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에서 파헤친 것은 한국의 전통적 매장문화가 아니라 일본인들의 시대착오적 정신세계였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와 엔저가 겹치면서 일본 여행이 활짝 열린 시기에 '묘바람'을 막으려고 시작한 파묘가 일본의 과거 행각을 캐냈다는 영화의 결말이야말로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를 일본의 공격적 집단주술과 한국의 방어적 집단주술을 다룬 만화적 무속영화라고 하기에는 역사적으로 누적된 팩트의 질량이 무겁다.
묘바람에 투영된 일본의 정신세계
‘파묘’라는 말은 부관참시와 같이 뭔가 불온한 뉘앙스를 갖지만, 후손들이 조상의 묘에 물이 차는 등 문제가 생길 경우에 이장(移葬)하거나 다른 이유로 합장(合葬)을 할 경우에 불가피한 과정이다. 첩장(疊葬)이라는 것도 남의 명당(묘)에 슬쩍 암장 (暗葬)하는 불청객(uninvited guest)을 말하는데, 영화에서는 천하의 악지(惡地)에 첩장한 '험한 것'이 발견된다.
영화 ‘파묘’는 MZ세대에게 낯선 장례문화와 풍수지리 및 무속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지만, 주인공들이 오래된 친일 귀족의 무덤을 파헤쳐 발견한 것은 일본인들의 기이한 정신세계였다. 그건 험한 것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백두대간 등에 쇠말뚝을 박아놓은 것으로 부족해서 일본 귀신을 친일 귀족의 묘지 밑에 암장한다는 설정은 픽션이지만, 뭔가를 박아서라도 저항의 기(氣)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의 무속적 세계관은 팩트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문을 외는 공격적 집단주술도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신령한 할매가 등장해 여주인공(무속인)을 보호한 것도 방어적 집단주술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지만, 삼신 할매는 뭔가 페미니즘적 뉘앙스가 있어서 이 시대에 재해석될 요소들이 있을 법하다.
일본인들의 특이한 정신세계와 문화에서 신토(Shinto, 神道)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지배적이지만, 시대와 세대의 변화에 따라 소프트해졌을 뿐이다. 숭상의 대상이 살인귀와 같은 괴수들에서 귀여운 요괴들로 변했다고 해서 정신세계의 바탕이 바뀐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신토는 원시적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이 불교의 유입, 다이묘(영주)와 텐노(천황), 민간의 범신론적 토속문화 등과 뒤섞여 발달했다. 특히 일본 열도의 잦은 지진·화산폭발·쓰나미와 같은 재앙적 자연재해와 장구한 내전으로 인한 민중들의 생사불명과 만성불안 및 그로 인한 체념은 범신론적 다신교가 융성하게 된 인문지리적 배경으로 볼 수 있다.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불안과 공포, 충격과 무상(덧없음), 무기력과 공허 등은 집단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잡신의 요람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토는 제국주의시대에 ‘국가신토’라는 국가종교로 제도화됨으로써 천황파쇼체제의 이데올로기로 둔갑해서, 조선총독부는 서울 남산에 신사(조선신궁)를 세워 식민지 어린이들에게 참배를 강요했다.
당시 주기철 목사 등은 신사참배를 민족적 굴욕은 물론이고 신앙의 자유를 부정하는 시대착오적 억압으로 간주했다, 특히 목회자로서 기독교신앙에서 죄악시하는 미신숭배에 앞장설 수 없었다. 그는 끝까지 거부하고 항거하다 숨졌다. 반면에 일부 가톨릭 사제들은 타협적 자세를 보였다고 하여 훗날 논란이 되기도 했다.
사요나라( さようなら), 수천만 카미의 나라
신토에서 신앙의 대상인 카미(신)는 800만에 달하고, 제법 알려진 '동네 신'까지 합치면 3000만이 넘는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인구수만큼 많은 신을 모신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신토에 대한 이해는 하나의 종교라기 보다 일본의 정신세계와 전통문화로 접근할 필요가 있지만, 신토는 근대 이후에도 해외의 보편적 종교들의 유입을 차단하거나 경합해서 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종교적이다.
또한 신토는 신사(神社) 문화와 결합해서 ‘야스쿠니 신사’와 같이 일본의 텐노, 군국주의 전통, 그리고 종국적으로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을 외면하거나 가로막는 정신적 요소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이다.
텐노의 혈통은 만세일손이라는 비현실적 특수성을 민족이데올로기로 삼거나 2차세계대전 항복에서 국체호지(천황제 존속)를 거의 유일한 조건으로 내세운 점 등은 일본인들의 정신세계가 세계인들의 시간표와 차원을 달리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정신세계에서 독도가 일본의 영토이기 때문에 한국의 지도에서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다. 다만 이런 ‘정신이상적 발상’이 일부 정치인들의 망상이 아니라 대다수 일본인들의 일반적 생각이란 점은 불편한 진실이다.
역사는 기억전쟁이라고 하지만, 현재적 필요에 의해 과거의 객관적 사실을 바꿀 수 있다는 일본사회 저변의 역사관은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추구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난해한 과제로 남아 있다. 아마도 욱일기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집착을 모른 척하거나 기다릴 수밖에 없을 터이다.
역설적으로, 묘바람은 화장이 일반화되는 요즘에 시대착오적이지만, 신토는 4차혁명이 아니라 5차혁명의 시대에도 건재할 것이란 점에서 시대착오적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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