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벨라루스 핵배치는 핵확산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소연방의 해체 이후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과 함께 미국의 주도 아래 핵무기를 러시아로 이전하고 비핵화되었다.
27년 후에 러시아는 벨라루스에 단거리 전술핵 미사일을 재배치했다. 러시아가 핵통제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NPT의 기준으로 핵확산은 아니라고 한다.
수천개의 핵미사일을 보유한 미국과 러시아가 전세계에 미사일을 이전하고 통제권을 갖는 것은 핵공유이지 핵확산이 아니다? 이건 강대국 논리에 포획된 기존 NPT체제의 개소리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러시아가 타국에 핵무기를 이동, 배치하는 것은 핵무기의 전체총량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핵확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얼마나 해맑은 개소리인가?
2. 클린턴의 후회 : 안전보장 국제어음의 부도
소연방체제 이전에 옛 러시아와 이러저러한 구원(舊怨)이 깊었던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핵포기 압력 및 회유에 대해 내부논란이 있었다. 당시 일부 정치인들은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핵무기를 포기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이에 UN 안보리 이사국(미, 러, 중, 영, 프)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의 비핵화를 조건부로 안전보장을 맹세하는 각서에 서명했다. 이후 3국은 NPT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른바 ‘부다페스트 각서’는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점과 우크라이나 전면침공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세계의 강대국들이 지정학적으로 허약한 우크라이나에 발급했던 국제어음은 부도가 난 것이다.
최근 클린턴 전 대통령은 아일랜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핵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러시아가 침공하지 못했을 것”이라면서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설득한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일부 강국이 변심하는 경우에 다자간 보장은 작동불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따라서 브레진스키가 지목했던 3대 지정학적 취약지대- 우크라이나, 폴란드, 한반도 -에서 비무장 중립노선은 비현실적이고 위험하다는 것을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다시 보여주었다.
3. 세계 핵질서의 균열
비핵화 이후 우크라이나가 전란에 휩싸이고, 벨라루스에 핵무기가 재배치된 것은 기존 강대국들의 이해에 충실한 NPT체제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허약한 지정학적 완충국가들은 영세중립이나 중립노선을 통해 핵무기가 없이도 안전보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지만,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를 제외하고는 성공적 사례가 거의 없다. 이와 반대로 많은 경우에 약소국들은 강대국에 편승하여 핵우산에 들어가는 것이 안전보장에 더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은 이라크에 핵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미군이 지상군을 투입했고, 북한과 이란이 미국의 이런 속성을 간파했기 때문에 핵무기를 최종적으로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세계의 핵보유국이 15개국 정도로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우크라이나의 전란과 벨라루스의 핵재배치는 한반도 비핵화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북핵문제에 대한 기존의 관성적 접근법으로는 외교적 해결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취약성은 여전하지만 한국은 더 이상 군사적 약소국이 아니고, 조선(DPRK)은 핵무기체계를 고도화하고 있다.
한반도 국가는 세계 핵질서의 균열을 한반도의 긴장과 불안이 아니라 평화와 안정의 지렛대로 삼아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권력이 상대의 자유를 부정하면, 자유를 얻는 길은 권력 뿐이다."(넬슨 만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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