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DPR Korea) 여자축구 대표팀이 9월 23일 콜롬비아 보코타에서 열린 U-20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일본 대표팀을 1-0으로 꺾고 우승했다.
조선 대표팀은 준결승에서 세계 최강 미국, 결승에서 아시아 최강 일본을 연파하고 U-20 여자 월드컵 세 번째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미국, 독일과 함께 역대 최다 우승국(3회)의 반열에 올랐다. 이번 우승은 연령과 성별을 불문하고 아시아 최초의 신기록이라는 이정표를 세운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Rep. Korea)의 월드컵 기록은 ‘박지성 세대’가 활약한 2002년 한·일 남자 월드컵에서 4강과 ‘이강인 세대’가 활약한 2019년 폴란드 U-20 남자 월드컵에서 준우승한 것이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조선은 이번 월드컵에서 7연승 무패와 총 25 득점의 화려한 전적으로 우승했고, 골잡이 최일선 선수는 준결승과 결승에서 연속으로 결승골을 작렬시키며 최다 득점자(6골)의 영예를 안았다. 그녀는 미국과 일본을 연파하고 세계정상에 오르는데 결정적 수훈을 세웠으니 '최일선'이란 이름값을 톡톡히 한 셈이다.
U-20 여자축구의 영향? : 조선중앙TV의 '한국' 표기
지난 U-20 아시안컵 여자축구대회에서 조선이 일본을 꺾고 우승하자, 조선중앙TV은 결승전과 4강전 등을 녹화중계 방송을 했다.
조선중앙TV는 한국과의 4강전을 녹화중계했는데, TV화면에 ‘조선 대 한국’이라는 남북 쌍방의 정식 국호가 표기돼 눈길을 끌었다. 과거에는 남조선 혹은 남조선 괴리 등으로 표기하거나 아무런 표식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이날 조선중앙TV 녹화중계의 음성으로는 한국이란 말을 언급하지 않고 ‘우리나라’라는 주어만 사용했다고 한다. 그동안 쌍방의 방송사들은 각자 ‘우리나라’를 자칭하여 상대를 암묵적으로 ‘다른 나라’로 간주하면서도 상대의 국호를 지칭하지 않았다. 그것은 양측의 헌법적 문제(상대의 국가성 부정)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 방송사의 ‘한국’ 표기와 블라인드 없는 태극기 노출 등은 김정은 위원장의 ‘두 개의 국가’ 이후 대남 태도가 달라졌다는 징후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반면에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한 전향적 대응을 불온시함으로써 ‘한국 대 북한’이라는 기존 지칭을 고수하고, 북측 축구감독들에게 북한이라는 칭호를 썼다가 “상대의 국호를 제대로 지칭하라.”는 면박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국제규범의 문제
아시안게임에서 조선 관계자들의 주장은 왠지 비논리적으로 보이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수긍할 만한 논리도 담겨 있다.
“우리는 노스 코리아(North Korea)가 아니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다.”(여자농구대표팀 관계자)
이는 조선이 한국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된 국가라는 주장으로, 1992년 UN은 조선의 이런 입장을 수용하여 미국과 일본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압도적 다수의결로 한국과 조선을 각각 유엔 회원국으로 승인했다.
“나라 이름을 잘못 부르는 건 결례다. 여긴 아시안게임이다. 각 나라마다 공식 이름이 있다. 정확한 나라 이름을 말해야 한다.”(여자축구대표팀 감독)
누군가 만약 미얀마를 버마라고 부르면 실례가 된다. 버마족이 다수이지만 미얀마는 소수민족 30%의 분포가 상당한 지역을 차지하는 연방공화국이다. 조선여자축구 감독이 “그걸 좀 똑바로 하자”고 요구한 것은 국제규범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고 국제상례에 부합한다.
2018년 조선의 UN 대표부는 미 행정부의 면세카드에 ‘North Korea’라고 기재된 것에 항의했다. 미국의 이러한 무신경은 38선 획정 등에서부터 역사적 뿌리가 깊지만, 최근 한국계 정 박 미 국무부 동아시아 차관보는 조선에 대해 정식국호의 약칭(DPRK)을 쓰고, 이를 풀어서 설명했다. 이러한 섬세한 대처야말로 외교적 수완의 기본이다.
미 행정부가 북에 대해 정식국호를 쓰고, 정작 한국 정부가 이를 외면하는 것은 넌센스다. 최근 국내에서도 박명림 연세대 교수 등이 북한, 북측 대신에 조선이라는 국호를 기고문 등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상호 국가승인의 문제
“남과 북의 상호인정의 문제에 대해 이진우 포스텍(POSTEC) 석좌교수는 남이라도 먼저 북을 국가로 인정할 필요가 있고, 북의 지위에 관한 내부적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하였다(국민일보, 북한은 국가다, 2018.11.13.).
