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후 합참은 북측에서 공중부양한 오물풍선들이 다시 낙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계절풍을 이용한 대남풍선 공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과 함께 군사적 우발사태에 대한 염려도 커지고 있다.
이른바 ‘오물풍선’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와 ‘목적과 수단’에 관한 남북의 공방은 국제법상 두 개의 국가와 헌법상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에 담겨진 키메라(chimera)의 기이함을 드러낸다.
5월 30일 UN 군축회의에서 김일훈 한국대표부 참사관은 “북한은 오물을 실은 260여개 풍선을 살포하면서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지만 정전협정 위반이고 비문명적·비상식적”이라고 질타했다.
5월 31일 신원식 국방장관도 아시아 국방장관 회의에서 “우리 민간단체의 인도적 지원 목적의 대북 풍선 날리기에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오물풍선을 살포한 것은 정상국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치졸하고 저급한 행위”라고 힐난했다.
반면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남측이 대북 전단살포를 ‘표현의 자유’라고 하면서 그에 상응한 자신들의 행동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뻔뻔스러움의 극치라고 공박했다. 또한 김 부부장은 “국경지역에서의 살포 놀음을 놓고 표현의 자유라는 말을 입에 올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영철 조선(DPRK)대표부 참사관도 “한국의 눈에는 북쪽으로 날아가는 풍선은 안 보이고 남쪽으로 날아오는 풍선만 보이는지 의문”이라고 비꼬면서, “표현의 자유와 국제법은 풍선의 방향에 따라 정의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반문했다.
사건의 발단
5월 10일 오후 11시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인천 강화도에서 대북전단 30만장과 USB 1천개, ‘진짜 용된 나라 대한민국’이라는 소책자 200권을 담은 대형풍선 20개를 북쪽으로 날려 보냈다.
그런데 대형풍선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사진과 함께 ‘김정은, 이자야말로 불변의 역적, 민족의 원수일 뿐!’이라는 문구나 ‘김정은 폭정에서 신음하는 북한동포 해방되는 날까지 대북전단 살포는 계속된다’는 문구를 새긴 현수막이 부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의 대표 박상학은 언론 인터뷰에서 “대북전단이 남포특별시 노동당 옥상에 떨어져 난리가 났다는 말을 휴민트를 통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5월 26일 조선 국방성은 담화를 통해 “국경지역의 빈번한 삐라와 오물 살포 행위에 맞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28일 밤부터 대형풍선 260여개가 남쪽으로 날라와 수도권과 멀리는 경북권에 낙하했다.
진정국면과 탈북민 변수의 등장
1945년 광복 이후 남북 사이에는 전단(삐라·bill)이 오가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살포는 한국전쟁이었다. 당시 UN군이 살포한 전단은 25억장에 달하고, 조선 인민군도 3억장 가량을 살포한 것으로 추정된다.
휴전 이후 남과 북이 체제경쟁에 돌입하면서 서로 자랑하거나 비방하는 내용의 전단이 살포됐다. 1980년대 이후 북에서는 군사독재와 전두환 등을 비난하는 전단을 보내고, 남에서는 경제발전과 연예인을 앞세운 전단을 보냈다. 또한 양측의 확성기 대결도 치열해지면서 초대형 스피커들이 설치됐다.
그러나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시발로 쌍방의 대화가 진전되는 과정에서 소모적인 상호비방을 중단하자는 합의에 의해 확성기 철거 및 전단 살포 중단이 이뤄졌다.
이러한 진정 국면에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탈북민들이 여러 이유를 내세워 대북전단 살포를 시작한 것인데, 그 정당성 여부를 떠나 목적과 수단에 관한 복잡한 문제를 야기했다.
특히 북핵문제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될수록 전단의 내용이 김정은 위원장을 비롯한 체제에 대한 공격으로 집중되면서, 쌍방의 군사적 충돌을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2014년 10월 대북전단과 관련해서 북측은 원점타격을 공언하면서 포격을 가했고, 이에 남측도 군사적으로 대응했다.
남북미 정상회담이 무위로 그치고 대북전단이 재개된 2020년에는 전단살포 중단을 약속한 남북합의서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북측이 개성공단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기에 이르렀다. 이 또한 ‘목적과 수단의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다.
이에 당시 정부여당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살포 등 남북합의서 위반행위에 대해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남북관계법 개정을 단행했고, 야당은 ‘김여정 하명법’이라고 반발했다. 또한 대북관련단체 등은 개정법이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여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재판소의 ‘표현의 자유’ : 조선의 되치기 논리
2023년 9월 26일 헌법재판소는 접경지역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한 ‘남북관계발전법 24조 1항 3호’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이 법의 24조 1항은 북한을 향해 특정한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키는 행위를 금지하고, 이에 따라 3호에서 전단 등 살포행위를 금지한 것이었다.
당시 헌재 재판관의 견해는 7(위헌) 대 2(합헌)로 나뉘어졌는데, 4명은 이 법의 해당조항이 비난 가능성이 없는 자에게 형벌을 가하는 발상이라고 판단했고, 3명은 “북한을 자극해 도발을 일으킬 수 있을 만한 표현의 내용은 상당히 포괄적이고, 이에 따라 3항에 의해 제한되는 표현 내용이 광범위하여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된다”고 보았다.
