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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정 단국대 의대교수의 '사직할 수 없는 이유'

twinkoreas studycamp 2024. 3. 25. 22:44

서울대 의대 및 병원 교수 900명 이상이 참여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가량이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 의대교수 비대위는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일단 병원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직서 제출과 관련해 단국대 의대교수 비대위 총회에서 이미정 소아청소년과 교수가 소아암 환우를 놔두고 사직할 수 없다고 밝히자, 의사파업의 윤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유석 단국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가 청년의사사직을 망설이는 L교수님께라는 공개서한으로 이번 집단사직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나열하면서 특히 사제윤리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 교수가 사직을 망설이는 L교수의 답장이라는 공개서한을 기고했다. 이 교수가 밝힌 사직서 제출 불가의 이유는 '다생의(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 전공의)'에서 나타난 중증환자에 대한 의사로서 책임과 관련된 것이다. 하지만 이 교수는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장은 사직서를 제출하지 않더라도 내년 초에 사직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하 전문)

 

 

이미정 교수(단국대)

 

 

J 교수님께.

 

우선 저의 의견을 듣고 이렇게 글을 써주시니 큰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먼저, 제가 사직은 지금 불가능하고, 내년 2월에 가능하다고 한 의견에 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대학 업무 1년의 시작은 보통 3월이지만 우리 의대는 빠르면 1월 또는 2월입니다. 처음 1월에 업무를 맡았다면 본인이 그 업무를 수행할 능력이 되지 않는 특별한 상황 외에는 1년의 업무를 완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갑작스러운 사고 등과 같이 중간에 업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되는 나쁜 상황이 된 경우 외에는, 사직을 하려면 최소한 업무를 정리하고 인계할 사람이 있으면 인계를 해주고, 인계 받을 사람이 없으면 업무를 종결한 후에 그만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사직서를 제출하면 그런 기간이 보통 한 달이 주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학생과 전공의들은 나름대로 고민하여 3월에 새로운 업무를 맡기 전에 사직해 나갔습니다. 물론 나가기 전에 우리에게 입원, 중환자실, 응급실 환자를 인계했고, 사직서와 임용포기서도 제출하고 나갔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직할 때 해야 할 의사로서의 도리는 물론 행정적인 업무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나갔습니다.

 

그러면 저도 그런 사직의 도리를 다 하고 사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올 초에 20241년의 업무를 완료하겠다는 묵시적 동의하에 병원, 학교 업무를 시작했고,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내년 2월까지는 업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의 학생 휴학과 전공의의 사직이 천재지변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직은 학생들이 돌아올 가능성이 있으므로 올 6월에 예정된 본2 강의와 올 2학기 본3 실습수업을 완료할 책임이 제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교수로서 사직을 한다면 내년 2월말에야 가능하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기에 교수 사직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면 정말 한 달 후에는 병원과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 교수님께서도 '교수의 사직서 제출이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실제로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를 저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물론 가 아닌 분들도 꽤 있을 겁니다. 정말로 한 달 있다가 병원, 학교를 떠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한 달 후에 병원을 떠나실 수 없을 겁니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환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를 우리가 한다면 복지부, 정부에게 눈과 귀가 가려진 국민들은 “'의사 새x'들이 우리를 버리고 떠나더니 이제는 '의사 새x 애미애비'도 우리를 버리는구나라고 욕을 더 할 것입니다. 그러면 떠난 우리 아이들이 더 크게 욕을 먹습니다. 게다가 지금 우리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고 눈과 귀를 열었던 국민들도 다시 눈과 귀를 닫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정부는 의새를 이길 수 없을지 모르지만, 의새는 국민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픈 환자를 버려두고 병원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국민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지는 것입니다. 게다가 더 나쁜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도 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공의들이 사직할 때 우리에게 중환자, 응급환자를 포함한 필수의료를 맡기고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날 때 우리에게 인계를 했기 때문에의료대란'은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가 떠나면 정말로 '의료대란'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의사 파업은 모든 선진국에서 여러 번 발생했고,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의사도 노동자이므로 우리의 노동환경에 필수적인 것이 있다면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가장 극한 방법으로 '파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그 파업이 국민의 '생명권'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 진행해야 합니다. 물론 상식적인 복지부, 정부라면 그런 상황이 되기 전에 우리의 의견을 경청해 정책에 반영했겠지요.

