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군사적 수준은 어느 정도가 합리적일까? 한국 군대의 전략자산은 어느 수준까지 추구하는 것이 적당한 것일까?
“조선의 명백한 핵무장 이전에는 조선의 전사적 협상윤리(warrior negotiation ethics)에 기초한 벼랑끝 외교(diplomacy of brinkmanship)와 한반도 지정학의 근본적 변화가 없는 조건에서 한국의 패리는 불가피성과 정당성이 존재한다.
한반도 국가이성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외교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국가의 평화라는 실리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의 핵무장이 고도화되는 시기(2017년~2020년)에도 이러한 패리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70년 전 한국전쟁과 같은 동존상잔(fratricidal war)을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한국 대통령들의 생각과 그로 인한 외교적 패리는 한반도 국가이성이 투영된 것이지만, 2017년 조선의 핵무력 완성 공표로 그 시효를 다하고 있다.”(김병규, 트윈 코리아 Twin Koreas : 한반도의 지정학적 재탄생, 178~179쪽)
여기서 말하는 한국의 패리(敗利)라고 함은 표면적으로 외교적인 패배를 감수하더라도 평화와 번영의 실리를 담보했다는 의미인데, 2017년 이후 5년여 동안 조선이 핵무장에서 중견국(middle power) 수준으로 변화한 현실에 비추어 더 이상 그 유효성을 장담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조선이 수 백 개의 핵탄두와 다종다양한 투발수단에 기초한 군사적 압력으로 한국의 정치적·군사적·외교적 정책에 변경을 강요할 수 있는 단계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역내에서 중국의 군사적 발흥(rising)이 가속화되면서 그 일차적 방향이 인도·서남아·중앙아시아를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종국적으로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은 점증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은 비핵화 협상과 별개로 무위(armed suasion)를 체계적으로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한국의 무위는 지상전력 외에도 공군전력과 해상전력에서 현시(showing the flag)를 통하여 전쟁 억제 및 예방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수준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변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대륙세력(land powers)과 해양세력(sea powers)의 완충지대이자 각축장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에게 해양이 갖는 의미는 지정학적으로, 지경학적으로 지대하다.
이와 관련해서 경항모 추진은 여러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각종 신형 미사일이 개발될수록 항모의 중요성은 커진다. 초음속 대함 미사일은 항모가 없는 함대를 위태롭게 한다. 한국이 강대국처럼 중형 항모(4만~6만톤급)를 운영하지는 못하더라도, 경함모라도 보유하여 위협과 도발을 예방하는 무위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적 수준과 세계 5위권의 군사적 수준, 그리고 인구와 영토의 크기를 고려할 때 한국이 중후장대한 항공모함까지는 아니더라도 경항모 1척 정도를 보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역사적으로 인도, 스웨덴, 호주, 태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이 경항모 혹은 그에 준하는 전략적 자산을 추구했던 것은 독립국가로서, 중립국으로서 해상의 자위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란이 그 질적 수준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샤히드 로우다키(Shahid Roudaki) 경항모를 전개한 것도 압도적인 해양패권국에 대응하겠다는 국가적 결의를 보여준 것이다.
한국의 경항모 도입에 대해서 공연히 허세를 부리거나 효용이 모호한 곳에 막대한 돈을 허비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경항모는 자주국방을 위한 무위의 상징적 조치이자 새로운 군사적, 외교적, 경제적, 인도주의적 역할과 임무에 긴요하게 쓰여질 수 있다.
수 십 대의 전투기 및 헬기 등을 탑재한 경항모는 평시에도 대형 해난사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고, 동아시아의 정세가 불안정해질수록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2016년 피지의 국가적 재난사태에서 호주의 경항모는 연안에 접근하여 헬기 등을 통해서 긴급구호 및 물자지원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세계의 항공모함(aircraft carrier) 보유국
제2차세계대전 당시에는 미국, 영국, 일본이 항모를 보유했다. 영국은 항모 일러스트리어스호, 포미더블호 등으로 이탈리아 전함을 파괴하였고, 일본은 최대 14종으로 알려진 항모 전단을 앞세워 태평양 일대를 장악하고 미국까지 위협하였다.
이에 앞서 일본은 아르헨티나가 도입하려던 장갑순양함 2척을 중간에서 매입하여 러일전쟁에서 유리한 전력을 확보하였다. 한국전쟁에서 일본 열도를 출발한 미 공군기는 공습을 몇 분 안에 마치고 귀대해야 했지만, 항모에서 발진한 해군기들은 빠른 시간에 전선에 도착해서 더 오래 동안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미국(항모 11척․강습상륙함 9척), 중국(3척), 인도(3척), 러시아(1척), 스페인(1척), 이탈리아(2척), 프랑스(항모 1척, 강습상륙함 3척), 영국, 브라질, 태국, 일본 등이 항공모함 혹은 그에 준하는 강습상륙함을 보유하고 있다. ( )=도입계획 포함
이 가운데 미국,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은 함재기의 동시 이착륙이 가능한 중대형 항모를 보유하고 있다.
