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론/인간본성, 국가, 전쟁, 국가주의

미국이 전쟁을 결심하는 또 다른 이유들

twinkoreas studycamp 2021. 3. 19. 11:32

 

국제정치이론은 한 시대의 강대국의 관점에서 쓰여진다(Kennets Waltz). 국제정치가 강대국과 약소국의 가면무도회라면, 국제정치이론가들은 가면공방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키신저는 국제질서가 모든 열강에게 받아들여지면 정통적이고 그 중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이 이를 거부하면 국제질서의 형태는 혁명적이라고 하였다. 국제정치적 결과가 국가들의 속성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면, 국제적으로 중요한 국가들의 내적 성향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구조가 선택한다. 게임의 승패는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고 가정한다면, 구조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구조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전쟁의 기원과 목표 및 본질에 관해서는 다양한 관점과 견해가 존재하지만, 현장의 지휘관들은 전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문제들을 목격하였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 이래 미국은 위험이 다가올 때 언제라도 그 위험에 맞서고 그 원천을 파괴해버리는 전통을 갖고 있다(John L. Gaddis). 미국인들은 전쟁을 결정적인 효율성을 가지는 정책수단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고, 평화와 어떤 가치를 위해 전쟁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미국은 인디언과의 전쟁을 시발로 해서 독립전쟁(1775~83), 영국(1812), 멕시코(1846~48), 남북전쟁(1861~65), 스페인(1898), 제1차세계대전(1917~19), 제2차세계대전(1941~45), 걸프전(1990~91), 이라크전쟁(2003~14)에서 승리했지만, 한국전쟁(1950~53)과 베트남전쟁(1964~75)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아프카니스탄전쟁(2001~)은 여전히 모호하게 계속되고 있다.

 

 

폭격의 역사(아라이 신이치) 본문 중에서

 

 

전쟁국가 미국의 전사(pre history)

 

영국에서 북미지역으로 이주한 앵글로색슨계통의 청교도를 중심으로 시작된 미국의 건국사는 영토팽창의 역사였다. 지금의 미국 영토는 군대와 자금을 통한 지속적인 팽창의 결과물이다.

 

1783년 대영제국에서 독립한 미국의 영토는 동부해안지역에 국한되었지만, 1803년에 루이지애나를 비롯한 광대한 중부지역을 프랑스로부터 매입하였고, 1813년에 플로리다지역을 스페인에게서 사들였다. 1818년에 영국으로부터 동북부의 캐나다 접경지역을 양도받았다.

 

1845년에 멕시코의 영향권에 있었던 광대한 남부지역을 합병하였고,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광대한 서부지역을 멕시코로부터 양도받았다. 1846년에 워싱턴주를 비롯한 광대한 서북부지역을 장악하고, 1853년에 멕시코에 속했던 뉴멕시코 지역을 매입하였다.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은 제1차세계대전 참전에 대해서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지만, 20세기 미국은 적어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항상적인 전지구적 전쟁국가(global warfare nation)로 변모하였다.

 

미국은 인디언 토벌에서 영국과의 독립전쟁, 스페인·멕시코 등과의 전쟁, 남북전쟁, 제1차세계대전, 제2차세계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쿠바 및 남미국가에 대한 반군지원을 통한 전쟁, 걸프전과 아프카니스탄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이 일상화되었다.

 

맥아더 사령관이 한국전쟁을 십자군전쟁(종교전쟁)과 같은 성격으로 바라보았던 것처럼 미국인들은 미국의 힘이 투사되는 곳에 어떤 도덕적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베트남 사이공 교외 지역에 남겨진 폭격의 흔적. <폭격의 역사 : 끝나지 않는 대량 학살>(아라이 신이치 저, 윤현명․이승혁 역) 본문 중에서

 

 

 

1965년 3월 2일부터 1968년 11월 2일까지 베트남 북부 전역을 중폭격기(B-52)로 3년 동안 융단폭격을 가한 롤링썬더작전(Operation Rolling Thunder)은 무장군인을 살상하여 전쟁능력을 약화시키는 효과는 미미했고 민간인만 대량살상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북베트남은 은폐와 지하화를 통해서 군사적 타격을 최소화하고 SA-2 미사일로 반격하면서 미 전폭기와 전투기의 공격을 견제하였다.

 

 

 

미국이 전쟁을 결심하는 이유

 

흔히 진보진영에서는 미국이 군산복합체의 경제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고 하지만, 실제로 미국이 전쟁을 결심하기까지에는 복합적인 이유들이 작용하였다.

 

미국이 제1,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배경에는 WASP와의 혈연적·종교적·문화적 유대관계(서유럽), 독일의 미국적 상선 격침과 일본의 진주만 기습에서 9.11테러까지 국가안보, 자유무역과 군산복합체에 기초한 경제적 이해, 종교적 세계관, 나치에 대한 공포 및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한 가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다.

 

젊은 시절의 니어링(Scott Nearing)은 미국이 전쟁을 결심하는 이유에 대해서 자본가집단의 이윤추구가 제국주의를 초래하고 전쟁을 야기했다고 생각했다. 1930년대 미국의 진보적 학자들은 미국의 재계와 관료집단이 주도하는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계급투쟁과 국제분쟁을 촉발하고, 정치지도자들이 강조하는 자유의 증진과 미국의 안보는 경제적 동기를 은폐하는 미사여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인들은 전쟁에서 명시적으로, 때론 마음 속으로 종교적 의미를 부여해 왔다. 미국은 신의 편이었고, 적대세력은 악의 편이었다. 미국인들은 초기에 전쟁에 신의 소명을 부여했고, 카스라·태프트 밀약을 거쳐 필리핀을 점령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기독교(신교)를 전파할 기회를 주신 신에게 감사를 올리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필리핀은 스페인의 식민지 상태에서 가톨릭 전파가 이뤄진 상태였고, 아시아권에서 가장 유서 깊은 가톨릭문화를 간직한 기독교(구교) 국가였다. 독실한 기독교인로 알려진 맥아더 총사령관은 한국전쟁에 십자군전쟁과 같은 소명을 부여했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남한의 기독교 신자들이 쓰러지게 놔둬서는 안된다고 호소했다.

 

한반도문제를 바라보는데서 유럽과 미국이 관여한 전쟁들과 한국전쟁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국가라는 대행자를 통해서 파시즘·코뮤니즘으로부터 신앙과 전교의 자유를 지키려고 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이 수행한 전쟁은 어느 정도 종교전쟁의 성격을 담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