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문제/핵 사다리 치우기

북한 핵무력 법제화의 양면성

twinkoreas studycamp 2022. 9. 12. 18:44

지난 9월 8일 북의 최고인민회의는 9년만에 핵독트린을 급진적인 내용으로 개정했다. 최근 북은 초보적 핵독트린이었던 ‘자위적 핵보유국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하여’(2013.4)를 폐기하고, 핵보유국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내용을 담은 ‘핵무기 보유와 운용에 관한 법률’(2022.9)을 채택했다. 또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사업총화 보고에서 “지구상에 핵무기가 존재하고 제국주의가 있는 한 핵을 보유할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기존의 비핵화 논의에 종언을 고했다.

 

 

 

지난 2월 16일 해리스 전 주한 미대사는 ‘WEST 2022 포럼’ 기조연설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주요한 네 가지 전략적 목표를 대북제재의 완화, 핵무기의 유지, 한미동맹의 분열, 한반도의 지배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대북제제의 완화와 한미동맹의 분열은 단기적 전략목표라면, 핵무기의 유지는 장기적 전략목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의 당면목표는 핵보유국 지위의 획득 및 유지와 대북제재의 완화로 집약된다.

 

북의 ‘한반도의 지배’ 목표는 해리스의 이데올로기적 관점에서 제기된 다소 단언적 표현이기는 하지만 상당수 미 전문가들은 비슷한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2020년 10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선로동당이 “우리의 경애하는 최고지도자가 핵무기를 통해 세계를 지배할 것이며, 미국이 아닌 주체 조선에 의해 세계질서가 재편될 것”이라고 선전하는 것에서 북의 야심을 알아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핵의 규모를 30~40개 이상으로 보지만, 대북 전문가들의 추정은 최대 75개~120개에 이를 정도로 편차가 크다. 베넷은 장기적으로 북이 300개 이상을 확보해서 중국과도 맞설 수 있는 지역강국을 추구할 것으로 보았다.

 

핵무기 사용원칙과 사용조건의 언밸런스로 인하여 사실상 자의적 판단에 의한 임의적 선제공격이 가능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정도로 새로운 핵 독트린은 선제 핵공격의 조건을 광범하게 설정했지만, 동시에 기본원칙(최후수단과 비적대적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보장)과 핵무기 지휘체계 및 안전한 관리와 함께 전파방지(확산금지)를 명시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번 법제화는 바이든 미 행정부와 한국 정부에 대한 전략적 포석이자 핵보유국 지위의 체계적 공고화를 위한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핵무력 법제화 개요 : '김정은 핵독트린'의 특징]

 

1. 사명

군사적 위협과 침략, 공격으로부터 국가주권, 영토완정, 인민의 생명안전을 수호하는 국가방위 기본역량

 

1) 적대세력에게 군사대결이 파멸을 초래한다는 것을 인식시켜 전쟁 억제

2) 전쟁억제 실패시에는 적대세력의 침략을 격퇴하고 승리를 달성

 

2. 구성

각종 핵탄과 운반수단, 지휘 및 조종체계, 그의 운용과 갱신을 위한 모든 인원과 장비, 시설

 

3. 지휘통제

1) 국무위원장의 유일적 지휘에 복종

2)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관련 전권 보유, 핵무력지휘기구에서 전과정 보좌

3) 지휘통제체계가 위험에 처하는 경우는 사전에 결정된 작전방안에 따라 도발원점과 지휘 부를 비롯한 적대세력을 괴멸시키기 위한 핵타격의 자동 실행

 

4. 사용결정의 집행

핵무기 사용명령을 즉시 집행한다.

 

5. 사용원칙

1) 최후수단으로 핵무기 사용(기본원칙)

2) 비핵국가들이 핵보유국과 야합하여 침략이나 공격행위에 가담하지 않는 한 핵위협이나

핵사용의 배제

 

6. 사용조건

1) 핵무기 또는 기타 대량살상무기의 공격 혹은 임박

2) 국가지도부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대한 핵 혹은 비핵 공격 혹은 임박

3) 주요군사시설에 대한 치명적 공격 혹은 임박

4) 전쟁확대와 장기화를 막고 주도권 장악을 위한 작전상 필요

5) 국가존립과 인민의 생명안전에 파국적 위기를 초래하는 사태로 인한 불가피한 상황

 

7. 경상적인 동원태세

핵무기사용명령이 하달되면 임의의 조건과 환경에서도 즉시에 집행할 수 있는 동원태세

 

8. 안전한 유지관리 및 보호

1) 핵무기의 보관관리, 수명과 성능평가, 갱신 및 페기의 모든 공정들이 행정기술적 규정과 법적 절차대로 진행되도록 철저하고 안전한 핵무기 보관관리제도 수립 및 이행

​2) 핵무기와 관련기술, 설비, 핵물질 등이 유출방지를 위한 철저한 보호대책

 

9. 질량적 강화와 갱신

1) 핵위협과 국제적 핵무력 태세변화의 항시적 평가에 상응하는 질량적으로 갱신 및 강화

2) 각이한 정황에 따르는 핵무기 사용전략의 정기적 갱신

 

10. 전파방지

핵무기의 타국 영토 배치 혹은 공유의 금지, 핵무기와 관련기술, 설비, 무기급 핵물질의 이전금지

 

​11. 기 타

1) 2013년 4월 1일에 채택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법령 ‘자위적 핵보유국 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할데 대하여’의 효력을 없앤다.

