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정부는 사건 발생 이후 3년 동안 WASP Network와의 관계를 부인하다가 2001년에 와서야 ‘5인’이 미국 정부가 아니라 마이애미 쿠바 망명단체를 상대로 테러방지에 투입된 기관원들이라고 시인하였다.
쿠바 정부의 태도가 이렇게 선회한 것은 자국의 관광지에 대한 테러사건들을 국제적으로 공론화하고, 국내에서 테러방지를 위해 희생된 영웅들로 부각된 요원들을 미국 현지의 재판에서나마 최대한 구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해 쿠바 정부는 유엔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마이애미 등에 자리잡은 반체제단체들에 의한 테러, 침공 등으로 3400여명이 희생됐다고 주장했다.
와스프 네트워크의 해체 : 총책 포함 대부분 체포
1998년 9월에 와스프 네트워크의 요원들은 대부분 체포되었다. 총책이었던 에르난데스(Gerardo Hernández)는 민간 비행기 격추와 관련해서 살인 모의혐의가 추가되었다.
2001년 12월에 에르난데스는 이중 종신형(two life terms)을 선고 받았고, 게레로와 라바니노는 종신형을 받았다. 페르난도는 19년을 받았고, 르네는 15년을 받았다. 또한 르네를 포함한 미국 태생 2명에 대해서는 석방 이후 활동 제한을 담은 보호관찰이 추가되었다.
2009년 연방 대법원 상고심에서 에르난데스와 르네의 형기는 최종 확정되었고, 게레로는 21년 10개월로 감형되었다. 라바니노는 30년으로 감형되었고, 페르난도는 17년 9개월로 조금 감형되었다.
와스프 네트워크는 FBI 요원들에게 카릴레스(Posada Carriles)에 대한 175쪽의 보고서를 제공하였지만, FBI는 카릴레스를 처벌하는 대신에 쿠바 스파이 조직을 적발하는데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바 당국은 카릴레스를 국제대회에 참가하고 귀국하던 펜싱 국가대표단 전원을 포함해서 탑승자 73명이 모두 사망한 ‘1976년 쿠바여객기 폭파사건’의 배후로 보고 있다. 카릴레스는 그 이후 노스 중령의 니카라과 콘트라 반군사건, 파나마의 카스트로 암살미수사건에도 연루된 것으로 의심을 받고 있으나, 본인은 이를 부인했다.
아바르카의 쿠바 압송
한편, 쿠바 정보요원들이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에 잠입하여 끈질게게 추적했던 아바르카(Francisco C. Abarca)는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와스프 네트워크가 해체되고 12년 후인 2010년 7월 베네수엘라 당국에 의해 체포돼 쿠바로 압송되었다. 그와 연관된 콰테말라 출신 폭파범 2명도 붙잡혔다. 아바나에 수감된 아바르카는 카릴레스(Posada Carilles)에게 고용돼 시한폭탄을 설치했다고 실토했다고 한다.
노벨상 수상자 8명, ‘쿠바 5인 구명운동’
원작과 영화에서 중심적 인물로 부각했던 미국 태생의 르네(René González)는 13년형을 받고 2011년 10월에 만기 출소하면서 3년간 보호관찰을 받게 되었다. 2013년 4월 르네는 부친상을 이유로 쿠바 방문을 요청하였고, 미 연방판사는 이를 허용함과 동시에 르네가 미국 국적을 포기하면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다. 이는 국적상실을 명분으로 보호관찰 3년을 면제하겠다는 것으로, 이로써 르네는 자유인이 되었다.
총책이었던 페르난도(Fernando González)는 2014년 2월 27일에 석방되었고, 나머지 세 명은 그해 12월 17일에 트루질로(Rolando S. Trujillo)로 알려진 미 정보원과 포로교환 형식으로 석방되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와 쿠바의 관계정상화 협상에 의한 결과였다. 그 해 4월에 쿠바와 미국의 평화를 위해 몸소 나섰던 '남미의 문호' 마르케스가 타계하였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데스몬드 투투 주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퀸터 그라스 등 8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이 미 검찰총장에게 쿠바 5인의 석방을 요구하는 서한에 서명하였다. 또한 영국 의원 110명이 쿠바 5인에 대한 선처를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미 검찰총장에게 보냈다.
2009년에 브라질 인권단체 ‘Torture Never Again’은 쿠바 5인에게 치코 멘데스 메달(Chico Mendes Medal)을 수여하였다. 치코 멘데스로 알려진 Francisco Alves Mendes Filho는 고무원료 채취 노동자, 노조지도자, 환경운동가로 아마존 우림지대 보존과 브라질 농민 및 원주민의 인권을 위해 싸우다가 1988년 목축업자에게 살해되었다.
쿠바 5인을 변호했던 가르부스(Martin Garbus)는 ‘North of Havana, The Untold Story of Dirty Politics, Secret Diplomacy, and the Trial of the Cuban Five’를 출간했고, 브라질 작가 모라이스(Fernando Morais)는 40회가 넘는 인터뷰와 양국의 문서에 기초하여 이 사건을 하나의 작품으로 재구성하였다.
