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의 전격 철수로 탈레반이 카불에 무혈입성하면서 미군의 억지력에 의존하는 지역들이 갑자기 도마 위에 올랐다. 그런데 일부에서 아프간사태와 한국을 꼭 찍어서 연관시키는 바람에 한국은 졸지에 ‘안보불안 국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8월 18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과 대만, 한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이에는 내전상태와 통합정부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누가 NATO, 일본, 한국, 대만을 침략하거나 불리한 조처를 하면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설리번(Jake Sullivan)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한국이나 유럽에서 미군을 감축할 의향이 없다고 확인했다.
한국의 안보문제를 꼭 집어서 도마 위에 올린 장본인은 워싱턴포스트의 칼럼니스트인 티센(Marc A. Thiessen)이었다. 그는 트위터에 “한국이 (아프간처럼) 지속적인 공격을 받는 상황이라면 미국의 도움 없이는 붕괴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의 변화를 무시한 생각이라는 비난이 쇄도하자 “미국의 도움이 없어도 스스로 방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왜 거기에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70년 동안 한반도는 ‘동북아의 화약고’에서 점차 평화로운 분단체제로 이행하면서 21세기에 네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했지만, 여전히 주한미군의 전쟁억지력에 의존하고 있다.
티센의 주장은 시대착오적이고 도발적인 언사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한반도 문제에 대한 외부인의 상식적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최근 한국의 국방비 지출은 세계 TOP 10 수준이고, GDP 대비 국방예산은 세계 TOP 5로 상승했다. 또한 글로벌 파이어 파워(Global fire power)의 ‘Military Strength Ranking’에서 2017년 12위에서 2019년 7위로 상승했고, 2021년에는 프랑스(7위)와 영국(8위)를 제치고 6위로 부상했다.
또한 한국은 전후에 독립한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30-50 클럽’에 가입하였고, 과거에 원조를 받았던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운크타드(UNCTAD)의 경제선진국(B그룹)이 되었다.
경제와 군사에서 중견국 수준의 힘을 가진 한국이 항상적인 안보불안 국가로 지목되는 이유는 핵무장에 성공한 조선(DPRK)와 평화적 관계를 확립하지 못하고 아직도 정전협정체제를 유지함으로써 전쟁 가능성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이유로 말미암아 자주국방을 위하여 수십년 동안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부은 한국이 아프간에서의 미군철수와 탈레반의 무혈입성으로 인하여 갑자기 도마 위에 올려져 국가적 자부심과 위신에 ‘의문의 1패’를 당한 셈이다.
티센-설리번-라이스-워크-바이든 : 주한미군의 역할과 기여
주한미군을 둘러싸고 티센의 도발적인 언급과 설리번의 수습, 라이스 전 국무장관의 70년 장기주둔 발언, 한반도 전문가인 워크의 반박, 바이든 대통령의 해명에 이르자 한국의 언론들은 급기야 흥남철수까지 소환했다.
티센, “미군이 없었다면 한국은 붕괴했을 것” → 설리번, “유럽과 한국의 미군을 감축할 계획이 없다” → 라이스, “미국이 가장 오래 전쟁한 곳은 한국이고, 70여년이 지났지만 발전된 한국군조차 단독으로 북한을 억지하지 못해 미군 2만8천명이 주둔한다” → 워크, “서울은 카불이 아니다” → 바이든, “아프가니스탄과 한국은 다르다”
스팀슨센터 38노스(38 North Program)의 클린트 워크(Clint Work) 연구원은 ‘Foreign Policy’(8.18)에 기고한 ‘Seoul Isn’t Kabul’이란 제목의 글에서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은 개연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러한 일은 미국이 한반도 안보의 구성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졌을 때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3년 전에도 ‘U.S. Soldiers Might Be Stuck in Korea Forever’(Foreign Policy, 2018.5.1)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주한미군 철수를 가망성이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한반도의 평화협정과 주한미군 철수는 장기적이고 험난한 과정이 놓여져 있고, 오히려 미군의 사실상 영구적인 주둔 가능성을 제기했다.
“조선의 공식적이고 명시적인 핵 독트린(Nuclear Doctrine)은 “적대적인 핵보유국과 야합해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비핵국가들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로 위협하지 않는다”(2013년 최고인민회의 제12기 7차회의,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 데 대한 법 제5조)는 것이다. 이는 거꾸로 해석하면 적대적인 핵보유국(미국)과 야합해 조선을 공격하는 행위에 가담하는 비핵국가들(한국 일본 등)에 대하여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선이 어떠한 경우에도 한국에게 핵 위협이나 핵 공격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근거가 박약하다.“(트윈 코리아, 347쪽)
카불공항이 아수라장이 되면서 사이공의 최후를 떠올리게 하고, 급기야 흥남철수까지 연상하게 되면서 초기 코로나방역과 운크타드 B그룹으로 국격을 일층 높였다고 자부하던 한국은 ‘의문의 1패’를 당하게 됐다.
한국은 조선(DPRK)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지 못한다면 이른바 ‘통일위업론’과 통일지상주의의 족쇄에서 벗어날 수 없고, 이로 인한 군사적 대치 및 긴장은 한국군의 강력한 무장에도 불구하고 북핵과 주한미군의 대결구도를 무한정으로 연장할 것이다.
주한미군을 둘러싼 미국 내부의 논란이 던지는 시사점은 명백하다. 미국은 한반도의 군사적 균형을 위한 주한미군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영속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조선을 대미 최전선국가로 삼아 한반도를 미·중의 완충지대로 유지하려고 한다.
이에 따라 남과 북은 세계 양강의 거대한 체스판에서 휴전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항구적 평화체제도 아닌 전쟁도 아닌 기묘한 ‘최적 긴장(Goldilocks Tesion)’을 감수하면서 쌍방의 국민과 인민을 위해 써야 할 엄청난 금액을 국방과 안보에 투입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제 한국의 자주국방과 조선의 선군정치 및 핵무장은 무한경쟁에서 벗어나 적정한 균형의 출구를 찾아야 할 때가 왔다. 양측은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최적 긴장과 완충지대의 무한연장에 마침표를 찌고, 통일과 중립화의 결박을 풀어야 할 때가 왔다.
한국전쟁 70년, 남북기본합의서 및 UN 동시가입 30년을 넘어 21세기 중반으로 가는 시점에서 쌍방은 무위(armed suasion)에 기초한 영세무장중립으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동북아의 집단안보체제를 촉진하는 쌍둥이 전략국가(Twin Koreas)로 존재이전을 하는 ‘한반도 국가의 재구성’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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