인도는 자체적으로 건조한 3만7천백톤급 비크란트함을 진수하여 미국,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러시아, 프랑스에 이어 ‘항모의 자주화’에 성공한 7번째 나라가 됐다.
중국의 랴오닝함은 길이 304m에 만재배수량은 6만톤에 달한다. J-15 등 30여대의 각종 함재기를 탑재한다. 2017년 4월에 진수된 산둥함은 길이 312m, 폭 75m에 만재배수량이 7만톤에 달한다. 중국은 2028년까지 6척으로 증강할 계획이고, 일본과 인도는 각각 4척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은 공식적으로 항모가 없지만 항모로 개조할 수 있는 강습상륙함이 2척이고, 최근에 중형 항모(최소 4만톤~최대 7만톤) 도입을 모색하고 있다. 일본이 대외적으로 헬기탑재 호위함(DDH: Helicopter Defense Destroyer)이라고 주장하는 이즈모형 등 총 4척을 경항모에 준하는 전략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탈리아가 최초로 도입한 초소형 항모 가리발디(1만3천톤급)는 주로 대잠수함용으로 활용되었지만, 헬기와 전투기를 탑재한 다목적 경항모였다. 이후에 도입된 카보우르함(3만톤급)은 함재기 20대 정도를 탑재할 수 있었고, 최근에 스텔스(F-35B) 탑재를 위한 개량 및 훈련을 마쳤다.
또한 강습상륙 겸용 트리에스테함(3만2천톤급)은 길이 245m, 폭 36m으로 해병대 600명과 다목적 상륙정(LCU) 4척, 공기부양 상륙정(LCAC) 1척을 태울 수 있고, 스텔스를 탑재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스페인은 1922년부터 다목적 경항모 SPS 데달도를 운용하였고, 1988년에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함(1만6천톤급)으로 대체하였다. 태국은 1997년에 짜끄리 나르벳 경항모를 도입하였으나, 2006년 이후 전투기를 배치하지 않고 원해초계 헬기모함(The Offshore Patrol Helicopter Carrier)으로 활용하고 있다. 실제 길이는 한국의 강습상륙함 독도(길이 200m)보다 작다.
브라질은 2000년에 프랑스의 클레망소(2만4천톤급)를 중고로 매입하여 상파울루로 명명하였다. 길이가 265m 정도로 미국의 에섹스급 항모에 비견된다. 2008년 이후 사용이 중지되었다. 이웃국가인 아르헨티나도 영국의 콜로서스를 중고로 매입해서 베인티싱코 데 마요로 명명하였으나, 포클랜드전쟁에서 기동하지 못하고 2000년에 퇴역하였다.
"경항모는 중견국가의 합리적 선택"
최근에 블랙스랜드(John Blaxland) 호주 국립대 교수는 ‘호주 해군의 항공모함 운용 경험 : 대한민국에 주는 시사점’(The Royal Australian Navy’s experience with aircraft-carrying warships: Implications for the Republic of Korea)에서 한국의 경항모 도입이 시의적절하고 유용한 선택이라고 강조하였다(KIMS Periscope 제229호, 2021.3.21).
“호주나 대한민국과 같은 중견국가는 실제 군사력을 크게 운용하지 않으려는 실용적 성향이 있기 때문에 자국 영역 외에서의 공공연한 전력투사 능력 유지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항공모함 보유는 중견국가로 규정할 수 있는 힘의 지표이기 때문에 호주와 대한민국과 같은 중견국가들이 이러한 능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블랙스랜드는 한국전쟁에서 호주의 경항모 시드니함(HMAS Sydney)과 멜버른함이 1.4 후퇴 이후 전세 반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그에 따르면 시드니함은 기동이 제한되는 한반도 서해 연안에서 정비 및 인력운영에 험악한 여건에서 4개월 동안 강도 높은 작전을 수행했다.
호주는 1982년 멜버른함 퇴역으로 항모 미보유국이 되었지만, 1999년 동티모르사태 등으로 통하여 바다로 둘러싸인 국가는 독립적인 전력투사 능력을 갖추어야 하고 원거리와 인근 해역에 투사할 수 있는 상륙세력 및 항공력 투사역량이 긴요하다고 재인식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호주 정부는 강습상륙함(LHD)에 해당하는 캔버라함(HMAS Canberra)과 아델레이드함(HMAS Adelaide)을 도입했는데, 시드니함과 멜버른함보다 더 큰 비행갑판을 보유하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경함모로 간주할 수 있다.
캔버라함이 2016년 피지 지원작전(Operation Fiji Assist)에서 거둔 성과는 호주 해군의 주요한 업적으로 기록되었다.