반카스트로 단체들의 반론
미국의 자유쿠바센터(Center for a Free Cuba)는 2020년 6월 24일자 브리프(CubaBrief)에서 넷플릭스의 ‘The Wasp Network’가 1998년 일망타진된 쿠바 스파이 네트워크를 온정적으로 호도한 모라이스(Fernando Morais)의 ‘The Last Soldiers of the Cold War’에 기초한 영화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유쿠바센터는 ‘The WASP Network’ 혹은 ‘La Red Avispa’가 40명이 넘는 장교와 기관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이 중에서 10명은 체포되었고 4명은 탈출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1994년에 아바나 앞바다 6마일 해상에서 쿠바 기관원들이 예인선을 공격해서 망명하려던 민간인 37명이 사망한 사건을 상기시키고, 1년 후 현장조사에서 쿠바정부의 군함에 의해 예인선이 전복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자유쿠바센터는 마이애미의 ‘Brothers to the Rescue’라는 반카스트로 단체가 이 사건을 알리는 전단을 살포하기 시작하자 쿠바정부가 이 단체에 대한 보복을 기획했는데, 넷플릭스의 영화에서는 이러한 사정들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나아가서 와스프 네트워크가 미국의 군사시설을 표적으로 삼았으며, 무기와 폭발물을 밀수하고 민간인 살해에 연루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쿠바 스파이들이 여론분열 공작과 선거개입과 같은 다양한 간첩행위를 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 단체는 쿠바 스파이들이 미 남부사령부의 고위장교들과 수백명에 달하는 보카치카(Boca Chica) 해군기지의 장교들의 성명, 주소, 의료기록을 입수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런 걸 모아서 무엇을 계획하겠는가?”라고 반문하였다.
또한 와스프 네트워크의 와해 이후에도 펜타곤의 DIA에 침투한 쿠바의 고위급 스파이 애나 몬테스(Ana Belen Montes)는 9.11테러가 발생한 시점까지 건재했다는 점과 민간비행기 2대 격추사건 등으로 이중 종신형을 받은 에르난데스가 미국과 쿠바의 관계정상화로 오바마 대통령의 사면에 의해 풀려나서 쿠바 혁명방위위원회(CDR)의 고위직으로 승진했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 카터의 Open Arm Policy
카터 행정부는 쿠바에 대한 인도주의 정책의 일환으로 망명을 희망하는 쿠바인 13만명에 의 미국 이주를 허용하는 ‘Open Arm Policy’를 추진했다. 이에 대해서 CIA는 쿠바 정부가 위장 이주민을 송출할 것을 우려했고, 이주 희망자 중에서 4만여명은 정신질환자이거나 각종 범죄로 장기형을 받은 범죄자들이라고 경고했다. 집단 이주지역으로 선정된 아칸소주의 주지사였던 클린턴은 재선을 앞둔 시점에서 최대의 악재가 터졌다고 판단하고, 백악관에 하소연해서 수용인원을 2만명으로 감축했다.
□ 바이든 행정부는 오마바 정책으로 복귀 ?
5월 14일 블링컨(Antony Blinken) 미 국무장관은 이란, 조선(DPRK), 시리아, 베네수엘라, 쿠바 등 5개국이 미국의 반테러 노력에 전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국가라고 확인하는 문서에 서명하였다. 이는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즉각적으로 해제할 것을 촉구하는 가운데 나온 바이든 행정부의 첫번째 공식 입장이란 점에서 쿠바에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로드리게스(Bruno Rodriguez) 쿠바 외무장관은 이 결정에 대해서 트위터에 강한 유감을 표출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의 대쿠바 제재(243 종류)를 지속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고 힐난했다.
쿠바는 반카스트로 조직의 관광지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 FBI에 적극 협력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은 쿠바가 베네수엘라와 결탁해서 해외 테러를 방조하거나 지원하는 국가로 의심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쿠바정책은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과 베네수엘라가 미국에 각을 세우고, 쿠바가 베네수엘라와 공조를 천명하면서 바이든의 중국-베네수엘라-쿠바에 대한 접근은 트럼프와 결정적으로 달라지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 쿠바제재의 결과와 대북제재의 효과성 논란
미국의 쿠바제재는 반카스트로 단체들의 쿠바 관광지 테러와 ‘와스프 네트워크’와 같은 기이한 사건들을 초래한 온상이 되었고, 오랜 제재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기존 체제가 건재함에 따라 그 효과성 논란이 지속되었다.
지난 5월 21일 서촌포럼과 흥사단 도산통일연구소 연합학술회의에서 이상철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장은 대북제재가 장기화되고 만성화되면서 핵개발과 군사도발을 지속하는 등 대응력이 점증하는 ‘제재의 역설’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과 타협을 했던 사례에서 미국이 1년 이상 인내심을 발휘하였고, 쿠바는 교황까지 나서 중재에 나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황재준 심연북한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향후 UN의 대북제재는 ‘포괄적 제재’로 확대한 2016년 ‘유엔결의 2270호’ 이전의 ‘맞춤형 제재’ 수준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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