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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 필수의료 정책 소신발언

twinkoreas studycamp 2024. 4. 10. 11:58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은 최근 진보성향 <시사IN>과의 인터뷰에서 의사들의 의대증원 반대의 핵심적 동기인 필수의료 패키지’ 등에 대해 임계점에 도달한 한국 보건의료에 전반적으로 시의적절한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주 원장은 정책 패키지에 비어 있는 부분이 있고 이해집단에서는 이견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부족하니까 백지화해라가 아니라 비어 있는 곳을 채워라고 비판적 지지를 할 만한 수준의, 나름 잘 짜인 구상이다.”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요약 및 재구성한 것이다.

 

1. 현황 및 문제점

 

돈 안되고 리스크 높은 필수의료 분야의 위기

 

불확실성이 높은고난도 환자들은 민간 의료시장에서는 잔여적인영역이다. 중증 외상, 심뇌혈관 질환(뇌출혈, 심근경색 등)처럼 언제 벌어질지 모르지만 생기면 응급이고 생명이 경각에 달리는 문제들이다. 흉부외과, 신경외과, 심장내과 같은 과목이 여기에 해당한다. 시간대가 맞아서 마침 그 과목 의사가 병원에 있으면 수술해서 살리고, 운 나쁘게 빈 시간에 걸리면 사망하고, 이런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 소위 5’라고 하는 대형 병원 중에 국립대인 서울대병원을 제외하면 고난도 외상 환자를 거의 보지 않는다.

 

이 빈틈을 일부 공공병원이 위태롭게 채워왔다.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서울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지역에서 가장 많은 외상 환자를 치료하고 살린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그런데 전체 병원의 5%밖에 안 되는 공공병원으로 이 틈을 메우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코로나19를 거치며 그나마 있던 공공병원의 역량도 소진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런 환자들(불확실성이 높은 고난도 환자들)을 치료하던 의사들이 병원을 다 떠났다. 국립중앙의료원만 해도 감염병 전담병원으로 동원된 몇 년 사이 심혈관계 시술을 하는 전문의가 나갔다.

 

세계에서 평가받던 건강보험의 효율성 하락 전환

 

국민건강보험이 재정측면에서 임계치에 도달했다. 한국의 GDP 대비 경상의료비 비율(9.7%)이 지난해에 드디어 OECD 평균(9.5%)을 넘어섰다. OECD 회원국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뜻이다. 한국은 의료비를 적게 쓰면서도 좋은 건강지표를 유지한다는 것이 그간의 인식이었다. 이제는 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몇 년 내에 지출총액이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차오를 것이다. 한국 의료가 세계적으로 상당한 효율을 자랑해왔다면 그렇지 못한 상황으로 넘어가고 있다.

 

2. 정부 정책의 성격과 평가

 

의대 증원은 일련의 정책구상에서 핵심전략 가운데 하나다. 시장중심적이고 친()의사적인 보수정권에서 2000명이라는 수치를 과감하게 제시했다. 이것은 전향적 시도라고 평가하고 싶다.

 

26일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발표에 앞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보건복지부는 몇 차례에 걸쳐 정책 시리즈를 내놓았다. 1019지역 완결적 필수의료 혁신 전략이란 이름으로 핵심 의제를 제시했고, 올해 21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서는 세부 실행 과제를 포괄적으로 담았다. 22일에는 제2차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그동안 보건의료계에서 논의해온 것을 진일보한 수준으로 망라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한국 보건의료의 발전 단계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개혁적 보건의료단체들과 달리, 제가 이번 정책들에 덜 비판적인 이유이다. 전체 패키지를 꼼꼼하게 살펴보면 방향이 틀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3. 필수의료 등 정책패키지에 대한 평가

 

의협이 반대하는 혼합진료 금지의 시의성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보상체계 공정성 제고부분에는 세부 정책 가운데 하나로 혼합진료 금지실손보험 개선이 제시되었다.

 

백내장 수술, 도수치료처럼 과잉 진료가 만연한 비중증 영역에 대해 급여(건강보험)와 비급여(손실보험) 진료를 동시에 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책이다.

 

손실보험의 도입으로 비급여 시장이 팽창하면서 병원에 있어야 할 필수의료 인력이 금전적 인센티브가 높은 개원가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가 없어서 병원에선 수술방을 돌리지 못하는데, 동네 골목마다 통증의학과 의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에게 돌아가는 보상을 아무리 높여줘도 손실보험에 기반을 둔 비급여 시장이 무한정 커진다면 이 격차를 해소할 수 없다는 판단이 이 정책 패키지에 깔려 있다.