이들은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신체의 안전보장이라는 입법목적은 전단살포를 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더라도 경찰의 개입이나 사전신고 및 금지 통고 등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대의견을 남긴 2명은 해당 조항이 표현의 방법만을 제한하고 있으며, 청구인들의 견해는 전단살포 이외에도 기자회견이나 탈북자들과의 만남 등을 통해 충분히 표명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들은 해당 처벌조항이 남북합의서의 유효한 존속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조선이 남북합의서를 준수하면 접경 안전과 한반도 평화가 유지될 수 있는 공익을 고려하면 법익의 균형성이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북측은 헌재가 인용한 표현의 자유를 대남 전단살포로 되치기하는 논리적 근거로 삼고 있다. 최근 김여정 부부장은 “우리 인민이 살포하는 오물짝들을 표현의 자유 보장을 주장하는 자에게 보내는 진정 어린 성의의 선물로 여기고 계속 주워담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권 바뀔 때마다 통일부의 표변
문재인 정부의 통일부는 남북관계법을 개정했고, 윤석열 정부의 통일부는 헌법재판소에 위헌의견을 제출했다.
2022년 11월 당시 권영세 통일부장관은 “과잉금지·명확성·비례성 원칙을 위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죄형법정주의에 반한다”는 의견을 헌재에 제출했다.
또한 통일부는 헌재의 위헌 결정에 환영 입장을 밝히면서 헌재가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른 조치 등 입법방향을 제시한 점을 언급했으나, 대북전단 살포와 관련된 후속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는 북측의 거센 반발을 초래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은 “반공화국 삐라 살포를 비롯한 심리 모략전은 곧 대한민국 종말의 기폭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두 개의 국가 vs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
쌍방의 전단살포를 둘러싼 목적과 수단, 표현의 자유, 국제법에 관한 논란은 근본적으로 남북관계의 딜레마를 드러낸다.
먼저 국제법의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에 실재하는 두 개의 국가는 쌍방의 공중살포에 대해 민관을 불문하고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민간의 표현의 자유라고 해도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민간단체가 중국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시진핑 주석을 시황제에 비유하여 조롱하는 전단 풍선을 중국 쪽으로 살포하거나, 조선의 단체들이 일본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일왕을 전범의 후예로 비방하는 전단 풍선을 일본 쪽으로 살포하는 일은 없었다. 국가 간에 이런 주장은 존재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전단의 공중부양과 같은 행위는 서로 전쟁을 하기 전에는 발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쌍방은 민족 내부의 특수한 관계라는 근거로 표현의 자유와 구체적인 표현 및 전달의 방법(전단풍선 및 공중살포)을 정당화하고 있는데, 이는 헌법상 영토조항에 기초한 헌재의 위헌 결정이 논란의 불을 지핀 측면이 있다.
표현의 자유를 대북 전단 살포로 확장한 헌재의 결정이 우리로선 정당할지라도 과연 국제적으로도 정당한지는 의문이다. 또한 이번 공방에 대한 쌍방의 단기적 대증요법들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탈북민들의 삶과 이상은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이 ‘목적과 수단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전단의 내용 및 살포의 방식이 결과적으로 북측을 격발시켜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고 접경지역의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은 타인(해당지역 주민)의 ‘동의를 받지 않고’ 침해 및 제약을 가하는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헌재는 북측의 반발에 대해 온전히 북측의 책임으로 남측이 스스로 전단살포를 제지할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설명했지만, 한반도의 특수성과 그 조건에서 영향을 받게 되는 개인의 자유에 대해 총체적으로 접근한 균형 잡힌 관점인지 의문이다.
2014년 남북의 포격 및 사격으로 파주 김포 등 접경지역 주민들이 전단살포를 반대 및 저지하는 시위를 벌였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헌재가 그런 일까지 고려해야 할 책임은 없다는 것인가?
한국이 중국을 상대로 비자발급을 제한하면, 중국도 상호주의에 따라 비자발급을 제한하기 마련이다. 탈북민들이 선의든, 원한과 분노든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방식이 상대(국제법적으로 국가)가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상응하는 방식으로 맞받아칠 경우에 불특정 국민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또한 조선에서 병역의무를 다했는지는 몰라도 한국에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탈북민들의 행위로 지금 병역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을 감내해야 하는 것도 역설적이다.
무능과 무신경에 투영된 실력과 덕성의 미비
탈북민들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 구체적으로 그 방식이 헌법상 영토조항, 그리고 남북의 이데올로기 대결과 냉전 및 진영의 논리에 의해 헌재의 보호를 받았지만, 실재하는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에서 핵전쟁의 위기마저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대북 전단살포라는 방식을 계속하고 방치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일부 탈북민은 드론을 띄워 평양에 전단을 대량살포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고 하는데, 그건 민간이란 보호막을 오남용한 전쟁행위와 다를 바 없다.
남과 북이 어떤 선의나 명분이든 수소풍선 혹은 무인기(드론) 등으로 역외(한국의 입장) 혹은 국경선(조선의 입장)을 무단으로 침범하는 행위는 모두 국제법과 정전협정에 위배될 뿐만 아니라 남과 북이 어렵게 지탱해 온 평화를 저해하고, 유사시에 중대한 결과를 초래하는 화근이 될 수 있다.
남과 북은 70년 넘게 서로 민족내부의 특수한 관계를 강조하고 통일을 주장하면서도, 실제는 배타적 국가주의를 강화하여 통일에서 멀어지는 역설을 초래했다.
차라리 남과 북이 서로 국가로 승인하고 (제한적이더라도) 평화롭게 왕래할 수 있는 차선의 관계를 가꾸어 왔다면, 오늘날 국제회의 석상에서 서로 ‘풍선 타령’을 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남북의 당국자들이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합의적으로 피할 수 있는 불필요한 갈등과 충돌마저 방치하는 것은 한반도 국가의 무능과 무신경을 드러내고 대외적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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