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관한 문제/대국민 통일사기극

대국민 통일사기극(6) 헌법과 규약의 함정

twinkoreas studycamp 2021. 6. 22. 18:35

한국의 헌법과 조선 로동당 규약은 서로 한반도 전체를 영토로 보고 있다. 그렇다 보니 탈북자들은 북에 있을 때는 남쪽의 영토와 국민을 대상화하다가, 남으로 내려와서는 북쪽의 영토와 국민을 대상화하게 된다.

 

영국주재 공사를 하다가 탈북한 태영호는 지난 2019년 초에 이탈리아 대사대리를 하다가 제3국으로 망명한 조성길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이 글에서 태 전 공사는 서울을 한반도 통일의 전초기지라고 규정하고, 자신의 세대가 차세대에 할 일은 통일된 강토를 넘겨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가 제시한 근거는 헌법 제3,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이루어졌다는 대목을 북한 전체 주민들이 다 한국 주민들이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하지만 남과 북이 군사분계선 반대편의 주민을 자국의 국민으로 간주하는 것은 통일 염원의 소산이라고 하더라도, 상대편 지역과 주민을 서로 미수복과 미해방의 대상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내적으로 국가주의(statism)를 강화하고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를 공고화하는 역설을 초래하였다.

 

 

(jtbc)

 

 

영토조항에 대한 상이한 관점과 해석

 

대부분의 국가는 헌법에 영토조항이 있지만, 대략적으로 30% 정도의 국가들은 영토조항이 없다. 영토조항이 헌법의 필수적 구성요소는 아니고, 한국의 헌법처럼 영토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헌법의 영토조항에 대한 국내 헌법학자와 정치학자의 관점은 상이한 측면이 있다. 헌법학자들은 대체로 헌법상 영토조항(3)과 평화통일 조항(4)이 상충하지 않고 타당한 근거 위에 양립한다고 본다.

 

반면에 일부 정치학자들은 남과 북이 38선을 경계로 이남과 이북을 실효적으로 지배해 왔고, 1991UN 동시가입으로 국제법상 별개의 독립적인 주권국가로 인정되었다는 점을 들어 영토와 통일에 대한 한국의 헌법과 조선의 로동당 규약의 규정들은 일시적으로 효력중지(abeyance)의 상태에 있다고 본다.

 

또한 일시적 효력중지가 10~20년도 아니고 70년이 넘었고, 앞으로 가까운 장래에 효력이 실질화될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점에서 쌍방의 영토에 관한 규정은 현실적 변화에 대한 묵살, 헌법의 침묵규약의 침묵에 불과하다고 간주한다.

 

헌법학자들은 남과 북이 분단된 조건에서 국가권력이 38선 이남으로 국한된 한국의 영토범위(3)는 비현실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그 다음에 나오는 통일조항(4)이 신법 혹은 특별법과 같은 우선적 지위를 갖기 때문에 통일(한반도와 부속도서)에 대한 헌법적 의지와 의사는 정당하다고 본다.

 

또한 헌법학자들은 통일조항이 국가 대 국가를 상정한 것이 아니라 38선 이북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수복대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실효적 지배의 문제를 부차적이라고 본다.

 

일부에서는 영토조항을 역사성의 표현으로 보고, 통일조항을 가치지향적인 개념으로 간주하거나, 통일의 취지를 지리적 의미보다 두 정부의 통합으로 이해하여 두 조항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헌법학계 내부에서도 영토조항의 효력을 부인하고 개정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견해도 있다. 기존의 영토조항은 일종의 프로그램적 조항으로서 현실적, 구체적 법적 효력이 미비하므로 개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통일 관련 조항>

 

(현두륜, 서독기본법과 한국 헌법상 통일조항 비교, 4쪽)

 

 

통일의 길을 비추는 북극성인가, '반쪽 국가주의'를 수호하는 최고 규범인가?

 

쌍방의 헌법은 민족주의적 동기에 기반한 것이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결과적으로 '반쪽 국가주의'를 공고히 하는 최고 규범으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헌법은 영토조항(3조),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기반한 평화통일(4조), 대통령의 평화적 통일 의무(66조 3항), 대통령 취임 선서의 평화적 통일 노력에 대한 규정(69조), 통일정책에 관한 대통령의 국민투표 부의권(72조), 평화통일정책 수립에 관한 대통령자문기구로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규정(92조)에서 통일에 관한 규정을 두었다.

 

조선의 제정헌법에서는 영토와 통일에 관한 조항이 따로 없었고, 이와 관련된 내용은 조선로동당 규약 등에 반영되었다. 그러나 1972년 개정헌법에서 북반부의 사회주의 승리와 전국적 범위의 외세 축출의 기초 위에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적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투쟁의 결의(5조)를 밝혔다. 1991년 남북의 UN 동시가입 직후에 이뤄진 개정헌법(1992)에서는 북반부의 인민정권 강화 및 3대혁명을 통한 사회주의 승리와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원칙에 의한 조국통일 실현을 위한 투쟁의 결의(9조)를 밝혔다.

 

헌법 문제와 관련해서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1민족 2국가론을 세 층위를 갖는 중층적 구조로 이해한다. 기층에는 구조적으로 2국체제가 공고하게 구축되었고, 그 위에 지정학적 현실과 한국전쟁의 영향, 이에 따른 남북의 인식차이가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중층적 구조의 최상층에는 변화된 현실과 괴리된 헌법(영토조항)이 존재하는데, 구조와 현실의 변화를 반영해서 3층도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

 

통일에 관한 남북의 헌법은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전망의 부재 속에서 협상에 의한 통일의 길을 향도하는 북극성이라기 보다는 유일한 합법정부를 배타적으로 주장하는 ‘반쪽 국가주의’를 수호하는 지상(至上)의 규범이 되어버렸다.

