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역풍이 심상찮다. 윤석열 파면을 반대하는 여론이 점증하는 가운데 헌재에 대한 신뢰도는 급락하는 양상이다. 탄핵찬성이 압도적이었던 대학가에서 탄핵반대의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한국사회가 좀더 넓고 깊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에 기초해서 정치적, 사회적 현상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동안 법적 권위의 지존으로 간주되었던 헌재에 대한 거친 언사들이 거리낌 없이 분출되는 현상도 심각하다. 일부에서는 헌재 해체론까지 제기한다. 왜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표면적으로 나타난 주요한 불만은 일주일에 2번씩 재판을 강행하는 등 탄핵심판 절차에서 나타난 헌재 주도세력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으로 집약된다.
급기야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청원이 국회 법사위에 회부됐다. 국회법 제125조에 따라 국회청원은 청원자 5만명이 넘으면 법사위에 자동 회부되고, 법사위는 90일 이내에 심사결과를 의장에게 보고한다. 그런데 문 대행의 탄핵청원은 6일 기준 10만명을 초과해 이러한 절차를 밟게 된다.
비상한 시기에 대행을 맡은 문 재판관은 윤석열 탄핵심판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로 인해 국회에 탄핵청원이 된 헌법재판관 및 소장(대행)으로 헌재의 역사상 초유의 리스크를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즉 사법의 정치화로 인해 서부지법 난동사태와 같은 이상기류가 확연함에도 불구하고 문 대행을 위시한 헌재 일동은 헌법의 안정성 및 통합성의 핵심인 절차적 정당성과 무결성(無缺性)보다 ‘계엄사태에 대한 단죄’라는 정치적 시급성을 앞세워 편의적(편향적) 재판운영의 불신을 자초했다.
헌재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으면 이러한 불신과 여론의 역풍은 성역화된 헌재의 권위에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할 수 있으며, 탄핵심판의 결과가 헌재가 의도했던 혼란의 조기수습이 아니라 혼란의 본격화라는 역효과로 귀결될 수도 있다. 또한 헌재 대변인을 통해 전해지는 헌재의 공식입장이 점차 민의와 괴리가 커지면서 일부 재판관의 법적 소양이 일반의 기대에 미달하는 미성숙한 경지라는 의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문형배 권한대행체제의 자충수 : 선입선출 무시, 1주일 2회 재판
헌재의 정원 9명에서 1명이 부족한 문제와 윤석열 파면의 정족수가 6명이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이 분명한 마은혁 재판관 후보자가 속히 임명되어야 하는 문제가 결합되면서 ‘헌재의 정치화’가 촉발됐다.
그런데 이에 앞서 국회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탄핵소추하면서 국무위원 탄핵소추 정족수(150석)로 의결했으나, 한 대행과 국민의힘은 대통령에 준하기 때문에 대통령 탄핵소추 정족수(200석)로 의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논란에 최상목 대행은 마은혁을 제외한 2명만 재판관으로 임명했고, 이에 대해 국회는 본회의 의결 없이 의장의 결정으로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
법을 어기는 것은 순간이지만 법을 집행하려면 시간과 절차가 필요하다. 마음이 앞선다고 세상이 따라오지는 않는다. 헌재는 민주당이 권한대행을 탄핵한 것에 대해 먼저 정리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마은혁 임명에 관한 권한쟁의심판을 먼저 선고하려다 2시간 전에 취소하고 변론을 재개하는 중대한 실책을 드러냈다. 만약 한 총리의 탄핵절차가 헌법에 위반된 것으로 드러나면 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논란도 원천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문 대행체제는 ‘문형배·이미선·정계선 재판관 기피 신청’이야 지연전술로 치부하더라도, 선입선출(先入先出)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절차적 정당성을 소홀히 여기면서 대중의 불신을 초래했다. 특히 헌재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을 미루다 기각결정을 내림으로써 이동관-김홍일-이진숙 방통위원장에 대한 민주당의 줄탄핵 시도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헌재는 2일 근무한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심판을 무려 174일 동안 지체했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심판은 기일도 잡지 않은 상태에서 국회 본회의 의결을 생략한 권한쟁의심판을 선고하려다 제동이 걸렸다. 마 재판관 후보자의 임명과 조속한 윤석열 파면을 추진하던 문 대행체제의 스텝이 꼬인 까닭이다.
