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영세무장중립/국내(South Korea)

최장집 교수의 ‘촛불혁명론’ 비판

twinkoreas studycamp 2021. 5. 9. 14:05

 

 

지난 5월 7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촛불집회를 ‘촛불혁명’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위키백과)

 

역사적으로 해외에서는 벨벳처럼 부드럽게 성공했다는 의미로 붙여진 벨벳혁명(1989년 체코), 야당후보 유센코의 상징색에서 유래한 오렌지혁명(2004년 우크라이나), 나라 꽃의 이름을 딴 재스민혁명(2010년 튀니지), 로제타스톤에서 이름을 딴 로제타혁명(2011년 이집트) 등이 통용되었다.

 

그렇다면 2016년~2017년에 시민들이 촛불을 들어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려오게 하고 사법처리로 이끈 사건을 촛불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떤 문제가 있을까?

 

최 교수의 문제제기는 촛불집회 혹은 촛불시위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 이후 집권한 세력 및 정부여당이 촛불혁명으로 규정하는 정치적 의도에 대한 비판이다.

 

최 교수는 지난 7일 제주연구원에서 ‘한국 민주주의의 진단과 전망’이라는 특별강연에서 촛불시위로 인한 대통령 탄핵 이후 민주당 정부가 촛불시위를 혁명으로 규정하여 적폐청산 등 광범위하고 급진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이전 사회의 성과와 보수세력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진보와 보수의 균형이 붕괴됨으로써 이념갈등이 극대화되었다고 진단했다.

 

 

 

(위키백과)

 

최 교수의 이러한 진단은 4년 전에 기고한 ‘촛불시위의 결과가 직접민주주의인가’(중앙일보, 2017.10.11)라는 칼럼의 맥락과 문제의식이 같다.

 

당시에 더불어민주당 정당발전위원회는 ‘당원주권, 당원결정 시대’를 제기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 교수는 칼럼에서 “집권여당이 대의제가 아닌 직접민주주의 강화를 밝힌 것은 실로 희귀한 일”이라고 경계하였다.

 

그는 집권여당이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민주주의를 파당적으로 정의하여 시민들을 지지세력으로 동원하려 든다고 비판하고, 결론적으로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사려 깊은 진보’와 ‘개명된 보수’가 상호 경쟁하면서도 타협하고 협력하는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애초에 최 교수가 촛불집회로 상징되는 시민의 정치참여와 광장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대해서 무기력해진 민주주의 제도를 대신한 구원투수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2008년 6월 16일 참여연대의 ‘촛불집회와 한국의 민주주의’ 토론회에서 최 교수는 광우병 촛불집회에 대해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이자 그러한 현상을 표징하는 대표적 사건”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무책임한 통치권을 행사한 것이 촛불정국을 초래한 직접적 원인이라고 진단하면서도 근본적 원인을 정당들이 제대로 대표성을 발휘하지 못한 것에서 찾았고, 결론적으로 사회경제적 정책들의 차이에 기반한 정당체제로 개편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최 교수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도 사회가 요구하는 정당정치(사회경제적 대표성)의 부재를 광장의 민주주의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보지 않았다. 그는 대중이 정치적으로 진출하여 제기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민주주의 제도를 넘어서는 방법이 아니라 민주주의 제도를 더 강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최 교수가 ‘촛불혁명’ 규정에 대해서 비판한 것은 특정 정당의 관여가 미미했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와 달리 2016년 탄핵 촛불집회는 시민의 정치참여로 인한 결과물이 특정 정당 및 정파에 의해 전유(appropriation)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에 폐해를 초래하였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여진다.

 

사려 분별이 미흡하고 개명되지 못한 양 진영, 즉 진보와 보수가 기계적으로 균형을 이루는 것은 나눠 먹기와 적대적 공생을 재생산할 뿐이고,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한 쪽에 지나치게 힘을 실어주면 사려 분별이 미흡하고 개명되지 못한 일방의 독주를 초래한다.

