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영세무장중립/중견국가의 지표

대법관 30명 증원과 '사법제도의 해킹' 논란

twinkoreas studycamp 2025. 6. 5. 13:11

4일 민주당은 대법관을 기존 14명에서 16명을 늘려 총 30명으로 재편하는 법률안의 본격적인 입법에 나섰다. 민주당은 대법관을 매년 4명씩 4년 동안 30명으로 확대하면 재판지연을 해소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에 법조계에서는 전원합의체의 경우 14명의 합의도 쉽지 않은데, 30명으로 늘리면 재판지연이 심화될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또한 대통령의 입김에 의해 대법관이 대거 증원되면 남미의 경우처럼 대법관들의 정치적 결탁 및 타락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국회 법사위에 상정된 원안은 일거에 16명을 늘리는 방안이었으나 민주당 의원 2명이 반대하자, 급히 정회하여 1년에 4명씩 늘리는 수정안을 급조하여 일방적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대법원 해킹(난도질) 논란
 
5일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재명 대통령 취임으로 5건의 재판이 모두 정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법 84조에 따라 소추가 모두 정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이에 반하는 주장들은 이유 없는 논쟁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대법원은 헌법 84조 대통령의 면책특권에 대해 당선 이전에 기소 및 재판이 진행되는 형사사건의 경우 해당 재판부가 재판 계속 혹은 정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민주당이 사법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는 동시에 대법원, 헌법재판소에 압력을 가해 모종의 딜을 노린다는 점에서 ‘사법제도의 해킹’ 논란이 가중될 전망이다. 베네수엘라 차베스-마두로 정권은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려 편파적인 판결로 정치적 이득을 봤으나 다시 20명으로 줄였다.
 

어떤 정치적 필요에 따라 추진되는 한국의 대법관 증원 추진도 이러한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처럼 대법관 수를 행정권력의 편의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은 '사법제도의 해킹(hacking:난도질)'이라는 지탄을 초래한다. 5일 대법원장은 대법관 증원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6월1일 멕시코 법관 직선제, 투표율 저조한 '그들만의 잔치' 논란
 
멕시코는 6월 1일 지방선거와 동시에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규모 ‘판사 직선’을 실시했다. 지난해 사민주의 계열 집권여당 MORENA(국가재건운동)는 대법관 9명을 포함한 법관 881명을 국민직선으로 선출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도 주 최고법원, 항소법원, 사실심법원의 판사와 주 검찰총장 및 카운티 검사장 등을 선출하지만, 기업 등의 선거자금 유입으로 법률의 왜곡된 해석과 편파적 판결을 초래하는 제도적 문제를 드러낸다.
 
미국과 같은 경우가 세계적으로 드물거니와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의 수준이 미국보다 열악한 멕시코에서 법관 881명을 일거에 주민투표로 선출한 것은 국제적 우려를 자아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법관 총선을 브리핑하는 모습

 
 
 
 
< 6월 1일 멕시코 주민투표 선출법관 구성 >

Supreme Court justices : 9명
Magistrates of the Superior Chamber of the Electoral Tribunal of the Federal Judiciary : 2명
Magistrates of the Regional Chambers of the Electoral Tribunal of the Federal Judiciary : 15명
Members of the Judicial Disciplinary Tribunal : 5명
Circuit court magistrates : 464명
District court judges : 386명

 
 
멕시코 집권당의 주도로 이뤄진 판사직선은 법원과 법관에 대한 광범한 사회적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동안 멕시코에서는 정관계의 부패, 조직폭력, 마약카르텔 등으로 인해 일반인들의 권리와 이익이 침해되는 사건이 만연했지만 사법부가 시민들의 억울한 호소를 외면하고 특정세력들과 결탁해 소수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원성이 자자했다.
 
멕시코의 도처에서 수시로 발굴되는 집단유골들은 은폐된 반인륜범죄에 대한 국가의 무능과 사법부의 침묵을 상징한다. 이처럼 신고된 범죄의 유죄처벌이 14%에 불과한 현실에서 국민의 다수가 판사를 직접 선출하는 방안을 지지한다.
 
그러나 법관의 주민직선은 정부가 후보자를 선별하여 출마자 명부를 작성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편향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멕시코 선거관리위원회(INE)는 1만8천여명에 달하는 지원자 중에서 적격심사와 평가위원회의 평가 등을 거쳐 법관 후보자를 3422명으로 선별했다.
 
이처럼 정부가 사실상 법관선거를 주도하는 구조에서 정부에 우호적인 법률가들이 후보자 명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특정한 성향의 법관들이 증가할뿐더러 정권과 유착된 이익집단과 범죄조직의 조직적인 사법부 침투의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마약카르텔의 총책을 대리했던 변호사가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
 
멕시코의 인권단체 디펜서스(defensorxs)는 후보자 중에서 매우 위험한 후보로 19명을 지목했는데, 여기에는 마약카르텔의 변호사였던 실비아 델가도 가르시아와 마약밀매로 중형을 받았던 레오폴도 차베스 등이 포함됐다.
 
