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에 관한 문제/대국민 통일사기극

대국민 통일사기극(8) 국가보안법과 상호주의의 덫

twinkoreas studycamp 2021. 6. 28. 02:00

 

 

한국 내부에는 장래에 조선(DPRK)이 소멸하고 한국 주도로 통일이 된다고 해도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을 존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견해는 국보법이 단지 조선만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라 주변국과의 관계를 망라한 영속적인 안보제도라는 생각에서 기인한다.

 

국보법의 시원이 된 안보수호법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국내 정치상황에 따라 형법보다 먼저 ‘법률 제10호’로 긴급하게 제정되었다. 이렇다 보니 일본제국의 치안유지법을 그대로 베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고,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군사정부 등의 정치적 필요성에 따라 개정되거나 악용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은 안보수호법(국가보안법)을 일제 잔재의 악습을 그대로 이어받은 법으로 규정하고 이적행위에 대한 처벌은 형법으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패전한 일본은 치안유지법을 폐지하고 형법으로 대체했는데, 정작 치안유지법과 싸우다가 독립한 한국은 치안유지법과 유사한 국보법을 70여년 동안 유지하고 있다.

 

 

(KBS 뉴스)

 

 

민주화 이후 국보법 : 사문화와 활성화의 변주곡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30여년 동안 남북관계의 개선과 전향적 변화, 국보법의 오남용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 일부 법조문의 사문화 등으로 인하여 법률 개폐에 대한 여론이 점증하였다.

 

그러나 한국 내부의 민주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적대성이 영속화되면서 국보법 개폐로 인한 위험, 즉 조선의 대남 전략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았다.

 

문민정부 이후 30여년이 흐르도록 국보법 폐지는 물론이고 일부 조항의 개정조차 이뤄지지 않은 배경에는 이처럼 남북관계에 대한 근본적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국보법의 존폐에 대한 논의가 합리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웠던 배경에는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첫째, 남북관계가 순일하게 진전되지 않고 수시로 군사적 긴장상태로 회귀하면서 국민들의 안보 불안감이 지속되었다.

 

둘째, 국보법 관련 사건과 피해사례가 감소하고 이른바 ‘악법 조항’의 적용 및 피해호소가 줄어듦에 따라 국보법 개폐에 대한 사회적, 국제적 압력이 점차 이완되었다.

 

셋째, 남의 국보법에 조응하는 북의 기본적 방침이나 관련법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국보법을 일방적으로 폐지 혹은 개정할 수 없으며 상호주의 및 양측의 합의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문제는 국보법의 일부 조항들이 역대 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라 상이하게 해석되거나 적용됨으로써 법의 공정성·항상성·안정성을 해치고, 어떤 정부에서는 국보법 처벌사례가 줄어들고 어떤 정부에서는 늘어나는 경향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정부의 성향에 따라서 국보법의 적용이 활성화되거나 사문화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동일한 혐의에 대해서 처벌기준이 달라지고 상이한 사법처리가 이뤄진다면 진영대결과 남남갈등으로 인한 내적 균열을 조장하고 궁극적으로 법치주의에 심각한 결함을 초래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남북관계에 따라 제기될 수 있는 난해한 문제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국보법 7조(찬양·고무)만이라도 개폐해야 한다는 제한적 개정론이 제기되어 왔다. 최근에도 70여명의 민주당, 정의당 의원들이 해당 조항만이라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 신해철(가수)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조선의 로켓 발사 등에 관해 언급했다가 국보법 위반혐의로 고발돼 조사를 받은 적이 있다.

 

“작년 4월 자신의 홈페이지에 북한의 로켓발사를 축하하는 글을 올렸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가수 신해철씨에게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 1부는 ‘신씨가 술을 마신 뒤 충동적으로 글을 쓴 뒤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면서 바로 삭제했다면서 ’신씨의 행동이 국가존립이나 민주주의를 위협할만큼 명백한 위험이라 볼 수 없어 기소하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신씨는 지난 15일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으며 검찰조사에서 ‘북한을 찬양할 목적으로 쓴 글이 아닌데 사회적으로 논란이 돼 유감스럽고 죄송하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MBC, 2010.1.29)

 

이처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고발이 되거나 직간접적 피해를 겪은 사람들은 국보법 7조가 시기와 사건에 따라 임의적으로(제 멋대로)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의원들이 국보법의 문제점을 수긍하지만 남북관계의 특수성과 국민의 일반적 여론을 고려하여 국보법의 전면적 폐지와 일부 조항에 대한 개정 혹은 폐지에 대해서 상이한 견해를 갖고 있다.

