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이 누적 관객수 1,300만명을 넘어 장기흥행에 성공하면서 1979년~1980년의 사회상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실제로 유신체제의 붕괴로 인한 정치적 해빙은 12.12 군사반란에도 불구하고 척박한 노동현장에 변화를 가져왔다.
“3월 2일부터 8시간 노동제를 시행한다.”
1980년 2월 마지막 날에 해태제과 현장관리자들이 각 파트의 작업자들에게 공지한 내용이다. 이로써 해태제과 노동자들은 1976년부터 요구했던 8시간 노동제를 마침내 실현했다.
그 여파로 롯데, 오리온 등 동종업계의 주요 기업들도 8시간 노동제로 돌아섰다. 장시간 노동의 대표적 업종이었던 제과업계에도 ‘서울의 봄’이 온 것이다. 해태제과 여성노동자들은 ‘봄의 전령사’였던 셈인데, 하지만 그들이 봄을 알리는 과정은 험난하고 처절했다.
1980년 5월 광주학살 이후 전두환의 철권통치로 인해 노동계는 다시 얼어붙었지만, 1987년 6월항쟁 이후 정치적 변화 속에서 7·8월 노동자 대진출이 나타났다.
정치적 자유와 선진국 반열에 오른 경제적 성취를 이룬 대한민국. 지금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는, 이제 60~70대의 해태제과 할머니들의 삶과 사회적 공헌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18시간 노동에 질린 여성 노동자들
1975년 9월 해태제과 양평공장 노동자들이 노동청 지방사무소에 ‘18시간 노동’과 휴일 근무를 시정해 달라고 진정했다. 그 이후 6개월 동안 서명운동도 병행했다. 그 여파로 국제자유노조연맹(ICFTU) 본부에서 한국노총에 실태조사를 의뢰하기에 이르렀다.
국제자유노조연맹은 친소 사회주의 계열이 주도한 세계노조연맹(WFTU)에서 탈퇴한 영·미 및 유럽권 노조들이 1949년 11월에 창설한 조직으로, 한국에서도 당시 대한노총(한국노총 전신)이 12월에 가입했다.
국제적 관심과 압력이 높아지면서 해태제과는 18시간 노동을 12시간 노동으로 전환하고, 7부제 작업을 휴일근무제로 대체함과 동시에 식사시간 30분에 휴식시간 30분을 추가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들이 주축이었던 제과업계의 노동자들이 남긴 기록들에는 장시간 노동으로 피로와 각종 질환 및 후유증을 호소하는 내용들이 전해진다.
1979년 7월 해태제과 노동자들은 산업선교회관에서 8시간 노동제에 대한 사측의 약속이 나올 때까지 8시간만 근무하고 퇴근하기로 결의하고 실제로 이를 결행했다.
이에 대해 해태제과 생산부장은 8시간 노동제를 해 주겠지만 당장은 어렵고 불황을 넘기고 언젠가 실시할 것이라고 회유했다고 한다.
하지만 비스킷부의 ‘8시간 근무 후 퇴근’은 캔디부, 카라멜부, 껌부 등으로 확산돼 생산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이에 사측에서는 남성 기사들이 여성노동자들에게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노조 대의원들을 감금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특히 1979년 8월 4일 새벽에는 비스킷부의 퇴근 현장에 10여명의 남성이 몰려와 폭언과 협박을 자행했고, 여성 노동자들이 이에 굴복하지 않자 폭행사건이 연발했다. 일부 노조 대의원은 폭행을 당해 중환자실로 옮겨질 정도였다.
한번은 남성들이 몰려와 쇠 덩어리를 넣은 무거운 냉장고 20여대로 출구를 봉쇄하고 퇴근을 못하게 하면서 작업을 강요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작업장 출구에 철조망까지 설치했다고 하니 강제노역이 따로 없었다.
이런 비상식적인 일은 종말을 향하고 있었던 유신체제 아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1979년 8월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명령으로 구성된 ‘산업체 등에 대한 외부세력 침투실태 특별조사반(반장 박준양 대검 공안부장)’이 해태제과를 조사했지만, 비스킷·캔디·카라멜·껌 노동자들에게서 그런 혐의를 찾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한국노총 산하 전국화학노조(위원장 정동호)가 나서 주요 제과업계와 12시간 노동의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제과업계는 해태, 롯데, 농심, 오리온(동양제과), 대일유업, 삼립식품, 삼양식품, 크라운제과, 한국콘티넨탈식품, 서울식품 등 11개 업체가 주요한 기업들이었다.
이런 와중에 추석을 앞두고 언론에서 “해태제과는 내년 3월부터 임금 수준을 유지하면서 8시간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듬해 2월 마지막 날에 해태제과에서는 생산파트별로 현장 관리자들이 “3월 1일은 휴일(3.1절)이므로 2일부터 8시간 노동제를 시행한다”고 공지했다. 또한 임금 인상도 이뤄져, 노동시간을 4시간 단축하고 임금은 10% 인상됐다. 이후 해태제과의 노동시간 및 임금보전은 제과업계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았다.
이후 해태제과는 해태그룹으로 성장했고, 프로야구 도입 이후 ‘해태 타이거즈’로 더 유명해졌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제과부문은 크라운으로, 5년 전에 아이스크림부문이 빙그레로 인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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