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의 핵공유협정이 가능할 것인가? 한국이 중견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미국이 중시하는 동아시아의 맹방으로 자리잡았지만, 미국의 핵전략에서 NATO와 같은 동반자 관계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과 영연방은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와 호주의 핵추진잠수함 프로젝트 등에서 프랑스를 배제하고 있다. 하물며 한국에게 핵공유와 핵잠수함 공급을 지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한국과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조선(DPRK)은 경제순위 118위의 저소득국가임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사회주의국가에서는 중국과 함께 핵무장 및 ICBM 개발한 유이한 국가가 되었다.
군사분야에서 중국과 조선의 급진전은 동북아와 한반도의 군사적 평형과 세력균형에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 최근에 하이튼(John Hyten) 미 합참 부의장은 조선을 위험과 실패를 감수하고 ICBM 개발에 성공한 국가라고 평가하면서,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이 미국을 따라잡는 단계에 접근했다고 경고했다.
하이튼 부의장은 중국의 미사일 기술이 5년 안에 게임체인저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미국과 동맹의 협력과 공동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군 수뇌부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한국의 핵공유 및 핵잠수함 도입에 대한 논의에서 유리한 정황이지만,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공식적 견해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물론 미 국방대 등에서는 한국과 일본에 비전략적 핵능력을 부여하는 ‘관리공유(custodian sharing)’ 방안을 제기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초하여 핵무기 정책에 대한 협의 및 정책결정이 이뤄지고, 비핵화를 고려하여 핵무기의 역외 보관과 한국의 실정에 맞는 구체적인 운용체계에 관한 대안을 마련하면 한·미의 핵 공유가 현실화될 수 있다.
현재의 핵우산을 낮은 수준의 핵 공유로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이러한 논의가 조선(DPRK)의 핵무력 고도화에 대응해서 좀더 높은 수준의 핵 공유로 격상하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주장한다. 갑자기 핵공격에 노출된 나라의 경천동지할 새로운 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조선이 대남 핵위협을 통해서 ‘위계적 남북관계(형과 아우)’를 의도한다고 의심하는 입장에서는 독자적인 핵개발의 대안으로 좀더 가시적인 핵공유는 당연한 조치라고 본다.
역외 보관에 의한 한국형 핵공유 논의 확산
야권에서 제기된 전술핵 재배치 방안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불가론, 윤석열 후보의 철회를 거쳐 사실상 폐기되었다. 하지만 핵공유는 NATO에서 실증되고 있는 사례라는 점에서 여전히 대안으로 모색되고 있다.
홍준표 후보는 외교대전환 공약에서 제1의 과제로 ‘미국과 핵공유협정 체결’을 명시했다.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핵공유협정 체결을 공약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대선이 4자구도로 전개될 경우에 중요한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나 미국의 반응은 일단 부정적이다. 최근 미국의 소리(VOA)는 ‘미국은 한국에 대한 전술핵 재배치를 배제한다’(US Rules Out Redeploying Tactical Nukes to South Korea, 10.24)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미 국무부는 한국의 야당 후보들이 제기하는 전술핵 재배치 혹은 핵무기 공유협정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램버트(Mark Lambert)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는 그런 정책을 제안하는 후보들(윤석열 홍준표 유승민)의 무지에 대한 놀라움을 드러냈다. 실제로 홍준표 후보가 핵무장을 한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대목은 핵무기의 역할을 감소시키려고 하는 오바마~바이든 행정부의 목표와 상충한다.
NATO 핵공유의 빛과 그림자
1954년 12월 NATO Council에서 핵공유(Nuclear Sharing)가 나토동맹의 핵심적 의제로 부상했고, 1962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NATO Council에서 미국의 유연대응(fleible response) 전략이 논의되었다.
회원국들은 미국의 전략을 지지하면서도 일방주의적 성향에 불신을 드러내면서 핵무기 배치 및 사용에 관한 동맹국의 참여, 핵무기 배치 및 사용에 대한 최종 결정권자, 핵무기 사용의 승인 결정에 대한 감독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놓고 여러 방안을 논의하였다.
1966년 맥나마라(Robert S. McNamara) 미 국방장관이 주재한 장관특별위원회에서 NPG(Nuclear Planning Group)를 수립하기로 했다. 당시 28개 회원국 중에서 독자적 핵독트린을 고수한 프랑스는 제외되었다.
NATO의 전술핵은 B61 bomb으로 국한하고 미 탄약지원대대(MUNSS)의 관리 및 통제를 받는다. 평소에 해당국은 핵무기에 접근할 수 없고, 유사시에 운반 및 투발만 담당한다. 또한 그 수단은 해당국의 공군이 보유한 F-16 혹은 Torando로 제한한다. 이러한 운용체계는 나토의 핵이 전적으로 미 공군에 의해서 관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토의 전술핵 사용절차는 미 대통령과 국무장관·국방장관으로 구성된 국가군사회의(NMA)에서 유럽의 미 탄약지원대대로 긴급행동메시지(EAM)를 발신하면서 시작된다. 탄약지원대대는 메시지의 진본을 확인하고 핵폭탄에 부착된 무기활성화승인 코드(permissive action link code)를 입력해서 나토 회원국의 공군에게 인계한다. 최종적으로 회원국의 공군기가 핵폭탄을 장착하고 발진하게 된다.
