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제재 :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

경제제재(6) 미국 금융제재의 효과와 한계

twinkoreas studycamp 2021. 11. 14. 13:37

 

21세기 경제제재는 금융제재이고, 금융제재는 미국이 거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지구적 차원 경제제재는 곧 미국의 금융제재를 의미하게 되었다.

 

무역제재의 효과를 둘러싸고 견해가 엇갈리지만,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가 많다. 무역제재는 대상이 많고, 전지구적 세계화가 심화된 조건에서 육해공을 모두 차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제재의 핵심목표를 실현하지 못하고 대상국의 주민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강요한다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반면에 금융제재의 효과는 수긍하는 견해가 훨씬 많다.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발동한 경제제재 중에서 무역제재가 대상국의 행동에 변화를 초래한 경우는 25% 수준이지만, 금융제재는 36%에 달한다고 한다.

 

UN과 미/EU의 제재대상국 분포 (파이넨셜타임스)

 

21세기 초입에 발생한 9.11테러 이후 미국은 UN을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금융제재를 부과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 재무부가 주도하는 금융제재는 대상국(세력)에 상당한 타격을 주었고, 미국의 경제제재는 곧 금융제재를 의미하게 되었다. 물론 무역제재와 마찬가지로 금융제재도 대상국가의 주민들에게 직간접적인 피해가 전이되는 현상을 피할 길은 없다.

 

금융제재의 핵심효과는 ‘국외 적용성’에서 나타난다. 9.11테러의 충격은 미국 국내법의 국외 적용을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던 유럽 동맹국들의 목소리를 영원히 잠재우고 말았다. 이러한 국제적 환경변화에 힘입어 미국은 제제의 대상국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들을 압박하여 자산동결, 투자 및 원조의 중단,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배제, 심지어는 ‘달러사용의 금지’ 등을 통해서 제재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또한 몇몇 국가들에 대해서는 정교한 ‘맞춤형 제재’¹⁾와 CAATSA²⁾를 통해서 정밀폭격(surgical strike)과 같은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은 미국의 금융제재를 위반했다는 혐의를 받지 않으려고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자칫하면 기업활동에 치명적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제재대상자(국)가 기축통화인 달러를 사용하면 기축통화 발행국인 미국의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미국의 금융제재가 종말론적 단계에 도달했다는 비판도 있다.

 

포괄적, 제한적, 맞춤형(표적형) 무역제재 대상국 분포 (미 재무부)

 

 

러시아 제재 : 크림반도 침공에 대한 미국의 반격

 

만약 우크라이나공화국이 미국의 비핵화 프로그램에 응하지 않고 소량의 핵무기라고 보유했다면, 러시아연방이 크림반도를 군사적으로 강제병합할 수 있었을까?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은 우크라이나, 폴란드, 한반도와 같이 ‘허약한 완충국가의 비극’을 겪은 나라들에게 미국의 비핵화전략에 내포된 무기력과 무책임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이러한 시각을 의식해서 비군사적 방법으로라도 러시아에게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려고 했다. EU도 이 사건을 명백한 주권침해 및 침략행위로 규정하고 제재에 나섰고, 러시아를 유럽체제에 포용하려던 영국의 전향적 발상이 무산되었다. 여기에 조직적인 도핑사건이 드러나 러시아 선수단은 2022년까지 올림픽에서 국기와 국가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크림반도 사태와 도핑사건은 러시아의 국제적 신뢰를 크게 추락시켰다.

 

미국 대통령은 국제긴급경제권한법에 의한 긴급행정명령으로 러시아의 수출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에너지 분야를 제재하여 푸틴의 지정학(Putin's Geopoltics)에 일대 타격을 가하려고 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에 필요한 최신 기술의 제공을 금지하여 세일층 및 수심 152m 이상 해저의 유전개발에 필요한 기술 지원을 받지 못하게 했고, 글로벌 에너지기업인 엑슨 모빌은 철수했다. 미국은 사할린의 가스개발에 대해서도 제재를 확대했고, 러시아의 가즈프롬·로스네프트·루크오일 등 에너지 대기업과 국공영 은행에 대한 융자 및 달러결제를 금지시켰다.

 

우크라이나의 항변과 미국의 분노에도 러시아의 에너지개발 및 수출에 대한 제재는 지속가능성이 없었다. 독일을 비롯한 인접국가들은 러시아의 천연가스가 없이는 추운 겨울을 넘기는 것이 쉽지 않았고, 중국과 인도가 러시아의 에너지산업에 접근하는 것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점차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가스에 대한 미국의 지속적인 차단정책에 대해서 자국의 주권과 경제에 대한 침해라고 반발하였고, 미국은 러시아 에너지에 의존하는 유럽 국가들이야말로 ‘러시아의 인질’로 전락했다고 역정을 내기에 이르렀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는 긴축재정, 중국과의 협력, 독자적인 기술개발, 방대한 내수경제의 기반을 통해서 미국의 경제제재에 저항했다.

 

조선의 외화수입 및 유통의 연관국가 분포( 월스트리트저널)

 

미국은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조선의 핵무장에 대한 제재에서 중국 경제가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시진핑 체제를 눈에 가시처럼 여기게 되었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대중 접근법이 보다 근본적으로 적대화되었고,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를 비롯한 전략산업에 대한 대중 견제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제재는 러시아에게 적지 않은 타격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크라이나의 ‘허약한 완충국가의 울분’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지정학적 구조로 인해서 허약한 완충국가의 굴레에 빠진 국가는 오로지 자국의 무위(armed suasion)를 증진하여 타국의 군사적 개입 및 간섭을 사전적으로 예방하는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¹⁾맞춤형 제재(smart sanction) : 제재대상국의 수뇌부에 대한 제재에 집중하고 일반 국민의 생존과 관련된 물품의 수출입을 허용하는 것. 이라크에 대해서 석유수출을 허용하되, 수출대금을 UN의 특별계좌에 입금시켜서 식량 및 의약품 등 필수품에 한정하여 수입대금으로 쓸 수 있도록 한 석유·식량교환 프로그램(Oil for Food Programme)가 대표적이다.

 

²⁾CAATSA : 2017년 미 양원에서 압도적 지지로 제정된 ‘제재를 통한 미국의 적국에 대한 대응법(Countering America's Adversaries Through Sanctions Act)’은 러시아, 조선(DPRK), 이란에 대한 통합제재법이다. 이 법에 따라 조선의 모든 선박이 미국의 제재와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