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제재 :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

경제제재(5) 세컨더리 보이콧의 원조 : 영국

twinkoreas studycamp 2021. 11. 12. 18:48

경제제재의 원조 : 아테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대항하는 도시국가연합에 가담하지 않는 군소 도시들의 교역을 차단한 것을 국가에 의한 경제제재의 시초, 즉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로마시대에 와서도 프랑스 지역에 대한 금은의 수출입 금지조치가 있었고, 중세의 종교전쟁에서는 신교와 구교의 쌍방 제재가 빈발했다.

 

고대에서 19세기까지의 제재는 나폴레옹의 대륙봉쇄와 같은 전쟁시기를 제외하고는 주로 제후의 봉토, 일국의 영토, 혹은 방대하지만 제국의 내지(內地) 안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제1차세계대전(1914~1918) 이후 영국과 미국에 의해서 국외 제재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제1차세계대전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으로서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제재가 본격화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세컨더리 보이콧의 원조 : 영국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국의 기업은 물론이고 제3국의 기업들까지 독일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유도하여 전면금수의 제재효과를 거두려고 했다. 그 방법은 영국의 기업들이 독일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들과 거래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세컨더리 보이콧(2차제재, 3자 제재)’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영국의 국내법에 의해서 영국의 기업에게 적용된 제재조치이지만, 실제 효력은 영국과 독일의 전쟁에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나라의 기업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국내법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만 국외의 기업에도 적용된 것이다. 이른바 국외 적용의 효과다.

 

영국이 개발한 새로운 제재방식에 대해서 중립과 불개입을 고수하던 미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로주의를 유지하던 미국은 각국의 주권과 기업의 자유로운 무역에 반한다는 이유로 제재의 국외적용을 반대했다. 그러나 미국의 참전 이후 영국이 전시중립국들을 제재하기 위해 개발한 방식들은 미국 재무부의 구슬 주머니가 되어 100여년 동안 무궁무진하게 진화하게 되었다.

 

 

세컨더리 보이콧 개념도 (namu wiki)

 

 

국외적용의 주도국가 : 미국

 

그 초석이 제1차 세계대전의 말기인 1917년에 제정된 적성국교역법(TWEA)이다. 미국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전시중립국의 기업이 독일의 기업과 교역하지 못하도록 제재하기 시작했다. ·영의 연합효과는 독일 무역총량의 80% 가량이 감소할 정도로 막대한 것이었다.

 

제재에 대한 미 행정부의 효능감은 제2차세계대전에서 더 강력한 조치들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독일·이탈리아의 기업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에 대해서 독일·이탈리아의 국적을 갖는 기업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거래가 발각된 기업들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로써 미국에서는 연방정부의 경제제재 조치를 어기면 반역행위, 반국가적 행위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금수(1941)을 거쳐 종전 이후에는 코콤(COCOM, Coordinating Committee for Multilateral Export Controls)을 통한 군사 및 전략물자의 금수에 집중하면서 1980년대까지 자유무역의 확산에 역점을 두었다.

 

 

시베리아 대자연을 가르는 가스 파이프

 

 

유럽의 반항 : 시베리아 가스파이프 증설 지원

 

오늘날에 글로벌 대기업으로 성장한 러시아의 가즈프롬이 유럽 전역에 진출하게 된 전환적 계기는 역설적으로 소연방에 대한 제재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체제의 말기현상이 심화되던 소연방은 경제난을 타개할 방안으로 천연가스 수출을 확대하려고 했지만, 해외수출을 위한 파이프라인 증설에 필요한 기술과 장비가 미비했다.

 

1982년에 시베리아 파이프라인을 증설하기 위해서 서유럽 국가들과 개나다, 일본이 관여하게 되었는데, 당시에 미국은 브레즈네프체제의 아프카니스탄 침공(1979)과 폴란드 그단스크 노조탄압(1980)에 대해서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었다.

 

(가즈프롬 홈페이지)

 

레이건 행정부는 자국의 수출관리법에 제3국이 미국산 기기 및 부품과 미국의 기술을 포함한 기기를 소연방에 수출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을 들어 서유럽과 일본이 파이프라인 관련 기기을 소연방에 수출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다.

 

이에 대해서 유럽 국가들은 미국 국내법의 국외의 기업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역공하면서, 오히려 해당 기업들의 수출계약 이행을 독려했다. 미국은 동맹국들의 예기치 않은 집단반발을 무마하기 위해서 수출에 관한 엄격한 관리를 조건으로 관련된 행정명령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미국의 동맹국들이 천연가스를 비롯한 부존자원에 대해 미국과 다른 차원의 관심을 갖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미·러와 심각한 이해충돌을 빚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했다.

 

실제로 지난 40여년 동안 독일은 가스 수입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가스를 무기로 삼아 협박하면 날카롭게 반응하면서도 미국의 간섭을 배격하면서 자국의 에너지 안정에 최우선의 가치를 두었다.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가스파이프 (가즈프롬 홈페이지)

 

 

유권 무죄 : UN 안보리 제재

 

미국은 중국, 러시아와 관계개선 이후에도 사안별로 제재를 구사하고 있다. 이는 북미수교 및 관계정상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제재의 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되지 않을뿐더러 제재해제의 대상과 시효가 영구적으로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과거에 미국과 소연방(Soviet Union) 중에서 한 나라도 반대하지 않아야 가능했던 UN 안보리의 제재는 아파르트 헤이트(흑백분리)로 전세계적 비난을 받았던 남아공 등에 국한되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소연방과 중국은 동유럽을 비롯한 사회주의 블록에 속한 국가들에 대한 UN 차원의 어떤 제재도 거부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하면서 UN 안보리와 총회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이라크, 리비아를 비롯해서 중동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한 제재안이 속속 가결되었다. 21세기에 와서는 탈레반, 알카에다, ISIS와 같은 초국적 테러단체 및 네트워크에 대한 복잡하고 정교한 제재조치들이 강구되었다. 유고연방 및 주변국의 내전사태와 관련된 제재를 제외한다면, UN의 제재는 유럽과 북미를 제외하고 아프리카, 중동, 남미, 아시아에 집중되었다.

 

1989년 중국의 텐안먼 사건에 대해서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반대로 UN 차원의 제재는 이뤄지지 않고, G7이 제재를 가한 적이 있다. 이들 국가는 중국과의 정상외교를 중단하고, 무기금수 및 세계은행 융자중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대해서도 UN 차원의 제재는 이뤄지지 않는 대신에 미국, EU, 일본이 연합해서 제재를 가했다. 최근에 미국은 중국, 이란, 조선(DPRK) 등에 대해서 독자적인 방식으로 다양한 제재와 규제를 부과하고 있다.

 

 

* 참고문헌 : 미국의 제재외교(스기타 히로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