전폭기의 이동 중에 핵폭탄 발사계획이 취소되거나 유보 혹은 변경될 수 있다. 핵전쟁의 긴박한 순간에 전폭기에 의한 핵공격은 접근성, 유연성, 가역성이 뛰어나다. 나토회원국들이 대서양 너머의 중·장거리 미사일에 의한 핵우산보다 더 선호하는 이유다. 동시에 미국이 지향하는 신중한 핵태세에도 부합한다.
NATO 홈페이지에는 “미국은 유럽에 배치된 핵무기의 절대적인 통제와 보관을 유지한다”고 규정했다. B-61에 부착된 무기활성화승인(PAL) 코드는 백악관에서 송신하는 긴급행동메시지(EAM)가 없으면 활성화할 수 없다. 그러나 NATO는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그 사용도 결정할 수 없는 조건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그 사용에 관여하는 핵공유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2021년 현재 100기 정도로 알려진 미-NATO의 ‘공유 핵무기’는 벨기에(Kleine Brogel), 독일(Büchel Air Base), 이탈리아(Aviano and Ghedi Air Bases), 네덜란드(Volkel Air Base), 터키(Incirlik)에 소재한 6개 기지에 분산돼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NATO와 형식적으로 핵동맹을 유지하면서 독자적인 핵전략을 운용하고 있다.
NATO의 핵공유는 미국의 공군력에 의존하고 미국의 결정에 좌우된다는 점에서 일반적 의미의 공유가 아니다.
첫째, 핵무기의 파괴력은 전술핵(B61 시리즈) 수준이다. 둘째, 핵무기고의 은폐성과 생존력은 미국의 공군기와 미사일 방어체계에 의해서 보장한다. 셋째, 투발수단은 ICBM을 비롯한 중대형 미사일이 아니라 전폭기·전투기에 탑재되는 공대지 미사일이다. 넷째, F-16(F-35) 등에 탑재된 미사일을 통한 핵공격은 공군기의 발진 이후에도 보류 및 철회가 용이하다.
과거에는 그리스·캐나다 등에서 나이키-헤라클레스 미사일 등에 지대지 미사일에 핵무기를 탑재했지만, 1990년대 이후 핵위협 감소 및 핵무기 감축 노력의 일환으로 NATO의 핵공유는 전투기에 탑재하는 공대지 미사일로 단일화되었다.
일부 NATO 회원국과 비동맹 국가들에서는 이러한 핵공유가 핵확산금지조약(NPT)의 1, 2조를 위반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또한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핵개발비용의 부담(60%)과 핵무기의 이전(4~5기)를 내용으로 한 핵공유 밀약을 맺었다는 주장도 있다.
근본적으로 나토의 핵공유는 NPT체제를 논의하는 단계에서도 비밀리에 추진되었다는 점에서 ‘핵확산금지의 회색지대’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공개적으로 한·미의 핵공유협정을 떠드는 것은 ‘핵사다리 치우기’의 역사에 대한 무지이자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하지만 북의 핵위협이 가열될수록 남의 핵공유 논의는 가열될 수밖에 없다.
1949년의 나토 창설에서 미국은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전략적 폭격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고 무기종류에 예외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함으로써 핵우산을 펼쳤다. 이에 따라 한국전쟁 휴전(1953년) 이후에 키신저가 강조했던 것처럼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전술핵이 유럽 일대와 한반도 및 주변에 무더기로 배치되었다.
1966년부터 핵계획그룹(NPG)에서 핵무기 운용에 관한 의사결정 및 정보공유, 핵전략에 대한 조율이 이뤄졌다. 여기서 유사시에 핵공격의 목표, 순서, 규모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고, 이에 기초해서 회원국들의 전술핵 인수 및 장착에서 발진 및 발사까지 모의훈련을 했다. 만약 한미 핵공유협정이 체결되면 이러한 과정을 진행해야 하는데, 북측은 기존의 한미합동군사훈련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로 반발할 개연성이 있다.
한국형 핵공유의 가망성
19대 국회의 북핵외교안보특별위원회에서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은 한미 핵공유 협정은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최적의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조태용 전 외교부차관도 핵우산의 작동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나토식 핵공유협정에 관한 검토는 시의적절하다고 주장했다.
백승주의원(자유한국당)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의 고도화에 비해서 핵우산으로는 불안하기 때문에 핵공유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김중로의원(국민의당)은 미국에만 의존하는 핵공유보다 독자적인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신범철 아산연수원 센터장은 평시에 핵공유협정을 유지하면서 데프콘-1의 상황이 오면 미 본토의 전술핵을 한국의 공군기에 장착하는 방식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NATO식 핵공유협정과 전술핵 재배치는 서로 연관된 문제인데, 전술핵을 배치하지 않고 핵을 공유할 수 있는 것처럼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미군기지에 전술핵을 반입하더라도 NPT 위반 논란과 주변국과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양국의 핵공유협정에서 ‘유사시’에 대한 명확한 정의에 기초해서 지리적으로 미 본토보다 훨씬 가까운 괌 공군기지 등에 보관한 전술핵을 유사시에 한국의 전투기로 국내에 반입하는 한국형 모델을 강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결론적으로 핵공유에 관한 논의는 근본적으로 한반도 및 동북아의 비핵지대화에 관한 장기적 비전과 결부되어야 하며, 핵공유는 실제적 사용이 아니라 비핵화협상의 평화적 이행을 위한 과도적·완충적 압력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점에서 독자적 핵개발에 의한 핵무장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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