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영세무장중립/비상계엄

헌재 결정문에 투영된 정치의 실패

twinkoreas studycamp 2025. 4. 5. 13:36

대한민국은 대통령 파면을 위기의 종결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심리적 내전상태가 악화돼 새로운 위기로 나갈 것인지를 놓고 갈림길에 섰다.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문에 나오는 양당체제의 폐해에 대한 지적은 비상계엄 및 탄핵 사태로 인한 갈등이 양당의 퇴행에서 비롯된 것을 시사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조기대선에서 새로운 국가 리더십을 어떤 방향으로 구축해야 하는가를 국민에게 묻는 것이다.
 
헌재가 피청구인으로 표현한 대목은 윤석열 1인이 아니라 정부 및 여당을 지칭하고, 국회는 정확하게 보자면 민주당 등 야당을 지칭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여기서 정부라 함은 대통령실과 총리실을 비롯한 전 부처를 망라하는 것이다.
 
헌재는 윤석열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파면에 이를 정도로 중대한 위헌·위법을 저질렀다고 판단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책임을 그에게 뒤집어씌우고 악습을 되풀이하려고 해선 안된다는 것을 강조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2025.4
0.13MB

 
 

 

 

 

1. 정부 및 여당의 독선과 퇴행에 대한 질책

 
“피청구인과 국회 사이에 발생한 대립은 일방의 책임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는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해소되어야 할 정치의 문제입니다. 이에 관한 정치적 견해의 표명이나 공적 의사결정은 헌법상 보장되는 민주주의와 조화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국회는 소수의견을 존중하고 정부와의 관계에서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결론을 도출하도록 노력하였어야 합니다. 피청구인 역시 국민의 대표인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하였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청구인은 국회를 배제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이는 민주정치의 전제를 허무는 것으로 민주주의와 조화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피청구인은 국회의 권한 행사가 다수의 횡포라고 판단했더라도 헌법이 예정한 자구책을 통해 견제와 균형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였어야 합니다.
 
피청구인은 취임한 때로부터 약 2년 후에 치러진 국회의원선거에서 피청구인이 국정을 주도하도록 국민을 설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피청구인의 의도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야당을 지지한 국민의 의사를 배제하려는 시도를 하여서는 안 되었습니다.”
 
 

2. 민주당 등 야당의 독선과 퇴행에 대한 질책

 
“피청구인이 취임한 이래 야당이 주도하고 이례적으로 많은 탄핵소추로 인하여 여러 고위공직자의 권한행사가 탄핵심판 중 정지되었습니다. 2025년도 예산안에 관하여 헌정 사상 최초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증액 없이 감액에 대해서만 야당 단독으로 의결하였습니다.
피청구인이 수립한 주요 정책들은 야당의 반대로 시행될 수 없었고, 야당은 정부가 반대하는 법률안들을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피청구인의 재의 요구와 국회의 법률안 의결이 반복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청구인은 야당의 전횡으로 국정이 마비되고 국익이 현저히 저해되어 가고 있다고 인식하여 이를 어떻게든 타개하여야만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피청구인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 남용이라거나 국정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
 
 

3. 파면의 최종적 정당성은 역사적 진행형

 
헌재는 윤석열의 법 위반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친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여, 대통령 파면으로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파면에 따른 국가적 손실을 압도할 정도로 크다고 보았다. 즉 기업으로 말하자면 청산가치(파면으로 인한 헌법수호의 이익)가 계속기업가치(파면으로 인한 국가적 손실)보다 크기 때문에 청산(파면)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의 정당성은 그 자체로 완결적인 것은 아니다. 즉 궐위대선(조기대선)으로 대통령 및 정부를 새롭게 구성하는 것만으로 파면의 정당한 가치가 저절로 충족되는 것은 아니며, 정치권이 사태의 원인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새로운 리더십 및 대안을 제시하여 국민의 선택을 받고 여야가 새로운 정치를 구현함으로써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4. 헌재의 자책

 
최근 국가적 혼란의 근원이 진영논리에 빠진 정치적 대결문화에서 비롯된 것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헌재가 ‘진영’과 ‘진영논리’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은 것은 헌재 구성원들 스스로가 진영논리에 포획된 일원임을 간접적으로 실토한 셈이다.
 
다만 헌재는 변론 초기에 30건에 육박하는 탄핵소추 및 시도가 입법권의 남용이 아니라고 했던 태도를 바꾸어 이번 선고문에서 간접적 화법으로 “피청구인이 국회의 권한 행사가 권력 남용이라거나 국정마비를 초래하는 행위라고 판단한 것은 정치적으로 존중되어야 합니다.”라고 적시했다.
 
이러한 변화조차 헌재 내부의 진영적 사고로 인해 상당한 시일이 지체되면서 최종선고가 지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사태는 국민들이 헌재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이를 국가적 변화의 모멘텀으로 삼지 못하면 헌재를 중심으로 하는 헌법재판은 더 엉망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앞으로 양당은 진영논리에 충실한 재판관들을 임명하는 경쟁에 더욱 몰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더욱 편향된 (질적으로 떨어지는) 재판관 후보자들이 득세하고, 종국적으로 헌재의 구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더욱 저하시키게 될 것이다.
 
임명절차가 표류하는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경우에 그의 과거 정치적 성향 및 행적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재단은 퇴행적 발상이지만, 헌재 구성원의 성향 분포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 탄핵사건에 특정한 결론이 예정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는 인사를 후보자로 강행한 것도 헌재가 강조한 '협치'의 발상은 아니다. 정치의 불확실성을 고질적인 진영논리로 돌파하려고 할수록 정치의 난맥상은 고착화된다.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다’는 말처럼 헌재가 이러한 난맥상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피동체라고 한다면, 헌법제정권자인 국민이 건설적 비판과 제도적 개선을 비롯한 외적 충격을 가하지 않을 수 없다.
 
 

5.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에 대한 경종 : 정치의 실패

 
대통령 파면에 대해 국민의 승리, 한국 민주주의의 복원력과 역동성이라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사태의 원인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정치 양극화로 인한 독선과 소모적 대결이 ‘탄핵의 일상화’라는 정치의 사법화를 초래하고, 법관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근본적으로 저해하는 ‘사법의 정치화’를 야기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가 ‘정치의 실패’로 인해 비롯됐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자기기만(self-deception)이다. 정치의 실패에 대한 자기진단과 미래지향적 대안이 부재한 승복과 통합의 언사들은 사실상 개소리다. 그것은 또 다시 국민을 기만하는 ‘뫼비우스의 띠’에 불과하다. "폭싹 속았수다."란 말이 중의적으로 들리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