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9일 최근 2025년 의대증원 논란에 대해 정부의 일관된 대처를 촉구했다. 경실련은 의협이 여·야·의·정협의체의 참여조건으로 2025년 의대증원 백지화를 요구한 것에 대해 재고의 가치가 없는 ‘정책 흔들기’로 규정하고, 또한 야당이 의협의 주장에 편승하여 의대증원 논란을 정쟁화한다고 질타했다.
2025년도 의대입학 정원은 경인지역 소규모 의대 361명 증원, 지방 국립대 중심 1639명 증원으로 총 2000명이었으나 의과대 학장들과 대학 총장들의 건의로 일부 의대의 증원규모를 줄여 전체적으로 1500명 수준으로 조정됐다.
이에 근거해서 9일부터 2025년도 수시입학 원서접수가 시작됐다. 이번 수시모집에서 의학전문대학원인 가천의과학대를 제외한 전국 39개 의대의 전체 모집인원(4610명)의 67.6%에 해당하는 3118명을 선발한다. 이로써 각계에서는 2025년 의대증원 문제가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경실련은 보건의료단체가 아닌 시민단체 중에서는 의대증원에 가장 적극적인 입장을 밝혀 왔다. 경실련의 지도부는 공동대표로 이의영 군산대 행정경제학부 교수, 류중석 중앙대 도시공학과 교수, 김철환 희망의원 원장, 원경 심곡암 주지, 김연옥 인천경실련 대표가 재임하고,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학 교수가 상임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진현 교수는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으로 있던 2022년 9월 언론 인터뷰에서 아산병원 간호사의 사망사건과 관련해 의대정원을 최소한 1000명 이상 증원해도 10년이 지나야 의료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공공의대 설립을 촉구했다.
뒤이어 보건의료위원장을 맡은 송기민 한양대 교수(보건학 박사)는 저출생 및 지방소멸과 관련해 연봉 5억원을 줘도 지방에 의사가 오지 않는 현실을 타개하려면 ‘지역근무’를 의무화시킨 일본 자치의과대학의 성공적 사례를 거울로 삼을 것을 강조했다. 국내의 지방에는 산부인과와 소아청소년과가 부재한 곳이 많다. 정확하게는 해당 전문의가 1년 동안 한 번도 지역병원에 오지 않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전남의 여러 군은 물론이고 인천시의 강화군도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1곳에 불과하고, 옹진군은 아예 없다.
1972년 일본 정부는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과 연계해 특수의과대학인 자치의대를 설립해서 지방의료를 보충했다. 자치의대 입학생은 해당 지자체의 장학금을 받으면서 의사로 육성됨으로써 졸업 후에 지자체의 지정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9년 동안 근무한다. 또한 안정적으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해당지역 출신이 아닌 학생도 같은 조건으로 입학의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가 있다. 일본의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비수도권과 인구밀도가 낮은 지방에서 지역의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본다.
최근 의대증원이 지방대 중심으로 이뤄진 배경에는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다 좌초된 공공의대의 설립취지와 일본 자치의대의 성공적 사례가 투영돼 있다. 다만 기존 의대들의 입장 및 기득권과 충돌하는 양상을 피하면서 비슷한 효과를 거두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정부의 미숙한 추진과정도, 일부 의사들과 전공의들의 집단적 광기도, 일부 국민들의 감정적 대응도 이제는 의사정신의 기본이라고 하는 ‘초연한 관심’(detached concern)으로 냉각될 필요가 크다. 지금도 다수의 의사들은 환자들을 잘 돌보고 있으며, 전공의를 착취(?)해 온 빅5 등 초대형 병원의 등살에 밀려났던 대형 및 중급병원들은 방문환자들이 늘어나 표정관리를 해야 할 판이라고 한다.
