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Twin Koreas/두 국가

문재인 통일담론 재검토와 임종석 '두 국가' 공론화

twinkoreas studycamp 2024. 9. 21. 14:50

지난 19일 문재인 전대통령이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조선(DPR Korea)의 ‘적대적 두 국가’ 규정에 대응하여 한국(Rep. Korea)의 평화 및 통일 담론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이러한 맥락에서 비핵화 해법과 평화 프로세스의 새로운 설계 필요성을 언급하고, 이러한 일들은 대한민국 (윤석열)정부가 앞장서 해야 할 일들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임종석 전비서실장은 기조연설에서 통일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남과 북이 두 개의 국가란 사실을 수용하고, 헌법 3조의 영토 조항을 개정 혹은 삭제할 것과 이에 따른 통일부의 정리 및 국가보안법 폐지를 제안했다. 또한 남북관계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가 아니라 ‘평화적인, 민족적인 두 국가’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발언들은 당장은 남과 북이 9·19 합의 파기를 선언하고 대북 전단과 쓰레기 풍선, 쌍방의 확성기 방송으로 저강도의 비군사적 침범 및 충돌이 확산되는 시기에 9.19 합의를 주도했던 정부의 최고책임자들이 군사충돌 우려와 대화재개를 강조하기 위함으로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여 작금의 ‘현상유지 마이너스’로 퇴행하지 말고 ‘현상유지 플러스’로 나아가자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윤석열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 통일이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조선은 10월 7일로 예정된 최고인민회의에서 통일조항의 삭제 및 영토조항 개정 등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라시아의 지정학적 주요 대립축

 
 
지정학적 불능성과 가능성
 
80년이 지나도록 남과 북은 상호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조선(약칭)과 한국(약칭)이라는 쌍방의 국호 대신에 북한(과거에는 북괴), 남조선(과거에는 남조선괴뢰)으로 지칭해 왔다.


조선 방송사의 스포츠 녹화중계에 표시된 '한국'이란 국호


 
최근에 북은 이른바 혹은 인용부호를 앞에 붙여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쓰기 시작했다. 그 배경이나 의도와 별개로 국호의 지칭에 대해서는 조선이 한국보다 유연성과 융통성을 발휘하기 시작한 셈이다. 남에서도 자유민주주의통일론과 별개로 인용부호나 ‘이른바’를 앞에 붙여 조선이라는 국호를 쓰는 방안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서로 상대의 국가성(stateness)을 인정하지 않고 민족내부의 특수한 관계를 내세워 국호를 쓰지 않으면서 서로의 편의를 봐주며 약속했던 것들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처럼 공허해졌다.

남의 북핵해법은 이제 파산지경이고, 북은 영구화된 경제제재로 인해 경제발전 모멘텀이 사실상 증발된 상태다.
 
또한 미국에서 확산되는 ‘중간단계론’은 핵동결에 기초한 현상유지와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비핵화 노력의 병행이라는 전략적 선회를 담고 있다.
 
이러한 내외적 조건을 고려하면 무력 혹은 내부적 격변에 의한 통일이든 평정이든, 협상에 의한 국가간 연합이든 연방제든 간에 그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중관계가 지배적으로 작용하는 지정학적 구조가 전변되지 않는 한 다시 ‘하나의 국가’로 합쳐지는 일은 어떤 유형(체제)과 방식을 막론하고 사실상 불능이란 것이다.
 

중국은 7대 전구를 5대 전구로 통합재편했다. 칭타오를 포함한 산둥반도 일대를 동북 3성과 함께 북부전구로 묶어 보하이만(발해만)을 연계한 것이 눈에 띈다.

 
 
미중대립구도를 넘어  대륙세력(landpower)과 해양세력(seapower)의 숙명적 관계가 투영된 지정학적 조건에서는 비극적이고 재앙적인 '제2의 한국전쟁'이 발발하더라도 일방의 승리로 통일이 이뤄질 가망성이 희박하다.

중국이 한반도 서북부를 대미 최전선 및 완충지대로 바라보는 지정학적 이해를 포기하거나, 거꾸로 미국이 대중 견제를 넘어 인도태평양전략상 핵심동맹의 소멸을 용인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거듭 확인되었듯이 대다수 한국인들이 북핵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하고,  통일보다 왕래 가능한 두 국가의 관계를 현실적 방안으로 보는 것은 역사의식이 부재한 비관의 소치가 아니라 지정학적 불능성을 통찰한 지적 정직성의 소산이다.
 
그렇다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불능성에 대칭되는 지정학적 가능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상호 국가로 승인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한국전쟁 이후 70년이 넘게 생존한 한국과 조선은 외생적 요인이 구조화된 지정학적 악조건을 오히려 레버리지로 삼아 한 쪽은 경제선진국에 진입했고, 다른 쪽은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핵무장을 했다는 객관적 사실을 수긍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쪽에선 울며 불며 한국이 가난한 나라라고 선전하고, 다른 쪽에선 비분강개하여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되었다.
 
국민의힘이 자유민주주의통일을 할 수 있는 구체적 방안은 아무 것도 없이 실제로는 과거의 어두운 유산들을 불러들여 증오를 재생하거나, 더불어민주당이 개헌 이전이라도 가능한 쌍방의 국호 지칭 및 국가 승인 등 정치적 담론을 제기하지 않고 공연히 평화통일만 되뇌는 것은 대국민 통일사기극, 평화사기극이다.
 

쿠바는 미국과 국교정상화를 이룬데 이어 최근 한국과 수교를 맺었다. (세계의 주요 사회주의국가 : 중국 조선 베트남 쿠바)

 
 
문재인 정부의 이인영 통일부장관후보의 인사청문회에서 사상검증을 시도했던 탈북인사 태영호 전의원이 민주평통 사무처장이 된 것처럼 남남갈등 및 진영논리의 길항관계가 좀처럼 완화되지 않고 있다. 이런 구시대적 풍토를 개선하지 않으면서 북을 향해 이산가족 상봉을 말하는 것은 공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역사적으로 남북의 통일관련 기구들은 결과론적으로 통일에 반하는 국가주의적 혹은 정권안보 차원의 제도적 장치로 활용되었다는 평가를 면할 수 없다.
 
앞으로 쌍방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모멘텀이 생성되었을 때, 서로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창구는 통일부 및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및 통일전선부가 아니라 외교부와 대사에 의한 국제법적 접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