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제재 :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

경제제재(10) 대북제재의 양면성과 북미관계 전망

twinkoreas studycamp 2021. 11. 17. 15:02

 

 

미국이 압송해서 밀봉경매로 매각한 조선(DPRK) 국적의 어니스트호

 

1812년 미국 선원에 대한 영국의 강제징발에 대해서 갤러틴(Albert Gallatin) 재무장관이 보복조치를 단행한 이후로 미국의 재무부는 적성국가에 대해서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을 집행하는 핵심적 기관이 되었다.

 

일본의 진주만 기습 이후 미국은 대일 원자재 금수조치(1941~1945)를 통해서 석유와 고철의 수출을 차단하여 일본의 전쟁수행 능력을 약화시키려고 하였다. 미국의 금수조치가 발효되자 일본군 수뇌부는 임박한 미국의 공습보다 금수조치에 의한 유류보급 차질을 더 공포스럽게 받아들였다.

 

전후에 미국은 제재의 초점을 소연방을 비롯한 사회주의권으로 옮겼고, 20세기 말에는 중남미와 중동의 반미국가로 초점을 이동하였다. 그 중에서도 한반도의 조선은 한국전쟁, 사회주의권, 핵개발국가, 테러지원국, 인권탄압 등의 명목으로 2020년대까지 70년 동안 미국의 봉쇄와 제재를 받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례로 남아 있다.

 

 

2016년 4차 핵실험 이후 고강도 경제제재

 

전미북한위원회(The National Committee on North Korea)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 70년 동안 대북제재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 제1차 핵실험을 전후한 2000년대 중반, 4차 핵실험 이후 ICBM 발사시험을 실행한 2016년 이후 2020년 현재까지 크게 세 단계로 구분된다(Daniel Wertz, Understanding U.S. and International Sanctions on North Korea, 2020.11).

 

워츠(Daniel Wertz)는 대북제제의 기본틀이 잡힌 시기를 2단계에 해당하는 2000년대 중반으로 보았다. 즉 미국은 UN 안보리 결의(1718호)를 통해서 군사분야 중심으로 제제를 본격화하였고, 2016년 4차 핵실험 이후 석탄수출과 석유수입을 제한하는 고강도 경제제재로 전환하였다는 것이다.

 

이후 조선에서 두 번째로 큰 화물선으로 알려진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 1만 7천톤급) 호¹⁾가 석탄을 운송하다가 미국에 압류되었다. 이 화물선은 인도네시아에서 억류되었다가 제재 위반과 달러 사용의 혐의로 미 검찰에 의해서 압류되었고, 2019년 8월 연방법원의 몰수 및 매각 결정에 따라 경매가 이뤄졌다. 3단계에서 미국과 UN 안보리는 각 분야의 핀셋제재(pincette sanctions)를 확대하고 있다. 대북제재와 관련해서 세컨더리 보이콧(2차제재, 제3자제재)에 의해서 싱가폴 국적의 커리저스(Courageous) 호²⁾가 몰수되었다.

 

UN 대북제제위원회 전문가 패널로 활동한 뉴컴(William J. Newcomb) 전 재무부 선임자문관은 많은 나라들이 대북제재 이행에 실패하였다고 평가하였고, 대북제재 변천과정을 분석한 워츠(D. Wertz)도 조선이 체제유지의 범위 안에서 경제교류의 확대를 희망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핵증강의 억제와 제한적 제재완화를 놓고 협상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대북제재는 조선의 경제에 심대한 타격과 근본적 제약을 가하였으나, 70년 동안 유인동기를 결여함으로써 조선의 체제내적 만성화와 면역성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한국전쟁에서 폭격이 일상화되면서 나중에 대폭격 작전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대상이 모두 빻아져 사라져 버린 것처럼 유인동기 없이 제제와 봉쇄로 일관하면서 장기간에 점진적으로 강화된 조치들은 조선을 굴복시키는 결정타가 될 수 없었다. 따라서 전쟁 이외의 수단에 의한 전쟁이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 왔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미국은 한국에 대한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통하여 한반도 지정학에 대한 영속적인 목표를 추구하면서 조선에 대한 제재와 봉쇄를 병행하여 한반도 지정학과 지경학(Geoeconomics)의 주조(molding)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조선은 1948년 이후 미국과 정상적인 외교관계 및 교역을 경험하지 못하고, 중국·베트남·쿠바처럼 ‘시장경제의 원형질’을 내포하거나 포섭할 수 있는 조건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의 계산이 적중하지 못하였다. 또한 중국 경제의 발전은 ‘대미 최전선국가’에 대한 물질적 지원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도 제재의 효과를 감소시켰다.

