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대남 담화에서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네 번이나 거론한 것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김 부부장의 담화에서 등장한《대한민국》에서 기호(《, 》)가 강조의 뜻(겹화살괄호)인지, 이른바(所謂, so called)의 맥락(인용부호 따옴표)인지 분명치 않다.
두 번에 걸친 담화에 등장한 《대한민국》의 합동참모본부, ”《대한민국》족속들, 《대한민국》의 군부, 《대한민국》의 군부깡패들이라는 표현은 그동안 대남 비난발언에서 나타나지 않았던 표현들이다.
이번 국호 논란의 배경에는 북의 주권 및 영해(EEZ)의 강조, 미국의 정찰활동 견제 및 긴장조성, 핵독트린에서 대남관계의 정리(전술핵 위협 및 소극적 안전보장 등) 필요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과 다수 언론은 이러한 변화를 남북관계에 대한 관점의 변화로 해석하고 있다. 즉 북이 남을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내부의 특수관계’에서 ‘국가 대 국가’로 바라본다는 메시지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적대적 실체로서 남의 국가성(stateness)을 인정하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적대적 공존을 암시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일부 언론에서 북이 그동안 완강하게 부정했던 'Two Koreas'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변화가 사실이라면 남북관계의 퇴행인가, 전향적 변화인가? 21세기가 20년이 넘게 지난 시점에서 ‘이승만-김일성 시대’의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 퇴행인가, 진화인가?
우리 시대의 언론은 국호 논란에 대해 퇴행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진화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
광복 이후 한반도 국가는 통일된 자주독립에 실패하면서 인위적 분단에 의해 하나의 민족이 두 개의 국가로 존재하게 됐다. 이는 영토완정(completeness)에 기초한 국민국가라는 근대적 국가이상(national ideal)에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
이에 따라 양측은 1민족 1국가라는 근대적 유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1민족 2국가’는 민족의 대의에 반하는 발상으로 간주해 왔다.
특히 북은 식민지해방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해 일관되게 하나의 조선, 하나의 조국을 지칭하는 ‘One Korea'를 주창해 왔고, 남도 다른 맥락에서 ’One Korea'를 견지해 왔다.
문제는 쌍방의 ‘One Korea'에는 자신의 체제로 귀속되는 재통일, 적어도 자신의 체제가 지배적인 연합(혹은 연방) 체제를 지향하는 동상이몽이 투영돼 있고, 이로 인해 ‘원 코리아'는 ’반쪽(half country)의 국가주의(Statism)‘를 강화하고 양측이 서로 국가성을 부인함으로써 적대성을 확대재생산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했다.
쌍방은 서로 이북, 이남이라고 지칭하거나 역외지역 쯤으로 간주함으로써 상호 존중에 기초한 평화적 재통일을 위한 점진적 교류와 동질성 회복과는 거리가 먼 법률 및 문화를 구조화했고, 쌍방의 역대 정권들은 겉으로 통일을 말하면서 실제는 통일의 방향에 반하는 역주행을 초래했다.
2023년 7월 23일은 1953년 7월 27일 휴전(정전협정) 이후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북에서 시작된 국호 언급을 ‘투 코리아’로의 선회라는 느닷없는 소동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이 서로 국호를 인정하는 선순환의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북이 ‘대한민국’이라고 지칭한 것을 고려하여, 남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길다. 쌍방이 ‘한국’과 ‘조선’으로 줄여서 부르던가, 대한민국과 조선공화국으로 지칭하는 것은 서로에게 체제내적으로 의미있는 변화를 촉진할 것이다.
‘투 코리아’라는 현실을 말로 부정하는 것은 쉽지만, 진정으로 ‘원 코리아’를 실현하는 것은 민족과 언어를 달리하는 국가와의 통합보다 더 난해해졌다.
그렇다보니 남에서는 통일부 무용론과 북에서는 조평통 무용론이 고개를 들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민족과 한반도 국가의 미래에 퇴행인가, 진화인가? 비현실적인 기존의 관성으로 시대변화를 바라보지 말고, 실현 가능한 미래를 향한 새로운 발상을 세워야 할 때가 왔다.
휴전을 하고도 70년 동안 전쟁상태(停戰, 교전의 중지)를 지속하는 나라가 세계에 어디에 있는가?
또한 대한민국의 교역에서 사회주의 중국의 비중은 여전히 막대하고, 대한민국의 수출에서 사회주의 베트남은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 베트남에 대한 직접투자 1위국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점점 막대해지는 ODA에서 동남아국가, 아프리카국가들은 많은 수혜를 받고 있지만, 정작 이웃한(!) 북녘동포들은 완전히 배제되고 있다. 이러한 비극적 역설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북의 고위책임자가 한마디를 하면 장님 이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억측이 난무하고, 스무고개와 퍼즐풀기를 되풀이하는 어처구니 없는 행태를 당연시하는 상황에서 ‘원 코리아’는 과연 무엇인가? 누구를 위한 담론인가?
