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시작하는 것보다 끝내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 20년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발을 뺐다. 앞서 영연방과 소연방(Soviet Union)이 물러선 것처럼 이 나라는 ‘강대국의 무덤’임을 다시 입증했다. 탈레반이 카불에 재입성하면서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이 나라의 오래된 속담이 이번에도 맞아 떨어진 셈이다.
동시에 아프가니스탄은 제2차세계대전의 부전(不戰)국가이자 역사적으로 중립노선을 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전과 외부의 침공이 반복되는 ‘허약한 완충국가’의 운명을 되풀이하고 있다. 탈레반의 귀환은 문제의 종료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가능성이 높다.
120년 전에 한반도 국가(대한제국)는 대외적으로 중립을 주장했지만 군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외부의 침공을 초래하였다. '허약한 완충국가'였던 한반도 국가는 분단과 전쟁을 겪고 70여년이 지나도록 국가의 문제, 민족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하는 '영속적 미해결' 상태에 빠져 있다.
“1900년 1월 대한제국의 궁내부 고문으로 부임한 윌리엄 샌즈(William F. Sands)는 대한제국이 독립을 유지하려면 열강의 동의가 필수적이므로 스위스나 벨기에와 같이 영세중립을 선언하고 열강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1900년 8월 광무황제는 조병식을 도쿄에 파견하여 고에이 도구마 귀족원의장 등에게 대한제국이 상비군 5만명을 보유하는 조건으로 열강이 중립화를 보장하는 방안을 타진하도록 했으나, 일본 정부는 국력이 피폐해진 대한제국이 그러한 조건을 충족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트윈 코리아, 237쪽)
아프카니스탄의 두 얼굴 : 허약한 완충국가, 강대국의 무덤
“지난 20년간 1조달러를 썼고, 30만명 이상의 아프간 병력을 훈련시키고 현대적 장비를 갖추게 했다. 그들이 스스로 싸워야 한다.”(바이든 미 대통령, 2021.8.10)
1979년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소연방은 10년 후인 1989년에 철수를 완료했고, 2001년에 침공했던 미국은 20년 후인 2021년에 철수했다. 30년 동안 소연방군과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에 친소, 친미정권을 세워서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려고 했지만 모두 실패한 것이다. 이로써 소연방은 10년 동안 군인 5만여명을 잃고, 미국과 동맹국들은 10년 동안 3천5백여명을 잃고 나서야 탈레반에 손을 든 셈이다.
일찍이 스탈린은 2차대전 이후 세계의 전쟁은 상대 국가에게 자신의 체제와 같거나 비슷한 체제를 세우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이슬람 신정국가를 지향하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자국과 비슷한 세속적인 국가체제로 만들려고 했던 영국·소연방·미국의 시도는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10년 전에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하나의 강대국에 의한 글로벌 패권의 시대는 끝났다”고 밝혔다(Dan Weil, Former Carter Adviser Brzezinski : US Global Supremacy Is Over, NewsMax Finance, 2012.2.22). 그는 세계가 더욱 다각화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정치적으로 각성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새로운 동방(the new East)이 부상했다고 강조했다. 브레진스키는 미국이 스스로 바뀌고자 한다면 이러한 변화가 미국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중국의 관계가 새로운 균형의 관건임을 강조했다.
오바마 행정부를 거쳐 트럼프 행정부에서 역외균형전략(Offshore balancing strategy)은 가속화되었다. 지난해 대선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미국에서 1일 평균 20명에 달하는 재향 군인 및 군무원들이 자살하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역한 미군의 절반 정도만 정신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2020 Democratic Party Platform). 민주당 내부의 목소리에 비추어 바이든 행정부도 오마바-트럼프 행정부의 전략기조에서 크게 벗어나기는 어렵다.
아프간 사태로 분명해진 미국의 역외균형 전략은 미군의 현지주둔으로 안보위기를 모면하려는 허약한 완충국가들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대개는 허약한 지정학적 완충국가는 후견국의 군대가 주둔하는 금쪽 같은 시간에 스스로 군사력에 기초한 무위(armed suasion)를 구축하지 못하면 내전이나 외부의 침공을 초래하게 된다."