 

혼합진료 금지의 실제 목적을 두고 여러 논쟁이 일지만, 적어도 현재 보건의료 구조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의사들이 가장 꺼려하는 지불제도 개편의 개혁성

 

이번 정책 패키지에 협력 네트워크 보상, 중증·필수 인프라 적자 사후보전 등 대안적 지불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가만히 뜯어보면 사실상 총액예산제에 가까운 성격을 갖는 정책까지 있다. 의사들이 가장 달가워하지 않는 변화가 지불제도(의료비 지급 방식) 개편이다. 지금의 행위별 수가제(의료 행위마다 비용을 지급하는 방식) 아래서는 필수의료 공백 해소, 의료비 상승 억제, 적정 진료 정착 등 보건의료의 문제를 풀 방법이 없으니 개혁적 성격이 다분한 정책도 정부가 더는 미뤄둘 수 없는 것이다.

 

4, 보완이 필요한 부분 : 공공의료 역량 강화 및 공공병원 증설

 

민간의료로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을 채우도록 공공의료를 키우는 방안이 없다. 전체 의료기관의 95%를 차지하는 시장의존형 의료 공급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그 안에서 고민하니까 미흡한 정책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간 의료시장은 한정된 자원을 선점하려고 경쟁하는 생존 환경 속에 있다. 필수의료 보장을 일부 보완할 수 있지만 민간 중심 공급 구조로는 안정적으로 제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시장 메커니즘과 무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공급자 구조가 보건의료 영역에 일정 비율 이상 자리 잡아야 한다.

 

공공병원 비율이 일본 18%, 미국 23%, 유럽은 평균 50% 이상 된다. 한국은 5%이다. 적어도 20%까지는 공공의료 규모가 확대돼야 한다.

 

공공의료 인프라를 강화하는 정책에는 세 가지가 포함돼야 한다. 첫 번째, 지방의료원 수 확대. 두 번째, 공공병원 기능 보강. 세 번째, 중진료권의 지역의료 거버넌스 권한 부여.

 

지역별 2차 공공병원의 증설

 

지역의료전달체계의 허리에 해당하는 2차 병원에 공공병원 비중이 매우 낮고, 있어도 상당히 허약하다. 절대 다수가 민간이 운영하는 전문병원, 종합병원이다. 이 허리급에 공공을 많이 넣어줘야 한다. 17개 대진료권 아래 다시 70개 중진료권으로 나뉜다. 공공에서 2차병원 역할을 하는 곳이 지방의료원인데 35개밖에 되지 않는다. 중진료권 70개마다 하나씩은 있어야 한다.

 

공중보건의(의대생 군복무)의 지역복무, 의대증원, 공공의대 설치

 

의무 복무를 강제하는 지역의사제가 병행되었다면 더 효과가 컸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2000명 증원의 대부분(82%)을 지역 의대에 배정하고 지역인재전형으로 60% 이상 선발하도록 한 지금 정책도 실효성을 발휘할 거라고 본다. 지역에서 성장해 지역 의과대학을 나오고 거기서 수련을 받으면 해당 지역에 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증명된다. 지역에 남을 의사 배출은 이 방식으로 어느 정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종합병원의 흉부외과, 신경외과 같은 필수과목 진료는 기본적으로 어렵고 위험한 영역이다. 별도의 양성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공공의대가 필요한 이유이다. 선발할 때부터 지역의료와 필수의료에 종사할 일정한 의무를 부여하되, 국가에서 의대 교육과 수련과정에 책임을 지고 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신설된 공공의대는 필수의료에 좀 더 적합하게 구성된 교육 커리큘럼 위에서 운영될 수 있다.

 

공공의대 부실화 및 2류화에 대한 반론

 

좋은 의사는 입학 성적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과 양질의 수련 과정으로 키워내는 것이다. 공공의대가 생기면 정말 작정하고최고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공공의대에서 배운 의사들은 믿을 수 있다라는 사회적 인식이 형성돼야 한다. 의료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진 학생들에게 적합한 분야이다. 그리고 현재 의대 입시 환경에서 상당한 경쟁을 뚫은 상위권 학생들이 현실적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