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프랑스의 핵 개발 경위는 소연방(Soviet), 중국,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드러났다. 1946년 베빈(Ernest Bevin) 영국 외무장관은 “내가 당한 것처럼 이 나라의 다른 외무장관이 미 국무장관에 의해 좌우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면서 비용을 불문하고 핵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애틀리(Clement R. Attlee) 수상도 핵무기가 없으면 미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하였다. 군 최고지도부에서도 핵 자주권을 배제하여 최고의 무기를 타국에 의존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보았다. 1947년 애틀리 내각은 핵개발의 당위성을 간명하게 정리하였다. 핵무기 보유는 강대국의 역할과 영향력을 담보하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고, 서유럽..