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핵 사다리 치우기

핵 사다리 치우기(3) : 저위력 핵무기의 음울한 탄생

twinkoreas studycamp 2021. 5. 29. 16:40

“모든 유형의 위협에 맞게 억지할 수 있는 만능 사이즈는 없다.”(There is no one size fits all for deterrence).

 

아무리 급해도 모기 잡는데 소 잡는 칼을 휘두를 수는 없다. 핵무기에 의한 전쟁 억지력은 전후 70년이 넘게 장기평화를 가능하게 했지만, 전략핵과 전술핵은 국지적이고 미묘한 전쟁에서 쓸모가 없었다.

 

SLBM(잠대지 미사일) 발사장면(U.S. NAVY)
오하이오급 잠수함 : 테네시함

 

일찍이 키신저(Henry A. Kissinger)는 상호파괴의 비합리성과 도덕적 부담으로 인해 핵보유국 간의 확증파괴 위협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employable)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비판하고, 미국 전략핵의 대적 위협능력을 의심하였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전쟁, 양안위기(대만해협 분쟁), 베트남전쟁에서 핵 위협을 가했지만 실제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젠하워를 비롯한 미국 지도부는 핵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전쟁을 늦게나마 멈출 수 있었다고 평가하였다.

 

1950년 이후 핵시대의 특징(Nuclear Posture Review 2018)

 

막대한 파괴력의 핵무기이지만 실제로 사용하기 어렵다는 딜레마는 전략무기로서 가져야 할 실질적 위협능력에 대한 회의를 초래하였고, 1950년대 이후 미국은 다종다양한 전술핵을 개발하였다.

 

각종 미사일 탑재용 전술핵탄두를 비롯해서 핵지뢰, 핵배낭, 핵대포 등 이동 가능한 소형 핵무기들이 개발되면서 1950년대 말~1990년대 초까지 한국에만 1천기 이상의 전술핵이 배치되었고 서유럽에는 수천기의 전술핵이 배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소연방(Soviet Union)과 동유럽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탈냉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군사적 유용성이 급격히 퇴조하였다. 또한 핵무기 감축 합의에 따라 다량의 전술핵이 철수 및 폐기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2010년대 중반까지 이어져 오마바 대통령은 ‘핵 없는 세상’(프라하 선언)을 천명하기에 이르렀다.

 

 

저위력 핵탄두의 음울한 탄생

 

이란 미사일 발사시험(이란 국방부)

 

그런데 중국의 군사적 굴기(rising), 러시아의 귀환(comeback), 조선의 도전(challenge), 이란의 핵개발 복귀(return) 등으로 21세기 핵 질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였다.

 

미국은 기존 핵전략에서 맞춤 억지(Tailored Deterrence)와 유연성(Flexible Capabilities)을 보완하는 과정에서 ‘사용 가능한’ 저위력(저강도) 핵무기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 2월 미 행정부는 ‘핵태세 검토 보고서(Nuclear Posture Review)’에서 사용 가능하고 유연한 핵능력을 담보할 수 있는 저위력(low-yield) 핵무기의 개발을 선언했다.

 

기존의 핵무기는 대량살상에 따르는 정치적·군사적 부담으로 사용이 사실상 금기시(nuclear taboo) 되어왔지만 저위력 핵무기는 제한된 핵 사용과 정밀성을 기반으로 유사시 적의 수뇌부와 군사시설에 대한 외과적 수술(surgical strike)을 가능케 하여 핵을 정말 “사용”하겠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또한, 파괴력의 규모에서 기존의 전술핵무기보다는 약하지만, 낙진이나 대규모 살상 없이 사용될 수 있어서 오히려 실질적인 2차 보복의 신뢰성을 확대시킬 수 있다.1)

 

저위력 핵탄두의 탄생은 미국과 동맹국의 전쟁 억지력과 핵위협 능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어떤 규모에서든 핵폭탄이 작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은 이중적 의미가 있다.

 

2017년에 조선(DPRK)과 심각한 말폭탄을 주고 받았던 트럼프 행정부는 일면 대화를 전개하면서도 즉각적으로 저위력 핵무기를 개발하고 배치했다. 저위력 핵탄두가 등장하는 배경에 한반도 핵질서의 변화가 적잖이 작용했다는 점에서 신형 소형 핵폭탄의 탄생은 핵전쟁을 우려하는 한국인들에게 ‘음울한 진화(dismal progress)’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최소 0.3kt '지하관통형' 중력폭탄 B61-12, 어디에 쓰일 물건인가?

 

일찍이 마오쩌둥은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에도 불구하고 실제 사용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쓰지도 못할 물건’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최소 0.3kt까지 감축한 중력폭탄으로서 소형 핵무기의 추구는 억지력의 보완이라는 측면과 함께 사용 가능성을 실질화하려는 시도이다.

 

(Hans Kristensen, B61-12 : Contract Signed for Improving Precision of Nuclear Bomb, FAS, 2012.11.28)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에 5~7kt 수준의 W76-2 Trident-II(SLBM)를 실전배치했고, 좀더 가용성을 높이기 위해 폭발력을 최소 0.3kt까지 감축한 B61-12 중력폭탄을 2022년까지 개발할 계획이었다. 또한 장기적으로 토마호크 순항미사일(SLCM)에 탑재할 저위력 핵탄두도 추진하려고 했다.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자 펠로시 미 하원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 사용권한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했던 민주당과 바이든 대통령이 저위력 핵무기 프로그램을 어느 수준까지 이어갈지는 불분명하다. 하지만 국제정세의 기류가 급격하게 호전되지 않는 한 기존 흐름이 계속될 개연성이 있다.

