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2월 26일 오후 쿠바 공군 전투기 2대가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고 플로리다 방면의 해상으로 발진했다. 짙은 회색의 미그-29와 미그-23에 탄 조종사들은 통제본부와 긴박한 교신을 시작했다.
“(오후 2시경)
통제본부 : 고도가 얼마인가?
미그-29 : 1700미터 상공이다. 세 대의 비행기를 관찰하고 있다. 두 대는 함께 비행하고, 한 대는 떨어져 있다.
미그-23 : 왼쪽을 살피고 있다, 북쪽에서 한 대가 오고 있다.
통제본부 : 고도가 얼마인가?
미그-13 : 200미터 상공이다.
통제본부 : 레이더를 켜라.
미그-29 : 켰다.
미그-23 : 켰다.
미그-29 : 표적이 보인다. 소형 비행기다.
미그-23 : 2000미터 상공으로 상승 중이다.
통제본부 : 비행기는 무슨 색인가?
미그-23 : 파란색과 흰 색이 칠해진 세스나 337이다. 낮게 비행하고 있다.
(오후 3시 20분경)
미그-29 : 목표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미그-23 : 승인을 요청한다.
통제본부 : 공격 승인.
미그-29 : 발사 준비.
통제본부 : 발사 승인.
미그-29 : 자~ 간다. 먹어라!
통제본부 : 발사했는가?
미그-29 : 빌어먹을. 명중했다!
미그-29 : 불알을 날려버렸다.
미그-23 : 거기서 대기하라! 어디로 떨어지는 지 확인해라.
미그-29 : 추락지점 표시.
미그-23 : 한 대는 끝났다.
미그-29 : 상승한다. 복귀하겠다.
통제본부 : 거기서 대기하라. 원을 그리면서.
미그-29 : 표적 위에서?
통제본부 : 그렇다.
통제본부 : 4000미터 상공으로 올라가라. 파괴된 표적 위에서 대기하라. 저속비행으로.
(오후 3시 26분경)
미그-29 : 또 다른 비행기 위에 있다.
통제본부 : 놓치지 마라.
미그-29 : 첫 번째 비행기가 격추된 곳에 있다.
통제본부 : 거기서 대기하라. 목표물 위에서.
통제본부 : 보이는가?
미그-29 : 목표를 확보했다.
통제본부 : 발사 승인.
미그-29 : 격추되었다! 조국 아니면 죽음을, 젠장할!"
(The Last Solders of the Cold War : The story of the Cuban Five, 116쪽~117쪽)
반쿠바 활동을 전개하는 마이애미 망명조직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쿠바 공군기들이 자신들의 띄운 소형 비행기를 공격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간혹 헬기에 둘러싸여 움직이지 못하고 연료가 떨어져서 쿠바에 강제착륙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설마 전투기가 미사일을 발사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마이애미에 침투한 공작원들에 의해서 반쿠바활동의 전모를 파악하게 된 쿠바 당국은 초강수를 두었다. 전투기에서 미사일 2대를 발사하여 반체제 전단을 살포하려던 소형 비행기 2대와 탑승자 4명을 참혹하게 파괴한 것이다.
원래의 계획은 반쿠바단체에 침투한 공작원 1명도 조종사로 포함했으나, 본부에서 빠지라는 신호를 받고 부상을 핑계로 비행을 포기하였다. 그는 제3국을 경유하여 아바나로 귀환해서 돌아온 망명자의 자격으로 반카스트로 단체들의 정체를 폭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쿠바의 마이애미 원정대 일부는 FBI의 정보원으로 둔갑해서 반쿠바단체의 테러활동을 미국 정부의 손으로 차단하려고 했으나, FBI는 정보를 축적하면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쿠바 정보국에서 보낸 스파이들을 추적하고 감시하는 것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쿠바 정부는 극렬해지는 반카스트로 단체들의 활동이 FBI에 의해서 제동이 걸리기를 바랬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자 미국과의 관계와 국제여론의 악화를 무릅쓰고 민간 비행기 격추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 사건 이후에도 카스트로는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서 테러활동을 차단해줄 것을 요구했고, 아바나를 방문한 FBI 요원들에게 마이애미 쿠바망명조직들의 아바나 등 관광지 테러에 관한 비밀자료들을 전달하였다.
이 사건이 일어나기 20년 전에는 쿠바 여객기가 공중에서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976년 10월 6일 Cubana de Aviación(쿠바항공) 455편(더글러스 DC-8)은 바르바도스(Barbados) 상공에서 시한폭탄 2발이 폭발하여 바다로 추락했다.
1968년에서 1971년까지 발생한 비행기 납치사건의 60%가 쿠바를 목적지로 한 것이었다. 납치범들은 정치적 망명을 이유로 비행기를 납치해서 쿠바로 향하곤 했고, 때론 기내에서 충돌이 발생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거꾸로 쿠바의 여객기가 반카스트로 조직의 공격대상이 된 것이다. 목표물이 된 비행기는 기니아-트리니다드 토바고-바르바도스-자마이카를 경유하여 아바나로 향하는 쿠바 국적기였고, 국제펜싱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쿠바 남녀대표단 24명과 아바나로 여행을 가려던 기니아 의대생 11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1976년 10월 6일 오후 5시 15분에 바르바도스 그랜틀리 아담스 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9분 후에 쿠바여객기의 기내에서 폭발물이 터졌다. 기장 페레즈(Wilfredo P. Pérez)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회항하려고 했지만, 기내에서 두 번째 폭발이 발생하였다. 페레즈는 공항 인근의 해변가에 운집한 사람들을 우려하여 활주로 불시착을 포기하고, 최대한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선회하였다. 기체는 공항에서 8km 정도 떨어진 바다로 추락하였고,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였다.
수사결과에 따르면 폭파범으로 체포된 루고와 리카르도는 쿠바출신 카릴레스(Luis Posada Carriles)와 보쉬(Orlando Bosch)에게 고용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2만5천 달러를 받고 C-4로 시한폭탄을 만들어서 1개는 치약튜브에 넣어 기내 화장실에 놔두고, 1개는 카메라에 넣어 좌석 밑에 놓고 바르바도스 공항에서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보쉬(Orlando Bosch)는 군용이든 상업용이든 쿠바 비행기는 모두 공격대상이라고 주장했다.
□ 14인의 스파이?
와스프 네트워크의 총 인원에 대해서는 안 드러난 요원들을 포함해서 최대 40여명에 달한다는 주장에서 10여명으로 보는 견해까지 다양하다. 작가 모라이스(Fernando Morais)에 따르면 14명(남 12명, 여 2명)이었다. 이 가운데 3명은 미국 태생이고, 나머지 11명은 쿠바 태생이었다. 또한 8명은 기혼(1명 이혼)이었고, 나머지 6명은 미혼이었다.
□ 바이든 행정부의 대쿠바 제재 완화 가능성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바마 정부에서 해제했던 경제제재를 재개하여 쿠바로의 여행과 투자 및 송금에 제동을 걸었다. 2021년 1월에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쿠바를 테러지원국으로 다시 지정하였다.
반면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쿠바와의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조만간 미국이 대쿠바 경제제재를 완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초에 러시(Bobby Rush) 등 민주당 하원의원 80명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트럼프 행정부의 대쿠바 제재를 해제하는 행정명령을 즉각 발동하라고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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