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영세무장중립/국내(South Korea)

의료붕괴 경고 의대교수 시국선언 명단 및 전문 6종

twinkoreas studycamp 2024. 3. 10. 14:40

38일 세브란스병원(연세대의대) 신경외과 김정재 교수 등 8명을 비롯해 서울아산병원(울산대의대), 여의도성모병원(가톨릭의대), 이대서울병원, 고대안암병원, 분당차병원, 일산병원(국민건강보험) 교수 및 전문의 16명이 의료붕괴 경고 시국선언문과 동료 의사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정부의 필수의료패키지 및 의대정원 정책에 대한 입장문, 국민에게 드리는 글, 전공의에게 드리는 글, 정부에 드리는 글을 발표했다.

 

 

 

 

온라인 연대서명은 311일 오후 기준 7000명을 넘어섰다. 이날 오후 7시까지 수련병원 교수 및 전문의 4637명과 일반 의원 및 병원 의료진 2623명을 합쳐 총 7260명으로 집계됐다.

 

전국 수련병원 소속 교수 및 지도전문의 시국선언

 

2024년 의료 붕괴를 경고하고 의료개혁을 촉구하는 전국 수련병원 소속 교수 및 지도전문의 시국선언

 

 

현재 정부의 일방적인 의료 정책 추진은 대한민국의 우수한 의료체계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우리는 최일선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사로서 빠른 시일 내에 이 사태가 종식되지 않을 경우 전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심각히 위협받을 것임을 깊이 우려하는 바이다. 의료 현장의 전선에서 헌신적으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전국 의과대학 및 수련병원 소속 교수 및 지도전문의들은, 우리의 양심과 직업적 소명에 따라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는 필수의료의 붕괴와 지방의료의 위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준엄하게 묻고자 한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탁월한 의료를 자랑해오면서, '값싼 의료'의 뒤에 숨겨진 의료진의 과도한 부담은 간과하였다. 지난 20년 동안 의료계가 필수의료의 쇠퇴와 그에 대한 근본적 해결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조했음에도 정부는 이러한 경고를 무시했다.

 

우리는 정부가 필수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이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중증, 응급, 그리고 지역 의료 붕괴이다. 일방적인 '필수의료 지원' 정책이 결국 현장에서 외면받고 실패를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오늘도 이를 반복하며 의료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는 정부가 의대정원 증원을 포함한 의료 정책에 대한 비판적 논의에도 열려 있을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 정부는 급격한 증원이 수반하는 실질적 문제와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

 

우리는 정부에게 전공의들을 향한 위압적 발언과 위협을 중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전공의들은 피교육자로서 더 이상의 수련을 포기했을 뿐 환자를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님을 천명하는 바이다. 전공의들이 각각 흩어진 것은, 정부가 의료계와의 협의를 완전히 단절하고 통제와 억압만으로 어떠한 저항이나 반론도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분노, 극심한 좌절감과 무기력함의 절박한 표현이다. 우리는 그 심정을 깊이 공감하며 이들을 끝까지 보호하고 지지할 것을 약속한다.

 

우리는 정부가 필수의료 붕괴와 지방의료 위기를 구제할 대책을 제시하여 전공의들과 현장에 종사하는 의료진들의 비판적 의견 또한 수용하고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것을 촉구한다. 정부가 이러한 최소한의 의지조차 보이지 못하고 의료 대란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국민들은 정부의 무모하고 무책임한 모습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우리는 국민, 의료계, 그리고 정부의 협력을 통한 진정한 의료 개혁의 시작을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의료의 핵심 주체로서 시민적 가치에 부합하는 책임과 윤리를 명확히 인식한다. 또한 의료계 전반이 더 높은 수준의 전문가 정신을 바탕으로, 용기 있는 자기 성찰과 변화를 추구하는 데 적극 참여할 것을 선언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올바른 의료개혁과 미래의료의 발전을 추구하는 주체로서 필요한 책임을 다할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의료체계의 가치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정부는 의사들을 척결의 대상이 아닌 의료개혁의 동반자로서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 정부의 토끼몰이식 강경대응이 초래한 의료 붕괴는 결국 국민에게 고통으로 돌아갈 것이다. 모든 이해관계자들은 이성을 되찾고, 정부와 의료계 대표는 함께 허심탄회하게 합리적 방안을 논의하여 해법을 도출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환자를 위해 현장에서 사력을 다하며 매일을 버티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한계에 다다르고 있으며, 최악의 의료 파국이 임박하고 있음을 강력히 경고한다.