“응급실에 이어 다음 차례는 중환실”이란 식으로 환자를 염려하는 것인지, 환자를 볼모로 삼으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들을 하는 것은 목적과 수단을 분간하지 못하는 비이성적 광기로 지탄을 받을 소지가 다분하다. 특히 의협은 우리 사회가 공동체의 양식(common sense)을 회복하기 위해 솔선수범하여 막무가내식 집단적 사고(group thinking)에서 벗어나 ‘탈이기적 마인드’로 나아가야 한다.
또한 2025년은 물론이고 이 생에서는 영원히 의대증원을 백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한 전공의들의 결연한(?) 태도는 국내 의대교육의 허점- 인성적 자질함양 및 인문학적 교양의 부실-과 함께 입시경쟁에 찌든 국내 자녀교육의 실상과도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심지어는 부모와 자녀로 이어지는 ‘의사 사다리’가 많은 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기이한 풍광이라는 시각도 있다.
에필로그
“당분간 아프지 말아야 한다. 특히 교통사고를 비롯한 각종 상해사고를 주의해야 한다. 만약 죽을 지경이라도 응급실행은 그날 운에 맡겨야 한다. 나이 들어 중한 지병이 있는 경우라면 재수술이나 연명보다 차라리 마음을 비우는 자세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의료수요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그럴듯한 개소리인가? 그런데 정부도 아니고, 의사들도 아니고, 국민들이 이런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적잖은 국민들이 차라리 죽어도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면(실제는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일부 국민들일지라도 의사들에 대한 앙금이 얼마나 깊어지는 일인가?
역사적으로 한의약분쟁(김영삼정부), 의약분업분쟁(김대중정부)에 이어 의대증원분쟁(윤석열정부)까지 의협은 여러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또한 의대증원 소란통에 PA(Physician Assistant) 관련 간호사법이 개정됐지만, 고참 간호사들은 의협의 지독한 직역이기주의에 대해 성토해 왔다. 의사 자체가 부재한 해외 저소득국의 의료소외지역에서는 간호사들이 긴급환자들에게 부득이하게 중대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고, 환자들은 이를 그나마 천행으로 여긴다. 하물며 의료선진국의 역량있는 간호사들이 제대로 역할하는 것은 환자는 물론이고 의사의 권리와 이익에도 부합한다.
“의사들도 잠재적으로, 미래의 환자집단에 속한다. 의사들의 가족과 친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의사의 존재이유는 자신은 물론이고 가족과 친지를 포함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이 언제라도 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취약성(vulnerability)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전문> 정부는 응급실위기대책 마련하고 의대증원 차질없이 추진하라
- 의사단체의 2025년 의대 증원 철회 요구는 재고할 가치 없어
- 민주당의 말바꾸기, 의대증원 정쟁화해 문재인정부 실패 반복하자는 것인가
- 국민의힘 한동훈대표는 증원철회주장 의사단체 설득방안 제시해야
- 정치권은 의사단체와의 타협 아닌 필수공공의료 확충방안 논의하라
의사단체와 정치권이 2025년 의대 증원 원점재검토를 주장하며 이미 결정된 정책을 흔들고 있다. 지난 6일 국민의힘은 정부와 함께 야당과 의료계에 “여·야·의·정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한동훈 당대표와 추경호 원내대표는 2026년도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합리적 방안을 찾자고 제안했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협의체 가동에 동의했다. 그러나 의사협회가 2025년 의대 증원 백지화 입장을 고수하자 민주당은 지난 여야 당대표 회담에서 합의한 2025년 증원 유지방안을 번복했다. 의사협회 주장에 편승해 의대 증원 문제를 정쟁화하려는 무책임한 행동으로 실망스럽다. 의대 증원 문제는 지난 민주당 정부에서 불법 행동 의사에 굴복해 실패한 정책이다. 당리당략을 위해 또다시 정책을 흔들어선 안된다.
