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관한 문제/대국민 통일사기극

대국민 통일사기극(10) 모가디슈 탈출의 재해석

twinkoreas studycamp 2021. 8. 3. 20:51

 

 

최근 이석 KDI 선임연구위원은 ‘남북경협과 대북정책, 우리의 인식과 개념은 얼마나 현실적일까?’(KDI 북한경제리뷰 7월호)라는 기고문에서 남북경협이 사실상 10년 동안 중단된 상태에서 남북관계에 대한 보다 성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남북이 경협을 ‘민족 내부의 거래’로 규정하여 다양한 노력을 전개하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지난 10년 동안 국제적 요인(대북제재)으로 인하여 ‘국가 대 국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장애를 겪게 되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미국과 UN의 대북제재 내용들은 38선 이북 지역을 대한민국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주권국가의 영역으로 간주한 것들이며, 이명박정부 이후 대북제재도 일부 지방에 대한 제재가 아니라 타국에 대한 제재의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위원은 또한 ‘남북경협은 실현가능하다’,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한국경제의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통일비용을 선제적으로 대비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는 암묵적 동의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했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남북경협을 관성적으로 ‘민족 내부의 거래’로 전제하다가 대북제재의 장기화로 10년 동안 경협이 중단되었고, 남북경협으로 인해서 조선이 변화되었다는 증거를 찾기 어렵고, 조선의 자원과 경제성장이 한반도 경제의 도약에 기여할 날을 기약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경협을 민족 내부의 거래로 규정할 경우에 대북제재 등 국제적 요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 남북경협의 목표 및 체계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이에 따라 남북경협의 재개와 발전을 위한 전략기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숙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족 내부의 거래?

 

이 위원의 문제제기는 남북경협이라는 통상적인 수단에 초점을 두었고, 말미의 당부처럼 남북의 경제적 통일에 대한 당위성에 기초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논의를 선도하기에는 근본적 제약이 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기존의 방식에 대한 숙의가 필요하다고 경종을 울린 것은 관성에 빠진 대북 접근법과 기존의 연구경향에 대한 전환적 요구를 담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민족 내부의 거래'는 남과 북의 교류협력에서 여러 가지 유익과 장점이 있었지만, 북핵문제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국가 대 국가의 관계'와 대별되는 비교우위를 점차 상실하고 있다. 막대한 남북협력기금은 금고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낮잠을 자고 있다. 북핵문제를 정면으로 해결하거나, 적어도 문제의 성격을 전환하지 않으면 남과 북이 표방하는 ‘자주의 원칙’이나 북이 강조하는 ‘우리끼리’는 현실적 힘을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다.

 

북핵문제, 주한미군, 한반도 지정학, 복수의 한반도 국가의 문제가 얽혀 있는 조건에서 한국과 조선이 경협만 따로 떼어내 국제사회에 ‘민족 내부의 거래’를 호소하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졌고, UN 기구와 국제 NGO도 핵무장을 한 국가와 경제선진국으로 성장한 국가의 감성적·민족주의적 호소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국제 인도주의 조직들은 민족과 국가를 떠나 지원을 하는 것이지 한민족(조선민족)의 일부를 돕는 차원이 아니다. 북핵문제가 장기 지속하는 조건에서 남북경협을 ‘민족 내부의 거래’로 규정하는 것이 어떤 유익이 있을까?

 

 

영화 모가디슈(Escape from Mogadishu)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1991년 모가디슈에 투영된 ‘트윈 코리아’

 

올해 남과 북은 1991년 UN 동시가입 이래 30주년을 맞이했다. 그해 초에 소말리아 내전사태가 격화되면서 위기에 빠진  모가디슈(Mogadishu) 주재 한국 대사관과 조선 대사관이 공동 탈출을 감행하여 성공한 이야기가 최근에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그 사건이 영화로 제작돼 흥행몰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에 한국은 탈냉전을 호기로 삼아 단독으로라도 UN에 가입하려고 했고, 조선은 한국의 단독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아프리카 등에서 친선 외교를 강화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경쟁관계에 있던 양측의 대사관이 긴급한 위기상황에서 남매지정을 발휘한 감동적 사건이 발생했다. 영화 ‘모가디슈(Escape from Mogadishu)’는 강신성 소말리아주재 한국대사가 김룡수 조선대사의 일행과 공동으로 탈출한 사건을 소재로 하였다.

 

1990년 12월 말에 내전이 격화되면서 수도인 모가디슈의 치안이 붕괴하자 주요국 대사관들이 철수한 가운데 강신성 대사의 일행도 비상탈출에 나섰다. 이들은 항공편 확보에 실패하자 공관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공항에서 조우한 조선 대사관 일행 14명이 현장에 머물기로 한 것을 알고 합류를 설득했다. 당시 조선의 공관은 8번이나 약탈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사코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대안을 물색하던 북측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먼저 떠난 남측이 약속대로 1시간 반 후에  공항에 돌려보낸 차를 타고 한국 공관으로 향했다.