 

2024 3 8

 

대한민국 의료를 위해 함께 고민하는 교수/전문의 16명 일동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강도윤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종양혈액과 고경남

여의도성모병원 외과 김성근

강남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김우람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김정재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김충기

이대서울병원 산부인과 문혜성

분당차병원 응급의학과 박수현

세브란스병원 신생아과 신정은

세브란스병원 심장내과 안철민

국민건강보험일산병원 산부인과 윤지선

강남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이재훈

고대안암병원 가정의학과 한병덕

세브란스병원 대장항문외과 한윤대

세브란스병원 소아혈액종양과 한정우

강남세브란스병원 혈액내과 현신영

 

김정재(세브란스)

 

강도윤(서울아산병원)

 

김성근(여의도성모병원)

 

문혜성(이대서울병원)

 

백소현(분당차병원)

 

 

유지선(일산병원)

 

한병덕(고대안암병원)

 

현신영(강남세브란스)

 

 

경하는 전국의 수련병원의 교수, 전문의들께

 

엄중한 시기를 맞아 고난을 겪고 계실 대한민국의 의사 선생님들께 서면으로나마 정중하게 인사 올립니다. 저희는 수련을 잠시 쉬고자 결정한 후배 전공의들의 빈 자리를 채우며, 환자를 돌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수련병원의 교수, 전문의들입니다. 정부의 독단적인 의대증원으로 촉발된 국가 의료 체계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2024년 의료 시국선언문연대 서명을 간곡히 요청 드리고자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 체계는 붕괴 직전의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전공의들은 심각한 좌절과 무력감을 느끼며 현장을 떠났고 정부는 의료 붕괴의 위기에 아랑곳없이 밀어붙이기식 정책으로 타협 없는 강행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불안은 나날이 커지고 있으며,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는 우리들은 하루하루 사력을 다하고 있으나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부는 전공의들에게 강력한 법적 처벌을 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의사들에까지 압박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강경대응은 정부와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킬 뿐 아니라, 우리의 후배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올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만드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직업의식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본연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민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소리 높여 외쳐왔으나 점점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공의들의 좌절과 분노, 무기력을 이해하고, 이들을 향해 진실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사명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정부의 강력한 압박과 통제 속에서도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뜻을 모으고자 합니다.

 

1%의 가능성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같이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위기를 넘어서, 미래의 의료 문제와 그 해결 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메시지를 세상에 전하고자 합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성을 담아 한 목소리로 말한다면, 사회는 우리의 메시지에 보다 더 귀 기울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원하는 의료 발전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의사 구성원들이 단합하여 현재의 위기 극복에 동참하기를 바랍니다. 보다 많은 선생님들의 지혜와 경험이 더해질 수 있다면 이는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뜻을 모으는 데에 적극 동참해 주시리라 믿으며, ‘2024년 의료 시국선언문에 연대 서명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서명 사이트>

https://saveourkmed.modoo.at/?link=7nyiwyjy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패키지’  정책에 대한 입장문

 

우리는 오늘날 의료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환자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전국 의과대학 부속병원, 수련병원 소속 교수, 전문의들입니다. 우리는 환자들을 질병으로부터 구하는 자부심으로 살아가고자 대학병원을 삶의 터전으로 선택하였으며 더 높은 수준의 의료와 의학의 발전을 위해 헌신하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의료의 최일선에 서있다는 자부심, 무엇보다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유하는 고귀한 직업적 가치를 소중히 하며 환자들과 함께 있음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오늘날 의료현장에서는 환자를 돌보는 데에 열의를 다하던 전공의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정부가 주장하는 필수의료 살리기가 실제로는 의료를 철저히 통제하고 억압하며, 의사들의 책임 있는 의업의 수행을 오히려 가로막는 결과로 이어질 것임을 앞장서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정부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 기반하지 못한 정책을 무리하고 성급하게 추진하지 말 것을 강력히 주장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수많은 경고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였습니다. 반대의 목소리를,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모든 합리적 요구조차 강압적으로 틀어막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의 분노는 좌절로 이어졌으며, 무력함은 그들이 스스로 의업의 길을 내려 놓겠다는 결정으로 이끌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분노와 좌절이 의료계의 미래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를 절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정부가 그토록 말하는 필수의료가 의료의 본질적 가치인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살리기 위한 의료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사명감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이에 우리는 국민, 전공의, 정부를 향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힙니다.

