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마네의 모더니즘, 리얼리즘, 휴머니즘

twinkoreas studycamp 2022. 8. 20. 14:55



<모더니스트 마네>는 시대와 불화했던 마네를 따뜻한 시각으로 보다 온전하게 살펴보려는 저자의 마음씨가 배여 있다. <인상주의: 모더니티의 정치사회학>(2010)의 저자 홍일립은 국내에서 모네, 고흐에 비해 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마네를 모더니즘의 선구로 다시 세운다. 2010년 인상주의에 대한 사회학적 논의를 총괄한 이후 12년만이다.

이번에도 근대의 여명기에 파리의 화랑가를 강타했던 청년 작가들의 걸출한 작품들을 풍부하게 실었다.

피리 부는 소년(1866)



모더니스트 마네 : 시대와의 불화, 모더니즘의 선구자

올랭피아(1863)은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를 모던하게 패러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떤 평론가들은 “마네의 작품은 어떤 심사에서는 전원 일치로 거절당할 수 있는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말로 평단의 반응을 요약했다(92쪽).

올랭피아에 대한 혹평은 어찌나 드셌던지 당대를 풍자했던 마네가 도리어 풍자를 당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올랭피아는 후대의 수많은 작가들의 오마주와 패러디로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해 주었다.


스페인 가수(1860)
발렌시아의 롤라(1862)



쿠르베는 화가의 역할에 대해, “나는 보통 화가가 아니라 우선 하나의 인간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예술을 위한 예술 따위의 의도가 아니라 나 자신의 지적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서”라고 밝히며, 예술과 사회적 실천을 동일시했다(67쪽).

실제로 쿠르베는 파리코뮨의 인민대표 예술동맹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마네는 1860년대에 파리 화단의 아방가르드로 부상한다.


휴머니스트 마네 : 연민과 사랑


책 표지의 앞면은 의외로 마네의 작품이 아니라 17세기 앙투앙 르냉의 ‘늙은 파이프 연주자’(1642)인데, 이러한 화풍은 당대의 고전파 작가들과 다른 것으로 마네, 밀레, 고흐의  작품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앙투안(Antoine)은 동화작가 그림 형제처럼 동생 루이(Louis), 마티외(Mathieu)와 함께 장 프랑수아 밀레보다 100년을 앞서 농촌의 아이들, 가족들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노인(1865)




거리의 약사(1862) : 표지의 뒷면에 나오는 두 아이가 악사의 옆에 있다.



모리조

모리조(1872) : 폴 발레리가 마네 출생 100주년 전시회에서 이 작품을 최고의 걸작으로 칭송했다(22쪽). 부친상을 당한 모리조가 상복을 입은 모습을 그린 마네는 그녀와 평생을 같이 하면서도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다. 모리조는 인상주의 계통의 화가였으나 후대에 와서야 여성작가로서 재발견되고 있다.

 

모리조의 빨래를 너는 여인(1881)

 

홍일립, 인상주의(2010)




풍자가(Satirist) 마네 :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


풍자에는 고발, 야유(揶揄), 교정의 의도가 담겨 있다. 이 작품에는 떠들썩한 박람회와 애드벌룬에 환호하는 군중 속에서 내버려진 몸이 불편한 어린이를 통해서 사회를 야유하는 마네의 풍자가 담겨 있다.

정치인 캐리커처를 그렸던 도미에(Honoré Daumier, 1808년 출생)는 정치풍자를 하다가 투옥되기도 했다. 그의 풍자적 그리기는 피폐한 민중에 대한 연민과 부조리한 법정에 대한 야유를 뛰어넘어 국가적 이상으로서 ‘공화국(The Republic)’을 형상화했다.

아이의 출신을 가리지 않고 젖을 먹이고 책을 읽게 만드는 ‘공화국’은 현존하는 국가의 차별과 무능에 대한 풍자적 감흥(satiritic inspiration)을 일으키게 한다.


리얼리스트 마네 : 공화주의자

중학생 마네는 계몽주의자 디드로의 ‘회화에 대한 소고’에서 “그림 속의 인물이 입은 옷이 보잘것없을 때 그 의상을 바꾸어 그려야 한다”는 구절을 접하고 “그림은 그 순간 눈에 보이는 것을 충실하게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다(157쪽). 나중에 똑같은 생각을 쿠르베에게서 확인했던 청년 마네는 어린 시절부터 ‘리얼리스트의 각오’를 다지고 있었던 셈이다.

막시밀리언 황제의 처형(1867~68)


키어사지 전함과 앨라배마 전함의 해전(1864)과 막시밀리언 황제의 처형(1867~68)은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투영된 것이다.



병사들에게 모욕당한 예수(1865) : 마네는 성서의 기술에 따라 머리에 떠오른 장면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마네는 성서의 기술에 따라 머리에 떠오른 장면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 동시에 이 작품은 16세기 볼스베르트의 ‘가시 면류관을 쓴 그리스도’의 모작, 혹은 온건한 패러디로 해석할 수 있다.

마네가 그린 보들레르의 초상화. 그는 46세에, 마네는 51세에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