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항(정치학 박사)
바리쓰 니꼴라이비치 옐찐(Борис Николаевич Ельцин) 2
옐찐의 해괴한 행태
1991년 8월 쿠데타 이전까지 옐찐은 워싱턴에서 평판이 좋은 인물은 아니었다. 미 정보당국은 옐찐에 대해 술고래에다 인기영합적이며, 부시의 고르바초프 지지를 이유 없이 비난하고, 방해하는 인물로 평가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인지는 몰라도 1991년 12월 8일 민스크 근교의 벨라베쉬스까야 숲에서 러시아, 우끄라이나, 벨라루시 등 슬라브 3국의 지도자들이 소련 해체에 대한 비밀 회동을 한 후, 옐찐은 고르바초프보다 부시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보고했다.
까게베의 도청을 의식해 일반 전화를 이용했는데, 전화 교환원이 백악관 교환원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자, 친서구주의자이자 영어가 유창한 안드레이 꼬지레프(А. В. Козырев) 러시아공화국 외무장관이 다시 전화를 걸어 백악관 교환원에게 옐찐이 어떤 인물인지 소개하면서,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연결이 왜 중요한지 인내를 가지고 설명했다. 전화가 연결되자 옐찐은 부시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오늘 우리나라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습니다. 러시아, 우끄라이나, 벨라루시 3국은 독립국가연합(CIS) 구성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이로 인해 사실상 소비에트 연방은 사라졌습니다. 고르바초프는 아직 이 결과를 모릅니다.”
충격요법
보수 세력들의 삼일천하로 끝난 1991년 8월 쿠데타는 러시아 국내 정치세력의 재편을 가져왔다. 공산주의 세력과 민족주의 세력 등 보수 세력들은 물밑에 숨어서 돌아가는 상황을 흘끔흘끔 곁눈질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래서인지 옐찐은 무려 2개월간 끄림(Крым)의 소취(Сочи)로 휴가를 떠났다.
정국 구상을 위해 떠났는지는 몰라도, 정확히 두 달 뒤인 10월 28일 의회에 나타난 옐찐은 의회의 승인 없이 대통령 포고령으로 급진 개혁을 실행할 수 있는 비상대권을 요구했고, 의회 역시 압도적인 지지로 특별권한을 부여했다.
또한 옐찐은 35세의 젊은 이고르 가이다르(Е. Т. Гайдар)를 경제 및 재정담당 부총리로 임명하여 경제개혁을 진두지휘하게 했다. 이렇듯 옐찐의 초기 경제팀엔 가이다르의 모스크바국립대학교 동문이자, 전 외무장관이었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Э. А. Шеварднадзе)의 경제고문 출신인 40세의 알렉산드르 쇼힌(А. Н. Шохин), 그리고 사유화를 전담하게 되는 36세의 아나똘리 추바이스(А. Б. Чубайс) 등 젊은 세력들이 포진했다.
비상대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옐찐은 흥분을 했는지 의회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했다. 그는 대략 6개월 정도의 과도기가 지나면 러시아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개선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한 것이다.
옐찐의 이러한 판단은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데, 6개월 동안 러시아 연방에서는 옐찐의 장담과는 반대로 물가 폭등 등 미증유의 혼란만 드러났고, 오히려 6개월 만에 옐찐의 경제팀은 개혁노선에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대다수 인민의 생활 수준은 옐찐의 집권 기간 내내 개선되지 못했다.
1991년 11월 6일 옐찐은 소련공산당의 활동을 완전히 금지했다. 아울러 공산당의 각종 재산과 현금자산의 국유화를 선포했다. 이미 쿠데타 실패 후 고르바초프가 당 중앙위원회의 해산을 권고하면서, 소련공산당의 해체를 암시했지만,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인 옐찐의 명령은 소비에트 연방의 헌법상 권한을 넘어서기 때문에 불법이었다.
그러나 옐찐은 소련공산당이 “소련 인민들을 역사적인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은 것과 현재 우리가 이르게 된 연방 해체의 상태에 대해 책임이 있다”면서 그것을 정당화했다.
옐찐의 발언은 그야말로 모순에 가득 찬 궤변이었다. 본인 스스로가 소련공산당에서 노멘끌라뚜라로 특권을 누렸던 당사자였고, 연방 해체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문제의 책임을 소련공산당에 전가한 것이다.
