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관한 문제/대국민 통일사기극

대국민 통일사기극(7) ‘1민족 1국가’의 동상이몽

twinkoreas studycamp 2021. 6. 23. 23:56

 

 

 

'1민족 1국가'의 목표는 21세기에도 유효한가?

 

1991년 9월 UN본부에 나란히 게양된 태극기와 인공기(연합뉴스)

 

남과 북은 “하나의 민족에게 조국은 하나다”는 1민족 1국가론을 강조하면서 통일을 꿈꾸었지만, 실상은 동상이몽이었다. 양쪽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국민의 염원을 대변하겠다는 명분과 달리 실제로 통일의 기반을 조성하기 보다는 립서비스에 그치거나 동상이몽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았다.

 

830년경 한반도 국가의 복수성 : 남북국시대(698년~926년) /위키백과

 

 

안보 상업주의, 통일 상업주의

 

안보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여 정치적 이득을 추구하거나, 그러한 의도가 분명한 언론사의 행태를 안보상업화라고 비판한다. 마찬가지로 통일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것을 통일상업화라고 할 수 있다. 두 경우는 모두 다수의 국민을 기망하여 안보불안과 통일염원을 악용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안보상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과장하거나 날조하여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것이 대국민 사기극인 것처럼 통일의 여건과 전망이 매우 미비함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장래가 있는 것처럼 선전해서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대국민 사기극이 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1950년대 통일당부터 통일민주당, 민주통일당, 통일국민당, 통일선진당, 통일한국당, 복지민주통일당, 기독자유통일당까지 70여년 동안 수많은 정당들이 통일이란 글자를 당명에 새겨 넣었다. 또한 대통령선거에서는 자신이 통일을 준비하거나 주도하겠다는 포부를 담은 ‘통일대통령’ 공약이 난무하였다.

 

 

‘1민족 1국가’ : 통일 열망에 담긴 동상이몽

 

3단계 통일방안(통일교육원)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는 노태우 정부 이후 공식적으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통해서 ‘1민족 1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화해협력 단계,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서 최종적으로 ‘완전한 하나의 통일국가’(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상은 2017년 조선의 핵무력 완성 공표 이후 중대한 도전을 맞이하였다.

 

고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수학)는 마지막 저서인 ‘개인의 이성이 어떻게 국가를 바꾸는가’에서 김대중 전대통령이 자신에게 북이 핵무기를 갖게 되면 통일이 어렵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1민족 1국가론’에 관해서는 장황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다. 남북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한 중도파는 물론이고 단정을 결행한 좌우 진영도 모두 하나의 국가를 지향했고, 결국은 한국전쟁을 통해서 남진통일도 북진통일도 여의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서는 북의 기존체제가 붕괴하는 시점에 통일이 이뤄질 수 있다는 시각과 남북이 평화적 협상을 통해서 점진적으로 통일에 접근할 수 있다는 시각이 존재하고, 북에서는 조선로동당의 핵심목적으로 한반도 통일이 상정되어 있다.

 

그러나 통일에 대한 세 갈래의 관점은 동상이몽이라는 점에서 먼저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 통일(通一)이 이뤄지지 않으면 실현 가능성이 없거니와 궁극적으로 커다란 장애를 맞이할 것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분단체제론자들은 1민족 2국가론이 분단체제의 기득권을 수호하는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시민참여를 통하여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여 국가연합을 통한 장기적 통일의 전망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백 교수 등은 ‘남북연합’(국가연합)을 통해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통해서 점진적‧단계적‧창의적 재통합을 달성하면 종국적으로 통일(1민족 1국가)의 지평을 열 수 있다고 본다.

 

 

남과 북의 국가주의 :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 공고화

 

21세기에 들어서 한국은 경제성장과 외교적 위상의 격상으로 중견국가로 자리잡았고, 2020년 코로나사태를 겪으면서 방역을 비롯한 보건의료체제와 시민참여에서 선진국 수준으로 평가되었다. 그해 1인당 GNI는 G7 국가인 이탈리아를 추월했고, 2021년도 G7회의(영국 콘월)에 주요한 참가국으로 부각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사회적 양극화를 비롯한 각종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이 전반적으로 국가주의를 자연스럽게 내면화하는 과정이 되었다.

 

반면에 조선은 체제경쟁의 불리한 여건 속에서 김정일-김정은 위원장으로 이어지는 과도기를 겪으면서 선군주의와 핵무장으로 체제수호에 주력하게 되었고, 핵무장 이후에는 명시적으로 국가주의(우리국가제일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2017년 11월 경에 조선(DPRK)은 핵무력 완성 공표 이후에 ‘우리국가제일주의’를 본격적으로 제기하였고, 2021년 1월 조선로동당 규약개정에서 인민대중 중심주의를 강조하면서 ‘애민주의’로 강조점을 이동하였다. 조선 사회과학연구원의 ‘철학, 사회정치학연구’(2018년 제2호)에 수록된 서상일의 기고문에는 ‘우리국가제일주의’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담겨 있다(이하 전미영, 김정은시대 북한 민족주의: 담론·문화·정책, 북한학보(43-1), 2018 참조).

 

서상일에 따르면 우리국가제일주의는 ‘주체조선’을 사회주의강국, 즉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과학기술강국, 경제강국, 문명강국으로 발전시키는 것을 최종 목표로 지향하는 사상정신을 말한다. “우리 국가제일주의는 우선 주체조선의 강대성과 우월성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으로 발현되는 숭고한 사상정신이다”는 것이다.

