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주변에서 발생한 보행자 9명 사망사고의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추정과 주장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간과할 수 없는 이슈들이 누락됐다는 시각이 있다.
사고원인에 대해 차량의 결함(급발진 및 브레이크 불능 등)이나 고령자 운전의 문제는 감정적 논란이 아니라 앞으로 과학적 분석이 이뤄져야 하고, 보행자가 9명이나 사망한 이유를 좀더 넓은 시야에서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9일 오전 류재혁 남대문 경찰서장은 가해차량의 블랙박스에서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한 피의자(과실치사상)의 운행 버스(그린시티 20인승)와 제네시스 G80의 엑셀·브레이크의 외견 형태가 아주 유사하다고 밝혔다.
교통전문가들은 노련한 운전자라도 운행 중에 가속페달(액셀)을 밟아 갑자기 급가속하는 경우에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하는 경직성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다고 강조한다.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 감속페달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일종의 심리적 마비상태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페달혼동으로 인한 치명적 사고를 예방하는 장치가 등장하고 있다. 일본 등에서 활용되는 PMSA(페달 오조작 안전보조) 장치는 전후방 3~4미터에 장애물이 있는데도 (감속페달인 줄 알고)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을 경우에 연료공급을 차단하여 시동을 중지시켜 급속충돌의 파괴력을 줄이는 기능이다. 현대차가 전량 위탁판매하는 광주글로벌모터스(GGM)에서 올해 출시하는 캐스퍼 EV(인스터)에 PMSA 장치가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운전자의 페달 혼동 가능성
자신을 현직 버스기사로 밝힌 사람의 주장에 따르면, 가해차량의 정지장면은 최소한의 브레이크 압력으로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기사들의 몸에 밴 운전습관이 투영된 것으로, 사고원인이 급발진이 아니라 브레이크와 액셀의 혼동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특히 버스의 브레이크와 액셀은 오르간의 페달처럼 생겨서 운전자가 발뒤꿈치를 고정하고 발의 앞 부분만 움직여 액셀과 브레이크를 작동하거나, 양 발의 앞 부분을 액셀과 브레이크에 동시에 올려놓고 자전거 페달처럼 조절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에 비추어 보면, 일방통행로에 진입한 당황스런 상황에서 급발진 등 차량의 이상 유무와 별개로 브레이크와 액셀의 오작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급발진이 인정된 사례는 사실상 전무하다. 급발진을 주장하는 운전자가 이를 입증해야 하는데,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페달 블랙박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까닭이다.
위 페달 블랙박스 사진은 올해 2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유엔경제위원회(UNECE) 주관 분과회의에 공개한 것으로, 2023년 11월 밤에 택시운전사(65세 남성)가 몰던 전기차가 담벼락과 충돌한 사건에서 드러난 ‘페달 착각’을 입증했다. 당시 운전자는 우회전 중에 급발진이 발생하자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페달 블랙박스는 운전자가 담벼락과 부딪치기까지 7.9초 동안 100여미터를 달리는 동안 계속 액셀만 밟았던 것을 보여준다.
또한 운전자의 착각과 관련해 이상징후가 있었다는 점도 밝혀졌다. 운전자는 언덕길에서 택시가 안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을 때 자신이 액셀을 밟아 가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브레이크를 밟아 차량의 ‘갑툭튀’가 나타났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그는 계속 액셀을 밟으면서도 브레이크가 먹통이 됐다고 생각하는 확증편향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페달 블랙박스 영상에서 운전자는 페달을 6회 밟았는데, 모두 액셀(가속페달)을 누르고 있었다. 운전자는 벽과 충돌한 다음에야 액셀에서 발을 뗀 것이다. 시청역사고에서 나타난 세 차례 충돌과 마지막 정차장면에 대해 ‘가속페달 논란’이 이는 까닭이다.
차의 크기와 견고성에 비례하는 사회적 책임
기술발전으로 차량의 앞부분이 쉽게 부서지지 않는 견고성이 강화되고 있지만, 운전자와 동승자의 생명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측면과 상대적으로 허약한 안전펜스를 넘는 순간에는 보행자에겐 치명적 흉기라는 양면성이 있다.