그러나 옐찐이 소련공산당의 활동을 금지한 이유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급격한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국내적 환경을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여하튼 옐찐은 자신의 핵심 참모인 가이다르와 함께 그야말로 경제적 ‘빅뱅’으로 불리기도 하는 가격자유화라는 충격요법을 1992년 1월 2일부터 전격 단행하였다. 이는 인위적으로 낮게 책정되었던 가격을 전면적으로 현실화하는 조치였는데, 러시아 인민들에게 글자 그대로 가공할 만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자유화 첫날부터 기초 생필품을 비롯하여 각종 물가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몇몇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폭동이 발생했고, 이에 가격 인하와 일부 품목의 통제가격 실시 등 가격자유화 정책의 부분적인 후퇴를 수반하기도 했다.
옐찐의 경제팀이 추진한 급진적 경제개혁의 핵심 내용은 옐찐 본인의 성급한 인기영합주의와 더불어 제프리 삭스(Jeffrey D. Sachs) 등 미국의 경제학자들과 IMF의 통화론적 접근방법의 권고를 받아 설계된 가격자유화, 국영기업의 사유화, 그리고 재정 및 통화의 안정화였다.
이는 러시아의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처방이었는데, 후쿠야마(Francis Y. Fukuyama)와 헌팅턴(Samuel P. Huntington) 등의 저작에 감읍한 러시아의 개혁주의자들은 이를 마치 특효약인 듯 처방하다가 자신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커다란 재앙을 초래하게 되었다.
사실상의 국영기업 독점체제 상태에서 실시된 가격자유화 정책은 에너지 가격의 폭등으로 생산원가와 비용상승을 통한 급속한 가격상승을 유발했고, 생산자들은 인위적인 생산감소로 높은 독점가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더욱 큰 문제는 세수 확보 차원에서 가이다르는 높은 부가가치세를 적용했지만, 과도한 세율은 탈세를 유발했고, 결과적으로 정부로서는 전반적인 세수 부족 사태를 겪게 되었다.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 러시아의 인민들은 필사적으로 돈을 구해야만 했다. 단적으로 물가는 수십 배 폭등하는데,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급여로 인해 의사, 교사, 변호사, 공장 노동자 등 임금 생활자들과 노년층인 연금 생활자들은 생전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예전 같았으면 자동차와 별장을 살 수 있는 돈의 가치가 지금은 일주일치 식료품 값에 불과할 정도가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정부의 그라뵤쉬(грабёж; 강도질)라고 비난했다.
가격자유화가 개시되자 물가는 천정부지로 폭등했고, 기본 식품들의 수요는 대폭 하락했다. 1992년의 경우 1991년에 비해 육류 81%, 우유 56%, 채소 84%, 생선 56%까지 수요가 대폭 줄었다. 마치 전시상태와도 같은 해괴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계에서 식비 지출이 생활비의 80%를 차지했다.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사람들은 최저 생계비의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더욱 황당한 사실은 이렇듯 종이 조각에 불과한 아무런 가치가 없는 루블(рубль; 러시아 화폐)이 희소한 상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가이다르는 달러화에 대한 루블의 평가절상으로 루블의 가치가 높아졌다고 자랑했지만, 전국적으로 루블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 IMF의 권고에 따라 통화 긴축정책을 성실하게 실천했지만, 급격한 물가 폭등으로 돈의 씨가 마른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옐찐은 가격자유화를 실시한 지 한 달도 안 된 1월 29일, 모든 기업과 개인들이 마약과 총기류 등 몇몇 금지 품목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자신들이 편리한 곳 어디에서든지 거래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가이다르의 제안이었는데, 이러한 법령의 목적은 소매거래를 완전히 자유화하여 밑바닥에서부터 소매거래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모스크바를 비롯하여 많은 도시에 임시 장터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섰다. 수많은 좌판 행상들이 등장하였다. 이들 중 일부는 속칭 ‘보따리장수’가 되는데, 해외에서 값싼 물건을 보따리에 챙겨와 러시아 내에서 되팔아 이익을 챙겼다.
그야말로 옐찐은 ‘전 인민의 상업화’라는 깃발 아래 호모 소비에티쿠스를 단시간에 자본주의적 인간 유형으로 개조하고자 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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