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은 대한민국 육사 및 정치군부의 흑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2.12 군사반란은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가 궁정동 안가에서 피살된 지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발생했다.
이 영화는 전두환이 이끄는 ‘하나회’ 일당이 전방부대의 병력까지 서울로 불러들여 군 지휘부를 농락하고 정치권력을 찬탈한 사건을 일부 픽션을 가미하여 시간대별로 촘촘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당시 군사반란을 진압하려던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었던 김오랑 소령(정해인 분)은 공수여단 반란군들에게 복부 등에 총탄 6발을 맞고 사실상 두 동강이 났고, 반란세력은 그의 시신을 특전사 뒷산에 방치했다. (이런 행태를 옛 사람들은 '개만도 못한 짓'이라고 했다.) 수개월이 지난 후에 육사 25기 동기들이 나서 시신을 수습했다고 한다.
정병주 특전사령관도 휘하 부하들이 쏜 총에 부상을 당해 끌려갔다. 영화에서 특전사령관(정만식 분)은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이하여 반란세력의 간교함과 육군본부의 우유부단을 참지 못하고 울컥 한마디를 쏟아낸다.. "무슨 개소리야!"
영화에서도 두드러지게 부각된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김성균 분)은 전두환을 체포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지시들을 내렸던 거의 유일한 장성이었다. 그의 특명을 받은 헌병들은 전두환을 체포하려고 총격전을 불사했다.
반면에 다소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된 하소곤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소장)도 수경사로 이동한 후에 반란군에 가담한 한영수 대위(헌병 중대장)가 난사한 M16 총탄에 폐가 관통되는 중상을 입고 사경을 헤메다 살아났다.
또한 특전사령관 휘하 공수여단장 중에서 유일하게 반란군 진압을 위해 출동한 윤흥기 준장은 반란군의 교란으로 통한의 회군을 해야 했다. 영화에서는 궁지에 몰린 전두환 일당이 잔머리를 굴려 트릭을 쓰는 것으로 나온다. 9공수여단장은 당시 하극상 반란에 맞선 의롭지만 외로웠던 야전지휘관이었다.
만약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인천 부평방면에서 출동했던 9공수여단 병력이 수도 중심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반란군 지휘부를 체포했다면, 그후 수십년에 걸친 국가적 망신과 국민의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12.12 군사반란의 여파로 김오랑 소령의 모친과 큰 형이 1980년대 초에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김 소령의 아내도 사건의 충격으로 시신경이 마비돼 실명에 이르렀고, 1991년에 의문의 추락사고를 당해 절명했다. 또한 1989년에는 정병주 특전사령관(정만식 분)이 의문의 시신으로 발견됐다.
영화에서 하나회 일당에 맞선 선봉장으로 부각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정우성 분)도 사건의 여파로 부친을 잃고, 서울대 재학중이던 아들이 의문의 주검으로 발견됐다.
훗날 그는 계엄사령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성민 분)의 납치로 대세가 기울었지만 반란군에게 백기를 들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로서는 명색이 수도경비사령관인데, 수도 한복판에서 육군참모총장이 장교들에게 납치된 꼴을 두고 볼 수 없었고, 대한민국 군의 심장부인 육군본부가 그렇게 쉽사리 농락을 당했다는 사실이 미스테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12.12 이후 80년대는 군대, 대학가, 노동계 주변에서 의문사가 빈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12 군사반란에 대해 유투브에서 개소리를 서슴치 않았던 사람을 국방장관으로 임명한 것에 대해 인심을 잃는 자충수라는 힐난이 나오는 까닭이다.
신원식의 국방부, 장병 정신교재 ‘독도’ 파문
국방부는 최근 5년 만에 ‘장병 정신전력교육 기본 교재’ 2만부를 발간해 전군에 배포했다. 그러나 교재에는 “한반도 주변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여러 강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며 “이들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사력을 해외로 투사하거나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쿠릴 열도, 독도 문제 등 영토 분쟁도 진행 중에 있어 언제든지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교재 속 11차례 등장하는 한반도 지도에도 독도를 표기한 지도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 교재 집필진으로는 김수광 국방부 정책기획관(육군 소장), 김성구 국방부 정책기획차장(육군 준장) 등을 비롯한 장성과 위관·영관급(중위~대령) 장교, 군무사무관 등 총 10명이 참여했다. 자문진 10명 중에도 대학교수들이 일부 있지만 육해공군·해병대 공보정훈실장 등 현역 군인과 국방부 국제정책차장, 국방정신전력원 군교수 등이 참여했다.
국민의 심판
군사반란의 수괴로 역사적 단죄를 받고서도 단 한번 사죄하지 않았던 전두환은 죽는 날까지 추징금 1천20억원과 체납 세금 30억원을 끝내 갚지 않았다. 일반 국민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특권을 누리다 간 것이다. 그런데도 그의 일족은 진정한 반성은 고사하고 파주시 접경지대에 1천평이 넘는 묘역을 조성한다고 하여, 현지 시민들과 지역 정치권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고향 합천에 조용히 묻으면 될 일을 통일의 염원을 운운하면서 소란을 초래하여 시민들에게 공연한 스트레스를 안기는 것이야말로 국법과 군율을 농단하고 군대를 사병처럼 부려 일신과 일족의 영달을 도모했던 군사반란 일족의 몰염치한 소행이 아닐 수 없다.