 

최 교수는 사려 깊은 진보와 개명한 보수의 균형을 강조했지만, 정파의 이익에 기초한 정당정치는 외적 압박과 충격에 의하지 않고서 자기혁신에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에서 정당의 대의민주주의와 광장의 직접민주주의가 서로 불가결한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광장의 정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하고자 한다면 21세기에 즈음한 사회경제적 균열을 반영하고 대표하는 노선과 정책의 수립(정당의 자기혁신), 득표와 의석의 불비례성을 해소하고 진보·중도·보수의 정립(鼎立) 및 다당제를 촉진하는 선거제도, 선거구도에 따른 이합집산을 예방하고 연합의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결선투표제, 한반도 국가의 존재양식(영토조항)과 권력분점에 관한 개헌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혁명의 규정? 정의하기 나름이다

 

봉건시대에는 왕조를 바꾸는 것을 역성혁명이라고 했고, 스카치폴(Theda Skocpol)은 프랑스대혁명를 비롯해서 국가와 계급구조의 급격하고도 근본적인 변혁을 사회혁명이라고 정의했다.

 

일반적으로 혁명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서 국가의 기초, 사회제도, 경제조직 등을 급격하고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사회 구성원의 다수가 기존의 국체 및 정체를 바꾸려는 명백한 의도와 방향을 갖고 비합법적인 수단을 폭력적이거나 평화적으로 사용하여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체제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말한다.

 

동학농민전쟁을 동학농민혁명 혹은 동학농민전쟁으로 부르거나 3.1만세운동을 3.1혁명으로 부르는 것은 역사적 의미를 강조하려는 취지이지만, 위와 같은 기준에서 보면 동학농민봉기, 3.1민족항쟁이라고 지칭해도 역사적 의미를 축소하려는 나쁜 의도로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전국적이고 평화적인 항거는 정치적 혁명의 성격을 갖고 있지만, 헌법에 규정된 탄핵절차에 따라 국회의 발의 및 의결을 거쳐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통하여 종결되었다는 점에서 혁명적 성격보다는 기존 헌법질서를 수호하고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탄핵 결정문에서 대통령이 헌법질서를 수호하려는 의지가 박약했다는 점을 파면의 중대한 사유로 적시하였다.

 

2011년 이집트의 ‘로제타 혁명’ 당시 타흐리르 광장(위키백과)

 

 

 

1987년 4월 13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이른바 ‘4.13 호헌조치’를 단행했다. 12.12 군사반란으로 탈취한 정권을 연장하기 위해서 대통령을 대의원 간접선거로 선출하도록 한 헌법의 개정논의를 일체 금지시키고 기존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영구집권의 포고령으로 받아들인 학생들과 시민들은 그러한 헌법질서를 바꾸려고 저항하기 시작했다.

 

기존 헌법의 타파와 기본 헌법의 수호라는 기준에서 보면 1987년 6월항쟁(비합법적 절차→개헌)과 2016년 촛불시위(헌법적 절차→궐위선거)는 명백한 차이가 있다.

 

2016년 촛불시위를 촛불혁명으로 부르든, 촛불집회로 부르든, 촛불대행진으로 부르든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촛불시위는 광장으로 진출한 시민들의 정치적 압력으로 국회를 압박하여(평화적인 직접행동) 탄핵절차를 견인하였고(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외적 충격), 종국적으로 헌법제정권자로서 주권자의 집단적 의지를 헌법재판소에 투사한 사건이다.

 

달리 말하자면 촛불시위의 결과는 직접민주주의의 합법적인 수단에 의한 가공할 압력과 기존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기존의 헌법질서의 틀 안에서 제도적으로 수렴한 것이었다. 따라서 촛불시위에 대해서 혁명적 의의를 부여하는 것과 특정한 정치적 목적이나 책략적 의도로 촛불혁명으로 규정하거나 지칭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상이한 함의를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