생명을 잃은 보행자들과 유족들의 입장에서 보면, 만약 가해차량이 제네시스 G80이 아니라 모닝과 같은 경차였거나 다른 소형차였다면 사고의 양상과 인명피해의 정도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따라서 크고 견고한 차량일수록 보행자에 가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도 커지고, 이에 따라 운전자의 사회적 책임도 그만큼 비례해서 커진다. 비단 트레일러 등 특수차량이나 트럭 등 상용차의 운전자만이 아니라 이번 사고처럼 국내산 및 외국산 중대형 승용차의 운전자도 마찬가지다.
[Case Study] 가해차량 운전자의 사후음주
2024년 6월 27일 오전 전주에서 50대 남성이 몰던 포르쉐가 제한속도 50km 구간에서 159km로 직진하다 운전연습을 마치고 좌회전을 기다리던 스파크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사회초년생으로 운전을 배우려던 19세 청년이 숨졌고, 동승한 친구는 머리에 중상을 입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포르쉐 운전자의 음주측정을 시도했으나, 그가 병원에서 채혈하겠다는 말을 듣고 119구급차에 홀로 태워 보냈다. 포르쉐 운전자는 응급실에서 나와 근처의 편의점에서 맥주를 마셨고, 찾아온 직장동료와 함께 귀가하는 도중에 또 편의점에 들러 맥주를 마셨다.
"경적은 언제 울려야 하나?"
시청역 인도의 보행자 참사에서 가해차량은 경적을 울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비상시에는 브레이크만큼이나 경적이 중요할 때가 있다. 만약 급발진이 시작됐다면, 운전자가 제동노력과 함께 경적을 계속 울려 주변의 보행자들에게 최소한의 경고를 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200여미터를 질주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경적은 순간적이나마 행인들의 주의를 끌 수 있다.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차량이 속도를 줄이거나 정지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도로 주변의 가드레일이나 구조물 등에 부딪쳐 제동을 시도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차량이 인도 쪽으로 향한 것은 저절로 향한 것인지, 핸들에 가해진 힘의 방향에 따른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물론 경적소리가 났다고 해서 인도에 모여 있던 피해자들이 이를 인지하여 순간적으로 몸을 던져 충돌을 모면했을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 다만 희생자 중에는 식당을 나오자마자 참변을 당한 경우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적이 인명피해의 규모와 정도를 조금이나마 감소시킬 여지가 있었다고 가정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세계 5대 자동차강국의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의 도로문화에 대해 되물을 것들이 있다. 국내 도로에서 경적은 울려야 할 때 침묵하고, 울리지 말아야 할 때 울리는 것은 아닌지 자문할 필요가 있다.
“내 차의 경적(klaxon, 클랙슨·크락션)은 언제 어디서 울려야 하는가?”
도로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차량의 경적 소리는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경보음일까? 아니면 운전자의 조급함이나 답답함의 전기적 배설일까?
흔히 신호대기 중에 울리는 경적은 신호변경 후 1~2초를 참지 못하고 앞 차를 다그치는 조급함과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신경질적 산물인 경우가 많다. 특히 신호대기 중인 앞 차가 자신의 차보다 큰 차이거나 트럭 등 상용차일 경우보다는 경차이거나 소형차일 경우에 경적을 울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이러한 행태는 중대형 승용차 및 SUV를 선호하는 국내 차량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자신의 차보다 작은 차를 조르거나(teasing) 은근히(?) 위협하는 비열한 행위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또한 경적을 불필요하게 울리거나 반복적으로 사용하면 도로교통법 제49조에 따라 범칙금이 부과되고, 심한 경우는 난폭운전으로 간주되어 징역형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차량의 경적은 마차에 종을 달아 행인들의 피해를 막았던 선대들의 지혜에서 유래한 것이다. 차량에 경적이 설치된 가장 우선적 목적은 운전자의 심기보전이나 차량의 안위가 아니라 보행자에게 차량의 위치나 진행방향을 알려 치명적 충돌을 예방할 틈을 주는 것이다. 차량은 맨 손의 보행자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물리적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크락션이 울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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