2) 해당 기관들은 법령을 집행하기 위한 실무적 대책 준비

3) 어떤 조항도 정당한 자위권행사를 구속하거나 제한하는 것으로 해석 금지

 

 

 

< 각국의 핵 독트린 비교 >

 

핵 독트린은 핵보유국과 비핵국가에 대한 전략기조 및 정책을 선언적으로 공표하여 핵 사용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유일한 핵공격 경험을 가진 미국은 선제 불사용(No First Use) 원칙이나 핵무기 사용 및 위협을 안 하겠다는 소극적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을 명시적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다만 비핵국가가 핵보유국과 연합해 공격하지 않는 한 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부 NSA'를 암묵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2010년 오마바 대통령이 북과 이란을 예외국들(outliers)’로 지목했다.

 

러시아도 NFUNSA에 대한 명확한 방침을 밝힌 적이 없고, 오히려 적국이 핵무기 혹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하거나 재래식 무기 등으로 국가의 존망을 위협할 때는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명시했다.

 

중국은 유일하게 NFU를 공표한 국가로 남아 있다. 따라서 NSA는 별도로 밝힐 필요가 없다. 다만 중국이 핵 공격을 받으면 핵무기로 보복할 것이란 점은 말할 나위도 없다.

 

영국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핵전략과 보조를 맞춰 왔다는 점에서 미국의 핵독트린과 차이가 없다.

 

프랑스는 드골정부의 핵무장 직후에 가상표적으로 워싱턴과 모스크바를 설정할 정도로 미, 러에 독립적인 핵전략을 강조해 왔다. 특히 어떤 종류의 공격이라도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급진적인 핵 독트린을 채택했다는 점은 이번에 법제화된 북의 핵 독트린과 흡사하다.

 

이스라엘은 핵보유에 대한 'NCND'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핵 독트린이 부재하다. 이러한 전략적 모호성에 대해서 내부의 비판이 있지만, 중동 정세의 특성상 구체적인 핵 독트린을 밝히지 않는 기존 방침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

 

인도는 NFU를 공식 채택했지만, 점차 핵보유국(중국,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예외로 한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다. 즉 재래식 무기에 의한 공격이라도 국가 존망이 위태로운 경우에는 핵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옵션을 열어 놓은 것이다.

 

파키스탄은 일찍이 인도의 비핵 공격에 대한 핵 선제사용이 가능하고, 상대의 핵공격에 대한 보복공격도 가능하다고 공표했다.

 

 

“일국이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포기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동기 및 요인은 국가안보, 국가적 능력(경제·과학기술·군사·외교 등), 국제규범 및 인식, 국내정치적 요인으로 집약할 수 있다.

 

펠로피다스(Benoit Pelopidas)에 따르면 세계 39개국이 핵무장을 모색하다가 대부분이 포기했다. 퀘스터(George Quester)는 1973년 이후 핵무장을 모색한 국가들의 주요한 동기를 군사적 동기, 정치적 동기, 경제적 동기에서 찾았다. 세이건(Scott Sagan)은 핵무장 혹은 핵포기의 동기를 국가안보, 국내정치, 국제규범으로 구분하였고, 핵확산 혹은 비확산에는 국가안보, 국제기구, 국제규범, 국내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민주주의체제와 독재체제에 따른 상이한 영향이나 국가적 위신, 기술, 경제, 국내정치가 핵무장의 동기 혹은 핵포기의 동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결론적으로 국가안보, 국가적 능력, 그리고 국제적 요인이 핵무장 혹은 핵포기에 영향을 미치는 공통적인 동기라고 할 수 있다. 핵무기 개발은 기술, 원료, 운용인력, 가용재정 등이 충분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중진국 수준으로 보기 어려운 조건이었던 파키스탄(1998)과 조선(2006)의 핵실험은 핵 기술력의 보유 및 독점적 자원집중으로 가능했지만, 미국과 국제기구의 압박을 극복하고 기술 및 장치를 획득하는데서 외부적 저항요인을 감당할 수 있는 정치적 의지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 없다.

 

경제적, 기술적 능력이 미비하거나 정치적 의지가 미약한 나라는 핵 구상이 있더라도 핵 게임을 지탱할 수 없다. 정치적 의지를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핵무장의 동기 중에서 강대국에 대한 열망과 같은 팽창적 동기보다 안보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강조한다.

 

캠벨(Kurt M. Campbell)은 ‘체제 비관주의’(regime pessimism)를 핵확산의 주요한 동기로 보았다. 경제적·군사적 균형에서 열세로 기울거나 체제불안 및 쇠퇴를 맞이한 나라일수록 핵무장으로 경쟁국 혹은 적대국에게 망각되거나 무시되는 것(sinking into oblivion or being overshadowed)을 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체제 비관주의는 피포위의식이나 강대국의 위협에 직면했다고 생각하였던 이스라엘·파키스탄·조선의 핵무장을 어느 정도 설명해 준다.

 

하지만 조선이 핵무장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국가적 능력과 정치적 의지 외에도 국제적 규범과 인식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허용한 지정학적 조건과 체제의 특성이 작용하였다. 조선은 중국과 혈맹관계로서 대미 최전선국가이면서 극동의 외곽에 위치한 자급지향적 은둔국(Hermit Country)의 특수성에 기초해서 국제적 외압과 무역봉쇄 및 경제제재에 대항하는 ‘장기항전’(long term fight)을 지속하고 있다.” (트윈 코리아 Twin Koreas, pp. 7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