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 불명 등 재판태업과 '빨리 빨리' 문화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통지서를 받지 않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법원의 통지서(선거법 2심)를 받지 않으면서 대북송금 재판부 기피신청을 냄으로써 사법부의 시계를 붙잡아두려 한다. 바야흐로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 및 조기대선을 앞당기려는 쪽과 이를 미루고 이재명 대표의 대법원 확정판결과 의원직 및 피선거권 박탈을 앞당기려는 쪽이 수싸움을 벌이는 통에 사법부 통지문은 '수취인 불명'의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다. 사법부는 이러한 '의문의 1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심기일전하여 '법대로' 처리하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여당은 대통령권한대행(총리)이 공석인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할 권한이 없다고 하면서 재의요구권은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권한대행도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있다고 하면서 재의요구권은 행사하면 탄핵을 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계엄사태 및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비상상황에서도 양당의 비상식적이고 지리멸렬한 정쟁은 대한민국의 경제와 국제관계에 알츠하이머 질환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국가적 리스크를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이와 관련해서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이 계엄사태를 신속하게 극복할 수 있었던 문화적, 기질적 배경으로 ‘빨리 빨리’(Hurry Hurry)를 지목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계엄선포 이후 2주만에 대통령 직무정지가 이뤄진 점을 들어 한국사회가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정면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압축성장과 정치민주화, 대중문화의 세계화를 성취하는데 커다란 힘을 발휘한 ‘빨리 빨리(palipali) 문화’가 이번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삼성, 현대 등 대기업의 성공에도 창의적인 파괴와 대담한 변화를 수용하는 ‘빨리 빨리’ 정신이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윤석열과 이재명의 ‘재판 태업(sabotage)’은 한국인의 기질과 문화에 역행할뿐더러 위기극복과 새로운 출발을 위한 국가적 요구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서로가 상대의 재판일정을 재촉하면서 자신의 일정은 늦추려는 구태정치에서 벗어나 ‘빨리 빨리’ 처리하라는 국민의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윤석열 탄핵시계와 이재명 재판시계에 투영된 대선 연장전
12.14 탄핵소추 의결로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됨에 따라 비상계엄사태가 일단락되면서 윤석열과 이재명의 사법시계가 본격 작동하기 시작했다.
계엄사태에 대한 한국사회의 신속한 민주적 교정과 민주주의 복원은 국격 훼손을 최소화하고 세계의 호평을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작금의 상황에는 권력쟁투와 정치게임이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최장 180일의 윤석열 탄핵심판과 최단 6개월의 이재명 선거법 최종판결에는 지난 대선의 연장전이 투영돼 있다. 윤은 탄핵청구가 인용되면 대통령직이 파면되고 반토막 임기로 불명예 퇴진하면서 연금도 받을 수 없다. 이는 당선무효형이 확정되면 의원직이 박탈되고 대선출마도 불가능하다. 이처럼 계엄사태와 탄핵심판에는 윤석열과 이재명의 엇갈린 운명이 담겨 있다.
윤석열의 시계 : 탄핵심판 60일~90일 예상, 사법처벌(3심제) 장시일 소요
과거 사례에 비추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은 박근혜 전 대통령(91일)과 노무현 전 대통령(63일)의 중간 수준에서 이뤄질 것으로 보이지만, 몇 가지 변수가 있다.
첫째, 헌법재판관 3인의 공석을 채워 9인체제에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것이 사안의 중대성과 헌재결정의 민주적 정통성에 부합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최대한 신속하게 재판관 추천(대통령 임명) 및 동의절차(청문회 등)를 거칠 것으로 보이지만,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에서 총리(권한대행)가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 있다.
둘째, 윤석열이 내란 혹은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는 과정이 헌재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헌법재판소법 51조에 따르면 소송중인 동일사건의 경우는 심판을 일시 중지할 수 있다. 윤석열이 체포 및 구속되거나, 수사기관의 난립으로 인한 혼선이 빚어질 경우에 헌재는 심판일정을 중단하고 사태추이를 지켜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계엄사태에 대한 수사는 검찰(특수본), 경찰(국수본), 국방부(수사본), 공수처가 진행하다가 검찰과 공수본(경찰 국방부 공수처)이 병행하는 양상이지만, 국회에서 상설특검 및 일반특검과 국정조사까지 추가할 경우에 혼란스러운 양상을 예고한다.
헌재는 사안의 중대성과 법적 최고기관의 위상을 고려하여 확정되지 않은 혐의들이 난무하는 상황이 진정되고 심리에 집중할 수 있는 시기를 저울질할 가능성이 있다.
셋째, 법조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국회의 탄핵소추가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에 위배됨에 따라 헌재에서 각하될 경우에는 탄핵소추 과정을 다시 밟아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현재로선 가능성이 희박한 시나리오이지만 헌재가 대통령탄핵의 중대성에 비추어 고도로 엄정한 법적 잣대를 들이댈 경우에는 각하의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국회는 1차 탄핵소추(12.7 148회 임시국회)에서 탄핵의결 정족수(200명)를 채우지 못하자 ‘투표 불성립’을 선언했다, 이에 대해 헌법상 대통령 탄핵은 의결정족수만 규정돼 있다는 점에서 당일 출석의원들이 투표를 마친 후에 개표를 하지 않았더라도 의결정족수 미달로 해당 안건이 부결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는 일사부재의 원칙을 고려하여 149회 임시국회(12.14)로 바꾸어 열렸고, 탄핵소추의 내용에도 추가적인 혐의들이 보강됐다.