최근 병원의 응급 의료인력 이탈로 인한 응급실 운영 차질이 연일 보도되고 명절을 앞두고 응급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자 당정이 대화 시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전공의 복귀는 필요하지만 불법 의사에 굴복해 의대 증원을 포기하거나 유예한다면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의대 증원 추진 전 국내 최대 병원에도 수술할 의사가 없어 간호사가 사망한 사건을 그새 잊은 것인가. 결국 부족한 필수의료 문제는 영원히 해결하기 어려워진다. 정부와 여당은 합리적 근거없는 의료계와 정치권의 무책임한 압력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
정치권도 무책임하게 의사들의 말만 옮길 것이 아니라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최근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정치권은 의대 증원 추진 유예와 규모 조정, 담당 관료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026년 증원 유예를 주장하고 여권의 몇몇 의원은 장차관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지만 현 상황을 타계할 구체적 대책이 아니다. 의대 증원을 비롯한 의료개혁이 구체화되지도 않았는데 의사들의 분풀이를 위해 정책 담당자를 문책한다면 현재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의 방향이 틀렸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야의정 협의체가 정치적 쇼가 아니라면 여전히 2025년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패키지 철회를 주장하는 의사단체를 어떻게 설득해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계획을 밝혀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의대 증원의 규모, 기간을 어떻게 분산할지, 지역 공공 필수의료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지까지 연결해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월에는 4~500명을, 최근엔 10년간 매년 1000명 증원을 주장했지만 이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책임있는 야당의 대표라면 대통령의 말꼬리를 잡아 비판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이 민주당의 공식적 대안인지, 대안이라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제시해야 한다. 경실련은 지역공공 필수의료 인력 확보에 대해서는 정부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당론법으로 정한 공공의대법을 국회에서 조속히 논의하고 처리할 것을 여러 차례 촉구한 바 있다. 자신의 역할과 책임은 방기한 채 정치적 목적으로 입장을 뒤집으며 의사에게 편승해 의대 증원을 흔들려 한다면 국민적 심판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한다.
최근 응급실 사태는 필수의료 붕괴를 개선하기 위한 의대 증원과정에서 전체 의사 중 7%에 해당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장기화되면서 증폭된 측면이 크다. 1차 및 2차 병원들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3차 병원도 중증환자 위주로 진료하면서 진료량이 줄었다. 응급의료와 배후 진료를 위한 일부 수술과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의료대란 또는 의료붕괴로 규정하는 것은 국민불안을 가중시켜 의료개혁의 속도만 늦출 뿐이고 이는 병원을 집단 이탈한 전공의들이 바라던 상황이다. 자신들의 집단행동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고 불편이 가중되는 상황임에도 환자를 책임져야 할 의사단체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의료공백 상황을 선전하고 있다. 이들에게 환자의 생명을 보호해야하는 직업 윤리와 책임은 찾아볼 수 없다. 기가 막히고 안타깝다. 그렇게 환자들을 생각한다면 조건없이 병원에 복귀하라.
명절을 앞두고 응급의료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고 있는 만큼 정부는 비상진료체계 운영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도 환자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최근 간호사법의 국회 통과로 PA 간호사의 진료 지원업무가 합법화되었다. 정부는 법시행 전이라도 응급실에 배치된 PA 간호사가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고, 상급종합병원의 외래진료 축소를 통해 해당 의료진의 업무 부담을 줄여 중증응급 환자 진료에 집중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 대부분의 의료진이 환자와 현장을 지키고 있는데 일부 전공의 이탈로 인한 공백을 의료대란이나 의료붕괴로 몰아서는 안된다. 일부 의사의 불법 집단행동이 더이상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무기가 되지 않도록 의료체계도 손 봐야 한다. 의사들의 집단행동과 감염병 유행 등 국가 재난상황에도 의료체계가 운영되려면 의대 증원을 조속히 추진하고 공공병원 인프라를 최소 30% 이상 확충하고 재정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끝.
2024년 9월 9일
경실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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