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에서 개 식용을 전면금지하는 특별법이 제정됐다. 국회 본회의는 재석 210석, 찬성 208표, 반대 0표, 기권 2표로 ‘개의 식용 목적의 사육·도살 및 유통 등 종식에 관한 특별법’을 압도적으로 가결했다.
일각에서는 개의 학대 및 식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해 온 대통령 부인의 선도적 노력이 빛을 발했다는 점에서 ‘김건희법’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동안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 등이 개식용 금지 방안을 공약한 바 있고, 문재인 대통령 재임시에도 개식용 금지 방안을 검토한 적이 있다.
이 법안의 공포 후 3년이 지난 시점(2027년 1월 10일)부터 개를 사육·증식하거나 도살하는 행위, 개나 개를 원료로 조리·가공한 식품을 유통·판매하는 행위는 일체 금지되며,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의법처리된다.
이에 따라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되고, 그런 목적으로 개를 사육·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된다.
개고기 종식 특별법의 제정은 반려견의 확산과 퇴조하는 개식용에 비추어 예정된 수순이지만, 수천년 동안 이어져온 전통식에 대한 단절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결단이기도 하다.
“개 혀?”
충청도 어르신들이 개고기 식용에 대한 의향을 물을 때 다소 민망하기 때문에 말 수를 최대한 줄여서 마치 음어처럼 건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개 혀?”
이 두 마디가 외국인들은 알아듣기 어렵고 다른 지방 사람들도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만 유추할 수 있는 슬로우 푸드의 정체성을 농밀하게 압축했다고 너스레를 떠는 말꾼들도 있다.
한반도에서는 오랜 역사 동안 지방질이 적고 단백질이 많다는 개고기(단고기)를 병후 보약이나 영양식 및 강정식품으로 애용하면서 ‘복날에 개고기’라는 슬로건이 이어져 왔다.
20여년 전만 해도 여러 형태의 개고기들을 수육과 전골 및 탕으로 판매하는 식당들이 전국 곳곳에 즐비했다. 성남 모란시장 등에서는 개고기는 물론이고 고양이의 유연한 등뼈가 인간의 허리에 좋다는 속설에 따라 고양이 고기까지 거래가 이뤄져 한국판 몬도카네(Mondo Cane)라는 비난을 사기도 했다.
그런데 이탈리아 영화 ‘몬도카네’에서는 개고기 식용의 나라로 한국이 아니라 대만이 등장했다. 개고기 식용은 한반도 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에 전해진 재래문화였던 것이다.
또한 전쟁 중에는 유럽인이나 미국인도 개고기를 식용한 사례가 적지 않다. 아프리카에 파견됐다가 현지인들의 포위로 고립된 유럽 군인들이 식량이 소진되자 개를 잡아 먹었다고 전해지고, 한국전쟁에 파견돼 중국 인민해방군(중공군)의 포로가 된 미국 병사들이 이동 중에 발견한 개를 잡아 먹었다는 증언(T. R. Fehrenbach, ‘This Kind of War’)도 있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시발로 2002년 한일 월드컵과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등을 거치면서 개고기 식용에 대한 외부 세계의 호기심과 비판적 시각을 진지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박지성 선수는 맨유 팬들이 자신을 응원할 때 부르던 이른바 ‘개고기 송’을 그만 둘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가사에는 ‘박지성 너희 나라에선 어디서든 개고기를 먹는다’는 대목과 ‘그래도 쥐를 먹는 리버풀보다는 낫다’는 대목이 있다고 한다. 문제는 박지성 은퇴 이후에도 맨유 팬들이 황희찬 등 한국 선수들이 뛸 때 이 노래를 다시 부르자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졌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19세기 초에 태어난 J.S 밀이 “나라의 수준은 개를 대하는 태도에서 알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오래 전부터 개를 비롯한 동물에 대한 존중과 보호에 관한 인식과 문화가 발달했다.
이번 제정으로 한국에 대한 이미지에서 개고기의 낙인(stigma)이 얼마나 지워질지 알 수 없지만, 어차피 금지입법이 된 만큼 적극적인 대외전파로 홍보효과를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응답자 93.4%, “개고기 먹을 생각 없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4.5%가 지난 1년 동안 개고기를 먹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93.4%가 앞으로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없다고 밝혔다.
전국 성인 2천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동물복지기관의 의도가 반영됐다는 점을 고려해도 압도적인 개고기 반대 여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과 함께 극소수화됐지만 매니아(?)가 엄존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육견업계(?)는 2백만 마리의 개를 식용으로 사육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육우는 한우와 구분하여 젖소 등을 고기용으로 사육 및 도축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육견이라 함은 그러한 구분에 따른 것이라고 해도 강아지를 아기처럼 대하는 반려견 문화에서는 ‘육아’로 오인될 여지가 있다.
개본권에 대한 단상
관련 업계의 항변을 담은 조직 명칭이나 구호에서 대다수 젊은층들에게 기이한 뉘앙스를 줄 용어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육견협회 식주권 생존권 위원회’라는 명칭이나 ‘개권’을 위해 ‘인권’을 억압하여 자주적으로 먹을 권리(식주권)를 박탈했다는 주장, 특히 개본권(개고기를 먹을 수 있는 기본권)이란 말이 그러하다.
개본권은 개의 동물기본권이 아니라 개를 식용할 수 있는 인간기본권이란 것인데, 식용 개를 따로 사육한다고 해도 반려견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권리를 납득시키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단기간에 업계의 오랜 역사와 면면히 이어진 전통을 부정할 수 도 없는 만큼 정부는 3년 유예기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폐업 및 전업을 유도하고, 적절한 지원대책을 고려함과 동시에 식품업계는 개고기 애호가들을 대용식으로 유도할 필요도 있다.
한국의 세계적 식품개발 수준에 비추어 ‘개고기맛 대용식’을 개발할 여지가 충분하다. 다만 신중한 네이밍(naming)으로 ‘개고기 식용 국가’의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특별법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해외에서 ‘dooggy flavor soup’ 등으로 번역되어 논란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개고기의 풍미를 내세워야 대용식으로 홍보할 수 있는데, ‘개’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곤란하다는 점은 ‘개고기 대용식’의 딜레마다. 영양탕이라는 ‘정체불명의 메뉴’를 모호하게 활용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여하튼 이제 개고기의 역사에 종언을 고해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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