 

'국민의 생명권' 유지와 같은 사회의 필수 서비스는 어떠한 경우에도 중단돼서는 안됩니다. 나라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본 조건은 '국민의 생명권'입니다. 이는 유럽인권협약에도 명확히 표현돼 있습니다. 그래서 의사가 파업을 할 경우에는 응급의료와 암수술 등의 필수 의료는 중단되지 않도록 조치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어떤 의사 파업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현재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을 지키면서 필수 의료를 제공하는 의사가 우리 교수들입니다. 우리마저 사직을 하면 필수의료를 제공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면 정말로 '의료 대란'이 일어날 것이고 변명의 여지없이 '의사'가 정말 '의새'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사직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제가 사직서를 제출한다면 제가 보던 환자에 대한 기록을 충실히 작성한 후 받아줄 병원과 의사를 확보해 모두 전원 보낸 후에 사직하겠습니다. 그전에는 비록 지치고 힘이 들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의사로서의 역할을 모두 다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수님께서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어떠한 문제가 생기더라도 자식을 감싸고 보호할 것입니다. 그것은 혈연관계이고 천륜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본인의 DNA를 남기고 싶은 본능이라 무어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하다못해 자식이 앞으로 많은 인명을 살상할 연쇄살인범이 될 것이 100% 명확하다 해도 내 자식이라면 감싸겠다고 말하는 어머니를 보았으니까요.

 

그러나,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가르치는 것이 스승입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면 명확하게 지적하고 때로는 꾸짖어서 제대로 가도록 가르치는 것이 스승입니다.

 

따라서 스승은 부모보다는 더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수님의 비유를 우리가 전공의, 학생을 가르치는 마음이 그 정도로 절절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우리가 그동안 단 한 번도 '보험수가 인상'이나 '처우개선'을 해 달라고 파업을 한 적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필수의료 보험수가를 원가보전 수준까지 인상'해 주고, 선한 의도로 진료했으나 나쁜 결과가 나왔을 때 '형사법적 책임을 면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로 의사가 노동자로서 '수가 인상''안정적 진료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를 한 것입니다.

 

하지만 복지부, 정부는 그 요구에 전혀 걸맞지 않게 갑자기 2,000명 의대 정원 증원으로 답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전공의, 학생들이 병원, 학교를 떠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비록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어떻게 했기에 이런 사태가 벌어지게 했느냐는 깊은 힐난의 눈빛을 보이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눈빛에서 '제대로 바로 잡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히 그들에게 '돌아와서 같이 이 사태를 바로 잡아보자'고 말하지 못합니다. 여태까지 그랬듯이 이 사태를 바로 잡지 못할테니까요.

 

어쩌면 다급해진 복지부, 정부가 바로 잡을 듯이 애쓰는 태도를 보일지도 모릅니다. 과거에도 여러 번 그랬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그 말과 당시의 태도를 믿고, '우리 같이 고쳐봅시다'라고 하며 복귀를 하면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갈테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들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기에 지금 사직서를 제출할 수 없습니다. 긴 답장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321L교수 드림.

 

 

다생의, "복귀희망 전공의 의대생 조리돌림" 

 

의대증원과 관련해서 의료계의 민주적 공론화를 주장하는 다생의(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23일 긴급성명에서 일부 의대가 복귀를 희망하거나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대면사과와 소명을 요구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이런 전체주의적인 조리돌림과 폭력적 강요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다생의는 강경행동에 동참하지 않는 구성원을 반역자로 간주하여 색출하는 분위기가 압도하는 현실에서 기명투표·불참자 조리돌림에 의한 휴학은 자율(자의)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경제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인구대비 의사수는 주요 선진국 수준에 크게 미달하고, 수도권과 지방의 의료격차는 더욱 크다. 이러한 객관적 현실에 기초해서 정부와의 대화에 적극적인 방재승 전국의대교수 비대위원장, 의대증원에 찬성했던 정운용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부산경남대표, 1004명 증원을 제안한 홍승봉 대한뇌전증센터학회장, 전문의 집단행동을 만류한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과 같은 의사 및 교수들의 '다른 생각'이 관료집단화된 의사협회에 의해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다생의는 지난 2월 결성취지문에서 의대생들의 현주소를 이렇게 술회했다. “의대생의 경우 집단 내에서 동맹휴학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색출하여 낙인찍고 있으며, 찬반의 문제 이전에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선배들의 지시를 기다려야만 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집단행동에 참여한 개개인은 더 나은 의료를 열망했을 지 모르나, 집단행동으로 어떤 사회적 가치나 발전적 요구사항을 요구할지의 논의는 부재했습니다.”

 

다생의는 정부와 의사의 파워게임으로 더 나은 의료라는 목표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대치상태가 속히 해소되고 의료진과 의대생이 병원과 학교로 복귀할 수 있도록 민주적 공론에 기초한 압도적 국민여론이 형성되기를 염원한다.