 

이후 강 대사는 양측 대사관 식구들의 동반탈출을 위해서 이탈리아대사관에 구조기를 재차 요청해서 마침내 승낙을 받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이탈리아대사가 미수교국가인 조선의 대사 일행을 탑승인원에서 제외한 것이다.

 

강 대사는 이탈리아대사에게 4시간에 걸쳐 체제와 이념은 다르지만 북측 일행을 놔두고 탈출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탈리아대사를 ‘우리의 모세(Moses)’라고 지칭하면서 ‘모두의 탈출(Exodus)’을 호소했다고 한다.

 

북측도 이탈리아와 미수교 상태라는 점을 들어 이탈리아대사관으로 동행하는 것을 꺼렸다. 강 대사는 다시 김 대사를  설득해야 했다. 나중에 조선과 이탈리아는 수교했지만, 한국과 조선은 아직도 미수교 국가로 남아 있다. 쌍방은 이런 상태를 민족 내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통일에 대비하려는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점차 '대국민 통일사기극'이라는 의심이 커지고 있다. 

 

책과 모래주머니 등으로 방탄을 하고 질주하는 4대의 승용차 (영화 모가디슈) 

 

결국은 양측의 식구들이 차량 6대에 나눠 타고 총탄세례를 뚫고 이탈리아대사관 후문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북측 일행 중 한 명이 가슴에 총탄을 맞았으나 끝까지 운전대를 놓지 않고 임무를 완수했다고 한다. 그는 이탈리아 대사관의 화단에 가매장되었다.

 

 

강신성 전 소말리아 대사(MBC)

 

 

 

강 전 대사의 회고에 따르면 양측은 이탈리아대사관에서 머무는 동안 서로 체제와 이념에 관한 발언을 삼가면서 감정적 자극을 피했다고 한다. 또한 피신 중에 각자 챙겨온 고추장과 총각김치 등을 나눠 먹으면서 다정한 이웃처럼 지냈다고 한다. 강 대사는 일행의 사망으로 슬픔과 공포에 빠진 북측 여성들과 아이들을 방탄승합차에 태울 수 있도록 간청했다고 한다. 방탄승합차에 탑승한 어린이 4명 중에는 김 대사의 손자도 있었다고 한다.

 

남과 북의 일행은 몸바사에 도착하자 각자의 대기차량을 타고 헤어졌다.(영화 모가디슈) 주로 남측이 돕는 입장이었지만, 결국은 쌍방이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도우며 동반탈출에 성공하고 별다른 잡음을 내지 않고 헤어졌다. 양측은 자신이 속한 체제를 위한 충성 경쟁이 아니라 각자의 생존을 위해 협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국만리에서 한반도 국가의 남매지정을 보여주었다. 모가디슈 동반탈출은 한반도 국가의 재구성 방향에 대한 사회적 관점이 부부지정보다 남매지정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최종적으로 남북의 일행 20여명이 난민 2백여명과 함께 이탈리아 군용기를 타고 인도양에 접한 케냐의 몸바사(Mombasa)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쌍방은 몸바사 공항에서 헤어지면서 부둥켜안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어떤 이는 “통일이 되면 다정한 이웃이 되어 함께 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강 대사는 귀국 후 인터뷰에서 “극한 상황에 몰리니까 이데올로기나 국가가 없었다. 인간애적 입장에서 서로 돕고 살자는 의지뿐이었다”고 토로했다.

 

남매가 서로 국적을 달리한다고 해서 그런 위급상황에서 모른 척할 수는 없다. 남과 북이 통일이 되지 않고 서로 다른 국가로 존립한다고 해서 동포애, 민족애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서로 국가로 승인하자는 것이 민족 내부의 관계를 강조하는 관점과 근본적으로 상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가디슈에서의 탈출은 '두 개의 코리아'의 대립적 관계로부터 탈출을 은유한다.

 

 

 

시간왜곡(time distortion, time warp) ?

 

 

1992년 김연경 선수의 4살 때 모습(동아닷컴)

 

한국 여자배구 대표선수단 주장 김연경 선수는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 태어났다. 영화 모가디슈에서는 한국 대사관이 소말리아 대통령에게 줄 선물 중에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여한 소말리아 대표단의 입장 장면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가 등장한다.

 

1991년 내전이 격화된 모가디슈에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무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30년이 지나도록 소말리아의 비극은 지속되고 있다. 모가디슈에서 남북 대사관의 동반탈출사건이 발생한 1991년 당시 3세였던 김연경 선수는 2021년 33세가 되어 도쿄올림픽에서 국가대표선수로서 대미를 장식했다.

