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스가 2020년 대선에서 바이든이 승리했던 펜실베니아주를 트럼프에게 빼앗기면, 미국 민주당은 고어-힐러리에 이어 해리스까지 전국 득표율에서 앞서고 선거인단에서 뒤지는 징크스(惡運)를 이어가게 된다.
해리스 미 민주당 후보가 고어(2000년 대선)와 힐러리(2016년 대선)처럼 전국 득표율(수)에서 앞서고 선거인단 확보에서 뒤지는 악몽의 시나리오에 접근했다는 전망들이 나오고 있다.
최근 해리스 후보가 전국 지지율에서 근소하게 앞서지만 경합주의 선거인단 확보에 실패하면서 트럼프에게 패배할 것이란 예측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경합주에서 선거인단 비중이 높은 펜실베니아주에서 밀린다는 조사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왼쪽) 펜실베니아주 위치 / (오른쪽) 2022년 주지사선거에서 당선된 샤피로 민주당후보가 강세를 보인 지역(파란색)
고어와 힐러리의 징크스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는 전국 득표수에서 조지 W. 부시를 앞섰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밀려 낙선했다. 클린턴행정부의 부통령이었던 고어는 전국 득표율 48.38%(득표수 50,999,897표)로 47.87%(50,456, 002표)를 기록한 부시를 앞섰지만, 선거인단에서 ‘266명 대 271명’로 뒤졌다. 불과 5명의 격차로 인해 다수의 선거인단이 배정된 플로리다주(현재 기준 30명)의 팜비치 카운티 등에서 치열한 재검표 논란이 벌어졌다. 부시는 전국 득표수에서 졌지만, 논란이 많았던 플로리다주의 결과로 당선된 셈이다. 당시 플로리다주지사는 부시의 남동생이었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는 전국 득표율 48.2%(65,844,610표)로 46.1%(62,979,636표)의 트럼프를 앞섰지만, 실제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인단에서 227명에 그쳐 트럼프(304명)에 완패했다.
당시 미국의 주요 언론과 국내에서도 힐러리의 당선을 기정사실화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특히 이번 대선의 향방을 가를 지역으로 부상한 펜실베이니아에서 당시 트럼프(48.18%)는 힐러리(47.46%)를 1% 미만의 근소한 격차로 누르고 선거인단 20명을 싹쓸이했다.
최근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자체 분석을 통해 역대 대선에서 민주당에 드리웠던 징크스가 해리스에게 다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경합주(swing states)의 핵심 : 펜실베이니아
미국의 인구는 3억 3천만명에 달하지만,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등록 유권자는 1억 6천만명 수준이다. 1억 6천만명 중에서 거의 대부분이 양당의 전통적 강세지역에 속하는 지역에 거주하기 때문에 실제로 선거의 열쇠는 몇 개에 불과한 경합주(격전지)의 유권자들이고, 경합주 안에서도 몇몇 경합 카운티(swing county)의 십 수만명이 사실상 당선자를 낙점하다시피 한다.
이번 대선의 주요 경합지는 애리조나(Arizona), 조지아(Georgia), 미시간(Michigan), 네바다(Nevada),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펜실베니아(Pennsylvania), 위스콘신(Wisconsin) 등 7개주로 집약되는데, 그 중에서도 선거인단 비중이 가장 큰 펜실베니아의 경합 카운티(swing county)의 향방에 양당의 촉각이 몰려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펜실베이니아 중부에서는 블루칼라 유권자들이 트럼프와 강한 유대를 드러냈다. 최근 미국 경제는 회복세이지만 이런 지역들은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 전체적으로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 계층이 20% 정도로 추정되지만, 펜실베니아는 전미 평균의 2배 수준인 40% 가량으로 알려졌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를 계승하는 해리스에게 불리한 정황이다.
최근 트럼프의 우세지역으로 분류되는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등은 경제상황이 적잖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캠프는 TV광고를 이민문제에 집중하면서 펜실베니아의 주요도시인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 등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네거티브 캠페인을 강화하고 있다.
< 주요 경합주의 개표 변수 >
11월 5일에 치러지는 미국 대선에서 선거인단의 과반수(270명)를 확보한 후보가 당일에 확정될 가능성이 낮다. 양당의 후보는 당일에 어느 정도 선거인단 200명 선에 접근할 것으로 보이지만, 나머지 70명을 두고 치열한 개표전이 예상된다.
특히 7개 안팎의 경합주(swing states)에서 초박빙이 지속될 경우에는 참여율이 높아진 우편투표의 개표를 모두 확인하는 과정에서 선거인단 기준으로 당선자를 확정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도 있다.
경합주 중에서도 조지아주와 노스캐롤라이나주 등은 선거 당일에 어느 정도 결과가 드러날 것으로 보이지만 펜실베니아주와 애리조나주 등은 수일 이상 걸릴 수 있다.
트럼프의 우세지역이지만 최근 해리스의 상승세가 나탔던 조지아주(선거인단 16명)는 당일에 모든 개표가 완료되고 가장 빨리 최종결과가 확정될 가능성이 높다. 조지아주는 11월 1일에 종료된 사전투표(조기투표)와 투표일(11월 5일) 당일까지 선관위에 도착한 우편투표를 먼저 개표하고, 당일 투표도 소도시에서 대도시로 순차적인 개표가 이뤄지기 때문에 당일 밤에 승패를 가릴 수 있다.