환생한 탈레반 세력도 과거에 명멸했던 수많은 카불정권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교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탈레반은 미국과 파키스탄 등의 지원을 받아서 소연방을 밀어냈지만, 결국은 내전과 미국의 침공으로 거의 소멸 수준으로 약화된 적이 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탈레반의 재집권이 아프카니스탄의 항구적인 불안을 해소할 것인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탈레반 지도부는 지난해 도하협상에서 알 카에다(Al Qaeda)와 절연하면 쌍방의 타협이 가능하다는 미국의 의중을 파악했지만 실제로 미국의 기대에 부응할 지는 불투명하다. 반면에 미군 철수는 아프카니스탄 내부에 숙청의 소용돌이를 몰고 올 가능성이 크고, 주변국인 파키스탄, 이란, 인도, 러시아, 중국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새로운 탈레반 지도부는 지난 집권기(1996년∼2001년) 동안 안팎에서 커다란 비난을 초래했던 여성과 여아에 대한 반문명적 강압정책을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탈레반 대변인은 히잡을 쓰는 조건으로 여성이 혼자서 외출할 수 있고 대학 진학과 취업을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과거 탈레반 지도부가 여성의 외출을 제한하고 취업과 학업을 금지한 조치는 이슬람권 내부에서조차 정권의 정당성을 약화시킨 자충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 이슬람 전사의 탄생, 탈레반의 환생
“카불에 설치된 탈레반 종교경찰의 청사에는 ‘이성은 개들에 던져줘라’라는 구호가 나붙었다.”
https://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1007780.html
“파키스탄 정보부(ISI)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 지원을 받아 아프간 청년들에게 근본주의적인 이슬람 신앙을 심어줬다. 이들은 무자헤딘 투쟁에 참가했고, 탈레반의 근간이 됐다.”
“파키스탄 정보부가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무자헤딘에게 제공하던 무기를 은닉했던 곳에는 1만 8천 정의 AK-47 소총과 120대의 대포 등 수 만 명의 병사를 무장시킬 수 있는 무기가 포장도 뜯지 않은 상태로 보관돼 있었다.”
“탈레반의 칸다하르 점령은 아프간 최대 종족인 파슈툰족 민족주의, 이슬람주의, 파키스탄의 지원이라는 ‘삼박자’가 어우러진 산물이었다. 탈레반은 농촌과 황야의 마을을 찾아다니며 아프간 인구의 25% 정도인 이란 혈통의 타지크족이 주축인 임시정부가 통치하는 카불을 회복하고 이슬람 통치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다.”
“9.11테러 이후 탈레반의 패주는 당연했다. 게릴라인 탈레반이 정부군으로 변하면서 막강한 화력과 공군력을 갖춘 미군에 맞서 정규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아프간의 막막한 황야와 거친 산악으로 돌아가자, 다시 가공할 게릴라로 환생하기 시작했다.”
탈레반 정권의 새로운 도전은 경제? 여성? 코로나? ...
새로운 탈레반 정권에게는 국제적 승인을 비롯해서 알 카에다 등 급진주의 테러조직들과의 관계설정, 파키스탄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이해조정, 정상적인 정부로서 작동하기 위한 재정의 확보 및 피폐한 경제의 회복, 여성의 권리에 대한 보장, 내전이 재발할 경우에 정부군으로 지위변경에 따른 불리 등 여러 난제가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보다 넓은 땅에 황량한 산악지대가 많은 아프칸의 지형과 탈레반의 폐쇄적인 생활방식은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한 비대면 문화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지만, 지난 20여년 동안 어느 정도 개방화된 생활방식을 모두 원점으로 회귀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20여년 전에 여성과 여아들에 저질렀던 반문명적 강압정책을 되풀이하면서 또 다시 종교적 자결권(정교일치 및 샤리아법)이라고 강변한다면, 21세기 탈레반 정권은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세계적 고립을 초래할 것이다.
2021년 8월 현재 아프간의 확진자는 누적 15만여명으로 인구대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지만 사망률이 4.6%에 달한다. COVID-19 대유행이 장기화되는 기간에 탈레반은 파상공세의 유리함을 구가했지만, 카불에 입성한 지금에는 미군과 전혀 다른 새로운 침공자(바이러스)가 아프간을 배회하고 있다. 델타를 비롯한 새로한 변이 바이러스의 지구적 팽창은 행정 및 위기관리 능력이 의문시되는 탈레반 정권에게 커다란 시련이 될 수 있다.
* 미공군 C-17 globemaster 용도변경 : 공수부대 1백여명 탑승 → 아프간 난민 6백여명 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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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더 가디언)
올해 들어서 세계인들은 의문사와 시체훼손이 빈발하는 ‘미얀마 리스크’에 이어서 카불의 피난 행렬을 보면서 ‘아프가니스탄 리스크’를 더하게 되었다.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은 영국의 지배와 침공을 받은 적이 있고 장기간 미국의 경제제재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나라의 무고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의 뿌리에는 강대국 패권주의의 더러운 유산들이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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