란에 나오지 않는 율법이나 지침에 대한 상이한 견해를 고려할 때 이슬람권 여성의 외출복장에 대한 유일한 표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신을 완전히 감추는 부르카(burka)를 옹호하는 논리에는 코란의 대목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코란에서 이슬람교도는 여성이 남성을 유혹하지 말고 남성이 여성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도록 여성의 복장에 대해서 구체적 지침을 내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성은 자신의 남편과 아버지, 아들, 오빠나 남동생, 성적인 욕망을 가질 수 없는 남성하인 등을 제외한 모든 남성에게서 자신의 몸을 최대한 숨겨야 한다고 적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머리에 두르는 히잡이 유래하게 된 것도 남성을 성적으로 흥분시키기 때문에 여성의 머리카락을 가리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으며, 실제로 이슬람권의 여성들은 종파를 떠나 최소한 히잡을 쓰는 것에서 별로 이의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면사포, 혹은 장막을 뜻하는 히잡(hijap)이란 말은 코란에서 일곱 군데에 등장할 뿐이고, 그 의미도 여성의 구체적인 복장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종교적 의미를 담았다는 견해도 있다.
아일랜드 출신 중동전문가 말리스 루스벤(Malise Ruthven)에 따르면 코란에서 히잡이란 말은 대부분 영적이거나 도덕적인 문제에서 등장하고 여성을 적시한 대목은 거의 없다고 한다. 히잡은 주로 영원한 신과 사멸의 존재로서 인간을 분리하는 의미, 혹은 부정한 자들과 율법에 순종하는 신자를 분리하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코란 17장 45절에 “신이 마호메트(Muhammad)와 내세(來世)를 불신하는 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히잡을 쳐놓았기 때문에 Makkans는 코란 암송에 주의를 기울이는데 실패한다”고 한 것처럼 히잡이란 말은 주로 종교적 관념을 담았고, 유일하게 여성과 직접 관련된 내용으로는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가족을 떠나서 스스로 그들로부터 히잡(hijap=seclusion)을 지켰다”는 대목이라고 한다.
이 대목은 Madinese period 이후 등장하는데, 루스벤에 따르면 남성들이 선지자를 찾아와 대화하거나 청원할 때 선지자의 부인들을 히잡 혹은 가림막 뒤에 두어야 할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코란(33장 33절)에서는 “선지자의 부인들은 필요한 일이 있으면 가림막 뒤에서 하라. 그리하면 너희와 그들의 마음이 모두 정결하리다”고 계시했다(Malise Ruthven, Islam in the world, 158~159쪽).
이러한 교리를 확대해석하면 히잡이나 부르카를 쓰거나 입는 여인은 정결치 못한 세속적 여인들과 분리되고 신의 나라에 가까워지는 은총을 받게 되니 불평할 일이 아니라 감사할 일이 되는 것이지만, 부르카와 같은 과도한 가림에 반대하는 이슬람권 여성들은 코란의 히잡이 모든 여성이 아니라 선지자의 부인에 국한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기독교 신약성경의 고린도전서 11장에도 코란의 히잡과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남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여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다.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만일 깎거나 미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거든 가릴지니라.”
가톨릭의 성모상은 언제나 미사포를 쓰고 있고, 요즘은 성탄절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쓰는 경향이 있지만 여신도는 미사에 참석하려면 미사포를 써야 했다. 가톨릭 수녀는 머리를 가리는 두건(coif)을 쓴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정결한 여성이라면 머리카락을 가려야 한다는 종교적 관념을 공유하는 셈이다.
불교에서도 여승(비구니)의 머리를 삭발한다는 점에서 인류의 종교사는 신에 순종하는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머리카락’에 대한 처리를 중시했다고 하겠다. 반면에 현대적 시각에서 반추하면 그러한 종교사는 ‘여성 모발의 수난사’라는 견해도 있을 법하다.
조선시대에 ‘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라고 하여 남녀를 불문하고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을 권장하면서도 여성들이 외출할 때는 머리를 가리는 쓰개를 썼다는 점에서 근대 이전에 여성의 머리 부분을 가리게 하는 경향은 동서양 문명국가(?)의 보편적 현상이었던 셈이다.
