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핵 사다리 치우기

핵 사다리 치우기(1) : 후발국들의 결기

twinkoreas studycamp 2021. 5. 20. 21:50

 

 

파키스탄의 핵 개발에 대해서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 예기치 않았던 핵 확산 징후에 미국은 파키스탄을 겨냥하여 “석기시대로 돌아가게 하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당시 파키스탄 정부는 “우리 핵을 없애려면 인도의 핵도 없애라”고 항변했지만 미국의 강력한 압박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1965년 알리 부토(Zulfikar Ali Bhutto) 파키스탄 외무장관은 인도가 핵무장을 하면 파키스탄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입장을 이렇게 밝혔다.

 

 

알리 부토 전 파키스탄 외무장관, 대통령 (위키피아)

 

“파키스탄은 천년 동안 싸우고 또 싸웠다. 풀을 뜯어 먹거나 굶더라도 우리는 우리의 것을 가질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나중에 또 석기시대를 거론하였다. 2001년 9.11 사태 이후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했을 때 파키스탄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2006년 9월 무사랴프(Pervez Musharraf) 파키스탄 대통령은 미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 미 국무부 차관보가 파키스탄 정보국장에게 “석기시대로 돌아갈 각오를 하라”고 협박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위키피아)

 

아미티지는 영국계 일본인 아내를 두었던 시볼드(William J. Sebald) 전 주일대사, 일본 태생 라이샤워(Edwin O. Reischauer) 전 주일대사와 함께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친일 성향의 미국 외교관료로 알려져 있다.

 

셋 중에서 그나마 역사학자였던 라이샤워는 한글의 우수성을 예찬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에 앞서 “한글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 쓰이고 있는 어떤 문자보다도 과학적인 체계의 글자”라는 말을 남겼다.

 

 

< 핵 개발 후발국들의 엇갈린 운명 >

구분 주요 경과 비축량
이스라엘 1968년 핵개발 추정(핵실험 생략) - 1980년대 중반 중성자탄개발 추정 80기 ~
300기
남아공화국 1970년대 핵개발 - 1993년 핵 포기 선언 -
인도 1974년 핵실험(중국의 핵보유에 대한 대응), 1998년 핵실험 5회 130기
파키스탄 1998년 핵실험(6회) 및 핵보유 선언(인도에 대한 대응) - 경제제재 및 압박 - 비핵화협상 : “신석기시대로 돌아가게 하겠다”(미) vs “우리 핵을 없애려면 인도의 핵도 없애라”(파) - 9.11테러 및 아프팍(Afpak) 전쟁 - 제재철회 및 경제지원 140기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
벨라루시
소비에트연방에서 분산배치 - 연방해체 및 독립 - 안전보장 및 비핵화 합의 - 폐기 및 반출 - 경제적 보상 -
리비아 1990년대 핵개발 추진 - 제재 및 압박 - 핵포기 선언 - 핵무기와 원심분리기 등 해체 및 반출 -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회고록에서 버터와 총 사이에서 조선처럼 명확하게 선택한 경우는 역사적으로 드물었다고 술회하였다.

 

2017년 9월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중국 샤먼에서 브릭스(BRICS) 정상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조선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하면 풀을 먹더라도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지난 70여년은 ‘핵 사다리’(Nuclear Ladder)를 치우려는 핵클럽(Nuclear Club)과 불청객(gate crasher)의 투쟁사였다.

 

UN 안보리 상임이사국(미·중·러·영·프)은 직접 전쟁을 하지 않고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핵클럽을 영구히 동결하기 위해서 ‘사다리 치우기’(kicking away the ladder)를 제도화했지만, 이스라엘·인도·파키스탄·조선은 명시적 혹은 암묵적으로 핵보유국이 되었다.

 

 

핵무장의 동기

 

일국이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포기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동기 및 요인은 국가안보, 국가적 능력(경제·과학기술·군사·외교 등), 국제규범 및 인식, 국내정치적 요인으로 집약할 수 있다.

 

베노이트 펠로피다스(Benoit Pelopidas)에 따르면 세계 39개국이 핵무장을 모색하다가 대부분이 포기했다. 조지 퀘스터(George Quester)는 1973년 이후 핵무장을 모색한 국가들의 주요한 동기를 군사적 동기, 정치적 동기, 경제적 동기에서 찾았다.

 

스콧 세이건(Scott Sagan)은 핵무장 혹은 핵포기의 동기를 국가안보, 국내정치, 국제규범으로 구분하였고, 핵확산 혹은 비확산에는 국가안보, 국제기구, 국제규범, 국내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민주주의체제와 독재체제에 따른 상이한 영향이나 국가적 위신, 기술, 경제, 국내정치가 핵무장의 동기 혹은 핵포기의 동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국가안보, 국가적 능력, 그리고 국제적 요인이 핵무장 혹은 핵포기에 영향을 미치는 공통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다.

