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단 전공의협의회장은 대통령과의 면담 직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고 토로했지만, 거꾸로 "박단의 전공의협의회는 미래가 없다"는 핀잔이 적지 않다.
박 회장은 지난해 전공의선거에서 단독 출마하면서 수련병원 전문의 중심의 진료체계 구축, 전공의 보호대책, 근무시간 및 임금개편, 회원 소통 강화 및 의견수립 방안, 국회 및 정부 등 대관업무 역량강화, 전공의 특별법 개정안 발의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연세대 공대 화공생명공학과를 졸업하고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을 거쳐 연세의료원 신촌 세브란스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재직 중에 전공의협회장이 된 박 회장은 '의약뉴스' 인터뷰에서 “필수의료는 힘들고 소송 등 분쟁에 대한 위험성이 높다”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피력했다.
그는 고용불안과 보상미비 등 불안한 상황에서는 전공의들이 필수의료를 선택하기 어렵다고 전하면서, 의대정원 증원을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의대증원을 필수의료 담당의사를 충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기존의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선호하는 환경을 조성하지 않고 그런 목적으로 증원하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따라서 기존의 의사들이 필수의료 쪽으로 유도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박 회장이 신청한 의대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은 앞서 각하된 3건과 같이 '당사자 적격성' 결여로 각하될 가능성이 유력하다. 원론적으로는 정치적 힘이 법의 원천이지만, 이번 의대증원 논란은 ‘울타리 안의 치킨게임’이기 때문에 법관들이 갑자기 전공의들의 가처분 신청을 수용할 근거나 동기는 희박하다.
그가 신청한 의대정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공의협의회장이 대한민국 의사규모에 대한 증원계획에 대해 자기피해를 논할 당사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의대증원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 3전 3패 ... 6전 6패 예고
정부의 의대증원에 대해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3전3패의 굴욕을 당하고 있다. 법원에 제기된 집행정지 신청은 총6건인데, 이 가운데 4월 4일까지 3건이 각하됐다.
법원의 핵심적인 판단은 의대증원에 대한 당사자가 대학의 장(총장)이라는 점이다. 집행정지를 신청한 교수 및 전공의, 의대생, 수험생 등은 당사자 적격성이 없다는 것이다.
신청 6건은 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 18명이 제기한 건, 전국 33개 의대 교수협의회 대표단이 제기한 건, 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 5명이 제기한 건, 4일 대통령 면담 후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는 글을 남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이 제기한 건, 전국 40개 의대가 제기한 건, 의전원 학생 1만 3천여명이 제기한 건을 말한다.
의대 교수·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 18명이 제기한 건은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김정중 부장판사)에서 당사자자 아니라는 이유로 각하됐다.
전국 33개 의대 교수협의회 대표단이 제기한 건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김준영 부장판사)에서 같은 취지로 각하됐다.
전공의·의대생·수험생 등 5명이 제기한 건도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박정대)에서 각하됐다. 남아 있는 3건은 박단 전공의협의회장의 건, 40개 의대의 건, 의전원 학생집단의 건이다.
행정법원이 의대증원에 관한 행정처분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했으므로 그 효력을 한시적으로 정지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법리적으로 당사자 문제가 가장 크지만, 상식적인 반문은 “당장 정지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흔히 학교의 3주체는 교사, 학생, 학부모라고 한다. 대학도 근본적인 차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교수, 학생, 학부모는 먼저 총장 및 대학 당국을 설득하여 집행정지 신청을 했어야 했다. 물론 대학 총장들과 재단 이사회 및 타 과의 학장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의문이지만.
총 6건 중 3전 3패이지만 아직도 3건이 남아 있으니, 1건이라도 반전이 생길 수 있다고 가정할 수 있을까? 당사자 적격성을 결여한 집행정지 신청은 소송의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치명적 흠결로 인해 각하를 면하고 본안 심리에 들어갈 가능성이 희박하다.
전면백지화 요구에 투영된 소아병적 아집
지난 2월 전공의협의회는 필수의료 정책패키지 및 의대증원 전면 백지화, 명령 전면철회 및 정부의 사과, 의료법 제59조 업무개시명령 전면폐지, 의사수급추계 기구 설치, 수련병원 전문의 인력채용 확대, 의료사고 법적 부담 완화, 주 80시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등을 대화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역사적으로 건강보험(의료보험) 확대, 한약분쟁, 의약분업 등에서 의사들의 주장대로만 했다면, 한국의 보건의료 수준은 이렇게 발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한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이 없었다면, 의료수준만 이렇게 발전할 리도 없다.
물론 고등교육의 과도한 사립 편중과 의대교육의 고비용(가계부담), 공공의료의 미약은 국가적 무능(후발 및 이식형 자본주의국가의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이지만, 국가와 사회가 국내 의료역량 강화를 위해 투자한 비용도 엄청나다. 우수한 의사집단은 개인적 노력과 집단적 협력의 소산이자, 사회적으로 형성된 결과다.
서울은 인구 1000명당 의사수가 3.62명으로 OECD 평균 3.7명와 차이가 없지만, 전국 평균(2.23명)은 큰 차이가 있다. 특히 경기도(1.80명)와 인천(1.89명)은 그러하다.