 

 

국민들께 말씀드립니다.

 

저희는 전공의들이 현실에 대해 느끼는 깊은 좌절과 분노로 스스로 의료현장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들께서는 의료가 얼마나 위기에 처할 것인지 불안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저희들은 스승으로서, 혹은 선배의 입장에서도 그들의 결정을 차마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침몰하는 난파선과 같이 위태로운 운명을 맞이할 대한민국 의료라는 커다란 배에 그들을 억지로 태우고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의료의 현장에서 잠시 쉬고자 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까닭은 그럼에도 저희가 그들의 빈자리를 대신하며 환자 곁을 지킬 수 있으리라는 당연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의료를 저버린 것이 아니라 저희에게 의료에 대한 책임을 잠시 맡겼다고 믿고 있으며, 저희는 그들의 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기성세대로서 의료계의 현재 모습에 대해 일정한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현재의 의료혼란을 초래한 책임을 의사들에게 묻고자 하신다면 이는 전공의가 아닌 저희를 비롯한 기성세대를 향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우리나라의 의료에서 전공의들은 피교육자의 입장보다는 값싼 의료를 가동하기 위한 효율적인 자원으로 취급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떠난 병원의 공기는 기계가 멈춘 공장처럼 고요하며, 그 뒤에 환자분들의 아픔이 더욱 크게 울리고 있음을 저희는 더욱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저희 교수들은 환자분 곁을 지키고자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정부가 의료계와의 진정한 대화와 협의의 과정에 나설 것이며 합리적인 최선의 결정으로 사태가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 하에 사력을 다하여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저희의 여력이 무한하지는 않기에 한계에 도달하는 시점이 그리 멀지 않을 것입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하고자 하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넘어 의료붕괴의 과정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의 극단적 갈등 상황을 풀어낼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의료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권력과 책임은 정부의 것입니다. 가능한 모든 권력 수단을 동원하여 강압적으로 의사들을 통제하겠다고 나서는 정부에 대해 세계의사회를 비롯한 국제 사회도 많은 관심과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전공의들의 공백으로 위기에 처한 의료현장에 대해 정부가 공언하고 있는 의사면허 박탈이라는 강력한 처벌은 오히려 긴장과 갈등을 높이기만 할 뿐입니다.

 

정부는 진정 의료의 위기를 종식시키고 환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노력보다 맹목적으로 정부 정책의 추진이라는 목표에 집착하며 이번에 의사들을 완전히 짓눌러야 한다고 국민 여론을 부추기는 데에 전력을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일부 의사들의 잘못된 행태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많은 국민 여러분께서는 의사들에 대해 적지 않게 실망하며 질책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면의 어두운 실상을 직시하고 근절하기 위해 의료계가 얼마나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지 우려하시는 말씀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의사들 또한 보통의 사회인에게 주어진 직업적 책무와 마찬가지로 그저 직업으로서 환자들을 돌보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으로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의 직업적 역할을 넘어서 보다 높은 수준의 전문가적 가치를 지향하고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명과 책임에 대해 보다 많은 의사들이 절실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의료계 내에서 우리가 진정 추구하고자 하는 소중한 가치를 해치는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대해 스스로 단호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더욱 절실히 깨달을 것입니다.

 

우리는 국민 여러분께 의사들에 대해 느끼셨던 실망감을 이해하며, 동시에 상황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아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저희들은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의 심정과 생각을 짐작할 수조차 없습니다. 자유의사로 사직하겠다며 현장을 떠나겠다는 의지에 정부의 일방적 정책에 대한 항거의 뜻이 담겨있었다고 하더라도, 정부가 면허를 박탈하겠다며 윽박지르는 상황이 날로 거세지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저 어떠한 저항도 포기하는, 극단적인 무기력에 이르게 된 것으로 헤아릴 뿐입니다.