 

둘째, 남과 북이 분립하는 초기단계(1945년~1955년)를 쌍생아 에 비유한다면 ‘배니싱 트윈’(vanishing twin)과 같이 한 쪽의 소멸은 발생하지 않았고, 쌍둥이는 각자의 방식으로 신진대사를 거듭하며 몸집을 키웠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최고수준으로 강화한 제재도 북의 체제붕괴로 이어지지 않았다. 조선의 수출을 90% 정도까지 감소시켜서 핵무장 의도를 포기시키려고 했지만, 조선은 경제의 심대한 타격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UN이 기대했던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조선의 로동신문 등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들에게 제재를 들이대면서 압박하지만 제재가 만능의 무기는 아니라고 공박하였다.

 

셋째, 중·러는 미국과 UN의 제재에 보조를 취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조선이 요구했던 민생관련 분야의 제재완화를 지지하고 있다. 양국은 해산물 및 섬유 수출, 해외파견 노동자의 송환, 남북 철도사업, 거대 조형물 수출에 대한 예외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강도 제재가 조선의 주민생활에 미치는 영향과 주민들의 고통지수를 강화했지만, 북핵문제의 실질적 해결이라는 측면에서는 빈곤한 성과에 그치고 있다.

 

싱가폴 국적의 커리저스호

 

 

미국의 제재와 관계개선 : 조선(DPRK)과 중국·베트남·쿠바의 유사점과 차이점

 

사회주의 3국(중국·베트남·쿠바)에 대한 미국의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이 남긴 결과는 조선의 대미 관계개선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객관적 조건이다. 큰 틀에서 보면 3국은 미국과의 장기적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기 나라의 방식으로 시장경제를 도입하였고, 미국은 제재와 협상을 병행하면서 시기와 수준을 조절하여 관계개선의 목적을 최대한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 과정에서 3국은 기존 정치체제 및 국내 질서의 근본적인 수정을 제외한 나머지 영역에 대해서는 공산당(communist party)이 주도하여 개방의 수준을 조절하였다. 미국은 경제적 효과가 적고 해제가 쉬운 영역에서 출발하여 점차 경제적 효과가 많거나 해제가 어려운 사안으로 확대하면서 종국적으로 거의 모든 제재를 철폐하기에 이르렀다.

 

초기 단계에서는 미국 대통령의 의지와 권한행사가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대통령 각서(Presidential memorandum)를 통해서 베트남에 대한 무역금수조치를 종료하였다. 클린턴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서 베트남에 대한 무역협정연장법(잭슨·바닉 수정조항)의 적용을 유보시키고, 베트남과 새로운 무역협정을 체결하여 미 의회에서 ‘항구적 정상교역관계’(PNTR)의 지위를 부여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는 중국·베트남·쿠바의 외국인직접투자(FDI)와 공적개발원조(ODA)의 증가로 이어져 경제성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개방 초기에 중국은 화교들의 자본을 적극 유치하였고, 베트남도 재외동포의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외부로부터 국내투자를 유인하는 마중물로 삼았다. 또한 미국은 중국과 베트남에 항구적인 정상 교역관계(PNTR)의 지위를 부여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등의 가입을 지원하였다.

 

결론적으로 중국은 2000년 기준 1인당 GNI 940달러에서 2010년 4340달러로 증가하였고, 2019년 10,410달러에 도달함으로써 세계 중위소득국가(72위/192개국)에 속하게 되었다. 베트남은 1991년 110달러에서 2008년 980달러로 점증하다가 2018년 2,360달러로 급상승하였다. 쿠바는 1972년 850달러에서 2002년 2,820달러로 점증하다가 2010년 5,610달러, 2016년 7,480달러로 상승하였다(World Bank, OECD 국가별 계정).

 

베트남의 인구는 쿠바의 10배에 달하기 때문에 쿠바보다 1인당 GNI는 낮지만, 산업 전반의 성장폭은 훨씬 막대하다. 베트남의 명목 GDP는 1980년 기준 278억 달러 수준에서 미국의 경제제재 완화 및 해제를 거치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7년 기준 2,204억 달러로 8배 가량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대미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 미만에서 20% 수준으로 급증했다. 베트남이 미국과 유럽 등지로 수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자 일본과 한국의 투자가 급증하였고,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대규모 현지공장을 설립하여 베트남 수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만약 조선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의 궤도에 들어선다면 사회주의 3국의 전례를 유사하게 재현할 개연성이 있다. 향후 한국은 대북 경제협력에서 민족 내부의 거래와 국가 대 국가의 거래라는 이중적 성격을 고려하여 작동 가능한 모델을 추구하는데서 외국인직접투자(FDI)와 공적개발원조(ODA)의 형식을 포함하여 쌍방의 새로운 규범과 문화를 창출해야 할 과제가 있다.