 

의료계도 사회를 닮는다. 양극화된 진영논리에 의한 적대적 양당정치의 극단적 대결구도가 다원적 세계관과 다원주의가 백안시하고 다당제의 출현을 억압하는 것처럼 의사협회, 의대, 병원에서 나타난 양상도 단결이란 미명 아래 자행된 강요와 침묵으로 자유로운 의견형성과 합리적 타결을 억압하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 사이에서 오죽하면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이란 말이 나오겠는가? 음주운전 살인사고로 물의를 빚은 당사자가 아직도 핵심간부로 활약하며 대한민국 정부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둥 개소리를 시전하는 의협 임원진의 맹성(猛省)이 필요하다.

 

 

 

< 다생의 참여자들의 글 >

 

저는 대학병원의 흉부외과 전공의입니다.

 

2월 초 정부의 의대 증원안 발표 후, 전공의들이 병원을 떠나고 일주일이 넘은 오늘도 저는 불안해하는 환자들을 다독이는 긴 라운딩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환자와 보호자는 의료진 부족으로 최선의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수술이 뒤로 미뤄질까봐 같은 질문을 반복하며 불안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진료를 축소하고 비상체제로 돌입한 병원의 긴축 공지에, 늘어난 업무와 당장 이번 달 월급을 걱정하는 병원 식구들의 어두운 목소리도 함께 들려옵니다.

 

세계의사회와 여러 전문가는 의사들이 단체 행동을 할 때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권고 사항을 명시했습니다.

 

첫째, 의사의 파업은 환자의 치료를 개선하기 위해 시도한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했을 때의 최후 수단이어야 합니다.

 

둘째, 사전에 사람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와 병원 내 다른 의료진들이 빈 자리에 대응할 수 있는 말미를 제공해야 합니다

 

셋째, 어떤 경우에도 입원환자나 응급환자가 버려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치료와 돌봄은 유지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간 고된 업무와 제도적 모순 속에서, 불안감만을 가졌던 우리는 파업이라는 극약처방 외의 대안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자신과 환자를 위해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바꾸자고 해야 할지도 논의하지 못했습니다.

 

흉부외과에는 의사가 부족합니다. 외과와 소아과에도 의사가 부족합니다. 아픈 환자들에게는 모든 종류의 의료가 필수지만, 창피하지만 필수과기피과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서울의 대학병원에는 의사와 환자가 몰리지만, 지역에는 사람이 너무 없어서 의료 사각지대가 만들어집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우리 전공의들도 못 먹고 못 자며 일하는 날이 많습니다. 필요한 곳에 의사들이 충분해야 환자들도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진료받을 수 있습니다. ‘기피과에도 충분한 인력이 있어야, 우리도 환자를 잘 치료하기 위한 술기와 지식을 더 잘 배울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저 숫자만 늘리고 보자는 윤석열 정권의 정책에 대해, 우리는 그 진의를 의심합니다. 정부가 제시한 대로 지역인재 선발 전형을 확대해 의대생을 뽑아 봐야, 그들은 지방의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큰 병원이나 인기과로 가버리면 그만입니다.

 

계약형 지역필수의사제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지방의 대학병원은 월급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지원자가 없었으니까요. 왜냐하면 비교적 편한 비급여 의료시장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료시장의 문제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이 커서 수요-공급의 시장 논리만으로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들을 늘리기 위해서는 좀 더 실효성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공공적 성격의 의료기관과 의과대학을 중심으로 정말 필수과와 지역에 근무할 수 있는 의료인을 뽑아야 합니다.

 

이와 함께 비급여 시장을 규제하여 필수의료 인력의 유출을 막고, 아픈 사람들이 주머니 사정과 관계없이 믿고 진료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을 구축하면 좋겠습니다.

 

병원에서 당직을 하며, 많은 분들에게 질문을 받습니다. 왜 여기에 남아있냐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냐고. 지금 정부의 정책이 아닌, 공공의료를 중심으로 필수과와 지역에 의사를 늘려 야 하지 않겠냐는 저의 주장에,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목소리를 보태주었습니다.

 

반대로, 그동안 나만 힘들게 일하는 줄 알고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병원의 주인공은 의사이지만, 현실의 병원은 간호사,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등 다양한 직군이 관계를 맺는 일터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의료공백으로 인한 업무 가중에도 목소리를 내기 어렵습니다.