 
법관들의 자업자득 : 삼권분립 및 법치주의 위기
 
멕시코는 역사적으로 1.5당제로 불릴 정도로 제도혁명당(PRI)의 장기독재를 겪었고, 이러한 정치적 토양에서 입법과 행정을 장악한 여당이 사법부까지 통제하게 되면 삼권분립과 법치주의에 위기를 초래할 것이란 시각이 많다.
 
특히 마약 등 범죄 카르텔이 정관계와 결탁한 지역들에서 범죄집단을 비호하는 판사들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물론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의 법관들이 뇌물과 테러 등 보복의 양자택일 강요당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멕시코의 마약 커넥션에서 비중이 큰 콜롬비아에서 유행했던 ‘플라타 오 플로모(plata o plomo)’는 “돈 받을래, 총알 먹을래”와 같은 뜻이다.
 
보수우파 정부의 부패커넥션에서 법조계가 마약카르텔에 연루됨으로써 사회적 불신을 초래했고, 마약의 주요 생산 및 이동 경로였던 콜롬비아·볼리비아·페루·멕시코와 베네수엘라 등에서 좌파 정부가 등장하면서 사법부 개혁을 명분으로 대법관을 30명으로 늘리거나 주민투표로 선출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런 시도들은 정치적 정당성과 별개로 사법부의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삼권분립과 법치주의가 파괴되는 경향을 초래한다.
 
법원에 대한 불신이 높은 국내에서도 민주당의 일부 의원들에 의해 ‘대법관 100명’ 개정안이 제출되었던 것은 남미 국가들과 유사해지는 불길한 전조현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중남미의 나르코스 카르텔
 
일반적으로 범죄조직의 주요특징은 경제성, 조직성, 비밀성, 불법성, 위계성이다. 마피아·야쿠자·카르텔 등 일부 범죄조직들은 이러한 특징 외에도 초국가적이고 장기지속성이 나타난다.
남미의 범죄조직 카르텔은 검경에 쫓기며 약탈적 수준에서 검경과 종속적 관계를 맺는 기생적 수준으로 성장하고, 결국은 정치권과 공생하며 법관들을 매수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중남미에서는 마약밀매업자(narcotraficante)의 준말인 ‘나르코’(narco)의 복수형인 ‘나르코스’(narco)라고 불렀다. 남미에서 발달한 카르텔은 내적으로 주요 마약제조 및 유통업자들이 공생 및 협력하면서 때론 시카리오(sicario, 청부킬러)로 살인극을 벌이곤 했다.
 
나르코스 카르텔은 또한 저소득국가 및 개발도상국의 취약한 법망을 뚫기 위해 경찰, 군, 정부, 법원, 언론, 종교기관 등과 내통하면서 이익을 나누는 ‘나르코스 카르텔’을 형성했고, 동시에 소득이 낮고 일자리가 없는 지역주민들을 이용하여 ‘코카인-마리화나 생태계’를 구축했다.
 
멕시코 독립언론 라보즈(La Voz)에 의해 마약전쟁을 지휘한 레보요 장군이 후아레스 카르텔에서 정기적으로 수뢰한 사실이 드러났다. 콜롬비아의 전설적인 마약왕 에스코바르(Pablo Escobar)는 메데인 카르텔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코뮤니스트 게릴라단체 ‘Movimiento 19 de Abril’과 연계하여 법원에 폭탄테러를 감행했다. 메데인 카르텔은 당선이 유력한 자유당 대통령 후보를 암살하기도 했다.
 
메데인 카르텔과 경쟁하던 힐베르토·미구엘 로드리게스 형제의 칼리 카르텔은 뇌물로 정치권 보호막을 형성하여 30여년간 세계 최대 코카인 공급망을 구축했다. 삼페르(Ernesto Samper Pizano) 콜롬비아 대통령은 칼리 카르텔의 범죄수익금을 대선자금으로 쓴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칼리 카르텔은 수익금을 은행, 아파트, 라디오방송국, 약국체인, 지역연고 상업축구팀 등에 투자하여 정치권과의 부패커넥션을 지속가능하게 만든 수완을 발휘했다. 칼리 카르텔은 전화회사를 인수하여 월평균 400건에 달하는 도청범죄를 저질렀고, 택시회사를 인수하여 5,000여명의 택시운전사를 범죄조직의 정보원으로 이용했다.
 
1989년 미국 마약단속국(DEA)의 집계에 따르면, 콜롬비아의 경찰이 일주일에 평균 1,550달러, 장교는 5,000달러, 장군은 15,000달러에 달하는 뇌물을 수수하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남미의 나르코스 카르텔은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일선경찰, 군인, 법관, 언론인, 종교인 등에게 돈질을 하면서 조직의 지속성을 높이고 국제적 팽창을 지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