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영세무장중립/국내(South Korea)

서부지법사태 대법관회의와 ‘사법의 정치화’

twinkoreas studycamp 2025. 1. 19. 22:12

 
 
현직 대통령 구속에 대한 외신의 반응은 한국 민주주의와 법치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높은 편이다. 현직 대통령의 구속은 이 나라에서 국회의장, 대법원장, 선관위원장, 헌법재판소장도 성역이 아니라는 것을 환기시킴과 동시에 여야의 대표도 구속의 예외가 아니라는 청신호로 풀이된다.
 
 

땅바닥에 널브러진 서부지법 간판은 난동의 무도함과 함께 법원의 추락한 권위와 위신을 상징하는 듯하다.

 
 
 
한편, 구속영장 발부로 인해 발생한 서부지법 난동사태는 헌법기관인 법원의 위신과 국격을 실추시키는 폭력행위로 지탄을 받는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법치주의에 대한 전면 부정’으로 규정하면서 “시시비비는 사법절차에 따라 이뤄져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검경은 전원구속 등 엄벌에 나섰다.

20일 대법관 긴급대책회의 입장문에는 사법부의 신뢰회복을 위한 진지한 검토가 결여됨으로써 이번 사태에 내포된 심각성을 자각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사태는 몇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1. 한남동 관저 주변에서 대규모 시위가 지속되면서 서부지법으로 중심이동이 예견됐다. 그럼에도 법원행정처는 특단의 예방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처장의 책임론이 제기된다.

여성 당직법관이 휴일 새벽 3시에 영장치고 직원에게 떠넘긴 행적이 드러나고, 직원들이 옥상으로 대피한 것은 시국을 안이하게 판단하여 무방비로 대처한 법원행정처와 치안당국의 책임이 막중하다.

멀지 않은 장래에 법원행정처가 감사원 감사 및 국정조사를 받을 개연성이 있다.

2. 서부지법의 공간적 구성은 현직 대통령 구속이란 헌법적, 사법적 대사변을 감당하기에 취약하다는 점이 간과됐다.

이는 영장발부의 유리함을 우선시한 공수처와 조정기능이 마비된 대법원의 합작품이다.

서울중앙지법의 경우에 차도와의 격리, 공간적 광대함, 청사후면의 접근 불가 등으로 군중의 차단과 경비의 용이함이 서부지법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리하다.

서부지법은 도로와 정문 및 청사가 불과 10미터 수준이고 후면에 주택가 골목이 즐비하여 군중의 접근이 용이하다.

3. 서부지법의 맞은 편에 마포경찰서가 있고, 지근거리에 경찰청이 있는 조건에서 영장발부 이후 군중심리에 의한 돌발사태를 감안한 경비조치가 사실상 부재했다는 의문이 제기된다.

4. 난입이건 난동이건 폭동이건 내란이건 법에 따른 엄벌은 당연하지만, 대법원과 경찰청의 인재라는 힐난도 면하기 어렵다.

5. 사법부가 법치주의와 법치수호를 내세워 남 탓만 하면 발전이 없다. 굳이 극우성향이 아니더라도 상당수 국민들은 법원이 두 개의 저울과 이중 잣대로 법치주의를 저해한다는 의구심을 표출하고 있다.

사법부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정체성을 망각하고 여야의 편가르기에 부역하면, 부패정권이나 부패야당과 결탁했던 남미의 사법부처럼
'민주주의의 기생충'으로 전락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서 민주당은 윤의 구속을 ‘헌정질서 바로잡는 길’이라고 평가하고, 서부지법 난동에 대해서는 ‘사법부 체계 파괴’라고 규탄했다. 이에 반해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표는 증거인멸 가능성을 단정할 수 없다고 기각했는데, 직무정지로 사실상 연금상태인 현직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는 사법부의 공정성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고 평가했다. 서부지법 난동에 대해서도 폭력행사 금지와 함께 경찰의 과잉진압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윤의 대리인은 직무정지로 사실상 연금상태의 현직 대통령을 증거인멸 우려로 구속한 것은 헌법정신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난동으로 훼손된 서부지법 벽면

 
 

난동으로 훼손된 서부지법 벽면

 
 
 
서부지법 난동사태는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로 촉발된 사건이지만 사법부에 대한 누적된 불신의 산물이란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 서부지법 난동사태는 ‘사법부의 정치화’ 논란과 그에 따른 법원의 권위 실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자 사법부의 그간 행태에 대한 사회적 불만과 경고가 투영돼 있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폭력사태는 근본적으로 '정치의 실패'에서 연유하지만, 정치의 실패를 교정해야 할 사법조차 기능부전에 빠진 '사법의 실패'가 자초한 일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부지법 판사진용 논란
 

특정 성향의 서부지법 혐오에는 정치양극화가 스며든 '사법의 정치화'가 투영돼 있다. 한국사회가 심리적으로 내전상태에 빠지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른바 우파성향 유투버들은 서부지법이 법원장부터 판사들까지 정치적으로 편향됐다고 주장한다. 비상계엄사태 이후 헌법재판관으로 추천 및 임명된 정계선 전 서부지법원장을 비롯해 영장전담판사(이 판사, 신 판사) 등이 그러하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판사 개인이 소속 법원의 전반적 분위기와 다른 관점과 법리를 제기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보니 동일한 범죄에 대해 각 지방법원마다 상이한 판결을 내려 혼란과 불신을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과천에 있는 공수처가 공수처법상 선순위에 있고 지리적으로도 인접한 서울중앙지법을 우회하여 대통령 관저(용산구)의 일반형사 관할인 서부지법에 체포영장(2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에 대해 논란이 제기된 것도 이러한 불신과 무관하지 않다. 종전의 청와대 및 관저는 종로구에 속해 관할이 서울중앙지법인데, 용산구로 관저를 이동함에 따라 관할이 서울서부지법으로 바뀌었다.
 