 

어떠한 목소리도, 어떠한 요구도 강력하고 일방적인 정부의 권력 앞에 아무런 저항의 수단이 없다는 무력함이 스스로 의업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꺾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이러한 경험과 상처가 깊어지지 않도록, 반대로 이들의 공백으로 인한 국민들의 우려 또한 더는 깊어지지 않도록 빠른 시일 내에 잘 마무리되는 것만이 저희 교수들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의 바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의료정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갈등을 빚는 일은 세계적으로 드물지 않은 있는 모습입니다. 때로는 의사들이 전면적인 파업에 나서는 나라들도 있으나 그 어떠한 곳에서도 이러한 투쟁에 대해 그저 환자의 생명을 볼모로라는 표현으로 비난하거나, 공권력을 동원하여 구속수사를 원칙이라는 식으로 강력한 사법적 처벌을 가하겠다고 하는 나라는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이는 대다수의 국가에서 긴급의료 서비스를 유지하는 등의 제도적 바탕 하에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최대한 보호하면서 의사에게도 집단행동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210, 태국 방콕에서 열린 제63WMA 총회에서 의사의 단체행동에 대한 윤리적 의미에 대한 성명에서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설정하면서 최근에 노동 조건에 대한 의사들의 만족도가 저하된 나라들에서 의사의 집단적 행동이 점차 증가하여 흔한 일이며, '의사들이 전문가적 의무를 지는 동시에 피고용자임'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언제든 가능하다면, 의사들은 비폭력적 공공 집회, 로비와 홍보 혹은 정보를 제공하는 캠페인 혹은 협상 혹은 중재를 통한 개혁을 위한 압력을 행사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만약 단체행동에 참여한다면, 국가의사협회들은 대중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행동해야 하고, 파업기간 내내 필수적 및 응급 의료 서비스와 치료의 연속성이 제공되는 것을 보장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조직화된 파업이나, 어떠한 단체 내의 체계적 협의조차 '집단행위교사'의 혐의로 강력한 형사처벌을 예고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결정만이 허용되는 전공의들은 의료 현장을 떠남에도 저희 젊은 교수들을 비롯한 많은 선배 의사들, 전문의들이 보다 더 고생은 하겠지만 당연히 '필수적 및 응급의료 서비스와 치료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리라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수련 과정에 있는 초보 의사들이 현장을 이탈하는 것만으로 체계적인 의료서비스 제공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 취약한 국가 의료 체계라고 한다면, 이는 정부가 얼마나 값싼 의료로만 국민건강을 책임지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던 것인지 부끄럽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저희들을 비롯한 많은 의사들이 국민 여러분들께 필수적 및 응급의료 서비스와 기존에 받고 계시던 치료의 연속성을 보장하면서 정부에 맞서 저희의 요구와 의견을 합리적으로 전달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의사들의 단체행동은 전혀 허용되지 않으며 현실적으로 어떠한 노동 쟁의행위의 형태도 인정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의사들은 스스로의 권익을 침해하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조차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정당하게 집단행위가 보장이 되었다면 건강과 생명을 최우선으로 하는 방안들을 마련하면서 국민들을 보호하고, 의사들이 정당하게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향해 쟁의할 수 있는 과정에서 의료 현장의 혼란도 최소화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집단의 생각과 의지를 완전히 꺾겠다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에 더 이상 맞설 수조차 없다고 분노하고 좌절한 다수의 개인이 어떠한 질서와 합의없이 모두 현장을 떠나버린 것이 현재 상황입니다. 그조차도 실상은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닌, 저희와 같은 대다수의 전문의들이 의료현장에 종사하며 의료체계는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에 자랑하는 의료의 실체는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더 값싸게의료를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위대한 의료의 유산에는 선배 교수들을 비롯한 많은 의사들의 피와 땀이 담겨있습니다. 동네 의원에서 경험 많은 전문의를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나라, 하지만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이 근처의 응급실 문턱을 넘지 못하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국민들께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소위 빅5 대학병원의 응급실에서는 경증환자가 90%의 병상을 차지하며 위중한 환자를 위한 자리 하나를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의료의 비정한 현실이며 응급실 뺑뺑이의 실체입니다. 3시간을 넘게 오고 1시간을 넘게 기다려 고작 ‘3분 진료를 받고 돌아서게 되는 분들의 허탈한 심정 또한 저희 교수들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손쉽게 의료를 이용하지만 의료를 신뢰할 수 없는 사회에서 의료소송의 위험은 날로 높아지고 필수의료는 더욱더 외면당하고 있습니다. 의료계의 병폐는 하루 이틀의 것이 아닙니다. 의료의 최일선에서 종사하는 의사들은 이러한 병폐의 해결을 위해 줄기차게 정부에 요구하였습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편안한 의료이용을 방관하는 동안, 의료전달체계와 지역의료가 붕괴하고 의료의 불균형은 심화되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 한계에 처한 의료의 문제는 정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과정이 누적된 결과이며 이러한 체계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해법은 과거에 비해 더 복잡하고 고질화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전공의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필수의료 영역의 공백이 큰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지난 십 수년 간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의대정원의 증대와 허울뿐인 필수의료 패키지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마술봉을 휘둘러서 황금궁전을 짓겟다는 허황된 생각과 다름없습니다. 국가와 정부의 통제 하에서 의사들은 무조건적으로 일방적인 정책에 따라야 한다는 극단적 관료주의와 권위주의에 입각한 정책으로는 의료를 살릴 수 없습니다.

