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영세무장중립/중견국가의 지표

인감증명서 인터넷 발급, 행정혁신의 빛과 그림자

twinkoreas studycamp 2024. 9. 29. 19:55

 
 
일제 강점기였던 2014년에 조선총독부령 제110호 '인감증명규칙'에 따라 도입된 이후 110년째를 맞이한 인감증명서를 인터넷에서 발급할 수 있게 됐다.
 
인감제도는 일본제국주의가 일본인들의 식민과 이주 등으로 본국의 경제활동을 침략지역에 연장하는 과정에서 조선과 대만에서 제도화된 것으로 오늘날까지 일본, 한국, 대만에서만 존재하는 제도로 알려졌다.
 

도장들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도 인감증명서는 본인 확인의 불가피한 방법으로 간주되지만, 식민지시대의 유산일뿐더러 여러 방식으로 본인 확인이 가능한 시대에 주민센터에서 인쇄된 종이를 제출해야 본인 확인이 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인감증명서를 필요로 하는 사무가 무려 2608건에 달한다고 한다. 그나마 사기 등 범죄예방을 위해 부동산 거래 등에 본인 확인용으로 쓰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행정편의를 위해 장기간 방치된 경우가 너무 많다.
 
이를테면 주식회사의 법인 업무에 법인과 임원들의 인감 및 인감증명서를 요건으로 하는 경우가 과다하고, 봉사 등 사회공헌을 위해 협회, 사단법인 등에서 임원이나 정회원으로 활동하는 경우에도 총회나 이사회의 서면의결 등에 인감과 인감증명서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본인인증 절차의 과학적 방법을 강구하여 기존의 인감제도는 폐지해야 하고, 과도적으로 용도를 떠나 본인확인을 위한 인감증명서는 대부분 온라인 발급서비스가 이뤄져야 마땅하다.
 
올해 초에 행정안전부와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인감증명 요구 사무 중에서 단순한 본인확인 사무 2145건(82%)을 단계적으로 정비한다고 밝혔고, 이에 따라 정부는 2024년 9월 30일부터 간단한 확인업무에 쓰이는 인감증명서는 정부24(www.gov.kr)에서 발급할 수 있도록 했다.
 
윤석열정부가 1987년 민주화 이후 40년이 되도록 역대 정부들이 만지작거리다 뭉개버린 인감증명서 제도의 개선을 실행에 옮긴 것은 평가할 만하다.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면 실로 110년 만의 일이다.
 
하지만 부동산 등기, 채권담보 설정, 공탁신청 등 법원 제출용과 대출 등 금융기관 제출용은 계속 동사무소에서 발급을 받아야 한다. 주로 재산권과 결부된 경우는 기존 방식을 유지하고, 재산권과 결부되지 않은 경우는 온라인 방식을 허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발급된 인감증명서 2천984만통 중에서 일반용 증명서가 2천668만통(89.4%)으로 압도적 비중이고, 자동차 매도용 182만통(6.1%)과 부동산 매도용 134만통(4.5%)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따라서 이번 조치로 인해 연간 3천만통에 달하는 인감증명서 중에서 온라인 발급으로 대체될 비중이 얼마인지, 또한 그러한 비중에 행정혁신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알 수 없다. 정부가 법원용과 은행용 등 재산권과 관련된 인감증명서를 단순확인용 인감증명서와 뒤섞어 '일반용 증명서'로 물타기를 했기 때문이다.
 
또한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의 경우는 대리인 신청이 가능한 주민센터 발급보다 대리인 신청이 불가한 온라인 발급이 더 불편할 수 있다. 온라인 발급을 위해 공동인증서(금융인증서) 인증과 휴대전화 인증의 이중적 복합인증을 거친다는 것은 110년의 본인확인 제도를 간소화하기 위해 고령자에게 더 어려운 인증절차를 부과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일부 인감증명서 온라인 발급은 시대변화에 조응하는 행정혁신으로 평가할 만하고, 이러한 변화에 따른 인감증명서의 위·변조를 막기 위한 기술적 검증장치(진위확인 프로그램)를 구비한 것도 행정서비스의 발전양상이다.
 
하지만 인공지능 및 블록체인과 빅데이터의 시대에 도장을 새겨 본인을 입증하는 인감(印鑑)을 대체하는 한국형 본인확인 제도, 이와 관련된 K-아이덴티티 디바이스를 개발하는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
 

일본의 인감증명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면서 주민등록등본을 내야 하거나, 여기에 인감도장을 찍으면서 인감증명서를 내야 하거나, 이러저러한 오프라인 본인확인을 거쳐 다시 온라인 전자인증(공인인증서/무선전화 등)을 거쳐야 하는 사회.
 
그렇다고 해서 다른 나라보다 사기범죄가 특별히 적지도 않은 것 같고, 전세대출사기나 은행권 고액횡령사건 등 죄질이 나쁜 사건들은 사라지지 않고,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나 해킹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본인확인 및 인증절차가 모르는 두 사람 사이에서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정부, 대기업, 공공기관 등 ‘거대조직’ 대 ‘당사자 1인’이라는 비대칭적 관계에서 일방의 편의를 위해 쓰여지는가는 명백하다.
 
세계에서 유독 일본, 한국, 대만에서 인감 및 인감증명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일본, 한국, 대만에 본인을 속이려는 족속들이 많아서가 아니라 일본, 한국, 대만에 관존민비(官尊民卑)의 DNA가 담긴 행정편의주의 및 권위주의가 21세기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도 고질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