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on Twin Koreas/두 국가

‘좋은 담장 좋은 이웃’과 솅겐(Schengen) 협정

twinkoreas studycamp 2025. 11. 24. 14:36

좋은 담장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통일이 되기 전까지 남북관계에서 좋은 담장은 휴전선일까, 국경선일까?

 

통일을 지상의 과제로 여기는 관점에서는 남북관계를 이웃에 비유하는 것을 이단(異端)으로 간주하지만, 북에서 적대적 두 국가를 선언한 이후 남에서도 평화적 두 국가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이 출간한 좋은 담장 좋은 이웃도 지금이 남북관계를 재설정해야 할 시점이란 것을 강조한다. 특히 비현실적인 비핵화 요구로 시간을 허비하면서 세계적 전환기에 한국의 국가전략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송 전 장관은 앞으로 협상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는 도달할 가능성이 없는 허상이 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조선이 제재완화나 관계정상화 등으로 핵무장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전제로 대북정책을 전개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접근이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라는 비현실적인 허상으로 북을 상대하려는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미 북핵은 한반도와 동북아의 문제를 넘어 미··러 세력균형의 지렛대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 외교비서관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 안보실장으로 있던 2005년에 9·19 공동성명(6자 합의)을 이뤄낸 주역이 한반도 비핵화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핵을 가진 북을 전제로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게감이 남다르다.

 

이재명정부의 엔드(END) 구상이 E(Exchange·남북교류), N(Normalization·관계정상화), D(Denuclearization·비핵화)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남북관계에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는 보다 근본적으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특히 그는 한미관계에 정통한 외교관 출신으로서 한미동맹을 의존형 동맹에서 자립형 동맹으로 전환해야 하며, 한반도 핵균형이 북핵과 미국의 핵우산만이 아니라 한국의 잠재적 핵능력 확보 및 증강이라는 세 개의 축으로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그는 남북이 좋은 담장, 좋은 이웃으로 살면 어떤가?’라고 자문하고, “현행 헌법상 남북이 외국은 아니지만, 국가 간의 통상적 관계가 적용되는 정상적 이웃으로 사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통일의 길을 포기해서도 안 되고,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해서도 안 되지만, 그러나 실현 가능성도 없는 허상에 발목이 잡혀 한발치도 나아가지 못하는 현실에 고착되는 것은 국가의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공존구상은 먼저 현실을 직시하여 남북의 담장을 차가운 평화를 지키는 공존의 마지노선으로 삼아야 하고, 상호 인정의 과정을 거쳐 따뜻한 평화가 자리잡는 좋은 담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혀진다.

 

하지만 이런 구상이 진지하게 논의되고 구체적 정책이 되려면 정치권의 진영논리 및 적대적 공생이 타파되어야 한다. 그가 보수는 위기의 등장을, 진보는 위기의 해소를 부각시킴으로써 득표에 활용하는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질타한 까닭이다.

 

세계인들이 한국인들을 바라보면서 하는 말은 스스로에 대해 두 가지를 잘 모른다. 얼마나 잘사는지와 얼마나 위험한 곳에 살고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잘살고 있는지는 어느 정도 인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에 대한 인식은 더 희박해지고 있다.”(송민순, ‘좋은 담장 좋은 이웃중에서)

 

위험한 담장 밑에서 잘살게 됐다고 자족하는 것은 위태롭다. 한국전쟁 이후 70여년 동안 주기적으로 불확실성이 엄습하는 담장을 처음엔 차갑지만 나중엔 따뜻한 평화의 담장으로 전변시키기 위해서는 조선을 국가로 인정하여 남북이 통상적인 국가 간의 외교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현재로선 이보다 더 현실적인 좋은 담장은 없다.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하는 문제, 헌법상 영토조항의 문제 등은 이러한 대의를 숙고하여 정치권의 대타협 및 국민적 대합의를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위태로운 담벼락을 고수하는 신주단지가 되어선 안된다.

 

 

<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장관,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12개의 질문’  >

 

1. 국가안보와 통일정책, 이대로 가도 되는가?

2. 미국은 어디까지 한국을 보호해줄 것인가?

3. 한국의 안보에 최후의 안전장치는 있는가?

4. 자립형 동맹으로 갈 수 있는가?

5. 한반도 비핵화는 실제 가능한가?