 

정부의 의료정책은 결국 의료현장에서 실현됩니다. 따라서 정부가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그저 강압과 통제가 아니라 의사들과의 협력과 이해를 바탕으로 의료현장에서 의사들이 국민들과 함께 실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그러한 의지를 갖고 의사들과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에 나설 수 있을 것인지 매우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국민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간곡한 부탁의 말씀을 올립니다. 저희를 비롯한 절대적인 다수의 의사들은 각자 선량하게 의업에 충실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하지만 보다 높은 시각에서 의료계에 존재하는 문제에 책임 있게 바라보고 해결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이 기성세대로서의 한계였을 수도 있음에 대해 더 고민할 것입니다.

 

저희는 주도적인 시각에서 의료를 깊이 있게 바라보고 국민들께서 안심하고 올바르게 의료를 이용할 수 있도록 더욱 고민하여 진정한 의료개혁에 앞장서고자 합니다. 이것은 저희를 비롯한 전공의, 의대생들이 함께 이뤄 나가야 할 의료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의료계가 느끼는 위기의식이 국민들께서 일깨워 주신 덕분임을 오히려 감사히 여기며, 오늘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많은 의사들이 주체적으로 의료의 발전을 위해 국민 여러분과 함께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공의들께 말씀드립니다.

 

먼저 전공의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우리는 그대들이 스스로 의료 현장을 떠나고자 하는 초유의 사태에 처한 지금, 선배로서 혹은 스승으로서 그대들의 앞에 서서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적극적으로 항거하지 못하였습니다.

 

선배들처럼 우리 젊은 대학교수들 또한 밀려드는 환자들에 시름하며 그저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최선의 덕목이라는 생각을 당연히 여겨왔습니다. 많은 젊은 교수들은 외래, 수술, 연구, 당직 업무까지 여러분 못지 않게 바쁘게 살아가고 있음을 그대들께서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은 여러분들에게 좋은 의사로서의 본보기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과중한 업무를 당연시 여기는 의료계의 관행은 헌신이라 불리었으나 이는 오히려 의업의 고귀한 가치를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과중한 노동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의 노고 또한 가볍게 여기는 잘못된 관행을 낳았습니다. 그 덕에 이룩한 값싼 의료는 수많은 병원들의 수익을 위태롭게 만들었으며 교수들로 하여금 더욱 과중한 업무와 수익추구에 내몰리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의 많은 교수들은 전공의들에 대한 교육과 수련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쏟지 못하고 있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의학뿐만 아니라 우리의 터전인 의료와 사회를 두루 살펴보면서 미래를 향해 우리가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정부가 제시한 의대정원 증원 및 필수의료패키지정책 추진에 대해 여러분이 느끼는 분노와 좌절은 우리의 심정과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러분들이 오늘 의료 현장을 떠나는 시간이 그저 잠시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상황의 빠른 해결이 절실한 과제임을 잘 알고 있고 있으며 이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진정한 의료의 개혁과 발전적 과제가 결코 정부의 일방적인 강압에 놓여있지 않도록 우리 젊은 세대가 함께 연대하고 꾸준히 노력해 나갈 것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전공의가 사회인으로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좋은 의사로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전공의들이 충분한 여건에서 수련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존중받을 수 있도록, 올바른 의료 여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함께 고민하고 노력하였으면 바랍니다. 여러분의 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정부에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정부가 제안한 의사수 증원정책 결정과정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근거와 논의 과정에 대한 설명을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난 수개월 동안 의대정원에 대한 논의 과정에도 밝혀지지 않았던 구체적인 의대증원의 규모가 최근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깜짝 발표된 배경에 대해 정부는 과학적인근거를 바탕에 두고 있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논의의 과정에서 왜 과학적인검증의 절차를 거치지 않았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학계에서 과학적인 연구의 결과에 대한 신뢰수준은 그 연구를 검증하는 강도에 비례합니다. 그 숫자가 갑자기 발표된 탓에 논의 과정에 있어서 정부가 제안하는 숫자에 대해, 그 근거에 대해 각계의 비판적 의견을 충분히 수용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이는 과학적인관행에도 전혀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과학적 관점에서 그 숫자에 대한 신뢰성을 의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깁니다.