절차의 흠결을 제기하는 관점에서는 일반적으로 임시국회를 30일(한달) 단위로 여는데 1주일 단위로 쪼갠 것은 편법이고, 탄핵소추의 주요 내용이 사실상 동일하다는 점 등을 들어 일사부재의 원칙의 위배라고 주장한다. 피청구인(윤석열)이 이러한 절차적 논란을 중대한 법적 흠결로 제기할 경우에 헌재가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미지수다.
이러한 변수들에 의해 헌재의 탄핵심판이 예상보다 늦어질 수도 있고, 변수들이 사라질 경우에는 상당히 빨라질 여지도 있다. 이 과정에서 수사기관에 의한 체포·구속 및 기소가 먼저 이뤄져 윤석열이 수감상태에서 탄핵심판에 의해 파면될 수도 있고, 탄핵심판이 이뤄진 다음에 재판절차(3심제)가 장시일에 걸쳐 진행될 수도 있다. 하지만 윤석열이 탄핵심판에서 기사회생하더라도 사법처벌을 면하기는 어렵다.
이재명의 재판시계 : 선거법·위증교사·대장동(4건병합)·대북송금·업무상배임(경기도), 3개월 이내 2심(선거법) 등 연쇄
이재명 대표의 재판시계는 선거법의 ‘재판기간에 관한 규정’과 대법원의 지침에 따라 1심에서 당선무효 및 의원직 박탈형인 징역1년(집유2년)을 받은 허위사실 유포사건의 2심선고가 2025년 3월 이전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유죄가 재확인되면 대법원 최종심에서 무죄를 받을 가능성이 희박해진다. 이재명의 선거법 재판이 6월 이전까지 마무리될 경우에 그의 대선 재출마는 무산될 수도 있다. 또한 법조계에서는 1심에서 무죄를 받은 위증교사도 2심에서 유죄로 반전될 소지가 상당하다는 견해들이 있다.
2심에서도 쌍방울그룹의 대납이 모두 인정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게 중형이 내려진 대북송금사건과 공무원 수십명이 증언했다는 업무상배임사건도 이재명의 무죄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한 이재명 사법리스크의 본체이자, 이른바 ‘권순일 전대법관 등 재판거래 의혹’과도 연계된 대장동사건을 비롯해 백현동, 위례신도시·성남FC사건은 가장 나중에 도래할 재판으로 남아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계엄사태를 이유로 대법원에 선고기일 연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유죄(징역2년)가 확정돼 수감(12.16)된 것처럼 계엄 및 탄핵이 이재명의 재판시계를 얼마나 지연시킬 수 있는지 의문이다.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일정을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여 조기에 궐위대선을 치르려고 하는 까닭이다.
이와 같이 윤석열과 이재명은 상대의 탄핵시계와 재판시계를 응시하면서 자신의 시계는 멈추거나 천천히 가기를 바라는 반면에 상대의 시계는 빨리 움직이기를 바란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사법시계는 이러한 상반된 이해를 초월하여 공정하고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하는 엄중한 과제를 안게 됐다.
이재명 일파의 20건이 넘는 탄핵공세는 윤석열 일당의 탄핵심판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윤석열과 이재명의 시계에는 인간본성의 무모한 특성들이 아로새겨져 있고, 동시에 양당의 극한적 진영대결과 적대적 공생구조가 초래한 ‘정치의 사법화’가 투영돼 있다.
군 복무자들은 흔히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을 위안으로 삼아 제대의 날을 기다린다. 그러나 윤석열과 이재명은 '내 시계는 잠자고 상대의 시계는 열심히 돌아가기를 바라는' 일종의 망상에 빠져있다.
무소불위의 현직 대통령이든, 180석 야당의 대표든 간에 누구의 압력에도 멈추지 않고 사법부의 시계는 돌아가야 한다. 헌재와 대법원은 윤석열과 이재명의 '내로남불 시계'를 영점조절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교정능력이고 민주주의다.
"쓰레기차 가고 분뇨차 오는가?"
양자의 관계를 ‘쓰레기차’와 ‘분뇨차’에 비유하는 우상파괴적 풍자도 등장하고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대통령의 무단통치와 망상계엄이 문제가 돼 사법절차와 탄핵이 진행되는데, 그 빈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이미 사실관계와 혐의가 2심까지 인정된 사람과 사실상 공범인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의 형사불소추 특권은 대통령에 대한 무분별한 형사 고소고발 및 그에 따른 수사로 국정이 혼란스러운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북송금 재판에 법관기피 신청까지 하는 것은 어떻게든 시간을 끌고 선거를 치러서 헌법상의 특권을 노리고 지연전술을 펼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이런 시도 자체가 반헌법적이다. 반헌법적인 계엄을 양분 삼아 반헌법의 또다른 씨앗이 싹트면 쓰레기차 가고 분뇨차 오는 상황으로 비유할 상황이 올까 걱정”이라고 개탄했다.
'한반도 영세무장중립 > 비상계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윤석열의 '예상 도주로'에 투영된 대통령제의 종말 (44) | 2025.01.08 |
---|---|
윤석열 2차 체포영장 발부 및 집행의 양면성 (11) | 2025.01.07 |
보수논객 조갑제·정규재가 국민의힘과 손절한 까닭 (42) | 2024.12.23 |
최민식 배우가 탄핵봉에 미안한 까닭 (50) | 2024.12.14 |
12.3 계엄령은 2차 계엄령의 예행연습 논란 (49) | 2024.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