 

또한 제재조치의 완화 및 폐지는 일방적인 유화정책이 아니라 상호주의적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지만, 지금의 방식처럼 전제조건의 이행을 조건부로 하는 압박과 봉쇄 일변도에서 벗어나 기한설정을 통한 일몰(sunset), 불이행에 대한 스냅백((snabback) 등을 설정하여 쌍방의 신뢰를 담금질하는 과정을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2019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회동(abcnews)

 

 

북미 관계개선에 대한 몇가지 전망

 

첫째, 장기성이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30년만에 중국과 수교하였고, 다시 15년 후에 베트남과 수교하였다. 또한 베트남과 수교하고 나서 20년 후에 쿠바와 수교하였다. 이러한 시차는 조선과의 관계개선의 장기성을 암시한다. 한국전쟁 이후 70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러한 장기성을 단축해야 하는데, 지금의 협상방식으로는 덧없는 시간표를 채우며 100년을 채우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둘째,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는 중립적 국가들이나 동맹국들의 교류 및 지원이 이뤄지고 나서 이행되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문제해결의 시작이자 끝으로 보지만, 미국과의 협상이 갖는 불확실성과 장기성으로 인하여 한국을 비롯한 제3국의 중요성이 증가할 가능성이 많다. 중국과의 동맹관계에 편중된 조선은 과소균형(underbalance)을 핵무장으로 보완하려고 하지만 군사 외적인 문제들은 가능한 많은 국가와 다양한 층위의 우호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셋째, 중국(덩샤오핑)과 베트남(도이머이)은 사회주의시장경제로 전환하였고, 쿠바(라울 카스트로)도 2011년 6차 당대회에서 시장경제 도입을 채택함으로써 미국이 이러한 변화를 관계개선에 참고하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미국은 비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배제적이고 차별적인 정책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미국의 선거일정 및 정치상황에 따른 불확실성이다. 미국과 조선이 어떤 중대한 합의에 도달하여도 미 의회에서 동의를 얻는 것이 불확실하고, 조선에게는 이러한 측면이 항상적인 불안요인이자 불신의 근거로 작용하였다. 미국의 양당제는 대통령을 견제하려는 야당의 반대와 선명성 경쟁으로 비토크라시(Vetocracy)가 만연하여 조선이 미국의 양당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나 대통령과 재무부의 잠정적 권한을 활용하여 이행과정을 통해서 의회를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근본적으로는 한반도 문제와 북핵 문제를 유기적으로 해결하려는 접근이 필요하다.

 

 

¹⁾ 와이즈 어니스트(Wise Honest)호 사건

 

2017년 8월 UN 안보리 결의 제2371호에 따라 조선의 석탄, 철광석, 희토류 등 광물수출이 전면 금지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의 광물을 적재한 선박들은 미국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2018년 4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300만 달러 어치의 석탄(2만6천톤)을 실은 와이즈 어니스트호(이하 어니스트호)가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에서 규정한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껐다는 이유로 자국에 억류시켰다.

 

와이즈 어니스트호는 1980년에 건조된 화물선으로 길이 176.6m, 폭 26m에 달하는 대형 선박으로 조선의 송이종합무역회사 계열사인 송이운송회사 소유로 알려졌다.

 

그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릭파판 형사법원은 어니스트호의 선장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인도네시아인 에코 세티아모코(수입 계약자)가 석탄 2만6천톤을 판매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이듬해 5월 어니스트호는 석탄 불법운송 혐의로 미국령 사모아로 압송되었다. 당시 김성 UN주재 조선대사는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에게 화물선 압류에 대해서 국제법 위반이라고 항의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이후 미 연방법원이 오토 웜비어에 관한 배상을 요구하던 유족의 요청을 승인하여 어니스트호는 경매에 부쳐졌다. 유족은 5억 달러의 배상 판결을 받았고, 배상금 보전을 위해서 조선 국적의 어니스트호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었다. 이에 따라 어니스트호는 2019년 9월에 매각이 되었으나, 미 연방보안청(USMS)은 밀봉입찰경매의 낙찰금액과 최종 구매자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²⁾ 커리저스(Courageous)호 사건

 

2019년 9월 싱가폴 국적의 커리저스호가 위치추적 장치를 끄고 조선 국적의 새별호에 150만 달러(17억원) 어치의 석유를 넘기는 장면이 위성감시장치에 의해 포착되었고, 그해 11월에 커리저스호가 남포항에 정박한 모습이 포착되었다.

 

미 연방검찰은 커리저스호가 환적방식으로 석유를 조선에 넘긴 혐의로 싱가폴 국적의 궈기셍(Kwek Kee Seng)을 기소했고, 미 법원은 캄보디아에 억류된 커리저스호에 대헤서 몰수 판결을 내렸다. 궈는 대북제재 위반 및 돈세탁 혐의로 수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