 

 

서독 헌법(기본법)의 시사점

 

독일연방공화국(서독) 기본법은 서문에서 전체 독일인은 자유로운 자기결정에 따라 독일의 통일과 자유를 달성할 사명이 있다고 강조하고, 영토에 관한 구체적 규정을 두지 않았다.

 

다만 23조의 기본법의 적용범위에서 일단 서독으로 국한하되, 장차 연방 가입의 방식으로 통일을 이룰 것을 규정하였다. 이는 동독을 연방에 편입시키는 서독 주도의 통일을 암시한다. 또한 116조에서 ‘1937년 독일제국 당시의 국적 소유자 및 배우자 비속은 모두 독일 국적자로 간주한다고 규정하여, 동독인도 독일연방공화국의 국적자가 될 수 있도록 하였다.

 

서독 정부는 완전한 통일을 이루기 전까지 잠정적인 헌법이라는 점에서 기본법이라고 칭하고 분명한 제한을 둠으로써, 독일통일의 과정에 비추어 볼 때 결과적으로 제도적 자제의 중요성과 효과성을 실증한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반면에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제정헌법은 분할할 수 없는 민주공화국으로 선언하고, 독일인의 단일 국적을 명시함으로써 분단을 인정하지 않았다. 1968년 개정헌법은 독일 민족의 사회주의국가를 주창하고, 서독과 점진적 접근을 통해서 사회주의 질서에 입각한 통일을 추진할 것을 선언했다.

 

1972년 쌍방은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상대를 국가로 승인하고 정식 국호를 사용하였다. 쌍방은 상대를 독립국가로 인정하면서도 인종과 언어 등을 달리하는 외국과 구분하기 위하여 독특한 민족국가론을 주창하였다.

 

 

2민족 2국가론을 주장한 호네커 독일민주공화국 서기장(위키피디아)

 

서독은 ‘1민족 2국가론을 제기하였고, 반면에 동독은 스탈린-호네커의 사회주의 민족론에 기초한 ‘2민족 2국가론을 주장하였다. 특히 동독의 개정헌법은 기존의 분할할 수 없는 민주공화국과 통일에 관한 규정이 사라지고, 새로운 국적조항에서 서독인과 사회주의화된동독인을 구별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전후한 과정을 돌아보면, 하나의 민족이 2개 이상의 국가(단일민족 복수국가론)로 존재할 수 있다는 서독의 주장이 사회주의 독일민족자본주의 독일민족이 서로 다른 국가를 형성했다는 동독의 주장보다 전체 독일인들에게 훨씬 설득력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민족 및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에서 새로운 인간에 의한 역사적 단절이 가능하다는 주관주의적 과잉이 드러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소연방(Soviet Union)의 일국사회주의와 제한주권론은 대내적으로 소수민족에 대한 접근과 대외적으로 동유럽아시아 동맹국과의 관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에 따라 소연방 붕괴의 주요한 요인의 하나로 소수민족 문제를 손꼽는 견해도 있다.

 

 

헌법과 규약 개정의 필요성

 

전체로서 한반도 국가의 헌법에서 영토조항의 필요성은 자명한 것이다. 한반도 국가는 강대국에 의해서 영토의 강탈과 전쟁의 파괴를 겪었다는 점과 영토의 외곽 및 경계선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태에서 쌍방은 한반도 전체를 배타적 영토로 확정한 헌법 혹은 당 규약을 지속함으로써 상이한 체제의 공존에 기초한 새로운 관계의 정립이나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에 관한 합의를 무한하게 유보하도록 만들고, 종국에는 두 개의 코리아’(Two Koreas)를 더욱 공고히 하는 배타적 국가주의로 귀결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3월에 발의한 헌법개정안에서 영토조항(3)은 개정하지 않는 대신에 수도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는 제2항을 신설하여 행정수도 이전 논란을 원천적으로 제거하려고 했다.

 

반면에 조선(DPRK)의 헌법에서 영토조항이 따로 없고, 대신에 수부(수도)를 평양으로 한다고 규정했지만, 당 규약에서 '전국적 범위'라는 표현으로 사실상 한반도 전체를 영토의 범위에 포괄하고 있다. 

 

영토와 수도(수부)에 대한 쌍방의 다소 엇갈린 규정에 대해서 양측이 수도는 명시하고(법률적 위임 포함), 영토에 관한 규정을 좀더 유보적으로 전환하여 쌍방의 국가주의적 대립 및 긴장을 늦추고 평화적이고 장기적인 해결방안을 보다 개방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일부 학자들은 북의 급변사태를 고려하여 헌법의 영토조항이 중요하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한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지난 70여년의 역사적 경험은 급변사태의 가능성보다 한반도 문제의 영속적 미결이 훨씬 더 개연성이 높다는 현실주의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기존 논의를 수렴하여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국인(혹은 한민족)의 고유한 영토로 한다”, 혹은 대한민국의 영토에 관한 법률로 정한다로 수준으로 개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들이 있다.

 

남북의 새로운 관계와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헌법의 침묵을 거두고 가능한 자주적이고 쌍무적인 장기설계에 기초한 제도적 방도를 창안하려는 거국적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