이제는 ‘원 코리아’가 본래의 의미를 떠나 영속적인 대국민 통일사기극으로 변질되어 누구의 어떤 이해를 충족시키는가에 대한 전환적 성찰이 필요하다.
따라서 남과 북이 “북핵문제와 별개로” 상호 인정 및 존중의 실마리를 놓치지 말고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선대들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고, 후대들에게 그러한 비극을 물려주지 않는 현실적 방안이 아니겠는가?
한국과 조선으로 불러야 하는 이유
(이하 ‘트윈 코리아 Twin Koreas : 한반도의 지정학적 재탄생’ 발췌)
남과 북의 상호인정의 문제에 대해서 이진우 포스텍(POSTEC) 석좌교수는 남이라도 먼저 북을 국가로 인정할 필요가 있고, 북의 지위에 관한 내부적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하였다(국민일보, 북한은 국가다, 2018.11.13). 이 교수는 북을 국가로 인정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유익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첫째, 통일이 ‘국가 간 평화’의 문제가 되면 진보와 보수의 간극을 좁힐 수 있고,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과 같은 비현실적이고 비생산적인 논쟁을 피할 수 있다. 따라서 통일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줄어들고, 제도화되고 투명해진다는 것이다.
둘째, 어떤 국가로 통일해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가 중요하게 다뤄지게 된다. 이에 따라 체제의 경계와 단계적 접근, 장기적으로 체제수렴에 관한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논의가 활성화될 것이다.
셋째, 민족통일을 최고선으로 생각하면 그에 수반되는 많은 문제점을 간과하거나 무시하게 되지만, 북의 국가성을 인정하면 통일지상주의에 잠복된 편향과 위험을 견제할 수 있다. 달리 말하자면 조선을 국가로 인정함으로써 한반도의 국가이성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국호에 담긴 정통성 경쟁
1941년 임시정부가 발행한 광복군 기관지 ‘광복군’ 창간호에는 한자로 ‘한국’이란 국호(대한민국의 약칭)를 표지에 담았다. 1948년 국호 제정 논의보다 7년이나 앞선 시점이었다. 1947년 언론인 출신 설의식은 ‘신국가의 국호론’에서 ‘대한’과 ‘조선’의 장단점을 비교하여 제3의 대안으로 ‘새한’을 주장하였고, 민족사학자 손진태는 고구려의 법통과 진취적 기상을 승계한 ‘고려’를 제안하였다.
설의식은 고려, 조선, 코리아(Korea)와 마찬가지로 한(韓)도 한반도의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반영한다고 보았다. 김유신이 삼국통일에 대해서 삼한위일가(三韓爲一家)라고 하고, 태조 왕건이 후삼국 통일에 대해서 삼한일통(三韓一統)이라고 하였다는 점에서 ‘한’이란 말에는 삼한의 역사적 정통성이 있다고 간주하였고, 또한 대한제국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대한’이 국호로 쓰여졌다는 점을 평가하였다(이선민, 대한민국 국호의 탄생).
설의식은 대한제국의 역사가 13년만에 끝났다는 점을 들어서 패망한 국가의 국호를 새로운 국가의 국호로 삼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주장하였다. ‘조선’에 대해서는 단군의 건국에서 유래하여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호칭으로 쓰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사대주의(flunkyism) 조선이 일제에 의해서 망했다는 점을 들어 부적합한 국호로 간주하였다. 또한 조선에는 군신관계의 원리와 한양도성을 설계한 정도전의 사대적 관점(주와 기자조선의 관계)이 투영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제헌헌법 초안은 ‘조선은 민주공화국이다’(제1조)로 시작하였다. 조선어학회사건이나 조선어사전을 생각한다면 조선이란 말에서 민족의 정체성을 느끼는 것이 자연스러운 측면도 있었지만, 지도자들과 정당들은 상이한 견해를 드러냈다. 이승만과 조소앙은 대한민국을 제안하였고, 한민당은 고려민국을 지지하였다. 헌법기초위원회에서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가 나왔고, 본회의에서 대한민국이 찬성 163표(반대 2표)를 얻어 국호로 확정되었다.
북에서는 ‘조선인민공화국’이 유력하였지만, ‘민주주의’를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주장에 의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긴 국호를 채택하게 되었다. 북에서 생각하는 ‘조선’은 한반도 국가들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단군조선’의 상징성과 함께 평양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단군조선의 도읍지였던 아사달이 평양 주변의 산(백악산, 구월산)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2002년 조선 사회과학원 역사학연구소에서 발표한 ‘조선 역대국호 연구’(공명성 근대사실장)에 따르면, 역대 한반도 국가들의 국호에는 ‘동방의 해 뜨는 나라, ’태양이 솟고 밝고 선명한 나라’의 뜻이 담겨 있다. 단군 조선은 ‘태양이 솟는 동방의 나라’, 부여는 ‘태양과 불’, 고구려는 ‘태양이 솟는 신비한 나라’, 백제는 ‘밝은 산’, 신라는 ‘새 날이 밝는 곳, 태양이 솟는 벌’, 발해는 ‘밝은 해가 비치는 나라’, 고려는 태양과 ‘신성하고 거룩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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