 

조선판 국가주의라고 할 수 있는 우리국가제일주의를 해설한 논문들은 2018년에 집중적으로 등장했다. 장동국의 ‘우리국가제일주의를 높이 들고 나가는데서 나서는 중요요구’(철학, 사회정치학연구), 리현숙의 ‘김정일 애국주의는 우리국가제일주의의 사상정신적 원천’(철학, 사회정치학연구), 김정철의 ‘우리국가제일주의의 본질적 내용’(김일성종합대학보 : 철학, 경제학) 등이다. 2019년 초에 로동신문에 ‘우리 국가제일주의의 본질’(1월 8일), ‘우리국가제일주의를 높이 들고 사회주의강국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자’(1월 21일), ‘우리국가제일주의의 중요한 내용(1월 22일), ‘우리 국가제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근본담보’(1월 29일), ‘우리국가제일주의를 높이 들고 나가기 위한 방도’(2월 20일) 등이 게재되었다.

 

 

‘1민족 2국가’의 과도적 설정 : 영세중립통일방안, 국가연합 및 연방제 통일방안 등

 

2021년 3.1절에 즈음하여 ‘영세중립선언’을 발표한 ‘한반도 중립화를 추진하는 사람들’(중추사)의 강령 시안에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각자 자주독립국으로서 영세중립국임을 세계에 선언한다. 한국과 조선은 1민족 2국가 체제를 당분간 유지한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과도적으로 1민족 2국가에 기초한 선중립을 거친 후에 통일을 추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적으로 통일을 이룰 때까지 1민족 2국가 체제를 유지한다는 것은 상이한 두 체제의 장기 평행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안도 원리적으로 보면 영세중립을 통일을 위한 수단으로 접근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1민족 2국가의 장기적 평행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한반도 국가의 복수성(plurality)를 수긍하는 것이다.

 

1민족 2국가의 수용은 ‘이란성 남매 쌍둥이’와 같은 영세무장중립국가, 즉 트윈 코리아(Twin Koreas)의 문제의식과 맥락을 같이 한다.

 

 

70년 평화공존론의 공허한 귀결 : 한반도 문제의 영속적 미해결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서로 돕고 사는 것이 통일이라고 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함께 살든 따로 살든 서로 간섭하지 않고 피해를 주지 않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현실 인식은 통일지상주의 관점에서 반통일적 발상으로 매도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남에서 서로 도우며 간섭하지 말고 살자고 해도 북이 동의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다. 결국은 통일지상주의와 마찬가지로 공염불이 될 수 있다.

 

쌍방이 지금의 ‘두 개의 코리아’를 단순히 상호 승인하는 것은 북에게 진정한 동기를 부여하기 어렵다. 남과 북이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면서도 공존번영의 길로 나아가려면 북의 안전보장과 경제적 이행(economic transition)이 가능한 대외적, 국제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인 전제이자 핵심적 관건이다.

 

기존의 지정학적 구도와 질서 위에서 ‘두 개의 코리아’가 평화적인 노력으로 공존과 번영의 길을 추구하면서 시민의 참여로 통일을 지향하자는 것은 북에게 동기를 부여하기 어려운 공허한 논리에 불과하다.

 

남과 북의 각자 영세무장중립화는 통일지상주의자들이 분단지향적 평화공존론이나 양국체제론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처럼 “남북이 사이좋게 남남처럼 살자”는 것이 아니라, 이란성 쌍생아의 남매처럼 서로 질적인 차이를 존중하고 띠앗머리를 나누며 공존하자는 한반도 국가의 새로운 국가방략이자 새로운 민족국가의 존재양식을 말한다.

 

 

1민족 2국가 : 복수의 민족국가

 

체제의 문제, 지정학적 구도 등을 고려하여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에 관한 새로운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데, 구체적인 방법론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평화(영세중립)와 통일의 분리’, 즉 평화와 통일의 결박을 풀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다.

 

평화롭게 살려면 통일해야 한다는 생각이나 통일을 위한 방편으로 영세중립을 추구하는 견해와 달리 양자의 가치 및 목적이 연관되었다는 점을 수긍하면서도 필연적으로 연계된 것은 아니다. 즉 남과 북이 통일하지 않더라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방안이 존재하고, 영세중립이 통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필연적 근거는 희박하다.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민족은 하나의 국가로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나 한반도가 인위적으로 분단되었다는 점에서 출발한 ‘1민족 1국가론’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2018년 7월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한반도에서 남북의 평화 공존은 통일로 가는 전 단계(과정)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일본 강연에서도 “미래의 남북관계는 민족단일국가가 아니며, 어떤 것이 될지 열어 놓고 평화공존을 제도화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평화공존도 실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한반도의 탈냉전과 평화공존을 단일민족국가의 복구가 아니라 다른 형태의 역사적 경로를 향하는 것으로 바라보고, 냉전 이전부터 존재하는 지정학적 단층선을 고려할 때 한반도에서는 하나의 민족이 복수의 국가로 존재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기했다.

 

“한국인들이 선택하는 것은 적대적 두 민족국가의 지속과 통일국가 사이의 선택이 아니라 적대적 두 민족국가 사이의 평화공존이라는 두 민족국가 간의 선택이다.”(도쿄대 한국학연구소 강연 ‘한반도의 냉전해체와 평화공존의 조건’)

 

여기서 두 민족국가의 지속이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라면 통일국가의 실현은 하나의 코리아(One Korea)라고 할 수 있다. 현상유지가 전쟁상태(정전협정)이고, 그러나 통일은 비현실적 목표라면, 두 민족국가 사이의 평화공존은 ‘1민족 2국가론’에 기초한 대안을 모색하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 방안의 하나로 쌍방의 영세무장중립화(Twin Koreas)를 들 수 있다. 2021년 남과 북의 동시 중립화에 관한 논의는 30년 전인 1991년의 UN 동시가입과 역사적으로 조응하는 측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