2010년 7월에 세상을 떠난 장태완 전 사령관은 그해 1월에 공개된 인터뷰에서 정병주 전 사령관이 그에게 남긴 말을 전했다.
“장 장군, 우리 일행들은 저놈들 차라리 끝장 가는 꼬락서니 보는 것을 우리 같이 함께 보고 죽읍시다.”(월간조선, 2010년 1월호)
이런 결기를 보였던 정 전사령관은 3개월 후에 경기도 근교의 야산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고 한다.
그러나 두 군인의 대화는 허언이 아니었다. 1996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전두환에게 군법상 반란죄(12.12 군사반란)와 형법상 내란죄(5.18 광주학살)를 적용하여 사형을 선고했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고 했던 허 트리오(허삼수 허화평 허문도) 등 주모자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추모 어쩌고 개소리를 하는 퇴역장성들이 아직도 살아있는 모양이다.
전두환-노태우 일당은 성공한 쿠데타를 나중에 처벌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그들보다 한 수 위였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입증한 셈이다.
‘서울의 봄’은 이 시대의 정부와 정당에게 군인으로서 원칙과 정치적 양심(중립)을 지키려고 목숨을 바쳤던 고인들을 외면하거나 우롱하는 망동을 조장 및 방조하여 스스로 민심을 잃고 나라의 미래를 망치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교훈을 상기시킨다.
두 병사의 잊혀진 죽음 : 정선엽 병장과 박윤관 상병
정선엽 병장(1956년생)은 전남 영암 출신으로 광주 동신고를 졸업하고 조선대 전기공학과 2학년 재학 중에 입대하여 체격이 좋다는 이유로 국방부 헌병으로 차출됐다. 그는 제대 3개월을 앞두고 1979년 12월 13일 새벽 2시경에 육본과 국방부가 연결된 지하벙커(B-2벙커)에서 제1공수여단의 반란군 50여명에 맞서다 전사했다.
당시 국방부를 점령한 공수부대원들은 정 병장의 소총을 빼앗으려 했으나, 정 병장이 불응하자 목과 가슴 등에 4발의 총탄을 발사하여 사망에 이르게 했다.
전두환 일당은 그를 반혁명군으로 규정하여 국립묘지 안장을 거절했다고 한다. 국방부도 사건발생 40여년이 지난 2022년 12월에 이르러서야 유족에게 전사확인서를 통지했다. 군부정권은 말할 것도 없지만, 하나회를 숙정한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치는 동안에도 억울한 죽음을 당한 병사들에 대한 정치권과 군 지휘부의 무책임과 무신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박윤관 상병은 수경사 33헌병대 소속으로 영문도 모른채 반란군 일당인 우경윤 대령의 지시로 계엄사령관을 납치하는 작전에 동원돼 초소를 점령했지만 해병대의 공격을 받게 된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선 하나회 일당에 포획된 육군 계통을 제외하고 해군이나 공군을 부를 수도 없는 상황인데, 그나마 유일한 희망은 육군과 성격을 달리하는 별동대 격인 해병대 소속 군인들이었다.
영화에서도 육참총장이 “해병, 해병!”을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 육참총장의 공관을 경비 및 호위하는 해병들은 반란군이 총장 납치를 위해 선점한 경비초소를 탈환하는 공격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상관의 지시에 따르다 반란군 편에 서게 된 박 상병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국난극복 기장(記章)의 개소리
1979년 12.12 군사반란 이후 군에 복무하거나 입대하여 ‘진돗개 하나’ 등 비상출동에 대비해 군화를 신고 자던 병사들은 영문도 모르고 이상한 기장들을 받았다. 제대 후에 사태를 감지한 이들은 무공훈장도 아니고, 이상한 명칭의 기장을 수치스럽게 여겨 남몰래 없애버린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란세력이 장병들에게 살포한 ‘국난극복 기장’은 자신들이 군사반란과 내란을 자행하는 동안 찍소리 못하고 얼차려 상태로 대기했던 지휘관들의 지시에 따라 공연히 군화를 신은 채 내무반에서 열심히 취침했다는 맥락에서 대가로 지급된 것이었다. 그것은 영문도 모르고 반란세력의 기망에 침묵으로 화답한 것에 대한 싸구려 엉터리 기념품이었다.
당시 전두환 일당은 군인·군무원·공무원·주한미군 등 80여만명에게 국난극복기장을 살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해괴한 기장에 관한 법률을 2016년에 와서야 폐지됐다고 하니, 민주화 이후에도 지속된 군 지휘부의 구태의연한 자세와 복지부동은 감탄스러울 지경이다.
당시 신성한 병역의무를 수행하던 젊은이들에게 전사, 부상, 정신적 피해 등을 초래한 신군부 반란세력은 유족과 피해 가족들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주둥이에 떡고물이 넘치도록 요직을 나눠 갖고, ‘별 잔치’를 벌이던 전두환 일당의 부도덕한 행태야말로 국기문란과 패륜의 절정이었다.
"이 영화의 유일한 오점은 이 모든 일들이 실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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