법관은 양심에 따른 독립적 판단이 헌법에서 보장되지만, 일부 정치적 사건에서 자신의 성향이나 입맛 혹은 이해관계에 따라 동일한 혹은 유사한 사안에 대해 유무죄가 엇갈려 불신을 초래했다. 권순일 대법관 등의 ‘재판거래’ 의혹이나 ‘공수처의 판사 쇼핑’ 논란도 이러한 사회적 불신이 반영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서울지역 법원의 암묵적 서열은 특수법원(행정법원, 가정법원, 회생법원 등)을 제외하고 서울중앙지법, 동부지법, 남부지법, 서부지법, 북부지법 등의 순이다. 지방법원의 이러한 서열구도에서는 정치적 사건에 대한 기류가 상이하게 조성될 수 있다.
 
먼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맹성(猛省)하여 말 그대로 ‘법대로’, ‘예규대로’ 원칙을 지킴으로써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일선 법관들도 선거법 재판 등 정치적 사건에서 균형을 기한 처신과 판결로 사법부의 신뢰회복에 기여할 수 있다.
 
노사관계가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는 ‘노사관계의 사법화’와 정치가 본연의 작동방식을 상실하고 법원의 판단에 의존하는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특정 성향의 법관들에 의한 ‘사법의 정치화’도 문제가 되고 있다.
 
 
‘좌파 사법카르텔’ 논란
 
현직 대통령의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차은경 부장판사는 영장전담이 아니었다. 심사가 토요일에 열리는 바람에 전담판사(이 판사, 신 판사)가 아닌 당직판사가 담당하게 된 것이다.
 
차 판사는 인천의 인일여고, 이화여대 경제학과를 나와 연구소에 취업했다가 사법고시를 준비한 늦깎이 고시생이었다. 그녀는 1998년 40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나왔으나 판검사로 임용되지 않았고, 로펌(법무법인 세종)의 변호사로 활동했다.
 
법원의 개방직 임용이 시작되면서 2006년에 판사로 임용돼 수원지법에서 시작해 서울중앙지법·인천지법 등에서 근무한 바 있다.
 
차 판사는 비법학과 출신으로 주요 법대 출신이 아니라는 점, 직장생활을 경험하고 로펌을 거쳤다는 점 등에서 다소 특이한데, 초유의 현직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법관이란 점에서 한국 사법시스템의 단면을 보여준다.
 
스스로 ‘충암파, 용현파’ 따위의 부끄러운 신조어를 초래한 윤석열이 할 말은 아니지만, 그가 제기한 ‘좌파 사법카르텔’ 주장은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톺아볼 필요가 있다. 좌우의 대칭적인 적대적 공생관계를 고려하면, ‘우파 사법카르텔’을 자동생성하는 프레임이란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와 관련해서 이완규 법제처장은 서부지법의 이순형 영장전담판사가 공수처에 발부한 체포영장(1차)에 ‘형사소송법 제110조·111조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적시한 것에 대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은 전임 대법원장인 김명수체제에서 법원 전반에 걸쳐 특정한 정치적 사건들에 대해 ‘늑장 재판’이 만연하고, 국회의 체포동의안 가결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을 특정한 사법카르텔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선관위에 대해서도 그간 여러 편향된 행태에 대해 사회적 비판여론이 엄존하다는 것을 이번 사태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동료 대법관(박상옥 대법관 소수의견)으로부터 새로운 법이론을 창설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순형 서부지법 영장전담 판사가 ‘판사입법’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사법부가 입법부를 대체하려고 한다’는 지적을 초래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박상옥 대법관의 임기만료로 당시 김명수 대법원장이 천거해 대법관이 됐다.
 
‘사법의 정치화’ 논란은 탄핵심판의 공동 수명재판관인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심판기일 지정에 관한 논란과 정계선 신임 헌법재판관에 대한 기피신청과 맞닿아 있다.
 
국가적 위기를 신속하게 극복하자는 취지로 서두르는 일들이 실제로는 국가의 행정·입법·사법체계의 상호 충돌과 기능의 부전(不佺)을 조장하는 역설적 현상들이 확산되는 점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또한 헌재가 선입선출(先入先出)의 원칙에 따라 여러 개의 탄핵심판 일정들을 정연하게 처리하라는 요구를 수렴하는 것도 사법부의 신뢰와 위신을 바로세우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정치권이 당장의 반사이득을 통해 권력의 유지 혹은 탈환에 골몰하기 보다는 비상계엄사태를 초래한 근본적 원인들을 성찰하여 한국 민주주의를 진화시키는데 대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국민의 명령일 것이다.
 
지난 역사는 내란으로 흥한 자가 내란으로 망한다는 것과 탄핵으로 흥한 자가 탄핵으로 망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은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퇴조 속에서 미중갈등의 심화, 경제성장의 둔화, 저출생 및 고령화, 기업혁신의 지체, 전략산업 육성의 차질, 성장잠재력의 저하, 후발국의 추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피크 코리아(Peak Korea)'의 가파른 능선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 행정부와 입법부와 사법부에서 드러나는 문제점들은 이러한 추세를 가속화시키는 불길한 징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