 

(일부 시민단체들의 개정 요구)

 

 

적대관계의 문제 : 상호주의 딜레마

 

2007년 2월 조선은 한국의 이재정 통일부장관에게 상반기 내에 ‘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북은 남의 국가성(stateness)를 부정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에서 ‘국가’하는 글자를 빼고 ‘보안법’으로 지칭해 왔다. 이러한 태도는 남의 국가보안법에서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남북관계의 평행선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한국의 내부에서는 국보법 2조(반국가단체 및 정부 참칭에 관한 규정)와 이로 인한 잠입·탈출에 관한 규정을 개폐해야 한다는 주장과 북이 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조건에서 일방적인 폐지나 개정은 불가하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이 조항의 개폐론은 조선의 긍정적 변화를 고려하여 반국가단체에서 ‘준적국’ 수준으로 규정하는 미래지향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고, 존치론은 ‘준적국’으로 바꾸는 것에 대해서도 한국을 괴뢰국 수준으로 간주하여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마당에 상대를 도리어 국가로 인정하는 모순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국보법 폐지에 대해서 남북관계를 고려한 상호주의에서 벗어나 한국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추구하는 나라로서 체제, 이념이 다른 조선의 주장과 별개로 국제적 인권 규정에 따라 국보법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북은 오래 전부터 국보법 등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철폐를 주장해 왔다. 2009년 4월 '로동신문'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이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를 이적단체로 규정하고 간부에게 징역형을 선고한 사건에 대해서 이 단체가 남북화해와 미군철수를 실현하며 파쇼적인 ‘보안법’을 폐지하려는 활동을 했다고 옹호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진 2018년에도 연말에 ‘보안법’은 남북관계를 적대관계로 규정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전면 부정하는 반통일적인 악법이라고 비난했다.

 

최근에는 김일성 전 주석의 회고록인 ‘세기와 더불어’ 영인본의 국내 출간에 대해서 법원은 판매·반포 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지만, 국보법에 따른 조치는 별개라는 단서를 달았다. 실제로 서울경찰청 보안수사대는 국보법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에 대한 조사에 착수하여 해당 출판사를 압수수색했다. 과거와 달라진 것은 아직 출판사 대표 등 관련자들에 대한 인신구속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보법 문제의 근원은 남북의 적대적 관계에 있고, 그러한 관계성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조건에서는 개정 필요성에 대한 합리적 근거에도 불구하고 전향적인 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진보적 성향의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들은 남북관계에 전향적인 입장에 설수록 내부적으로 안보 불안감을 불식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고, 조선은 점진적으로 국보법의 폐해를 감소시킨 한국보다 훨씬 철저하고 견고한 통제와 처벌을 존치하면서 국보법 폐지를 주장하는 모순에 빠져 있다.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국가안보 및 국방에 대한 법과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남과 북이 그러한 수준에서 각자의 법과 제도를 운용하는 것을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상호주의의 덫’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자의 선제적인 결단과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하다 못해 시한부 혹은 조건부 개정이나 일몰조항, 혹은 스냅백 규정 등을 두어서 서로의 변화를 견인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강구할 때가 왔다.

 

양측은 상대의 국가성을 부인하고 관계의 적대성을 유지하면서도 조금씩 적개심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그렇다 보니 내외적 변수에 의해서 상황이 악화되면 순식간에 적대관계로 회귀하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혀서 헤어나질 못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남과 북은 내부적으로 상대의 국가성과 이념에 관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고 처벌하는 규정들을 유지하면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대국민 통일사기극’을 무한 연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