 

의사들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 심지어 정부가 제시하는 근거를 뒷받침하는 연구의 책임자들조차도 정부가 연구의 결과를 적절하지 않게 적용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모두들 현재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이 과도한 수준이며 보다 신중히 접근할 것을 말하고 있는데, 여전히 정부에서는 2천명의 숫자는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것에 우리는 어떠한 연유로 당장 이러한 대규모 증원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것인지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학적이라고 하는 것이 곧 진리인 것은 아님을 정부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진리에 매우 가깝다고 여겨졌던 과학적 성과가 시간이 흐른 뒤 배척되는 사례는 과학계에서 드물지 않습니다. 더구나 지속적으로 변하는 불확실한 미래의 변수를 적용해야 하는 과학적 연구의 결과는 결코 완전하다거나 절대적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 훗날 만일 오늘의 결정이 잘못된 추계에 근거하여 섣불리 시행한 정책임을 알게 되더라도 이를 결코 쉽게 되돌릴 수 없으며 또다시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이러한 위험을 감안할 때 독립적인 추계 기관을 통해 지속적으로 적정 의사수를 예측하고 이에 관한 정책의 방향을 유연하게 수정해 나갈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당장 의사수를 못박아 시행하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안입니다.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입장에서 현재 시점에서 의사수 증원이 반드시 필요하고 판단하더라도, 이에 대한 논의는 현재 제시된 연구가 가지는 제한점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논쟁을 충분히 허용하고 정부는 공정한 심판의 역할에만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공정과 합리에 근거한 과학적인 절차를 통해 도출한 적절한 의사수에 대한 추계가 일정 규모의 의사수의 증원을 요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이를 의료계가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여건과 상황이 되는지에 대해서 또한 공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현재와 같이 정부가 못박은 증원 규모에 맞추기 위해 각 대학으로 하여금 의대증원 수요를 써내도록 하는 방식은 전혀 합리적이라고 이해하기에 어렵습니다.

 

정부가 제안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국민이 신뢰하고 의료인은 자긍심을 가지는 필수의료를 비전으로 제시한다면서 정작 시작부터 의료인의 자긍심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정부의 필수의료 패키지는 다양한 실천과제들을 빼곡히 담아놓고 있으나 실제 구체적인 실행 계획에 대한 설명은 부실합니다. 정부는 개별 정책과제들에 대하여 얼마나 준비된 방안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정책과 관련한 구체적인 숫자 또한 제시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정책을 바라보는 의사들이 쉽게 수긍하기 어렵습니다.

 

정부는 그저 준비된 정책이라고만 말할 뿐 막상 정책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의사들이 어떻게 이 정책들을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가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정작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는 정책의 내용들조차 필수의료 현장의 최일선에 있는 우리 교수들의 시각에서 감사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합니다. 이것이 의사들의 잘못일까요?

 

실제로는 필수의료 살리기와 별 연관도 없으면서, 개원면허, 진료 적합성 검증, 비급여 관리에 대한 전면적 통제 강화와 같은 방안을 담아내는 것은 의료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인식만 강화시킵니다.

