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론/인간본성, 국가, 전쟁, 국가주의

함닉·곡망·방실과 탐·진·치

twinkoreas studycamp 2024. 5. 15. 23:12

고대 중국의 탁월한 실천윤리가이자 유가사상의 전사였던 맹자는 인간의 본성적 바탕이 선하지만, 함닉(陷溺)·곡망(梏亡)·방실(放失)에 의해 그러한 본성이 발현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함닉은 주변 환경의 변화(악화) 및 영향에 물들고 빠져드는 것을 말한다. 분수에 맞지 않는 수확이 함닉의 근원(非分收穫 陷溺根源)이란 말도 있다. 정치적 맥락에서는 집단적으로 거짓말과 기만을 정당화하고 일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곡망은 사리사욕에 얽매여 선함에 반하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 맥락에서는 사적(파당적) 이익을 공적 이익인 것처럼 공공선에 반하는 집단적 자기목적화로 이해할 수 있다.
 
방실은 애초의 길을 잃어버려도 찾지 않고, 애초의 마음을 놓아버리고 다시 찾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 맥락에서는 애초에 천명하고 표방했던 초심을 저버리고 반성하지 않는 집단적 뻔뻔함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함닉·곡망·방실은 사단(인의예지)의 발현을 가로막고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억눌러 호연지기가 생장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린다. 정치적 맥락에서는 집단적으로 진영논리와 정치적 개소리가 판세를 압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후대의 사람들은 함닉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주장하거나, 방실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하거나, 곡망이 모든 장애의 시작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세 가지가 어떻게 다른지 분명하지 않고, 서로 얽혀 있다는 관점도 있다. 또한 불교에서는 삼독(三毒), 즉 탐·진·치(貪瞋癡)가 외부의 영향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뿌리를 둔 불선근(不善根)으로 본다.
 
하지만 서사(narrative)는 유사하다. 탐애심(貪愛心)이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도가 지나치다는 것을 강조하고, 진에심(瞋恚心)이란 분노와 질시를 다스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우치심(愚癡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여 모든 번뇌의 시발이란 것을 강조한다.
 
탐·진·치는 정치적 맥락에서 집단적으로 분별과 중용이 퇴화하고, 분열적·적대적 경향이 강화되면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실사구시에서 멀어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까닭에 함닉·곡망·방실과 탐·진·치는 정치지도자, 정치적 집단의 사고 및 행태를 이해하고 설명하는데  유용한 측면이 있다. 또한 이러한 사유가 고대에서 유래하는 동양적, 유교적, 불교적 소산이지만, 세계화 및 정보화로 급격하게 서구화된 사회에서도 ‘정신적 염증’을 다스리는 항생제와 같은 약효가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