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의 드라마 제목 ‘개소리’는 ‘개소리’에 대한 암묵적 금기를 깬 혁신적 발상이다.
주연 이순재 옹은 제작발표회에서 "개소리란 제목이 이상해서 무슨 헛소리를 하려는가 싶었지만 한국 드라마 최초의 시도"라고 예찬했다.
‘소피’라는 경찰견은 다소 불경스러운(?) 제목에 대한 방어적 완충장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피라는 개 이름은 프랑스 영화계의 청춘레전드 소피 마르소에 대한 결례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걸 개소리라고 한다.)
문학작품 속 개소리 어록
“우리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개처럼 죽을 것이다.” 해밍웨이의 개소리다.
소설 ‘심판’(혹은 '소송')에서는 주인공이 이유도 모르고 처형되면서 “개같이...”라는 외마디를 남긴다. 카프카의 개소리다.
세르반테스의 개소리
세르반테스의 ‘개들이 본 세상’에서 나오는 베르간사(개)는 목양견으로 제법 인정을 받았지만 양들이 죽는 일이 잦아지면서 목동들에게 맞았다. 교활한 늑대들을 당할 수 없었던 베르간사는 죽음을 각오하고 양떼 속에 숨어 늑대와 마주치겠다는 비장한 작전에 돌입했다.
그러나 그날 밤에 출몰한 것은 늑대가 아니라 목동들이었다. 그들은 가장 먹음직한 양을 골라 맛있는 부위만 먹고, 나머지 남는 부위는 늑대가 공격한 것처럼 꾸미기 위해 난자했다. 베르간사의 목격에도 불구하고 사정을 알 리 없는 주인은 늑대 탓을 하면서 목동들을 꾸짖었고, 목동들은 다시 개들을 괴롭혔다.
베르간사는 신에게 이렇게 간구했다. “신이시여, 누가 이런 나쁜 짓을 막을 수 있을까요? 보호하는 자가 공격을 하고, 파수꾼이 잠을 자고, 믿는 자가 도둑질하며, 지키는 자가 죽이는 자라는 사실을 과연 누가 밝힐 수 있단 말인가요?” 세르반테스의 개소리다.
로맹 가리의 개소리
로맹 가리의 ‘흰 개’에는 “개 안에서 인간을 본 사람은 인간 안에서 개를 본다.”는 말이 나온다. 과거에 미국 남부에서는 탈출하려는 흑인노예를 추격하는 개들을 ‘흰 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남북전쟁 이후에도 남부의 경찰들은 그런 개들을 사육했다.
‘흰 개’에 나오는 회색빛 셰퍼드 바트카도 피부색이 검은 사람만 보면 사납게 짖고 달려들었다. 누군가에 의해 흑인을 공격하도록 조련된 것이다. 주인공은 개의 삐뚤어진 습성을 교정할 수 있는 조련사를 물색하다가, 한사코 거부하는 흑인 조련사를 설득해서 개를 맡겼다.
그는 떠나면서 조련사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흑인을 물지 않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백인도 물게 하세요.” 로맹 가리의 개소리다.
루쉰의 개소리
루쉰은 물에 빠진 개를 구해주면 사람을 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착각이며, 사람을 무는 개는 뭍에 있건 물에 빠져 있건 간에 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쉰이 겨냥한 삽살개의 정체는 이렇다.
“그 놈은 개이면서도 고양이를 몹시 닮았다. 절충적이고 공정하며 조화롭고 평정한 낯을 떠받들고 있고, 유유하게, 다른 놈들은 모두 과격한데 오직 제놈만 ‘중용의 도’를 터득한 것 같은 낯짝을 하고 있다. 그래서 부호, 환관, 귀부인, 숙녀들에게 총애를 받으며 그 씨가 면면히 이어져왔다. 그 놈의 일이란 뻔지르르한 털 덕분에 귀인의 손에 길러지거나, 국내외 여인들이 외출할 때에 목에 가는 사슬을 맨 채 발뒤꿈치를 따라다니는 것뿐이다. 그런 놈들은 먼저 물 속에 처넣어야 하고, 그리고 또 때려야 한다. 만약에 그 놈이 스스로 물에 빠졌다면, 실로 쫓아가서 때려도 무방하다.” 루쉰의 개소리다.
마광수의 개소리
마광수는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시에서 독재자와 속물주의적 애국자의 기만성을 야한 여자의 꾸밈과 대비되는 민 낯과 벌거벗음 등 ‘날 것’으로 전복시키는 정치적 풍자를 담았다.
“아무 것도 치장하지 않거나 화장기 없는 여인은 훨씬 더 순수해 보인다/거짓 같다/감추려 하는 표정이 없어 너무 적나라하게 자신에 넘쳐 나를 압도한다/뻔뻔스런 독재자처럼/敵처럼 속물주의적 애국자처럼 ... (이하 생략)” 마광수의 개소리다.
오웰의 개소리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 나오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All animals are equal, but some animals are more equal than others)”는 구절은 대중기만의 압권이다. 오웰의 개소리다.
개들을 위한 변명
어떤 단어의 머리에 ‘개’를 붙이면 묘한 어감들이 생성된다. 나발(喇叭)이란 전통 관악기의 명칭 앞에 ‘개’를 붙인 ‘개나발’은 사리에 맞지 아니하는 헛소리나 쓸데없는 소리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요즘에는 ‘개드립’의 뉘앙스와 비슷하다.
개꿈은 개에 관한 꿈이 아니라 특별한 의미도 없이 어수선하게 꾸는 꿈(silly dream)을 말한다. 또한 개판, 개싸움, 개고생, 개피곤, 개망신, 개무시 등도 개와 무관하다. 개들에게 가장 불명예스러운 단어는 아마도 ‘개죽음’일 것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개’의 두 번째 의미로 ‘행실이 형편없는 사람을 비속하게 이르는 말’ 혹은 ‘다른 사람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개소리는 개가 짖는 소리가 아니다. 행실이 형편없는 사람의 말, 다른 사람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의 말이다. “개소리 집어치워!”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개소리(메시지)를 요격함과 동시에 ‘행실이 형편없는 사람’(메신저)의 마빡에 작렬하는 것이다.
개소리란 무엇인가?
‘개소리’란 말은 한국인들이 스스로 고치기 힘든 오래된 병폐를 개에게 투사한 것이다. 또한 이 말은 인간본성을 우물 안의 시퍼런 밑바닥에 빠뜨렸다가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동안 빛의 세례(유머·해학)를 받아 생기를 발하는 쿨링 워터(cooling water)가 됐다.
Life is so cool, Gaesori's too cooo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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