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에는 강대국도 아니고 약소국도 아닌 중간지대에 다양하고 광범한 국가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힘을 가진 국가들을 중견국가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중견국가의 정의는 명확하게 하나로 통일되지 않았지만 그 뉘앙스는 국내에서 쓰이는 중견기업, 중견작가라는 말을 떠올리면 알 수 있다. 중견은 단순히 중간이 아니라 일정한 수준과 상당한 역량에 도달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0년 코로나사태의 초반기에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 차별화된 퍼포먼스와 일정한 성과로 두각을 드러내면서 방역 및 보건의료에서 기존 강대국들에 비견되는 국가로 부각된 바 있다.
이처럼 중견국의 특정한 기능을 강조하여 중개국, 글로벌 스윙 국가(global swing states)로 부르기도 한다. 브라질, 인도, 한국, 터키 등은 때때로 어떤 유형의 전지구적 질서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글로벌 스윙 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G7으로서 경항모를 보유한 이탈리아를 준강대국으로 분류하거나, 인접국에 비해서 인구가 많고 군사력이 강한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를 역내의 지역강국(Regional Power)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1. 두 가지 접근
첫 번째 접근법은 물리적, 경제적, 군사적 능력이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있으면서 어느 정도의 하드 파워(hard power)에 기초한 외교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나라를 중견국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국제정치이론에서 현실주의적 시각에 부합한다.
두 번째 접근법은 지구적 문제에 적극 관여하면서 주로 다자주의적 접근과 평화방식을 구사하는 나라를 중견국으로 간주한다. 국제정치이론에서 자유주의적 시각에 부합한다.
또한 두 가지 접근법을 동시에 충족하는 나라를 중견국으로 간주하여 좀더 범위를 엄격하게 적용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물질적 차원에서 기본적 요건을 갖추고 문화, 이데올로기, 네트워크 등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겸비한 나라를 중견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2. 국제정치이론의 세 가지 관점
중견국의 범주를 설정함에 있어서 현실주의는 군사력, 경제력, 영토, 인구, 자원과 같은 실증 가능한 능력을 강조한다. 자유주의는 강대국들이 형성한 국제질서에 속하면서도 동맹을 형성하거나 지역기구 및 국제기구를 통해서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한다. 반면에 구성주의는 중견국의 국가이익과 위상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는 인식론적 시각을 강조한다.
구성주의적 관점은 한국이 COVID-1차방역(2020년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모범국가로 부각되었다가 COVID-2차방역(2021년 백신과 봉쇄해제)에서 다소 취약한 지위로 유동화되는 현상처럼 중견국 지위의 비고정성을 설명하는데 적절할 수도 있다.
월츠(Kenneth Waltz)는 패권국의 역할과 국제체제의 구조에 따라 중견국의 선택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는 중견국은 유력한 강대국에 편승(bandwagoning)하거나 다자적으로 균형(balancing)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한국의 백신 외교는 초기에 신중한 다자적 접근으로 균형을 추구하였으나, 백신 파워게임이 본격화되고 수급불안이 고조되자 미국에 편승하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또한 중, 러와의 협력 등으로 다변화를 모색하였지만 중국산과 러시아산에 대한 국내의 낮은 신뢰로 인하여 백신외교의 다자적 균형을 도모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견국의 행태와 기능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규범적 역할을 중시한다. 따라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서 문제제기, 이해조정, 중재, 교량자, 의기투합(like-minded)을 통한 촉진 및 규합의 역할을 기대한다.
한국은 경직된 지정학 구조로 인하여 글로벌 중견국가로서, 스윙국가로서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지만 코로나사태에서 중요한 가능성이 부각되었다. 한국은 비대면(Untact)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하여 지리적 거리, 시공간적 제한을 뛰어넘어 전지구적으로 소통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지리적, 지정학적 경직성을 일부나마 완화시킬 수 있는 국가전략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013년 한국(K)은 멕시코(M), 인도네시아(I), 터키(T)와 협의체를 구성하고, 호주(A)를 포함하는 믹타(MIKTA)로 발전시켰다. 믹타는 브릭스(BRICS :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에 비하면 국가규모가 작은 그룹이라는 점에서 ‘중견국 협의체’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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