 

미국은 비핵 전력이 강대국의 관계에서 충분한 억지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에 동맹국과 우호국을 안심시키기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해당 국가들에게 자국의 확장억지전략(핵우산)이 필요하고, 이러한 전략이 세계의 핵 비확산에도 긴요하다고 간주한다. 미국은 핵 억지력이 지난 세기에 자국과 우방들을 지켜주었다고 믿는다. 만약 핵 억지력이 없었다면 자국과 우방은 적대국의 치명적 비핵 전력에 의한 위협과 공격에 노출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정치질서의 근본적 변환’(fundamental transformation of the world political order)이 이뤄지기 전에는 핵무기가 전쟁방지와 국가수호에 필수적이라고 규정하였다.2)

 

 

전술핵보다 작지만 두드러진 ‘전략적 특성’

 

저위력 핵무기는 전략핵과 전술핵보다 작은 규모이지만, 투발수단에 의한 작전범위 및 예상목표를 고려하면 전략적 특성과 전술적 특성이 혼재된 것이다. 2019년에 저위력 핵무기를 탑재한 오하이오급 잠수함 USS 테네시(SSBN-734)가 대서양에서 작전을 전개한 것으로 봐서는 폭발력이 작아진 핵폭탄이라도 전술핵의 범위를 벗어난 전략적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저위력 핵탄두는 중장거리 잠대지 미사일이나 전략폭격기에 의해서 타격범위를 전 세계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ICBN(전략핵)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저위력 핵무기는 기존의 전략핵과 전술핵에 비해서 인명피해 규모와 방사능 낙진 범위를 크게 줄여서 실제 사용 가능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또한 향후 저위력 핵무기의 개발방향이 지하기지 및 시설을 타격하는 벙커버스터(Bunker buster), 어스피네트레이터(Earth Penetrator)라는 점은 촘촘한 대공망과 광범한 지하요새로 핵 보복능력을 보존하려는 중·러·조에 새로운 도전이다.

 

리버(Keir A. Lieber) 조지타운대 교수와 프레스(Daryl G. Press) 다트머스대 교수는 미국이 조선의 목표물 5곳을 파괴하려고 Trident-II로 475kt의 전략핵 10발을 투하하면 200만~3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지만, 저위력 핵무기(B61-12) 20발을 투하하면 100명 미만의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3)

 

북핵의 등장 이후 한반도 핵전쟁의 가능성에 대해서 상이한 관점이 충돌하고 있다. 조선은 핵무력 완성 공포 이후 한반도는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의 메커니즘에 의해서 ‘공포의 균형’에 기초한 전쟁 억지력이 강화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조선의 핵무력 완성으로 미국의 핵 공격 가능성이 희박해짐에 따라 ‘악마의 균형’이 이뤄지는 역설을 초래했다고 보는 견해와 맥락을 같이 한다. "A bomb is created, A balance is creaded." 월츠(Kenneth Waltz)를 위시한 방어적 현실주의의 관점과 상통한다.

 

반면에 재래식 무기의 첨단화와 저위력 핵무기와 같은 새로운 핵전력을 강조하는 견해는 언제든지 핵 전쟁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전제에 기초하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핵 대치가 세력균형과 평화를 담보한다는 가설을 불신하는 미어셰이머(John Mearsheimer) 등의 공격적 현실주의 관점과 같다.

 

후자의 견해에 비추어 저위력 핵무기의 등장은 한반도 평화에 새롭고 근본적인 도전이 될 소지가 있다. 최근 새로운 핵탄두의 개발에 나선 미국과 다양한 투발체계를 시험하고 있는 조선, 그리고 재래식 무기의 첨단화에 집중하는 한국과 일본의 군비증강은 이러한 우려를 자극한다.

 

(표 : 조비연,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와 한반도에서의 확장억제전략 연구, 17쪽)

 

 

‘핵 사다리 치우기’의 종말 : 제2 핵시대의 예고

 

미국은 자국의 핵무기체계가 점차 노후화되었고 후발국들의 투발체계에 대한 새로운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Nuclear Posture Review 2018)

 

오바마가 임기 말에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하고 핵감축을 선도할 것을 선언한 것처럼 한반도에서도 핵보유 당사국들이 상대를 핵전쟁의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핵동결, 핵감축, 비핵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관점이 있다.

 

이러한 시각은 “적은 인식되고 만들어진다”는 웬트(Alexander Wendt) 등의 구성주의에 부합한다. 조선의 핵 포기론과 맥락을 같이하지만 조선체제와 한반도 지정학의 규정성을 간과한 것이다. “적은 경험되고 기억되어진다.”

 

80여년에 달하는 핵 경쟁은 ‘핵 사다리 치우기’를 통해서 핵보유국을 9개국(조선 포함)으로 제한하고 핵무기를 점진적으로 전파하는 수준에 그치게 했지만, 최근 저위력 핵무기의 탄생을 계기로 하여 ‘제2의 핵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점증하고 있다.

 

‘핵 균형’이 강대국 사이의 전면전을 억지하면서 (무수한 국지전, 대리전, 내전에도 불구하고) 큰 틀에서 장기평화에 기여한 측면이 있지만, 그 유효성에 의문이 시작된 것은 음울한 징조가 아닐 수 없다.

 

 

1) 조비연,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와 한반도에서의 확장억제전략 연구(KIDA 2021.2), 8쪽

2) Nuclear Posture Review 2018, 17~18쪽

3) Keir A Lieber and Daryl G. Press, The New Era of Counterforce : Technological Change and the Future of Nuclear Deterrence, International Security(Vol. 41, No. 4, 201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