이 교수는 북을 국가로 인정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익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첫째, 통일이 ‘국가 간 평화’의 문제가 되면 진보와 보수의 간극을 좁힐 수 있고,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과 같은 비현실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피할 수 있다. 따라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줄어들고, 제도화되고 투명해진다는 것이다.
둘째, 어떤 국가로 통일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가 중요하게 다뤄지게 된다. 이에 따라 체제의 경계와 단계적 접근, 장기적으로 체제수렴에 관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논의가 활성화될 것이다.
셋째, 민족통일을 최고선으로 생각하면 그에 수반되는 많은 문제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게 되지만, 북의 국가성을 인정하면 통일지상주의에 잠복된 편향과 위험을 견제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조선을 국가로 인정함으로써 한반도의 국가이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가 정당하다는 가정 아래 이 글에서는 앞으로 남(대한민국)과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한국’과 ‘조선’으로 약칭하고, 남과 북을 통틀어서 말할 때는 ‘한반도 국가’라고 칭한다.
또한 진정한 의미의 ‘내재적 접근’이 이뤄지려면, ‘한국학’이라고 하듯이 북한학의 이름을 ‘조선학’으로 명명해야 마땅하다. 과거에 한국 정부의 부처에 국토통일원과 산하 별청으로 이북 5도청을 두는 발상이나 통일부총리직을 두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조선은 국무위원회 직속기구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를 설치하였고, 조선로동당에 통일전선부를 두고 있다.
이러한 명칭들은 통일을 지상의 과제이자 절대미래로 간주하는 통일지상주의적·통일위업론적 관념과 가치관이 투영된 것이다.
1991년 9월 한국은 UN과 국제사법재판소(Charter of the United Nations and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의 헌장 및 지위를 공포하였다.
회원국의 의무로 공포된 UN헌장의 제2조 1항은 “기구는 모든 회원국의 주권평등 원칙(the principle of the sovereign equality of all its Members)에 기초한다”고 규정하였다.
또한 UN헌장 4조 1항은 “이 헌장에 규정된 의무를 수락하고 이를 이행할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기구가 판단하는 평화애호국가(peace-loving states)에게 개방한다”고 규정하였다.
UN은 중앙정부가 지역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다고 판단되는 정치적 실체로 인정되는 주권국가(sovereign state)가 가입하는 국제적 연합기구로서 남과 북에 대해서 평화애호국가로서 기본적 조건을 갖추었다고 인정하였다.
남과 북의 UN가입은 국가성을 지닌 복수의 국가적 실체가 한반도에 존재하는 것을 세계가 승인한 것이고, 한반도 국가들은 별개의 독립적 주권국가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UN헌장에 따라 한국과 조선은 서로에게 주권평등의 원칙을 적용해야 하지만 민족 내부의 특수한 사정을 내세워 각자의 헌법과 조선로동당의 규약 등을 고치지 않고 UN 가입 이후 30년 동안 기존의 상태를 고수하고 있다.
국민국가의 기준에서 국가건설과 국민형성을 어느 정도 달성한 상태를 국가성이라고 간주한다면, 소연방(Soviet Union)이 점령한 공간에서 출발한 조선은 2년도 채 안되는 시점에 전쟁에 돌입함으로써 국가로서 정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파탄적 상황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전쟁복구 이후에 새로운 통치세력을 구축하고 경제부흥과 군의 현대화를 추진하면서 소군정과 한국전쟁에서 절정에 달했던 소연방과 중국의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탈피하게 되었다.
조선은 독특한 지도이념과 당의 확대, 전 인민의 조직화를 통하여 강력한 통제체제를 구축하였고, 2020년에 인민무력부를 국방성으로 개칭하였다. 신체제가 인민의 동의와 국가정당성(state legitimacy), 행정효율성, 능력주의(meritocracy), 대응성(responsiveness) 등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도 있다(박영자 외, 김정은시대 북한의 국가기구와 국가성).
남과 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두 개의 국가로 고착화될 경우에 재통일이 어려워진다는 민족주의적 동기(하나의 조국)와 상대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체제에 동화시켜 자기완결적인 체제로 통일하려는 국가주의적 동기(자유민주주의 대 민족해방 및 사회주의)가 혼재되어 있다.
남과 북은 서로 국가로 인정하면 유일한 국가의 정통성과 국토의 완정(completeness)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
남과 북의 딜레마는 중국의 학자들과 공청동(공산주의청년동맹)이 한국전쟁을 국가 간에 침공이 행해진 전쟁이 아니라 민족 내부의 내전(civil war)으로 규정하고, 타국의 내전에 제3자인 미국이 개입해서 중국도 개입했다는 논리를 제기하는 근거가 되었다.
일부 학자는 한국이 다른 나라와 전쟁을 한 것처럼 말하면서 통일하자는 것은 다른 나라와 통일하자는 것과 같은 자기모순이라고 비꼬았다.” (김병규, 트윈코리아 : 한반도의 지정학적 재탄생, 2020, pp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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