 

의료 인력 부족을 전공의 노동력이나 전문 간호사를 이용해 임시 방편으로 덮으려고만 해왔던 정부와 병원 모두 규탄받아 마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와 병원에서 일하는 우리 모두가 보다 안전한 의료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는 병원 안의 더 많은 이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응급실에 갈 때마다 저는 늘 환자와 보호자들의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냐는 간절한 질문을 마주합니다. 큰 병에 걸리면 서울 큰 병원에 가야만 한다는 말은 상식처럼 통용됩니다. 응급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찾아다니다 발생하는 안타까운 사연은 뉴스의 단골 소재입니다.

 

우리는 의료 현실 속, 수많은 문제를 직, 간접적으로 경험했거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알지만 여러 이유로 논의되어오지 못한 의료 현장의 여러 문제를. 시민들이 어느 때보다도 뜨겁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료 정책, 의사 정원 논의의 바탕에는 내가 사는 이 곳에서, 나와 가족들이 좀 더 안전하게 잘 치료받고 싶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의사들의 단체 행동 대 강경한 정부의 대결 구도에서 빠져나와야만 보다 나은 논의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시민이 중심에 서고, 의료인 및 정부는 시민들을 도와 앞으로의 대안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으로 지금의 국면을 풀어나가기를 우리는 간절히 바랍니다.

 

2024. 02. 28

우리 모두를 위해 더 나은 의료환경을 바라는 어느 전공의

 

 

 

 

 

저는 비수도권 의과대학 본과생입니다.

 

개강 날짜가 지났지만, 의대생들은 학교에 가지 않고 있습니다. 휴학계를 제 손으로 제출한 저의 선택은, 사실 온전한 자의가 아니었습니다.

 

동기와 선후배들의 강경한 분위기 속에서, 휴학계 제출은 학생 대표가 망설이는 학생들을 개별적으로 설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의과대학에 다니는 제 친구들도 마찬가지 일을 겪었습니다.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휴학에 나선 학교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일 것입니다. 개인 사정으로 휴학을 할 수 없는 학생들까지도, 수업 거부로 이 집단행동에 동참하기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의대생들은 다른 의견을 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의대와 병원은 교수와 선배가 진로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좁고 닫힌 사회입니다. 의대생들은 저학년 때부터 동료들과만 어울리며 폐쇄적인 의대생, 의사집단의 세계관을 내면화합니다.

 

집단이고 사회라면 으레 있을 법한 다원성은 지워지고 잊힙니다. 지금도 많은 의대생들은 자발적으로 모임을 결성해, 의사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의료정책 관련 홍보물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 주장이 일방적이긴 해도, 전부가 거짓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 해도 의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는 우리는, 의료정책과 관련한 다양한 입장을 이해하고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가져야만 합니다. 이런 폐쇄적 환경 자체가 잘못된 것은 슬프지만 분명합니다.

 

지금 상황에 대한 모든 의대생들의 생각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정부 정책에 동의하지 않지만 지금 단체행동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가진 학생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표출되고 있는 것은, 의대협의 성명서와 동맹휴학으로만 대표되는 단일하고 평면적인 의견입니다.

 

주류 의견과 결을 달리하는 학생들은 의견을 내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 두려움은 스스로의 의견을 포기하고 집단의 논리에 순응하는 선택으로 이어집니다. 동기가 동료가 되고 학교가 직장이 되는 이 사회의 생리를 너무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저학년 때 집단과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을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고학년이 되어 집단과 다른 의견의 표출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집단의 구성원들은 모두가 동일한 의견을 가지는 것으로 서로를 간주합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저희도,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동료들과 솔직한 의견을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의대생의 대부분은 졸업 후 직접 환자를 돌보는 임상 의사가 됩니다. 그리고 임상의로서 환자를 잘 돌보기 위해서는, 각종 검사 결과와 자신의 의료 지식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비판적 사유를 억압하는 지금의 의대 문화는 예비 의료인들을 키우는 환경으로서도 결코 좋지 않은 것입니다.

 

질병은 사회적으로 구성됩니다. 그래서 의사가 환자 집단의 다원성을 이해하는 것은 질병의 치유와 건강권 보장에 있어 대단히 중요합니다. 의대생일 때 의대 내부의 다원성을 이해할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이 의사가 되어서 환자 집단의 다원성을 성숙하게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의대생들이 조금 더 다른 의견에 열린 태도로 접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의학 교육 역시 다양성에 대해 의대생들이 많은 고민을 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의 사태는 의과대학의 교육 환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의과대학이 어떤 공간이어야 하는지 더 많은 논의가 이루어져, 시민들과 소통하고 환자의 다원성을 이해할 수 있는 의사들을 많이 길러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