캐롤 아담스(Carol J. Adams)는 ‘The Sexual Politics of Meat'에서 미국사회의 왕성한 육식문화와 육류광고에 담긴 여성(육체)에 대한 대상화를 연결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그녀는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을 지원하고 상담하는 과정에서 남성의 육식이 여성에 대한 폭력적 행동과 서로 구성적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문화권인 유럽과 북미에서는 여성을 상품화하고 노출을 권장하는 경향에 대한 복잡한 논란이 지속되는가 하면, 이슬람문화권인 중동과 서남아시아에서는 금욕적 윤리의 명분으로 여성의 전신을 덮어버리는 부르카에 대한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정교분리의 자본주의사회에서 횡행하는 여성에 대한 성착취와 정교일체의 신정국가에서 여성에게 강요하는 폐쇄적 윤리는 표면적으로 상반된 가치를 보여주지만, 양쪽의 남성들에 의한 ‘여성의 대상화’라는 점에서 상통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도 숏컷이 ‘탈코’의 상징으로 부각되면서 머리를 짧게 자르는 것이 부정적 맥락의 페미니즘으로 공격을 당하는 빌미가 되었다. 부르카의 강요와 숏컷에 대한 비난은 전혀 다른 문화적 맥락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성의 드러냄’에 대한 남성의 작위적 개입이란 점에서 성정치(sexual politics)의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프칸 여성들의 저항
1987년에 수립된 나지불라 정권에서 아나히타 라테브자드(Anahita Ratebzad)를 비롯한 아프간 여성들은 이슬람 사회의 페쇄적 관행을 타파하고 여아의 교육과 여성의 취업을 보장하는 사회를 요구했다.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탈레반정권이 붕괴하자 첫 여성 국회 부의장이 된 파지아 쿠피(Fawzia Koofi)는 7명의 아내를 둔 아버지의 23명의 자녀 중에서 19번째로 태어난 딸이었다. 쿠피는 “탈레반의 이슬람교는 이슬람이 아니다”는 소신으로 이슬람 극단주의에 목숨을 걸고 맞서 왔다. 2010년 3월에는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두 딸과 낭가하르주에 갔다가 카불로 돌아오는 차량 안에서 빗발 같은 총격세례를 받기도 했다.
탈레반은 율법에 따라 여성이 국가수반과 재판관을 할 수 없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쿠피는 대통령 출마를 공언하면서 기존 율법에 정면으로 대항하면서 탈레반이 코란을 극단적으로 해석한다고 비판해 왔다. 또한 지난해 탈레반과의 도하협상에서는 정부측 대표단으로 참여해서 탈레반 대표단에게 “그쪽도 여성대표가 나와야 한다”고 해서 그들을 실소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2019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되었던 쿠피는 8월 16일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History repeats itself so quickly.”
역시 처음으로 아프간 여성 교육부장관이 된 랑기나 하미디(Rangina Hamidi)는 정부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청사에 나가 소임을 다하고자 했다. 하미디 장관은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다. 내가 갈 곳은 없다”고 밝혔다. 그녀는 만약 자신이 살아 남는다면 소녀들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3명의 아프간 여성 지방자치단체장 중에서 최연소인 29세의 가파리(Zarifa Ghafari) 마이단하르 시장도 세 차례의 암살위협에 굴하지 않고 직무를 수행해 왔고, 지난해 미 국무성으로부터 ‘용기 있는 여성’으로 선정되었다. 가파리는 탈레반의 정권장악이 확실해지자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서 남편과 함께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겠다는 비장한 결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8월 18일 가파리 부부와 부모 및 형제들이 외부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터키 이스탄불로 탈출했다는 소식도 있다.
탈레반이 반분한 차킨드 지역의 단체장인 살리마 마자리(Salima Mazari)는 이란의 난민촌에서 자라나 아프간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경비대와 농민 등으로 구성된 600여명으로 탈레반의 진격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최근에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마자리는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농민들이 가축을 팔아서 무기를 사고 아무런 대가나 보장도 없이 전선을 지켰다고 밝혔다. 또한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탈레반이 장악한 지역의 여성들은 집 안에 갇혀 있다고 분노했다.
아프간의 첫 여성 영화협회장인 사흐라 카리미(Sahraa Karimi) 감독은 “탈레반은 여성이 옷을 바르게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눈을 도려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카리미는 최근 카불 혼란으로 탈출이 어려워지자 “갈 곳이 없다면 남아서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지만, 두 번째 시도에서 우크라이나 키에프로 비행탈출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탈출 경위에 대해서 두 살 배기를 비롯해서 나이 어린 조카딸들을 탈레반 치하에서 키울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또한 외국문화에 극도로 적대적인 탈레반이 아프칸의 젊은 영화인들을 집단학살할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세계의 영화인들에게 그들을 구해달라고 호소했다.
가파리 시장과 같은 1992년생인 미나 망갈(Mina Mangal) 기자는 자신이 언론 활동을 하는 것을 반대한 남편과 이혼했으나, 남편과 그의 가족으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나중에는 정체불명의 세력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았다. 심지어는 납치를 당해서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부족 원로 등의 도움을 받아 딸을 찾아내 구출했다. 망갈은 이러한 수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었고, 이후 아프간 하원의 문화담당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2019년에 살해위협이 더욱 고조되는 상황에서 경찰은 아무런 신변보호도 해주지 않았고, 그녀는 백주대로에서 피살되었다. 여성언론인 망갈의 참혹한 죽음은 그 이유가 정치적 테러이든 전 남편 가족에 의한 이른바 ‘명예살인’이든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아프간 여성들은 때론 부르카를 입고 투표를 해서 저항했고, 때론 부르카를 벗고 남장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자신들을 평생 옥죄는 종교적 인습과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때론 죽음으로써 저항하고, 때론 살아 남아서 저항하고, 때론 탈출해서 저항하고 있다.”
'세계의 국가(World Politics) >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ISIS-K의 기원 (2) | 2024.03.23 |
---|---|
미군의 아프간 20년 주둔은 대국민 사기극 (0) | 2021.08.24 |
아프간사태와 한국의 ‘의문의 1패’ (0) | 2021.08.21 |
아프간 와칸회랑에 투영된 중국의 근심 (1) | 2021.08.19 |
탈레반의 귀환과 허약한 완충국가의 운명 (1) | 2021.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