최종 여론조사에서 해리스의 약진이 나타났던 노스캐롤라이나주(16명)도 사전투표가 11월 2일에 종료됐고, 나머지 개표절차가 조지아주와 비슷해서 당일 밤에 승패를 가릴 수 있다. 다만 유권자신분증에 관한 새로운 법과 허리케인 피해로 주거지 이동으로 인한 관외 투표(잠정 투표 : provisional ballots)가 최종집계의 확정을 다소 지연시킬 것으로 보인다.
해리스의 근소한 우위가 나타났던 위스콘신주(10명)는 대부분의 카운티에서 당일 개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이지만, 대도시는 다음날까지 개표가 이뤄질 개연성이 크다.
해리스가 상당히 공을 들였지만 트럼프와 초박빙을 지속한 미시간주(15명)도 11월 3일에 사전투표가 끝났지만, 나머지 개표절차가 카운티마다 달라 투표 다음날에 가서야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막판에 트럼프의 우세가 점쳐진 펜실베이니아(19명)도 사전투표가 10월 29일에 끝났고, 나머지 절차는 비슷한데 우편투표의 개봉절차가 까다로워 최종결과의 확정이 미뤄질 수 있다. 만약 이의제기 등 잡음이 발생하면 전체 선거의 최종확정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확고한 강세가 지속된 애리조나주(11명)는 사전투표와 선착한 우편투표를 먼저 개표한다. 당일투표를 개표한 다음에 나중에 도착한 우편투표를 개표하기 때문에 최종결과를 확정하기까지 수일이 경과될 수 있다.
민주당 우세지역이었지만 불확실성이 높아진 네바다주(6명)는 밤 10시까지 투표를 보장하고 모든 투표소에서 투표를 종료해야 개표가 시작되므로 개표 완료까지 수일이 걸릴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 예측 : 트럼프 197~359명(평균 276명) : 해리스 179~341명(평균 262명)
이코노미스트가 젤먼(Andrew Gelman) 컬럼비아대 정치학교수와 공동 개발한 선거예측 모델을 통해 도출한 시뮬레이션 결과에서 트럼프가 선거인단 588명 중 276명을 확보해 262명에 그친 해리스를 14명 차이로 꺾고 당선될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최종적인 예측은 동률로 보았다.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의 평균값에서는 해리스가 49%로 트럼프(47%)에 근소한 우위에 있지만, 실제로 대통령을 선출할 선거인단의 향방을 가를 경합주에서 비중이 가장 큰 펜실베니아에서 트럼프에 밀리고 있다는 것은 고어와 힐러리의 전철을 밟을 징크스처럼 보여진다. 특히 이번 분석에서 트럼프가 펜실베이니아에서 승리할 확률이 58%로 나타난 것은 해리스에게 치명적인 적신호로 여겨진다.
이코노미스트는 해리스가 펜실베니아에서 패배하면 당선확률이 13%로 급감하고, 트럼프가 펜실베니아에서 패배하면 더 낮은 10%로 예측했다.
해리스의 승부수?
최근 추세에 대해 펜실베니아 등 핵심적인 경합지역에서 밀린 해리스가 패색이 짙어진다는 시각과 시소게임의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2020년 대선 당시 지금과 비슷한 시점에서 바이든의 전국 지지율은 트럼프보다 4% 정도 높았는데, 최근 해리스는 2% 이하로 좁혀지는 양상이다. 따라서 신중한 시각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에는 트럼프의 귀환이 유력해질 것으로 본다.
또한 성별 지지성향이 판이한 것도 해리스의 부담이다. 여성 유권자의 지지율은 높지만 남성 유권자의 지지율에서 트럼프와 큰 차이가 난다.
최근 국제정세가 민주당 여성후보에게 유리하다고 보기 힘든 상황에서 이러한 젠더 대결양상은 미국사회의 유색인종 컴플렉스와 맞물려 부동층의 해리스 선택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트럼프와 해리스의 선거인단 예측은 트럼프의 경우에 최소 197명~최대 359명의 평균(276명)이고, 해리스의 경우에 최소 179명~최대 341명의 평균(262명)이란 점에서 특정성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도 이런 점을 고려하여 대선결과를 여전히 동전 던지기(a coin toss)에 비유했다.
최초의 흑인 여성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컨셉으로 급부상했던 해리스의 어드밴티지는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확전추세, 경제상황(특히 경합주), 젠더편차(지지율) 등으로 인해 안보 히스테리가 강한 전쟁국가에서 스트롱 맨이 아니라 여성대통령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설득해야 하는 챌린지로 바뀌었다.
원래부터 어려운 도전이었다는 말이 정확하다. 하물며 해리스는 어느덧 ‘바이든의 부통령’이라는 박스에 갇혀 밋밋해져 버린 것인가? 지금에 와서 스윙 카운티들을 섬세하게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해리스가 바이든을 뛰어넘는 담론의 트리거를 당길 수 있을까, 또한 바이든 행정부의 부통령 이미지를 탈피하는 빅 메시지를 발화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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