 

정부의 이러한 통제적 방침은 오히려 정부의 정책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받아왔던 필수의료영역에 종사하는 의사들의 불안을 자극합니다. 지금은 당장의 당근책으로 의사들을 유인하더라도, 언제라도 여건이 좋지 못하다면 가장 먼저 재정과 지원이 삭감되고 열악한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는 당연할 수밖에 없음을 정부가 진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일선의 의사의 눈높이에 철저히 맞춘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쉽사리 후배들이 선택하기에 어려운 영역임을 우리 교수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정책이 지난 십 수년 간 이어지면서 몇몇의 임상 영역은 완전히 고사 직전에 이르렀으며 그러한 현황을 알고 있음에도 정부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음을 먼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실책의 원인은 의사들이 어떠한 심정으로, 어떠한 이유로 필수의료를 선택하는지 혹은 떠나는지 정부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매번 정부는 그저 급여의 차이가 필수의료에 대한 외면의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하며 국민들께 잘못된 인식을 심고 있습니다. 저희 교수들이 만나는 학생들, 전공의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필수의료 영역에 종사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합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필수의료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많은 의사들이 지속적으로 호소해 온 현장의 어려움이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직접 보고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필수의료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던 미래 세대들이 작금의 상황을 보면서, 정부가 과연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진정성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노력을 계속할 것인지 믿을 수 있을까요?

 

폐허가 된 아파트에 외벽만 그럴듯한 페인트를 칠한다고 사람들이 들어가서 살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황폐화된 필수의료에 대한 개혁은 잠깐의 재정적 지원이나 그럴듯한 포장들로 그저 사탕 발린 말로 어린아이 꾀어내는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얼마 간의 돈을 더 준다고 하여 필수의료에 우수한 인재들이 더 몰리지 않듯이, 반대로 다른 의료영역의 수익을 떨어뜨린다고 하여 필수의료에 떠밀려오듯 인재들이 찾아올 리도 없습니다.

 

의료의 본질에 가까이 자리잡고 환자와 국민들의 건강에 더 기여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어느 시절에나 일정 비율 이상으로 존재합니다. 이들을 필수의료의 영역에 붙잡아 둘 수 있는 충분한 유인이 무엇인지 정부도, 의료계도 더 고민하고 좀더 해답에 가까운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의사협회는 1988년 의료사고처리특례법 제정을 처음 건의하였다고 합니다. 무려 36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뜨거운 논란의 뒷면에서 갑작스럽게 해당 법의 제정을 공언하였습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사법리스크를 완화해 필수의료인력의 이탈을 방지하고, 환자는 소송까지 가지 않더라도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당 법안이 과연 필수의료 의사들의 사법리스크를 줄여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의료분쟁에 있어서 형사소송이 남발되고 실제 처벌로 이어지는 사례들이 의료계에 전해지면서, 사법리스크는 현실적 공포가 되었습니다. 그 중 가장 치열한 갈등이 불거지고 의사의 입장에서도 고통스러울 수 있는 사망사건에 대한 특례는 가볍게 결정하기 어렵겠습니다만, 반대로 이것이 배제된 특례라면 필수의료의 입장에서는 가장 무거운 사법리스크에서는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반의사불벌의 조건은 실질적으로 환자 측에 있어서 의사의 형사적 처벌 가능성을 면해줄 수 있는 중요한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만 가질 뿐입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건에 있어서 의사들의 사법리스크를 경감시키는 데에는 별 효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배상보험을 통한 의료분쟁의 원활한 해결은 분쟁조정의 과정이 합리적이라는 전제 하에서 바람직한 방향일 가능성은 있습니다. 핵심은 의료과실에 대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얼마나 기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부분인데 이 점에 있어서 의사와 환자 측 모두 상당한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체계가 충분한 신뢰를 가지지 못할 경우, 장기적으로는 의료 분쟁에 따른 비용만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이며 그 부담은 전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필수의료 영역이 더 크게 짊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적절한 지원 방안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 결국 필수의료를 더 어렵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정부는 이렇게 논란이 많은 법에 대해 당장 이번 달 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입법부가 이 법을 쉽게 통과시켜 줄 것이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의료 현장에서 환영받을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의 반대로 실질적으로 국회에서의 성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가 필수의료 의사들을 충분히 지원할 것임을 설득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에, 의사들에게 전해진 선물은 그 무엇도 마땅한 것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필수의료 의사들이 까다롭고 탐욕스러운 탓은 아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