<주요 실적>
• At its peak, approximately 1,000 Defence personnel deployed on Operation Fiji Assist
• More than 114 tonnes of humanitarian assistance and disaster relief moved ashore by landing craft from HMAS Canberra
• More than 140 tonnes of aid, including food, shelter kits, tents, construction materials and humanitarian supplies, lifted ashore by helicopter from HMAS Canberra
• Emergency repairs to nine schools, three medical centres, five community centres and four churches
• Approximately 340 assessments of infrastructure conducted by Australian Army engineers with Fijian civilian and military experts (출처 : 호주 해군 홈페이지)
블랙스랜드는 “경항모의 엄청난 전략적 가치를 고려할 때 이를 확보하려는 대한민국의 노력은 매우 중요하며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항모는 역내 안보 및 안정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동남아해역 등 도움이 필요한 곳에 지원을 제공하는 중견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전망하였다.
또한 경항모가 적국의 치명적 공격에 취약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항공모함이 적이 치명적인 무기로 대항할 수 있는 불리한 환경에서 단독으로 작전할 경우에 적의 공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지만. 어떤 경우이든 단독으로 전개하지 않고 합동전력의 한 요소로서 작전을 수행하면서 해상과 공중의 무기체계의 지원을 받는다”고 강조하였다.
■ 중견국가(Middle Power)로서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 ■
지구상에는 강대국도 아니고 약소국도 아닌 중간지대에 다양하고 광범한 국가들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서도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도의 힘을 가진 국가들을 중견국가라고 부른다.
중견국의 특정한 기능을 강조하여 중개국, 글로벌 스윙 국가(global swing states)로 부르기도 한다. 브라질, 인도, 한국, 터키 등은 때때로 어떤 유형의 전지구적 질서형성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글로벌 스윙 국가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G7으로서 경항모를 보유한 이탈리아를 준강대국으로 분류하거나, 인접국에 비해서 인구가 많고 군사력이 강한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를 역내의 지역강국(Regional Power)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은 인구 5천만명이 넘는 국가 중에서 GNI 3만 달러를 달성한 30-50클럽(미, 일, 독, 영, 프, 이탈리아, 한국)의 7개국에 속한다. 또한 글로벌 파이어 파워(Global fire power)의 ‘Military Strength Ranking’에서 2017년 12위에서 2019년 7위로 상승했고, 2021년에는 프랑스(7위)와 영국(8위)를 제치고 6위를 차지하였다.
2020년에 발표한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의 제조업 경쟁력 지수(CIP, 2018년)에서 한국은 세계 152개국 중에서 3위를 차지했다.
또한 한국(K)은 멕시코(M), 인도네시아(I), 터키(T)와 협의체를 구성하고, 호주(A)를 포함하는 믹타(MIKTA)로 발전시켰다. 믹타는 브릭스(BRICS :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에 비하면 국가규모가 작은 그룹이라는 점에서 ‘중견국 협의체’로 부르기도 한다.
※ 믹타(MIKTA) : 멕시코, 인도네시아, 한국, 터키, 호주가 국제사회의 공공이익 증대에 기여하려는 목적으로 구성한 협의체로서 2013.9월 제68차 유엔총회를 계기로 하여 출범하였다.
중견국에 대한 첫 번째 접근법은 물리적, 경제적, 군사적 능력이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 있으면서 어느 정도의 하드 파워(hard power)에 기초한 외교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나라를 중견국으로 간주한다(현실주의적 시각).
두 번째 접근법은 지구적 문제에 적극 관여하면서 주로 다자주의적 접근과 평화방식을 구사하는 나라를 중견국으로 간주한다(자유주의적 시각). 또한 두 가지 접근법을 동시에 충족하는 나라를 중견국으로 간주하여 좀더 범위를 엄격하게 적용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물질적 차원에서 기본적 요건을 갖추고 문화, 이데올로기, 네트워크 등 소프트 파워(soft power)를 겸비한 나라를 중견국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중견국의 범주를 설정함에 있어서 현실주의는 군사력, 경제력, 영토, 인구, 자원과 같은 실증 가능한 능력을 강조한다. 자유주의는 강대국들이 형성한 국제질서에 속하면서도 동맹을 형성하거나 지역기구 및 국제기구를 통해서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중시한다. 반면에 구성주의는 중견국의 국가이익과 위상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변화한다는 인식론적 시각을 강조한다.
월츠(Kenneth Waltz)는 패권국의 역할과 국제체제의 구조에 따라 중견국의 선택은 상대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현실주의적 관점에서는 중견국은 유력한 강대국에 편승(bandwagoning)하거나 다자적으로 균형(balancing)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반면에 중견국의 행태와 기능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관점에서는 규범적 역할을 중시한다. 따라서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에서 문제제기, 이해조정, 중재 및 교량자적 역할, 의기투합(like-minded)을 통한 다자적 협력의 촉진 및 규합의 행위자로 역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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