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전면휴진에 나선 서울대 의대교수진을 대표하는 강희경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전공의 및 교수)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을 내린 것이 사태악화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의사들의 기본권(자기결정권) 침해로 간주했다. 강 위원장은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이 한 번 먹힐 경우 군인, 소방관, 경찰 등 다른 직역에도 남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이 정상적으로 사직서가 수리됨으로써 해외취업 등 자신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 자체는 제자들의 안위와 미래를 생각하는 의대교수들의 인지상정으로 이해할 만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사직서 수리금지 명령에 대한 강 위원장의 비약적 논리는 국가와 사회에 치안 등 필수적인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직역 종사자들이 전공의나 의대교수처럼 집단사직을 ‘정치적 무기’로 남발하는 행태가 만연하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될 것이냐는 의문을 초래한다.
의사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 이전에 환자와의 관계에 기초한 ‘사회적 약속’을 담은 특별한 직업이며, 이에 따라 집단으로서 의사라는 계층의 사회적 책임은 개개인의 선의나 의지를 뛰어넘는 엄중한 사회적 윤리를 요구한다.
이와 관련해서 지난 3월 의대증원에 관한 연간 1004명씩 5년 증원 후 평가 및 조정을 제시했던 홍승봉 성균관대 의대교수는 집단휴진의 비윤리성에 대해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최근 설립된 ‘거점 뇌전증지원병원협의체’의 위원장을 맡은 홍 교수는 6월 16일 인터넷 의료전문지 ‘메디포뉴스’에 기고한 ‘의사단체 사직·휴진은 중증환자 사형선고와 다름없다’는 글에서 “2025년에 1509명 의대 증원 문제가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홍 교수는 18일 전국적 휴진에 봉착한 현실을 개탄하며 “의사가 부족하여서 환자가 죽는 것이지 의사가 너무 많다고 환자가 죽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고 일갈했다.
< 기고문 전문 >
2025년에 1509명 의대 증원 문제가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일까? 의사 사직과 휴직을 지지하는 분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10년 후에 1509명의 의사가 사회에 더 나온다면 그 때 전체 의사 15만명의 1%에 해당한다.
1% 의사 수가 늘어난다고 누가 죽거나 한국 의료가 망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사직, 휴직으로 환자가 죽는다면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정당화될 수 있을까. 그 환자는 나의 직계 가족이 아닐지 모르지만 친척의 친척일 수도 있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일 수도 있다.
하루에 젊은 중증 난치성 뇌전증 환자 1-2명씩 사망하고 있다. 그 원인은 30배 높은 돌연사 또는 뇌전증 발작으로 인한 사고사이다. 뇌전증 수술을 받으면 사망률이 1/3로 줄어들고, 10년 이상 장기 생존율이 50%에서 90%로 높아진다.
그런데 지금은 전공의 사직으로 유발된 마취 인력 부족으로 예정되었던 뇌전증 수술의 40%도 못하고 있다. 전국에서 뇌전증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은 단 7개뿐(서울 6개, 부산 1개)이다. 모두 전공의 사직으로 비슷한 형편이다. 대부분 뇌전증 수술이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됐다.
의사는 환자에게 전공의 사직으로 수술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 한마디밖에 하지 못한다. 아프리카 후진국들은 의사가 없거나 의료수준이 낮아서 사람을 살릴 수 없다. 많은 훌륭한 의사들은 아프리카, 라오스 등 의료후진국에 가서 봉사하고 많은 생명을 구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무엇인가? 아무 잘못도 없는, 국가와 의사가 지켜주어야 할 중증 환자들이 생명을 잃거나 위태롭게 되었다. 원인이 누구에게 있던지 간에 이것이 말이 되는가.
10년 후에 증가할 1%의 의사 수 때문에 지금 환자들이 죽게 내버려 두어도 된다는 말인가. 후배·동료 의사들의 결정이지만 의사로서 국민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의사 휴진을 지지하시는 일부 의대생 부모님들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10년 후 미래의 환자를 위하여 현재의 환자는 죽어도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또한, 자녀가 훌륭한 의사가 되길 바라신다면 의대생과 전공의에게 어떤 충고를 하셔야할지 고민해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린다. 내 아들·딸이 의대생·전공의라면 빨리 복귀하라고 설득에 설득을 하겠다.
의사 생활 중에 단 한명의 생명을 구한 경험은 그 의사 일생 동안 큰 힘이 된다. 10년 후에 의사가 1%(1509명) 늘어난다면 누가 죽는지 이것 때문에 한국의료가 어떻게 망하는 것인지 스스로 답하여 보시기 바란다. 의사가 부족하여서 환자가 죽는 것이지 의사가 너무 많다고 환자가 죽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10대, 20대, 30대 젊은 중증 뇌전증 환자들은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마취 인력 부족으로 수술장이 열리지 않아서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다. 수술 취소는 돌연사율이 30-50배 높은 이들에게는 사형선고와 같다. 의사로서 아들, 딸과 같은 내 환자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의사는 사회의 등불이 되어야 한다. 각 전문과 의사들은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그들 본연의 의사로서의 책임과 사명을 지켜야 한다.
10년 후에 활동할 의사 1509명(1%)이 증가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현재 수십만명 중증 환자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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