또한 헌재법 32조는 헌재가 다른 국가기관에 재판 및 수사가 진행 중인 기록은 요청할 수 없도록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도 문 대행체제는 ‘원본을 요구할 수 없을 경우에는 등본을 요구할 수 있다’는 헌재 심판규칙으로 대응했다. 하위법인 기관 규칙으로 상위법인 법률을 뒤집은 셈이다. 원본은 안되는데 등본은 된다는 것이 뭔 개소리인가? 헌법재판소법 제32조를 비롯한 헌법재판 절차에 관한 전반적인 점검과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헌재가 잘못된 관행이나 흠결을 바로잡지 않고 편의적으로(정치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스스로 신뢰를 훼손하게 된다.
여기에 일부 재판관의 정치적 인적관계가 이슈화되면서 헌재 내부의 ‘보혁구도’에 대한 대중의 각성을 촉발하고 ‘헌재의 정치화’를 가열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심리적 내전상태인 국가적 비상시기에 문 대행체제가 신중하고 통합적인 관리능력이 부실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 대행의 과거 행적이나 단편적인 글들이 뒤늦게 논란이 되는 것은 한국사회의 다양한 가치와 다원주의적 문화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허용될 수 있는 것이지만 사상검열 수준으로 비약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다. 이와 별개로 문을 비롯한 일부 헌법재판관들이 자신의 정치성향에 따라 탄핵심판의 결정을 미리 내려놓고 재판을 진행한다는 의구심을 초래한 것은 윤석열 파면 이후 수습과정에 대단히 불행스러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가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의무가 지엄하다. 하물며 사법부의 최고기관인 헌재와 대법원의 수장 및 법관들은 더욱 그러하다. 이상한 계엄령이 ‘계몽령’으로 둔갑하는 여론변화가 헌재의 행보에 대한 역풍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헌재와 대법원 최고책임자들이 통렬하게 자각할 일이다.
‘사법의 정치화’의 트리거 : 김명수 대법원장체제
정치의 실패는 비상계엄 이후 탄핵심판이라는 ‘정치의 사법화’를 초래한다. 그러나 정치의 사법화가 일상화되면 ‘사법의 정치화’가 구조화된다. 대법원의 정치화와 헌재의 정치화는 정치의 실패에서 기인하지만, 그러나 고위법관들의 윤리적 책임을 면책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헌재에 대한 불신은 ‘사법의 정치화’의 집약적 표현이다. 돌이켜 보건대, 김명수 대법원장체제는 사법의 정치화에 트리거로 평가된다.
특히 김명수-권순일 주도의 선거법 판결은 수원고법의 유죄판결을 뒤집어 사실상 무죄방면한 사건으로 이후 한국정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돌이켜 보건대 29건의 탄핵시도-비상계엄-현직대통령구속-탄핵심판-궐위대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권순일 대법관-이재명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선거법 상고심에서 장광설로 기존 법리를 부정하고 사실상 새로운 법이론을 창설한 김명수체제의 ‘사법의 정치화’와 무관하지 않다.
2025년 찬탄과 반탄의 대결은 ‘진영논리의 광기’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1945년 광복 직후 폭발한 신탁과 반탁의 대결과 닮은 꼴이다. 21세기 한복판에 선 한국사회의 현주소다.
탄핵이 일상화된 시기에 헌재의 최고책임자는 헌재라는 중요한 국가사법기관이 국민의 신뢰가 훼손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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