인구 1만명당 의대정원도 서울은 0.9명 수준이지만, 경기도(0.1명)와 인천(0.3명)은 큰 차이가 있다. 서울지역 의대의 평균정원은 103명이지만, 경기도와 인천은 42명 수준이다.
의대증원 문제는 의료서비스의 소비자이자 사회적 분업의 당사자들인 국민 다수의 상식적 판단과 요구를 고려하여 타협과 절충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전공의들이 ‘의대증원 전면 백지화’를 대화의 조건으로 제기한 것은 이러한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만약 정부가 의대증원 전면백지화를 비롯해 전공의들의 요구를 모두 수용한다면, 그대로 하면 되지 어떤 대화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란 무엇인가, 정부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A few enemies? A few good men !
그런데 박단 전공의 회장보다 한술 더 뜨는 임현택 의협 당선자다. 관료집단화된 의협의 차기회장이 박단의 대통령 면담을 겨냥한 듯 “A few enemies inside make me more difficult than a huge enemy outside.”라는 외마디 독설을 남긴 것은 사회적 대화에 미숙한 의사집단의 단면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의협은 대학 및 의과대, 교수와 학생, 수련병원과 봉직의 및 전공의, 개업의 등에서 의대증원에 관한 대표성을 조직하는데 총체적 무능을 드러내 산발적으로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남발하다 각하되는 굴욕을 자초했다. 의협 자체가 의대증원에 관한 대표성이 부재하다는 자의식을 결여했기 때문에 대정부 투쟁만을 강조하는 독단에 매몰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의협은 지방의 대학총장들부터 만나는 사회적 대화를 외면하고, 오로지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식으로 정치화됐다.
또한 전공의들을 보호해야 할 선배집단이 자신들도 풀지 못한 전공의 처우문제를 후배들의 자해적 방식을 부추겨 해결하려는 안이한 태도에 국민들은 더 실망하고 있다.
더우기 사회적 대화에 나서 합리적 절충방안을 논의해야 할 최고책임자가 그나마 대화에 응한 전공의 대표를 ‘내부의 적’으로 암시한다? 자신은 명언이라고 생각하지만, 타인이 망언으로 여기는 것이 개소리다. 그가 지목한 ‘A few enemies’는 의사들에게도 다양한 생각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혔던 ‘A few good doctors'를 지칭한 것이 아닌가?
인문학적 교양의 문제 : 사회적 분업 및 역할 분담
인간은 의식주의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생존한다. 농부도, 재봉사도, 목공도 타인의 생명과 건강에 기여하고 관여한다. 복잡해진 현대사회라고 해도 이러한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불확실성의 시대,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그러하다.
이를테면 가혹한 기온(고온 혹은 저온)과 전기 등 에너지 공급이 안되는 조건에서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고, 스스로 지키기도 어렵다.
요즘에 청진기 쓰는 의사는 많지 않지만 초음파 등 전기전자전파 기기 없이 진료할 수 있는 의사는 거의 없다. 그 많은 기기와 약제 및 시설장비는 누가 만드는가? 의료제도의 수혜는 비의료인만을 위한 것인가? 의사 본인과 가족, 친족 등 주변의 모든 사람들도 의료제도의 혜택을 받고 있다. 필수의료 수가문제는 좀더 개선해야 하지만, 수익의 부족이 모든 문제인 양 강변하는 것은 의료행위도 사회적 분업이라는 기본적 인식을 결여한 것이 아닌지 의문이다.
대한민국 의료수준이 세계적 반열에 오른 것이 후대의 노력으로만 이뤄진 것으로 생각하거나 스스로 의대생, 전공의, 전문의가 된 것이 오로지 자신의 탁월한 능력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여 상당한 규모로 의대증원이 이뤄지면 대한민국 의료수준이 오히려 낮아질 것이라고 확언하는 것은 '일종의 개소리'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미네소타 프로젝트에 의해 한국의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정예화 전략은 '불균형 발전전략'의 맥락에서 타당했을지 몰라도 그후 반세기 동안 청년인재의 블랙홀처럼 된 작금의 의대충원 구조는 27년 동안 증원을 일체 거부하면서 '한계효용의 법칙'에 봉착했는지 모른다.
"부동산(아파트)과 의사의 수요 및 공급에 관한 문제는 천민자본주의적 딜레마를 상징한다."
고결한 직분과 사회적 요구의 부조화
의사라는 직업 및 직분은 생명을 다루는 인술(仁術)의 주역이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존중과 존경을 받는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그렇지만 의사도 다른 직업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분업 및 역할 분담이라는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특정인이 의사를 하지 않으면, 또 다른 사람이 의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의사를 해야 하고, 누군가 소방대원을 하고, 누군가 특전사 장교를 하고, 누군가 엔지니어를 하는 사회적 분업에서 의사는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필수적이고, 중요한 분야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사회적 분업에서 갖는 중요성과 사회적 책임의 비중은 동전의 양면이다. 따라서 사회적 중요성에 부합하는 사회적 책임에서 이탈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분업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개선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다.
사회의 모든 집단이 이익집단적 성격을 갖기 때문에 현안에 따라서 정치화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정치화는 양날의 칼과 같아서 잘못 잡거나 지나치게 휘젓다 보면 스스로 다칠 수도 있다.
의대증원과 관련해서 의협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은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이 세 건이나 각하된 것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법원의 판단조차 외면하는 것은 죽음 앞에 만인이 평등하듯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 이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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