 

핵무기 개발은 기술, 원료, 운용인력, 가용재정 등이 충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중진국 수준으로 보기 어려운 조건이었던 파키스탄(1998)과 조선(2006)의 핵실험은 핵 기술력의 보유 및 독점적 자원집중으로 가능했지만, 미국과 국제기구의 압박을 극복하고 기술 및 장치를 획득하는데서 외부적 저항요인을 감당할 수 있는 정치적 의지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경제적, 기술적 능력이 미비하거나 정치적 의지가 미약한 나라는 핵 구상이 있더라도 핵 게임을 지탱할 수 없다. 정치적 의지를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핵무장의 동기 중에서 강대국에 대한 열망과 같은 팽창적 동기보다 안보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강조한다.

 

커트 캠벨(Kurt M. Campbell)은 ‘체제 비관주의’(regime pessimism)를 핵확산의 주요한 동기로 보았다. 경제적·군사적 균형에서 열세로 기울거나 체제불안 및 쇠퇴를 맞이한 나라일수록 핵무장으로 경쟁국 혹은 적대국에게 망각되거나 무시되는 것(sinking into oblivion or being overshadowed)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체제 비관주의는 피포위의식이나 강대국의 위협에 직면했다고 생각하였던 이스라엘·파키스탄·조선의 핵무장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핵무장의 몇 가지 이유

 

케네스 월츠(Kenneth Waltz)는 핵무기를 원하는 이유를 일곱 가지로 집약하였다(The Spread of Nuclear Weapons : More May Better, Adelphi Papers, Number 171, International Institute for Strategic Studies).

 

첫째, 경쟁국들은 상대의 신무기를 모방하여 대등해지려고 하기 때문에 미국의 핵무기 개발이 소연방의 핵무기 개발을 초래하였다.

 

둘째, 강대국의 침공에 대해 동맹관계의 강대국이 관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인하여 영국과 프랑스가 핵개발을 하게 되었다.

 

셋째, 주변국이 핵무장을 하면 핵개발을 하게 된다. 중국의 핵개발은 인도의 핵개발을 초래하였고, 인도의 핵개발은 파키스탄의 핵개발로 이어졌다.

 

넷째, 주변국의 현재 혹은 미래의 재래식 무력을 우려하여 핵무기를 개발한다. 이스라엘은 주변국들의 군비증강을 의식하여 선제적으로 핵무기를 확보하였다.

 

다섯째, 재래식 군비증강보다 핵보유를 통하여 경제적으로 효율적이고 적정한 비용으로 안보와 독립을 기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섯째, 공격의 목적으로 핵보유를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1940년대 미국은 독일과 일본을 타격하고 전쟁을 종결하려는 의도로 최초의 핵실험과 랙공격을 감행하였다.

 

일곱째, 핵보유를 통해서 국제적 지위를 높일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의 지도자들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으면 미국에게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예우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였다.

 

 

핵 보유국의 위상과 태도의 변화

 

마크 벨(Mark S. Bell)은 핵무기를 보유하게 된 국가는 대외적으로 공격성(aggression)을 강화하고, 팽창(expansion)을 지향하고, 독립성(independence)을 제고하고, 동맹국과의 결속(bolstering)을 강화하고, 협상에서 완고성(steadfastness)이 드러나지만, 반면에 타협(compromise)의 비용은 감소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영국의 핵무장 이후 외교정책을 검토하였다.

 

벨은 1955년 이후 영국의 대미 외교를 비롯한 대외관계에서 독립성과 완고성이 강화되고, 동맹국과의 관계가 굳건해지고 타협의 비용이 감소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대외정책에서 공격성이 두드러지거나 국가목표에서 팽창적 경향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서 핵무기가 세력균형과 전쟁억지에 미치는 효과를 요약한 케네스 월츠의 정리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핵무기는 전쟁으로 얻으려는 이득보다 쌍방의 피해를 훨씬 크게 만들었다.

 

둘째, 핵무기는 쿠바사태에서 드러난 것처럼 전쟁 돌입을 신중하게 만들었다.

 

셋째, 핵무기로 인하여 재래식 무기로 방어하는 나라의 영토를 공략할 필요가 없어졌고, 핵무기에 기초한 억지전략은 안보를 증진하기 위해서 전쟁을 해야 할 필요성을 제거하였다.

 

넷째, 타국의 영토를 침공하는 국가의 정복의지보다 자국의 영토를 지키려는 국가의 방어의지가 더 강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면서 핵무기(보유국)는 주변국의 잠재적 침략을 예방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다섯째, 핵무기는 군사적으로 오산하기 어렵게 만들어서 정치적으로 적절한 예견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각국의 조건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조선의 경우에도 2017년 ‘핵무력 완성’ 공표 이후 무위(armed suasion)에 기초한 외교적 담대성이 나타났고, 재래식 군비의 증강으로 가능하지 않았던 군사적·외교적 경지에 도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