 

동반탈출사건이 발생했던 1991년 가을에 나란히 UN에 가입했던 한국과 조선은 30년이 지나도록 진정한 의미의 관계개선, 즉 상호 국가승인 및 국교수립을 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의 관계를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니라 민족 내부의 관계로 규정함과 동시에 상대의 국가성(stateness)을 부인하고 국토의 일부에 할거한 정통성 없는 지방권력 수준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소년병들(뉴욕타임스)

 

김연경 선수가 3세일 때 소말리아에서는 소년병들이 살상의 현장에 돌아다녔는데, 지금도 소말리아는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당시에 남북의 대사들은 소말리아 정부와 반군의 행태에 혀를 찼지만, 김연경 선수가 33세가 되도록 남북의 관계도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지난 30년 동안 소말리아와 한반도는 매우 다른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동시에 같은 시간대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닌가?

 

 

1991년 당시 3세였던 김연경 선수가 33세가 되도록 소말리아는 평화의 정식을 세우지 못하고 국가적 재난을 반복하고 있다. 1991년 UN 회원국으로 나란히 승인된 한국과 조선은 그 세월 동안에 진정한 평화의 정식을 세웠는가?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국격의 상승, 조선의 ‘핵무력 완성’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국가는 역사상 중대한 변화를 겪었지만, 한반도 국가의 상호관계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원점으로 회귀하는 소말리아의 내전상태와 같은 시간대에 정체한 ‘시간왜곡’을 연상케 한다. 1991년 UN 동시가입 이후 남북관계의 시간은 특정한 시간대에 머물러 30년이 지나도록 끝도 없이 늘어지는 현상(Time Dilation)을 되풀이 하는 것처럼 보인다.

 

 

30대 절정기를 보내고 있는 김연경 선수(국제배구연맹 FIVB)

 

전체로서 코리아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했다는 자이한(Peter Zeihan)의 촌평은 비아냥으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쌍방이 기약할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의 절정기(One Korea)를 가정하여 지금 맞이한 정점의 순간들을 단순한 현상유지로 지나친다면, 양측은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흘려보내면서 김연경 선수가 환갑의 나이가 되어서도 달라진 것이 없는 시간왜곡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이란성 쌍생아로서 남매 국가에 대한 숙의가 필요한 시점

 

체제를 달리하는 남과 북이 ‘남매국가(Sibling States)’로 양립하자는 주장을 반통일적 발상으로 단죄할 수 있는가? 30년 전의 모가디슈 동반탈출은 한반도 국가의 복수성(plurality)에 대한 부정은 하나의 코리아(One Korea)를 지키려는 민족주의인지, 쌍방의 반쪽(half a country) 국가주의(statism)인지 되묻게 한다.

 

 

쌍방이 한반도에 70년 이상 실재하는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를 부인하는 아시타비(我是他非)에서 벗어나 서로를 국가로 인정해야 할 주객관적 요구가 있다. 또한 쌍방의 다른 체제의 성격을 반영하면서도 서로의 중립에 의지하고 한반도의 중립을 공동으로 수호할 수 있는 ‘영세무장중립 남매국가(Permanent Armed Neutral Sibling States)’, 즉 쌍둥이 코리아(Twin Koreas)로서 지정학적 재탄생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남북의 UN 동시가입 30주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돌이켜 보건대 한국전쟁 이후 수많은 통일방안이 등장했다. 한국의 역대정부는 한민족공동체통일론을 중심으로 3단계 통일방안(1민족 2국가 2체제→1민족 1국가 2체제→1민족 1국가 1체제)을 모색했고, 남과 북은 2000년 6.15 공동선언에서 낮은 단계의 연방제와 높은 단계의 국가연합에서 접점을 찾기도 했다.

 

또한 민간에서는 주로 영세중립통일론을 제기해 왔고, 북에서도 한반도의 완충지대와 및 중립화 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21세기에 들어와서는 지루하게 악순환되는 쌍방의 대결 및 교착상태를 타개하는 방안으로 남북의 순차적 혹은 동시적 영세중립화(윤태룡), 복수의 민족국가(최장집), 코리아 양국체제론(김상준) 등이 제기됐다.

 

이러한 논의들의 기본적인 공통점은 쌍방이 서로 국가로 승인하는 것에 있다. 최근에는 ‘사이좋은 이웃국가(friendly neighbor states)’로 지내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하물며 남매지간의 국가로 서로 인정하며 지내자는 것을 반통일적 발상으로 치부할 일인가?

 

물론 새로운 관계성을 창출하려면 '북핵의 중립화'를 포함한 정교한 프로세스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해야 한다. 만약에 그러한 논의에 필요한 의지와 역량이 미비하다면, 그 책임을 국민과 인민에게 전가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그러한 부족과 부덕을 통일지상주의로 덮어버리는 편의적 발상도 그만두어야 한다.  

 

1991년 남과 북은 모가디슈에서 함깨 탈출했지만 30년이 지나도록 쌍방은 상호 불승인과 대립적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기약할 수도 없는 ‘통일의 그날’을 빙자하여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상주 대사관을 두지 않는 것이 정녕 하나의 코리아(One Koreas)로 가는 유일한 길인가? 실제는 반쪽 국가주의를 강화하는 대국민 통일사기극을 그만두어야 할 때가 왔다.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