6. 한국의 핵 능력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7. 통일은 가까운 장래에 가능한가?

8. 북한은 붕괴할 것인가?

9. 평화와 통일의 정책은 왜 성공하지 못했는가?

10. 좋은 담장과 좋은 이웃으로 살면 어떤가?

11. ·북 공존의 장애는 극복할 수 있는가?

12. ‘정상적 이웃’, 주변국 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솅겐협정(Schengen Agreemen)의 시사점

국가 간에 좋은 담장이 있는가? 유럽의 솅겐협정(Schengen Agreemen)을 그런 사례로 들 수 있다. 1985년 프랑스와 당시 서독(독일연방공화국)은 양국과 접경한 룩셈부르크의 솅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상호 국경통제를 최소화하여 민간의 자유로운 이동 및 교류를 허용하는 협정을 맺었다.

 

룩셈부르크 솅겐

 

 

솅겐은 룩셈부르크의 남동단에 위치한 곳으로 모젤 강변의 서쪽에 있는 와인생산 마을이다. 이 조약에는 룩셈부르크와 인접한 네덜란드와 벨기에도 참여하여 총 5개국의 다자협정이 이뤄졌다. 솅겐에는 솅겐협정을 기념하는 유로파 센터와 생겐협정기념박물관이 설립됐다.

 

협약국들은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서로 국경의 출입국 심사를 폐지했는데, 그 대상지역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자유왕래가 허용된 지역들을 모두 솅겐지역(Schengen Area)’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후 EU가 출범하면서 EU 회원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거의 모든 지역이 생겐지역으로 확대됐

 

 

 

 

이로 인해 솅겐지역 내에서는 여권이나 비자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비솅겐 국가인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국민도 90~180일 정도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하지만 솅겐지역들이 테러분자의 잠입루트로 악용되는 가운데 코로나팬데믹의 영향으로 일부 국가에서는 조정 및 제한을 강화하는 추세다.

 

유럽의 솅겐협정은 서로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는 가운데 민간의 왕래와 여행을 최대한 자유롭게 보장하는 좋은 담장의 사례로 들 수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 국가의 장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제 올지 모르는 통일을 위해 민족내부의 특수한 관계를 내세우며 아무런 소통도 하지 못하는 남북관계로는 최소한의 이동과 교류도 불가능하다. 이럴 바에는 남과 북이 서로 국가로 인정 및 존중하는 가운데 휴전선을 국경선으로 재규정하더라도 솅겐협정과 같은 제도를 도입하여 좋은 담장을 조성하는 구상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전반적 문화와 체제의 동질성 및 유사성이 강한 유럽과 같은 수준을 한반도에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남과 북이 그 대상 및 수준에 대해 정교하고 세밀한 논의를 거쳐 낮은 수준의 합의를 도출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개성공단은 코리아 솅겐지역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공단 내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이동이 가능했고, 한국의 기업이 설치한 은행(우리은행)과 편의점에는 조선의 국적자들이 함께 근무했다. 주요한 구조물의 경우는 현대그룹의 기술자들이 감독하는 가운데 조선의 노동자들이 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성공단은 제조업 공단으로 한국 국적자들은 일정 기간 체류가 가능했지만 개성지역 주민들은 출퇴근으로 제한됐다는 점에서 좋은 담장의 사례로 들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금강산 관광의 경우도 주로 체류가 숙박형 선박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지금은 이런 제한적 공간마저 모두 소멸해버린 상황이지만, 만약 남북의 좋은 담장을 새롭게 조성하려면 이러한 한계를 어느 정도 뛰어넘는 수준이어야 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또한 군사적으로 민감한 휴전선 일대의 육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 선박이나 비행기로 이동하는 항구 및 일대를 고려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남북의 접경지대에 대한 공동관리 및 개발 협력이 축적되면 일정한 벨트를 조성하여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수준까지 나아갈 수 있다. 또한 상대에 대한 배려를 대전제로 하여 다양한 수준과 대상을 고려한 통행지역 및 통행등급을 만들어 예상되는 우려나 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상호주의적 합의가 이뤄지려면 북에서 남으로 이동과 여행을 할 수 있는 여건과 동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남북의 좋은 담장은 관념의 산물이 아니라 분명한 동기부여와 양측의 지속적인 논의를 통해서만 그 형태를 드러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